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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254)화 (254/1,004)

254화 이 얼마나 깊은 마음인가

장군왕 세자는 재물을 좋아하기는 해도, 탐욕스럽지는 않았다. 자기 몫을 꺼내고 남은 구십만 냥 은표는 월령안에게 건네주었다. 아무 미련도 없는 기색이었다.

월령안은 상자를 건네받은 뒤 아무렇게나 한쪽에 놓아두었다. 마음속으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재물을 좋아하는 사람은 두렵지 않으나, 과욕을 부리는 사람은 두려웠다. 예전의 사건으로 장군왕 세자가 정직한 편임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금전은 사람의 마음을 흔들 수 있다. 많은 사람이 적은 돈 앞에서는 버티더라도, 큰돈 앞에서는 그 유혹을 이겨내지 못할 수도 있었다.

이곳은 장군왕부였다. 만약 장군왕 세자가 이 구십만 냥을 꿀꺽하려 한다면, 그녀로서는 아무 방법이 없었다.

그녀는 돈을 건 명세서를 장군왕 세자에게 주었다. 게다가 두 사람은 구두로만 약속했다. 사람들은 그녀가 화신이 된다는 데에 돈을 건 사람이 장군왕 세자인 줄 알고 있었다. 설령 그가 이 돈을 독차지한다 해도, 그녀는 억울함을 호소할 데가 없었다.

장군왕 세자는 자기 몫의 은표를 집사에게 던져 주고, 농담조로 말했다.

“나와 함께 무슨 장사를 하려 하느냐? 너는 돌을 금으로 만드는 재주가 있다던데, 내게 큰돈을 벌어다 주려는 것이냐?"

“세자, 농담도 참. 제게 무슨 재주가 있어 세자께 큰돈을 벌어다 드리겠어요. 세자께서 저를 돌봐 주셔야 제가 푼돈이나 좀 벌죠.”

월령안은 자신의 공로를 자랑하지 않았다. 진심 어린 얼굴에는 약간의 거만함도 없이 오직 감격뿐이었다. 정말로 장군왕 세자가 그녀에게 큰돈을 벌어다 준 것처럼 말이다.

장군왕 세자도 잠깐 생각해 보니, 틀린 말도 아니었다. 그의 가문에서 나서지 않았더라면, 월령안이 이 돈을 순조롭게 손에 쥐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자, 그도 제법 담담해졌다.

“말해 봐. 무슨 장사지?”

그와 월령안은 서로 돕고 이득을 얻는 사이인 셈이다. 그는 돈을 벌고, 월령안도 손해를 보지 않았다. 월령안이 장군왕부에 돈을 준 적은 없으니, 이 일을 황궁, 황제 앞에까지 끌고 간다고 하더라도 두렵지 않았다.

“술장사예요. 이 장사를 하실 용기가 있으신가요?”

월령안은 입술을 다물고 웃으며 장군왕 세자를 덤덤하게 바라보았다.

“술장사라고?”

장군왕 세자는 눈알이 튀어나올 뻔했다.

“영녕후부의 장사를 빼앗으려고?”

“각자 자기 능력으로 돈을 버는데 어찌 뺏는다고 할 수 있나요?”

이 장사는 그녀가 할 수 없는 장사였다. 그게 아니었더라면 장군왕부를 끌어들일 필요가 없었다.

술장사는 언제든 폭리를 얻을 수 있는 장사였다. 그러나 술을 빚는 데는 대량의 곡식이 필요했다.

상인들은 이익을 좇는다. 상인들이 많은 곡식으로 술을 빚어 국가의 근본을 흔드는 일이 없도록, 주나라에서는 금주령을 내렸다. 관아에서 허락한 상인만 술을 팔 수 있었다.

그리고 변경에서 술장사를 할 수 있는 이는 오직 영녕후부 하나뿐이었다.

자고로 독점 장사는 어떻게 해도 벌이가 좋은 법이다. 더군다나 그게 술장사라면 말할 필요도 없었다.

이 몇 년 동안, 영녕후부는 술장사로 제법 많은 돈을 벌었다. 그리고 술장사로 얻은 큰 이익 때문에 군중(軍中)에서 영녕후의 지위를 뒤흔들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주나라의 문관은 발언권이 강해 줄곧 무장들을 억누르고 있었다. 일반 장병의 생활은 아주 어려웠다. 군량과 급료는 굶어 죽지 않을 만큼만 주었고, 그것조차도 때로는 모자랐다. 만약 상관이 몰래 보태 주는 관례가 없었다면 병졸로서는 버티기 어려웠다. 훈련할 힘마저 없다 보니 전장에 나가 적을 무찌르는 건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영녕후부도 원래는 술장사를 할 자격이 없었다. 그들 가문의 장사는 청희 장공주가 영녕후부로 시집가면서 받아낸 것이었다. 월령안이 볼 때, 영녕후 세자가 청희 장공주를 아내로 맞아들인 것은 아주 수지맞는 장사였다.

“술은 아무나 팔 수 없다는 걸 모르는 건 아닐 텐데? 조정의 허가 없이 몰래 술을 팔았다가는 목이 떨어질 수 있어.”

장군왕 세자는 월령안을 힐끗 노려봤다.

이 장사가 좋기는 하지만, 하기는 어려웠다.

“알고 있어요. 하지만 세자의 집안에서는 팔 수 있잖아요. 아닌가요?”

그런 걸 몰랐다면, 굳이 장군왕 세자를 찾아와 손을 잡자고 할 필요가 없었다.

영녕후부에서 술장사를 하기 전까지는, 장군왕부도 변경에서 술장사를 했었다. 비록 독점은 아니었지만, 이 장사로 적지 않은 돈을 벌었다.

그런데 영녕후부는 술장사를 시작하더니, 어디서인지는 몰라도 비법을 얻어낸 모양이었다. 그들이 빚은 술은 맛도 좋고 값도 쌌다. 그러자 사람들이 차츰 다른 곳의 술을 외면하게 되었고, 결국 영녕후부가 변경의 술장사를 독차지하게 되었다.

장군왕부는 술장사에서 이문을 남기지 못하자, 어쩔 수 없이 밀려나게 되었다. 그다음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아예 도박장을 열었던 것이다.

“팔 수 있다고는 해도, 술을 들여올 경로가 없어.”

장군왕 세자는 탄식했다.

“우리 가문이 당시 밀려난 것도 영녕후부가 유세를 부려서만은 아니야. 확실히 우리 술이 그들 것만큼 팔리지 않았어.”

월령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술은 제게 있어요. 세자께서 팔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있어요.”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새 술은 인지도가 없어서 잘 팔리지 않아.”

술장사는 그리 쉬운 게 아니었다.

“십팔 년 된 여아홍(女兒紅 - 묵은 소흥주, 옛날 딸이 태어나면 여아홍을 묻어두고, 시집갈 때 꺼내어 손님들을 대접하는 풍속이 있다), 삼 년간 묻어 두었던 죽엽청(竹葉靑)과 이화백(梨花白)은 어떤가요.”

월령안은 웃으면서 세 가지 술 이름을 말했다. 그러나 지금 그녀의 마음은 본인만 아는 괴로움으로 가득했다.

여아홍, 죽엽총, 이화백.

이 세 가지 술은 그녀의 깊은 정을 담은 것이었다. 그녀는 여태껏 그것들을 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녀가 적을 상대하는 데 쓰는 도구가 되었다.

“십팔 년 된 여아홍이라고? 얼마나 있느냐?”

장군왕 세자는 금세 흥미를 느꼈다.

십팔 년 된 여아홍은 당연히 황궁에서 황제가 마시는 술이나 평소 자신이 마시는 술에는 비교할 수 없었다. 하지만 주루(酒樓)에 두고 파는 술로는 그만한 햇수면 충분했다.

그는 도박, 미인, 미주(美酒)를 즐겼다. 예전이기는 했지만 그의 집안이 술장사를 한 것도 영향이 있었다.

“청주의 백성들이 사흘 밤낮을 마시고도 남을 거예요.”

구체적인 수량은 그녀도 몰랐다.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가 태어나던 해에 아버지가 강남의 여아홍을 몽땅 사들였을 뿐만 아니라 이듬해의 새 술까지 전부 예약했다는 것만 알려 주었다.

이 술들을 저장하기 위해 아버지는 산 하나를 샀다. 그리고 산속에 술 저장고를 지어 그녀를 위한 여아홍을 묻어 두었다.

그 술에는 아버지의 기대와 축복이 깃들어 있었다. 아버지는 그녀가 평범한 집안의 아가씨처럼 혼인하여 아이를 낳고 평생 행복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녀는 결국 아버지의 기대를 저버렸다.

“그러면 도대체 얼마나 되는 거야?”

장군왕 세자는 월령안을 망연하게 바라보았다.

셀 수 없다는 게 어느 정도인지 감도 잡히지 않아 얼이 빠졌다.

“정확한 수량은 저도 몰라요. 사람을 시켜 파 보아야 알 수 있을 거예요. 그래도 십여만 동이는 틀림없이 될 거예요. 십팔 년 전에 저희 집안에서 강남 일대의 여아홍을 몽땅 사들여서 거기에 묻어 두었거든요.”

여아홍을 말하는 월령안의 목소리에는 아쉬움과 슬픔, 자조도 섞여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이 술들은 삼 년 전, 시집갈 때 꺼내서 마셨어야 했었다. 그러나 그녀는 서둘러 시집을 갔고, 육씨 가문에 시집간 뒤에는 줄곧 바쁘게 뛰어다니다 보니 그 술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지금은 삼 년 전에 잊고 있었던 것이 다행이라고 여겼다. 오늘 그 술을 꺼내 새로운 판을 짤 수 있으니까.

“강남 일대의 술을 몽땅 사들였다고? 너희 가문에서 설마 너만을 위해 준비한 건가?”

장군왕 세자는 놀란 눈을 커다랗게 뜨고 월령안을 바라보았다.

“맞아요.”

월령안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너희 월씨 가문은 정말 부자구나. 딸에게도 정말 잘해 주는군. 황궁의 공주는 물론, 황후를 들일 때도 그 정도는 아니야. 그 술을 자랑하면 얼마나 많은 아가씨가 부러워하겠어!”

장군왕 세자는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부러운 표정을 지었다.

월령안은 고개를 저었다.

“세자께서도 청주 월씨 가문을 알잖아요. 우리 월씨 가문 딸들은 아무도 시집가지 못해요. 그 술은 아버지가 제게 미안한 마음으로, 제 인생이 그랬으면 좋겠다는 최고의 환상을 품고 사 두신 거예요. 아버지께서는 술을 묻으면서도, 그 술들이 다시 빛을 볼 날이 올 줄은 생각지도 못하셨을 거예요."

만약 십 년 전의 그 사고가 아니라면, 그녀는 월씨 가문의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황실에 잡혀가 갇혀서 지내며 햇빛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혹은 그녀의 오라버니와 함께 월씨 가문을 관리해야 했다.

그리고 이제는 월씨 가문 가주가 되었다. 그녀의 남편은 황제가 하사할 테니, 시집갈 수 없었다.

당연히 그 여아홍을 꺼낼 일은 없었다.

“그게…… 미안하군. 고의는 아니었네.”

장군왕 세자는 종실 자제로서 월씨 가문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아는 게 별로 없기는 했지만, 월씨 가문에는 시집간 아가씨들이 없고, 일정한 나이가 되면 모두 실종된다는 것은 알았다.

속사정은 모르지만, 피와 눈물로 얼룩진 사연이 있으리라는 것쯤은 묻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는 슬픈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월령안이 가문의 비밀을 그에게 말해 주지 않을 것이 뻔하기도 했지만, 설령 말해 준다고 해도 듣고 싶지 않았다.

장군왕 세자는 그 화제를 과감하게 그쯤에서 끊고,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이화백과 죽엽청은? 수량이 얼마나 돼? 정상적인 경로는 맞겠지?”

“죽엽청은 삼십만 동이, 이화백은 천 동이예요. 이 술은 제가 사람을 시켜 빚은 거예요. 조정에서 허락을 받은 건 아니지만, 문제가 되지는 않을 거예요. 이 술은 강남에 두었거든요. 경로를 깔끔하게 세탁한 다음 변경으로 가져올 수 있어요. 조정에서 출처를 알아내지 못하게 할 거예요.”

여아홍 이야기를 할 때는 아쉬움과 슬픔이 있었다. 이 술을 이야기하려니 그냥 가슴이 텅 빈 것만 같았다.

육장봉이 즐겨 먹는 양고기부터 설옥고, 조야옥사자, 이제는 손수 빚은 이화백까지. 그녀는 마침내 육장봉을 그녀의 인생에서 조금씩 조금씩 지우기 시작했다. 조금 아프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견딜 수 있었다.

“월 낭자. 정말 육 대장군을 위해 술을 준비했던 건가?”

장군왕 세자는 호기심이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정말 궁금했다.

세간에서는 월령안이 육장봉에게 간도 쓸개도 다 빼 줄 정도로 잘해 줬다고 했다. 예전에는 그런 것을 전혀 느끼지 못했는데, 이 술 이야기를 듣고 나자 갑자기 육장봉이 부러워졌다.

삼 년 전, 국경에서의 전쟁이 교착 상태에 빠지자 육장봉은 곤경에 빠졌다. 조정의 문관들은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전선에 군비(軍費)와 군량을 더해 주지 않으려 했다. 육장봉에게는 전쟁을 그만두고, 화친하기를 요구했다.

그 시절은 육장봉이 가장 어려웠을 때였다. 모두가 그의 능력을 의심했다. 그러나 월령안은 오히려 육장봉을 위해 술 삼십만 동이를 준비해 두었다.

이 삼십만 동이나 되는 술은 패전한 육장봉을 위로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그의 개선을 축하하기 위한 것이었음이 틀림없다.

삼 년 전, 모두가 육장봉을 믿지 않았다. 하지만 월령안은 그를 믿고 축하주까지 준비했다.

이 얼마나 깊은 마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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