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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253)화 (253/1,004)

253화 바보가 그렇게 많지는 않거든요

소 승상은 이 정도의 답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굳은 얼굴로 말했다.

“가서 큰 도련님과 큰 아가씨를 불러오거라.”

소 승상은 자신의 예상이 틀리기를 바랐다. 하지만 오직 이 가능성밖에 남지 않았다.

소여방은 들것에 실려 왔다. 소함연은 한발 늦게 도착했다.

“아버지, 저희를 왜 찾으세요?”

“어제 너희 중 누가 장군왕 세자에게 무례한 행동을 했느냐?”

소 승상은 당황한 나머지 다급하게 물었다.

원래라면 장군왕의 노여움을 사는 것쯤은 두렵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랐다. 황제의 암시가 있었기 때문에 장군왕이 그에게 손을 썼는지조차도 확실히 알 수가 없었다.

만약 황제의 뜻에 따른 행동이었다면, 소씨 가문은 완전히 끝장났다고 봐야 했다.

“저는 아니에요. 장군왕 세자와 아무 원한도 없는데 세자께 왜 무례한 짓을 하겠어요?”

소함연과 소여방 남매는 거의 동시에 입을 열었다.

“너희가 세자에게 무례한 짓을 하지 않았는데 장군왕부가 우리 가문에 손을 썼다는 말이지. 그렇다면 정말로 폐하께서 시켜서 한 일인가?”

소 승상은 이런 가능성을 생각하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는 그런 생각을 떠올리자마자, 연신 부정했다.

“아니,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폐하께서 그 일을 크게 만들 리가 없어.”

그는 당황한 마음을 겨우 진정시키고 다시 물었다.

“그럼 등요 공주와 장군왕 세자가 춘일연이 끝나기도 전에 돌아왔는데, 무슨 일이 생겨서 그랬던 건지는 알고 있느냐?”

“등요 공주와 장군왕 세자가 먼저 돌아왔다고요?”

소함연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녀는 비틀거리며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짐작이 갔다.

그녀는 등요 공주가 어째서 계획에 성공하지 못했는지 줄곧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다. 인제 보니 일이 생긴 모양이었다.

“함연아, 네가 무슨 짓을 한 거냐?”

소 승상은 예리한 눈빛으로 소함연을 노려보았다.

“아버지, 저는 아니에요. 장군왕 세자에게 손을 쓰지 않았어요. 저는, 저는 다만…….”

소함연은 서둘러 해명하려 했다. 그러나 머릿속이 혼란스러워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랐다.

“어제 본 걸 처음부터 끝까지 죄다 이야기하거라.”

소 승상이 성난 목소리로 말했다.

털썩!

소함연은 깜짝 놀라 땅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결국, 장군왕 세자와 등요 공주가 충돌한 사건부터 시작해, 자신이 등요 공주를 대신하여 거한 네 명을 찾아 주어 월령안을 겁탈하도록 했던 것을 하나도 빠짐없이 소 승상에게 털어놓았다.

소함연은 놀라서 어쩔 줄 몰랐다. 그러나 덜덜 떨면서도 자신의 추측을 말했다.

“아버지, 저, 저는 등요 공주가 그때 월령안뿐만 아니라 장군왕 세자까지도 납치한 게 아닌가 의심스러워요."

“아이고, 내 팔자야. 벗어나긴 글렀구나!”

소 승상은 절망적으로 눈을 감았다. 침대 머리 판에 뒤통수를 쿵쿵 부딪쳤다.

만일 그의 아들과 진비의 일이 없었더라면, 장군왕을 찾아가서 사죄하고 끝낼 수도 있었다. 그러나 하필이면 두 사건이 겹쳤다.

“함연아, 너는…… 집사를 보내서 육비우와 의논해라. 모든 절차를 간소하게 해서 최대한 빨리 혼사를 치러야 한다.”

황제는 됨됨이가 너그럽고 인자했다. 그러나 제왕 특유의 고질병을 앓고 있어, 자부심이 강하고 툭하면 다른 사람에게 화풀이했다.

등요 공주가 장군왕 세자를 납치했지만, 황제는 등요 공주를 벌하지 않고 소함연을 탓할 것이다. 소함연이 등요 공주를 나쁜 길로 이끌었다고 할 게 뻔했다.

이 딸을 더는 데리고 있을 수 없었다. 집에 두었다가는 화근이 될 것이다. 반드시 최대한 빨리 시집보내야 했다.

“아버지, 저, 저는 육비우에게 시집가고 싶지 않아요. 육씨 넷째 집안은 육 대장군의 미움을 받아서, 이젠 장군부의 덕도 못 본다고요. 제가 시집가면 뭐가 좋겠어요?”

어제도 이 말을 들었지만 그때 소함연은 반박하지 않았다. 그러나 소 승상이 구체적으로 명령하자, 자신의 미래를 위해 반발할 수밖에 없었다.

“육비우가 아니면, 누구한테 시집갈 생각이냐? 그 북요 귀족에게 시집갈 셈이냐? 이 아비에게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라는 죄명을 씌울 작정이냐?”

소 승상은 그 일을 그냥 덮고 넘어가려고 했다. 육장봉을 통해 소함연이 그 사람과 주고받은 편지를 보고서도, 이 일을 대놓고 말하지 않았다.

그의 마음속에서 딸은 착한 아이였고, 그 북요의 귀족에게 꼬드김을 당했던 것뿐이었다. 그래서 딸을 나무라지 않았다. 게다가 지나간 일을 다시 들추어 말해 봤자, 부녀간의 감정만 상할 뿐이라고 생각했다.

“아버지, 그, 그 사람이 이번에는…… 회담 사절단과 함께 올 거예요. 그 사람이 저를 맞아들이겠다고 했단 말이에요.”

소함연은 고개를 숙인 채, 감히 소 승상을 쳐다보지 못했다.

그녀는 원래 그에게 시집갈 생각은 없었다. 그가 그녀를 속이는 바람에, 하마터면 죽을 뻔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육비우에 비하면, 그 사람은 어쨌든 북요의 귀족으로 지위가 낮지 않았다. 소씨 가문과 주나라라는 버팀목이 있으니, 그녀도 어떻게든 대접은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럼 그 사내 넷도, 그놈이 네게 찾아 준 것이더냐?”

소 승상은 소함연이 아직도 그 북요 귀족과 연락하고 있을 줄은 미처 생각지도 못했다. 그런데 이 사실을 알게 되자 하마터면 목덜미를 잡을 뻔했다.

‘내가 함연이를 너무 응석받이로 키웠어. 그래서 함연이가 이렇게 눈에 뵈는 거 없이, 아무 일이나 막 저지르게 되었구나!’

“아버지…….”

소 승상은 눈을 감고 손을 저었다.

“됐다. 나가거라. 아무 말도 듣고 싶지 않다. 잘 준비해서 한 달 내로 육비우와 혼인해라.”

“아버지…….”

소함연이 억울해하며 불렀지만, 소 승상은 더는 듣고 싶지 않았다. 엄한 목소리로 호통을 쳤다.

“나가라!”

“누이야, 가자!”

소여방은 소함연을 잡아당겼다. 하인을 불러 그를 옮기게 함과 동시에 소함연도 끌고 갔다.

“아버지…….”

소함연은 연신 뒤돌아보며 소 승상이 마음을 바꾸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그녀가 끌려 나갈 때까지 소 승상은 눈을 뜨지 않았다.

“자식은 모두 전생의 빚쟁이라더니!”

소함연과 소여방 두 남매가 멀리 가자, 소 승상은 그제야 천천히 눈을 떴다. 집사를 불러 힘없이 분부했다.

“심씨 가문에서 사들인 재산을 모두 팔아라. 그리고 우리 가문의 공개된 재산도 모두 처분해서 돈으로 바꾸어 하씨 가문에 가져다주거라.”

“나리, 어찌 이 지경까지 되었습니까!”

집사가 매우 놀라 무릎을 꿇었다.

소 승상은 쓴웃음을 지었다.

“장군왕께서 언짢아하신다. 우리 소씨 가문에서 크게 손해를 보지 않으면, 장군왕이 어찌 그 화를 누를 수 있겠느냐? 팔아라. 모두 팔아라! 모두 싹 팔아치워. 하나도 남겨서는 안 된다."

하늘이 내린 좋은 기회, 지리적 우세, 그리고 사람의 화합까지 모조리 다 월령안의 편이었다.

‘월령안! 이번에 우리 소씨 가문은 네 손에 진 게 아니라, 하늘에 진 거다!’

* * *

소씨 가문에서는 연이어 큰일이 생겼다. 다행스럽게도 밖으로 소문나지는 않은 덕에 소 승상의 위엄은 여전했다. 소씨 가문에서 재산을 처분한다고 하니, 빨리 팔렸을 뿐만 아니라 제법 높은 가격까지 받았다.

그날 오후, 소씨 가문에서는 은표 오십만 냥을 마련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소씨 가문의 집사가 비밀리에 하씨 가문에 가져다주었다.

말이 비밀이지, 소씨 가문에서 허겁지겁 재산을 처분해 현금을 만든다는 소문이 관리 사회에 쫙 퍼졌다.

장군왕도 소식을 받고는 웃으며 말했다.

“소 승상은 참 간사하고 교활하구나. 상황이 이 지경이 되어서도 힘든 티를 무척 내는 걸 잊지 않는군.”

소여방이 진비와 잠자리를 가졌다. 이유야 어쨌건, 소씨 가문은 황제의 눈엣가시가 되었다. 지금 소씨 가문은 재산을 팔 정도로 비참한 처지에 이르렀다. 황제는 어질고 너그러우니, 소씨 가문에 대한 불만도 점점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장군왕과는 상관이 없었다. 소 승상의 딸이 그의 아들을 해치려 했다. 그런데도 소 승상이 경제적으로만 손해를 보게 했을 뿐이다. 이 정도면 소씨 가문의 체면을 충분히 봐준 셈이었다.

하씨 가문은 애초에 판돈을 떼먹을 엄두도 못 내고 돈을 모으고 있었다. 꼼짝없이 독박을 쓰고 상금 백만 냥을 부담해야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예상외로 소씨 가문에서 오십만 냥을 보내오자, 한숨을 돌리게 되었다.

이번 도박판에 끼어든 사람은 부지기수였다. 월령안의 큰 판돈을 제외하고도, 자잘하게 벌어 들인 이십여만 냥의 판돈도 있었다. 하씨 가문에서는 이 돈을 포함하여, 소씨 가문에서 가져온 오십만 냥까지 더해 이십여만 냥만 내놓으면 되었다.

그날 오후, 하씨 가문에서는 이 엄청난 배상금을 매씨 가문과 장군왕부에 각각 보냈다.

매씨 가문이 받은 돈은 본전에 이익을 합해 모두 십일만 냥이었다. 매씨 가문의 가주는 십만 냥만 받았다. 그리고 본전인 만 냥은 하씨 가문에서 장군왕부에 전해 달라고 했다.

“이 본전도 내가 낸 게 아니오. 나는 욕심은 부리지 않소. 물주가 내는 돈만 벌면 충분하오.”

하 가주는 속이 터질 것 같았다. 그러나 여전히 미소를 보여야만 했다.

장군왕부 쪽은 판돈으로 건 본전 구만 냥, 물주가 내야 하는 구십만 냥, 매씨 가문에서 돌려준 만 냥까지 합해서 딱 백만 냥을 받았다.

하 가주는 돈을 장군왕부에 가져갔지만, 주인은 만나 보지도 못했다. 집사가 나와서 은표를 받고 사람은 바로 쫓아냈다.

그래도 하 가주는 불만을 품기는커녕 풀이 죽은 채로 떠나야 했다.

집사는 은표를 받자마자 서둘러 자리를 옮겼다. 종종걸음으로 화청으로 달려가더니, 장군왕 세자에게 은표를 바쳤다.

그는 세자가 점심때부터 이 은표를 기다리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세자는 심지어 월령안까지 불러왔다.

“은표가 왔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집사가 문턱을 넘자마자 장군왕 세자는 기다렸다는 듯이 일어났다. 집사의 손에서 은표가 든 상자를 건네받자 바로 열고 그 안의 은표를 꺼냈다.

십만 냥짜리 은표가 모두 열 장이었다. 하 가주가 일부러 전장에 가서 바꿔 온 것이었다. 혹시 액수는 작고 수량이 많으면 장군왕 세자가 불쾌해할까 두려웠다.

하지만 얇디얇은 은표 열 장이야말로 장군왕 세자의 불만을 자아냈다.

“왜 죄다 큰 액수의 은표로 바꾼 거야? 이렇게 얇은 몇 장만 손에 쥐고 있으면 멋이 안 나잖아.”

“세자께서 이번에 번 돈이 멋없다고 생각되시면, 우리 장사를 한번 크게 해볼까요? 어떠세요?”

월령안은 장군왕 세자와 함께 한 시진이 넘도록 가만히 앉아 있었다. 바로 이 순간을 위해서였다.

이번 거래를 성사시켜야 장군왕 세자가 그녀를 믿을 것이다. 그래야 다음 장사에 투자할 돈도 생길 테니까.

“큰 장사? 또 이런 장사인가?”

장군왕 세자는 손에 든 은표를 흔들어 보이며 웃었다.

“이런 장사는 딱 한 번만 하는 장사예요. 게다가 바보가 그렇게 많지는 않거든요. 우리가 이 정도 번 것만 해도 대단한 거예요.”

월령안은 웃으며 우스갯소리를 했다.

이 말을 들은 장군왕 세자는 즐거워하며 말했다.

“네 말이 맞다. 소 승상과 그 하씨 가문이 바로 바보가 아니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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