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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255)화 (255/1,004)

255화 비밀을 지켜야지

‘정말 육 대장군을 위해 술을 준비했던 건가?’

물론이었다.

이 일은 아무도 몰랐다. 심지어 노인조차도 몰랐다.

그때 자신이 무슨 생각이었는지는 그녀도 모른다. 다만, 그 당시에는 마음이 환희로 가득 차고 힘이 넘쳤다. 자기 손으로 직접 이화백 천 동이를 담글 여유까지 있었다.

심지어 원가조차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그저 마음 내키는 대로 강남에 양조장까지 만들고, 이화백의 재료를 변경으로 보내오게 했다. 그렇게 가져온 재료로 직접 술을 빚어, 다시 강남에 있는 양조장에 옮겨 두었다. 모두 육봉장을 위한 일이었다.

‘그때 난 무슨 생각을 했던 걸까? 미쳤던 게 분명해.’

월령안은 자조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누구에게나 소싯적 경거망동한 경험은 있는 법이다. 그녀는 이번 생에 다시는 이런 미친 짓은 하지 않을 거라 다짐했다.

“아니야?”

장군왕 세자가 눈썹을 치켜세우며 되물었다.

“물론 아니죠.”

월령안은 손을 꼭 잡고서 당당하게 부인했다.

“세자, 무슨 생각을 하신 거예요? 저는 상인이에요. 제가 그 술을 준비한 건 당연히 돈을 벌기 위해서였어요. 대장군이 승리하고 돌아오면 폐하께서 병사들을 위로하고 포상을 하실 거잖아요. 제가 그래도 장군 부인인데, 남이 이득을 보게 하느니 제가 조금이라도 더 벌려고 그랬죠.”

“돈만 벌자고 그랬다고?”

장군왕 세자는 믿지 않는 게 분명했다.

그녀는 단호하게 못 박았다.

“물론이에요!”

그녀는 장군왕 세자의 입을 막기 위해 선수를 쳐 되물었다.

“돈을 벌지 않으면, 그럼 육 대장군의 환심을 사려고 그랬겠어요? 제가 그럴 필요가 있나요?”

“그건 그렇군. 정말 육 대장군의 환심을 사고 싶었다면, 그렇게 쉽게 이혼장을 받고 육씨 가문을 떠날 수는 없잖아. 네가 악착같이 육씨 가문에 붙어 있었으면, 육 대장군도 내쫓을 이유가 없지.”

장군왕 세자가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럴 법하기도 했다.

월령안은 얼굴의 미소를 유지했다.

“세자, 술장사 이야기를 계속 의논할 마음이 있나요? 제 술을 다 파실 수 있으시겠어요?”

“양이 너무 많아. 우리 집안에서 통째로 다 받을 수는 없어. 그래도 반쯤은 문제없이 팔 수 있을 거야."

장군왕 세자는 술값을 대략 짐작해 보았다. 조금 전에 월령안이 자기에게 벌어다 준 십만 냥을 떠올리자, 자신감이 생겼다.

‘나도 이제 밑천이 있는 남자야!’

월령안이 말했다.

“그해에 사들였던 가격으로 세자께 팔아드릴 수 있어요. 다만 조건이 한 가지 있어요.”

그녀는 이 술로 돈을 벌려고 생각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무슨 조건인데?”

갑자기 장군왕 세자의 눈이 환히 빛났다.

그해에 사들였던 가격대로라면, 십팔 년 전과 삼 년 전의 가격이다.

당시의 가격이 지금의 시가보다 쌀 것은 뻔했다. 게다가 그 술을 여러 해 동안 묻어 두었으니, 물건 자체의 가치와 가격도 올랐다. 이 거래에서 그는 확실히 벌기만 할 뿐 밑질 염려가 없었다.

‘어쩐지 다들 월령안과 거래하고 싶어 하더라니.’

그녀와의 거래는 하늘에서 돈이 떨어지는 것과 같았다.

“장군왕부의 모든 술 가게는 반드시 영녕후의 술 가게에서 삼십 장(丈 - 약 100미터) 이내에 있어야 해요. 모든 술값은 영녕후보다 삼 할 이상 싸야 하고요.”

월령안은 말하면서 줄곧 장군왕 세자의 표정을 몰래 살폈다.

장군왕 세자가 미간을 찌푸리며 얼굴을 굳혔다. 그 모습을 보자 월령안은 그가 말하기 전에 재빨리 말을 이어 갔다.

“물론 그 보상으로, 제가 준비한 술들이 떨어지더라도 계속해서 저가로 술을 제공해 드릴게요. 장군왕부의 모든 술의 매입가는 영녕후부의 절반밖에 되지 않을 거고, 변경 어디를 찾아보아도 가장 낮을 겁니다. 세자께서 호부에서 술을 빚을 수 있는 주조(酒造) 허가증만 받아다 주신다면요.”

월령안은 말을 마쳤다. 장군왕 세자를 조용히 바라보면서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이익만 충분하다면 누구도 거절하지 못하리라고 여겼다.

“이 장사는…… 젠장, 나야 정말 하고 싶지. 하지만 우리 장군왕부에서는 못 해. 그럴 능력도 없고.”

장군왕 세자는 화가 치밀어 욕설까지 튀어나왔다. 월령안을 사납게 노려보더니 더없이 갑갑하다는 듯 말했다.

“영녕후부가 가진 술장사 권리는 고조 황제께서 내리신 거다. 황실에서 영녕후부의 체면을 봐준 거지. 우리 집안에서 네 말대로 했다가는, 영녕후부와 공개적으로 적이 될 뿐만 아니라 황실의 체면을 구기게 될 거다. 폐하께서 우리 아버지를 죽이려 드실걸.”

누군가의 돈줄을 끊는 행위는 그 누군가의 부모를 죽이는 것과 같다.

그들 가문에서 다시 술장사에 뛰어든다면, 그건 영녕후의 입에 든 음식을 뺏는 짓이나 다름없었다.

그는 영녕후가 고기를 먹을 때, 장군왕부가 종실로서 국물이라도 얻어먹으면 감지덕지했다. 그 정도라면 영녕후부에서 언짢게 여기긴 하더라도, 다른 말은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월령안은 그들 집안에서 영녕후부를 짓누르고, 이 업계에서 밀어내기를 원했다. 이건 누군가의 부모를 죽이는 것보다 훨씬 심한 짓이었다.

그가 거절하려고 했지만, 월령안은 더욱 큰 미끼를 던졌다. 그가 순순히 포기하지 못하게 하려고 말이다.

‘월령안이 사람을 잡는구나. 속이 다 쓰리네.’

월령안은 웃음을 머금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더니 비밀스럽게 말했다.

“세자, 지금은 예전과는 다릅니다. 세자께서 결정하기 어려우시면 군왕께 여쭤보시죠. 군왕께서도 망설이신다면, 한번 입궁하셔서 폐하께 주조 허가증을 부탁해 보라고 하세요. 폐하께서 혹시 내주실지도 모르잖아요?”

월령안이 말속에 어렴풋이 내비치는 뜻은 장군왕 세자의 마음을 싱숭생숭하게 했다.

“혹시 뭐 좀 아는 게 있나?”

월령안은 다시 한번 웃었다.

“부처께서 그러셨죠. 불가설(不可說 - 참된 이치는 말로 설명할 수 없음).”

본인이 직접 알아보고, 직접 보아야 하는 일도 있다 사람은 늘 자기가 알아낸 낸 것과 직접 본 것을 더 많이 믿는 법이다.

그녀가 숨김없이 터놓으면 재미가 없었다.

“그러면 조금 기다려 보게.”

장군왕 세자는 도박판 사건을 떠올리고 속으로 궁리했다.

‘월령안을 한 번 더 믿어 볼까? 까짓거 아버지한테 한 대 더 맞으면 그만이지. 난 살가죽이 두꺼우니까 괜찮을 거야.’

만약 이 일이 성사된다면, 앞으로는 더는 도박장으로 돈을 벌 필요가 없었다. 또한, 며칠에 한 번씩 어사대(御史臺)에 탄핵당할 일도 없었다. 그의 아버지도 황제에게 일상적으로 욕을 먹지 않아도 될 것이다.

“세자, 최대한 빨리 결정하세요. 육 장군과 손을 잡으면 저는 더 큰 이익을 볼 수 있거든요. 그렇죠?”

월령안은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었다. 그러나 장군왕 세자가 시간을 질질 끌며 장군왕부가 주도권을 장악하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그녀는 장군왕 세자에게 똑똑히 알려 줄 필요가 있었다. 그녀에게는 장군왕부가 유일한 선택지가 아니다. 그런데도 제일 먼저 장군왕부와 이야기하는 건 그들에게 충분한 선의를 보인 셈이었다. 그러니 조건을 협상할 생각은 하지 말아야 한다.

장군왕 세자의 안색이 살짝 변했다. 그는 더 망설이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기다려. 지금 당장 아버지더러 입궁하여 폐하를 뵈라고 말씀드리겠다.”

만약 황제가 이 일에 동의한다면, 이는 황제가 영녕후부에 불만을 느끼고 있으며, 그들을 억누르려는 의도가 있다는 뜻이었다.

장군왕부는 종실로서 당연히 황제의 뜻을 따라야 했다. 또한, 황제와 근심을 나누어야 했다.

‘만약 아버지가 폐하께 욕을 먹는다면……. 며칠만 밖으로 피해 있으면 되겠지.’

* * *

“무슨 수작이냐!”

장군왕은 세자가 찾아온 이유를 듣자, 화가 치솟아서 그 자리에서 그를 흠씬 두들겨 팼다. 그러나 돈을 버는 데 목숨을 건 세자는 통곡하기, 난동 피우기, 목매달기의 삼 단계 작전을 펼쳤다.

장군왕은 하는 수 없이 어두운 표정으로 입궁하여 황제를 알현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놈이라 별수 없었다. 살인이나 방화를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한번 시험해 본들 황제에게 미움이나 받을 뿐이다. 어차피 황제도 장군왕부를 별로 좋아하지 않으니 더 나빠질 것도 없었다.

장군왕은 입궁하면서 황제에게 된통 욕을 먹게 되리라고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다. 예상외로, 황제는 잠깐 생각에 잠기더니 흔쾌히 승낙했다. 그리고 옆에서 시중을 드는 내관에게 그를 데리고 호부에 가서 주조 허가증을 내주게 했다.

일 년에 허락된 양은 오천 근밖에 안 되었다. 하지만 황제가 이렇게 쉽게 허가증을 내주었다는 데는 무언의 의미가 담겨 있었다.

장군왕은 내내 얼떨떨했다. 허가증을 받고 나서도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호부를 나서서 햇빛을 받고 나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영녕후도 이젠 끝장이다!”

장군왕은 손에 든 허가증을 내려다보며 파안대소했다.

‘우리 장군왕부도 이제 볕 들 날이 왔구나! 내 아들 녀석이 난 놈이었어!’

장군왕은 한바탕 웃자마자 안색이 변했다. 손에 든 주조 허가증을 품속에 집어넣고는 엄숙하게 말했다.

“참, 비밀을 지켜야지. 폐하께서 일단 소문을 내지 말고 비밀을 지키라고 하셨지.”

장군왕은 주조 허가증을 가지고 서둘러 장군왕부로 돌아갔다. 그러나 얼굴에 어린 기쁨은 어떻게 해도 감출 수가 없었다.

* * *

월령안과 장군왕부가 함께 술장사하는 일은, 딴 사람에게라면 몰라도 육장봉에게는 비밀로 할 수 없었다.

장군왕이 황궁을 나서자마자, 황제는 이 일을 육장봉에게 전하며 한마디 덧붙였다.

“월령안이 드디어 좋은 일 한 가지를 했군.”

야율제 없이는 영녕후부의 범죄 증거를 찾을 수가 없었다. 황제는 영녕후부를 어찌할 수가 없어 걱정하던 참이었다.

그런데 때마침 월령안이 영녕후부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것도 영녕후의 명줄을 바로 끊으려 들었다.

영녕후부에서는 술장사로 얻는 수익이 없다면, 곧 수입이 지출을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 충분한 돈을 굴리지 못하면 분명 혼란에 빠지게 될 터였다.

영녕후가 흔들리면 그에게도 기회가 생긴다.

황제가 육장봉에게 보낸 내관은 장군왕이 입궁하여 황제에게 한 말을 한 글자도 빼놓지 않고 모조리 보고했다.

“십팔 년 된 여아홍? 삼 년 동안 묻어 둔 죽엽청, 이화백 천 동이라고?”

육장봉은 탁자를 가볍게 두드리며 이 세 가지 술 이름을 여유롭게 반복했다. 가볍고 느릿하게 되뇐 말은 마치 음미하는 것 같기도, 되묻는 것 같기도 했다.

황제가 보낸 내관은 육 대장군이 되묻는 줄 알고 살갑게 대답했다.

“네, 네. 십팔 년 된 여아홍입니다. 장군왕의 말씀에 따르면 월 낭자의 아버지가 월 낭자가 태어난 해에 딸을 위해 묻어 둔 것이라고 합니다. 전체 강남의 여아홍을 몽땅 사들이고, 산 하나를 사들여 몽땅 묻었다고 합니다.”

한쪽에 서 있던 육이는 어린 내관의 대답을 듣고 있었다. 순간 아차 싶어 서둘러 앞으로 나가 그를 막아 나섰다.

“장군께서 아셨답니다. 공공, 가시지요…….”

어린 내관은 어리둥절했다. 그렇다고 감히 장군부에서 행패를 부릴 수는 없어서 재빨리 물러갔다.

육이는 내관을 배웅하고 다시 돌아왔다. 장군이 여전히 원래의 자세를 유지한 채 꼼짝하지 않는 모습을 보자, 속으로 야단났구나 싶었다.

“장군!”

육이는 울며 겨자 먹기로 앞으로 나아가 가볍게 불렀다.

육장봉은 눈을 들어 육이를 보더니 엄하게 물었다.

“십팔 년 된 여아홍, 삼 년 동안 묻어 둔 죽엽청, 천 항아리나 되는 이화백……. 그런데 너희는 왜 아무것도 조사해내지 못했느냐?”

여아홍은 차치하더라도, 죽엽청과 이화백은 월령안이 그를 위해 준비한 게 분명했다. 심지어 그녀의 성격을 생각하면, 이화백 천 동이는 아마 직접 빚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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