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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256)화 (256/1,004)

256화 내가 어찌하면 좋을까?

육장봉을 잘 아는 사람은 모두 그가 술 중에 이화백을 가장 좋아하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월령안이 그 사실을 모를 리가 없었다.

다른 사정이 있는 게 아니라면, 그 이화백 천 동이는 월령안이 그를 위해 손수 빚은 게 분명했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육장봉은 저도 모르게 눈을 감고 가슴을 억눌렀다. 가슴이 심하게 욱신거렸다.

‘월령안, 도대체 나를 위해 얼마나 많은 일을 했던 거지? 그런데 왜 한 번도 말하지 않았을까? 아니, 당신이 말하지 않은 게 아니라 내가 당신에게 말할 기회를 주지 않았던 거군. 월령안, 내가 어찌하면 좋을까?’

육장봉은 눈을 감고 소리 없이 월령안의 이름을 불렀다. 마음이 씁쓸함으로 가득 차 괴로웠다.

“저희가 소홀했습니다. 장군, 벌을 내려 주십시오.”

육이는 변명을 한마디도 할 수가 없었다. 과감하게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었다.

그로서는 장군에게 지적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십팔 년 전, 월 낭자는 갓 태어나 청주에 있었다고 말이다.

그때 그들 친위대는 아직 편성되지도 않았고, 그들 모두는 장군의 곁에 없었다. 십팔 년 전의 일을 조사해낼 방법이 없을뿐더러, 조사할 생각조차도 하지 못했다.

게다가 청주는 다른 곳과 달랐다. 청주는 그 늙은이를 따르던 몇몇의 세력 범위였다. 그들이 청주를 빈틈없이 지키고 있었다.

육장봉은 얼마 전부터야 인력을 주나라로 돌릴 수 있었다. 조계안마저도 청주에 그의 사람을 심을 수가 없었다. 그들은 이제야 막 수도에 사람을 배치하기 시작했다. 청주까지는 정말 손을 뻗을 여력이 없었다.

그리고 육이가 장군에게 지적할 수 없는 게 하나 더 있었다. 월 낭자는 삼 년 전에 술을 빚거나 사고팔 자격이 전혀 없었다. 이 술은 분명 정상적인 경로로 나온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그 무렵에는 조왕의 부하들이 줄곧 월 낭자를 감시했다. 그런데 그녀가 얼마나 꼭꼭 숨겼는지, 조왕의 부하조차 찾아내지 못했다. 그런 것을 그들이 어찌 조사해낼 수 있겠는가.

육이에게는 변명거리가 한가득 있었다. 그러나 변명할 수도, 변명할 방법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떤 사건들은 터지는 시간에 따라 그 효과도 천차만별이었다.

그들이 변경으로 돌아와 월 낭자의 일을 조사할 때까지만 해도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장군이 월 낭자가 자기를 위해 어떤 일을 했는지 신경 쓰고, 그녀의 헌신에 감동하리라고는 말이다.

당시 월 낭자가 사람과 돈을 아낌없이 들여 육장봉이 즐겨 먹는 어린 양을 기르기 위해 국경 밖에서 풀밭을 가져다 변경에 옮겨 심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장군은 오직 짜증과 성가시다는 반응만 보였다. 심지어 그 요리마저 치우게 했었다.

그리고 설옥고, 조야옥사자도 사소하게 치부했다.

설옥고, 조야옥사자, 힘들게 키운 양까지, 이들을 마련하는데 들인 사람이나 돈, 심혈을 따져보면 이화백보다 정성이 적게 들어간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이들의 존재가 알려진 때가 달랐다. 예전의 장군은 신경 쓰지 않았다. 장군이 이렇게까지 변할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그래서 육이는 변명하지 못하고 벌을 받는 수밖에 없었다.

육이는 중징계를 받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예상외로 육장봉은 가볍게 말했다.

“이건 네 잘못이 아니다.”

‘나를 처벌하지 않겠다는 뜻인가? 장군은 참으로 상벌이 분명하시구나.’

육이는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기뻐하는 것도 잠시, 상벌이 분명하신 대장군께서 침착하게 말했다.

“어제 내가 청희 장공주를 순천부 감옥에 보내라고 했지. 그런데 반 시진도 지나지 않아서 청희 장공주는 순천부 감옥을 떠났다. 맞나?”

“네, 맞습니다.”

육이는 아차 싶었다. 그들의 장군은 정말 상벌이 분명했다.

“그래.”

육장봉은 탁자 위를 힘차게 내리쳤다.

“네 발로 가거라!”

“네, 장군!”

육이는 가슴이 무너져 내렸으나 겉으로는 아무 내색도 못 했다. 육장봉에게 예를 올리고는 재빨리 물러갔다.

그는 문밖으로 나와, 담담하고 냉정하게 왼쪽에 서 있는 육일을 보았다. 갑자기 정신이 들었다.

“아니지. 정탐꾼은 형님이 관리하잖습니까. 월 낭자가 몰래 술을 빚은 걸 알아내지 못한 건 형님 잘못이 아닙니까?”

“그래. 그러니까 그 일로 네게 벌을 주지 않으셨지.”

육일은 육이를 흘겨보았다. 눈에는 음험하고 차가운 살기가 서려 있었다.

육이는 도발하듯이 그 눈빛을 정면으로 마주 보았다. 육일의 손이 칼자루를 잡고 소리 없이 한 자쯤 뽑았을 무렵, 귓가에 장군의 오만하고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육일, 들어와라.”

“예, 장군.”

육일은 순식간에 살기를 거두었다. 남의 불행을 고소해하는 육이의 눈빛을 받으며, 태연하게 서재로 들어갔다.

육이는 옷깃을 여미더니, 가슴을 펴고서 형벌당(刑罰堂) 쪽으로 걸어갔다.

‘복이 있으면 함께 누리고, 어려움이 있으면 함께 나누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형제지.’

한편 서재 안, 육장봉은 원래의 자세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육일이 들어오자, 눈을 들어 훑어보았을 뿐이다.

“장군왕 세자를 찾아가 이화백 천 동이를 주문해라. 그리고 내 몫으로 여아홍 한 동이도 남겨 놓으라고 해라.”

“예, 장군.”

육일은 이화백 천 동이를 주문하기 어려울 거라고는 차마 말하지 못했다.

물건은 적을수록 귀하다. 이화백 천 동이는 장군왕 세자가 술집의 명성을 떨치는 데 사용할 게 뻔했다. 그들이 몽땅 가져오면, 좋은 술 없는 술집이 무슨 수로 장사를 하겠는가.

하지만 이 어려운 일을 해내야만 장군을 만족시키고, 그나마 분을 삭일 수 있었다.

육일은 이 어려운 임무에도 선뜻 대답했다. 그러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육 대장군은 여전히 언짢아했다.

탁!

육 대장군은 탁자를 세차게 내리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천명사 뒷산에서 우리보다 한발 앞서 사사 무리와 야율제를 찾은 건 수횡천이다. 그렇지?”

육일은 속으로 눈물을 떨구었지만, 무표정하게 대답했다.

“네, 장군!”

이번 일은 그들이 완벽하지 못한 게 확실했다. 만약 수횡천이 야율제의 발목을 잡지 않았더라면, 이번에도 야율제가 놓쳤을지도 모른다.

“내가 심혈을 기울여 길러낸 정탐꾼이 일개 강호인보다 못하다니. 너와 네 부하들, 모조리 다시 한번 훈련을 받아야겠다.”

육 대장군은 육일에게로 걸어가더니 그의 옆에서 걸음을 멈추고 냉랭하게 말했다.

“예, 장군!”

육일은 흠칫 떨고는 고개를 숙여 대답했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니까. 육이, 이 자식이 물귀신처럼 굴다니!’

육 대장군은 가볍게 콧방귀를 뀌고는, 굳은 얼굴로 서재를 나섰다. 그러면서 문을 지키던 시위에게 분부했다.

“장군부의 술을 모두 내오너라. 장병을 위로하고 포상할 것이다.”

월령안이 그의 대군을 위해 준비한 술을 마시지 못했으니, 스스로 준비하기로 했다.

육장봉은 몇 걸음을 내딛더니 멈춰 섰다. 또 새로운 분부를 덧붙였다.

“그리고 월씨 저택에도 열 동이를 보내라.”

주나라와 북요와의 전쟁에서 주나라가 대승을 거둔 데는 월령안도 공로가 있었다. 그녀도 이 술을 마실 자격이 충분했다.

“예, 장군.”

시위는 목청을 높여 큰 소리로 명령을 받았다. 그들 장군이 목소리가 작아 기운이 없다고 나무랄까 두려웠다.

“좋다.”

육장봉은 고개를 돌려 시위에게 칭찬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시위는 갑자기 기운이 넘쳐났다. 육장봉의 명령을 집사에게 전달한 뒤, 또 집사에게서 월씨 저택에 술을 가져다주는 일까지 맡았다.

“나도 갈래요!”

육십이는 육장봉이 없는 틈을 타서 모두를 밀어내고 집사의 앞으로 껑충 뛰어나왔다. 월씨 저택에 물건을 가져다주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집사는 육십이의 고집을 꺾지 못하고 그를 보냈다. 만약 육 장군께서 육십이를 불렀는데 그가 없음을 알아차리고 처벌하게 되더라도, 그건 집사의 책임이 아니었다.

장군께서는 언짢으시면 어디에라도 분풀이하고는 했다. 친구 때문에 자신을 내던질 필요는 없는 법. 육십이가 적극적으로 화를 자초하는 마당에야, 그들도 당연히 말릴 수가 없었다.

* * *

월령안은 장군왕부에서 돌아왔다. 저택에는 많은 초대장이 와 있었다.

전부 춘일연에 참가했던 아가씨들이 집에 돌아가 그녀에게 쓴 것이었다.

가족 연회니 시회(詩會), 또 집에 손님으로 초대하는 사람도 있었다. 심지어 집에서 웃어른의 생신을 치르는 데도 초대했다. 그녀를 진정한 지기로 여기겠다는 태도였다.

이를 보고 있으려니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소녀들의 세계는 확실히 단순했다. 좋아하는 것에는 이렇게 직접적이고 열정적이었다.

물론, 다들 약속이나 한 듯이 초대장의 마지막에 담담하게 한마디 덧붙이고 있었다.

‘그날 명월산장에서 사용했던 꽃은 어디서 파는 건가요?’

춘일연이 끝난 뒤, 그녀는 연회에 참가했던 모든 사람에게 선물을 했다. 선물 안에는 작고 정교한 비단 조화 일곱 송이가 들어 있었다. 장신구 삼아 머리에 꽂을 수도 있었다.

그녀가 선물한 비단 조화에는 천궁각의 장치가 설치되어 있어, 가볍게 건드리기만 해도 피어났다. 게다가 꽃 몇 송이에는 나비 장식도 붙어 있었다.

작은 나비는 생동감 넘치게 만들어졌다. 매미 날개처럼 얇은 날개는 사람이 걸을 때면 파르르 떨렸다. 마치 당장이라도 날아가 버릴 것만 같았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지 않으면, 진짜와 다름없어 보였다.

열 몇 살짜리 소녀가 머리에 정교한 작은 꽃 두어 송이를 꽂은 모습은 정말이지 귀엽기 그지없었다. 게다가 그 꽃은 머리 장식뿐만 아니라 옷에 달아 장신구로 쓸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일곱 송이로는 너무 부족했다.

세상의 여인 중 꽃과 장신구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나이가 아무리 많은 여인이라도 아름다운 꽃과 정교한 장신구를 보면, 저도 모르게 사고 싶어 한다.

은양당의 노인들이 만든 비단 조화는 겉으로 보면 진짜 꽃과 다름없었다. 거기에 천궁각의 장치까지 더해지니 진짜 꽃보다 더욱 정교했다.

비단 조화를 집으로 가져갔다가 자매들끼리 쟁탈전을 벌인 사람이 적지 않았다.

아가씨들은 월령안을 손님으로 초대한다는 구실로 비단 조화를 파는 곳이 있는지 완곡하게 물었다. 그녀들은 비단 조화를 구해서 자기가 쓰기도 하고, 가까운 친척과 친구에게 선물도 할 셈이었다.

월령안이 춘일연에서 이런 비단 조화를 잔뜩 사용한 것은 바로 은양당의 노인들을 도울 목적이었다. 돈벌이가 되면서도 그리 수고스럽지 않은 일을 찾아주려 했다.

이런 비단 조화는 귀족 소녀들을 대상으로 했기에, 수요량이 많지는 않았다. 꽃마다 특색이 있다 보니 가격이 싸지도 않았고, 쉽게 모방할 수도 없었다.

월령안은 사전에 장 상궁과 의논했다. 그녀는 비단 조화를 선전하고, 장 상궁은 미인방에서 은양당 노인들을 도와 이 꽃을 팔기로 했다.

지금 비단 조화는 미인방에 있기는 하지만, 양이 많지는 않았다.

월령안은 받은 초대장을 일일이 분류했다. 비단 조화에 관해 묻는 것에는 미인방에 가서 사면 된다고 답장을 썼다.

연회 초대는 완곡하게 거절했다. 집안 웃어른의 생신이라며 초대한 사람에게는 집사에게 시켜 후한 예물을 준비해 보냈다. 그녀 본인은 참석하지 않았다.

그녀가 육 장군의 부인이었을 때도 이런 초대는 적지 않게 받았었다. 그러나 황실과 종실의 연회를 제외하면, 다른 연회는 될수록 참가하지 않았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장사를 하려면 변경의 귀족 여인들과 잘 지내야 했다. 하지만 절친한 친구가 되어 가깝게 지낼 필요까지는 없었다.

월령안은 그녀들과 같은 부류의 사람이 아니었다. 연회에 참가할 수 있는 시간이 별로 없었다. 또한, 이런 풍류를 즐기는 일에 귀한 시간과 힘을 쓰고 싶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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