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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252)화 (252/1,004)

252화 후회스럽구나!

소함연은 거의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슬피 울었다. 그러나 소 승상도, 소여방도 그녀를 돌보지 않았다.

소 승상은 소여방을 바라보며 비통하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여방아, 그 여자를 맞아들이라는 아비의 뜻을 알겠느냐?”

“네, 다 압니다. 아버지, 모두 저를 위해서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소여방은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귀공자의 풍채 따위는 더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는 첩을 아내로 맞아들임으로써, 스스로 명성을 더럽혀 자신의 목숨을 지키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었다.

소여방은 소 승상을 끌어안고 통곡하며 횡설수설했다.

“제, 제가 가서 월령안에게 부탁할게요. 그 여인을 내놓으라고 부탁할게요. 아버지, 걱정하지 마세요. 어떻게 해야 할지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 제가 불효자입니다. 아버지, 그냥…… 그냥 이 아들은 없는 셈 치십시오."

“왜요? 왜 그래야 하는데요?”

소함연은 참지 못하고 대성통곡했다.

‘왜 세상 사람들 앞에서 자기 명성을 망치려 하는 거야? 왜 차라리 죽겠다는 생각은 못 하는 건데? 아버지, 오라버니. 제 생각은 했나요? 제 처지는 생각해 보셨어요?’

소함연의 눈빛에는 순간 증오의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자신의 손을 꽉 쥐었지만, 여전히 마음속 원망을 억누를 수는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고개를 푹 숙여, 아버지와 오라버니가 자기 불만을 알아채지 못하도록 숨겨야 했다.

소함연은 그들이 원망스러웠다. 소 승상은 자기를 생각해 주지 않았고, 소여방은 죽기 싫어했다.

이 사건의 장본인은 더욱 증오스러웠다.

그녀는 더는 마음속 불만을 숨기지 않았다. 고개를 들어 올리더니 분노에 찬 눈으로 소 승상을 바라보았다.

“아버지, 왜 월령안에게 부탁해요? 오라버니께 일이 생긴 것도 월령안 때문이에요. 저희가 황제에게 월령안을 고발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이미 양보한 거잖아요. 우리가 가서 부탁하면 그 계집애 수작에 놀아나는 게 아닌가요?"

그녀도 말만 그렇게 했을 뿐이었다. 사실상 그들이 황제에게 찾아가서 이 일을 말할 수는 없었다. 심지어 입에 담아서도 안 된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다.

오늘 명월산장을 지켰던 호위는 바로 황실의 호위였다. 그들은 그녀와 오라버니를 황궁이 아니라 집으로 데려다주었다. 이 사건이 커지지 않게 하고 싶으니, 대 놓고 이 일을 언급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말하지 않는다고 해서, 이 사건이 지워지지는 않는다.

심지어 말 한마디 꺼낼 수 없기에, 그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조차 몰랐다. 그저 선수 쳐서 자해함으로써 황제가 만족하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런 일이 벌어진 이상, 어떻게 한들 황제를 만족하게 할 수는 없다.

그들 가문은 이제 끝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아버지와 오라버니를 원망할 수는 없었다. 그저 월령안을 증오할 수밖에 없었다.

“월령안은 아니다!”

소 승상은 소함연의 눈빛에 서려 있는 증오를 읽어냈다. 하지만 지칠 대로 지쳐 다른 생각을 할 여력이 없었다. 다만 딸이 월령안을 증오한다고 생각했다.

그도 월령안을 싫어했다. 그래도 이번 사건이 월령안과 무관함을 잘 알고 있었다.

“진비는 후궁에 몸담은 사람이다. 월령안이 빼갈 수가 없어. 게다가 월령안의 능력으로는 진비와 우리 소씨 가문과의 관계도 알아낼 수 없다. 진비를 이용해 네 오라버니를 해칠 생각조차도 하지 못할 거다. 진비와 네 오라버니의 일은 복수이자, 경고다.”

소 승상은 지친 얼굴이었지만, 가까스로 버티며 남매에게 설명해 주었다. 두 남매가 막다른 골목에 몰려 남에게 반죽음이 되도록 당하면서도 상대가 누구인지 모르는 일은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저도 월령안은 아니라고 봅니다. 월령안에게는 그렇게 큰 힘이 없거든요. 만약 제 추측이 틀리지 않는다면, 오늘 일을 꾸민 사람은 아마 추밀원의 그분, 정체불명의 조 대인인 거 같습니다.”

소여방은 얼굴의 눈물과 콧물을 닦아 내고 코맹맹이 소리를 내며 말했다.

“누구인지 알아 맞추다니, 너도 많이 성장했구나.”

소 승상은 마음속으로 안도감을 느끼는 한편, 한층 더 고통스러웠다.

아들이 마침내 장성하고 철이 들었지만, 더는 기회가 없었다.

“성장한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제 일생은 이미 끝났습니다.”

제왕에게 미움을 사고, 선비로서의 가장 중요한 명성마저도 망쳐야 했다.

‘게다가…….’

소여방은 부러진 자기 다리를 보자, 방금 그쳤던 눈물이 다시 흘러내렸다.

‘멀쩡한 몸조차도 잃었구나. 이제 무엇이 남았단 말인가?’

소 승상 역시 괴로웠지만, 아들을 위로할 수밖에 없었다.

“살다 보면 언젠가는 다시 일어날 날이 있을 거다. 네 아들이 아직 어리니 네가 잘 가르치면 나중에 잘될지도 모른다.”

소여방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아들은 앞으로 밖에서 난 첩실 아들이라는 꼬리표가 달릴 것이다. 그 아들 녀석이 아무리 잘나더라도 쓸모가 없었다.

소 승상은 더는 말하지 않았다.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이 일을 계기로 너희도 똑똑히 알아야 한다. 월령안은 새로운 뒷배를 찾았어. 앞으로 너희는 월령안을 더 건드리지 말아야 한라. 우리 소씨 가문은 숨을 죽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함연아, 너는 육비우와의 혼사를 서두르는 것이 좋겠다. 육비우가 정 예물을 보내지 못하거든 우리 쪽에서 대신 마련할 테니, 빨리 예물을 보내고 너를 맞아들이라고 해라.”

그는 월령안을 너무 얕잡아보았다. 육씨 가문이라는 보호막이 없으면 월령안이 망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녀는 조 대인에게 줄을 댈 능력이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그 조 대인은 황제의 여인까지 이용해 그녀의 화풀이를 해 주었다.

소 승상은 말을 마치고 씁쓸하게 눈을 감았다.

‘후회스럽구나!’

월령안이 어렸을 때 죽이지 않고, 성장하게 내버려 둔 것이 후회됐다.

소여방은 풀이 죽어 고개를 끄덕였다. 눈에는 더는 투지가 보이지 않았다.

소함연은 눈을 내리깔고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육비우에게 시집갈 생각 따위는 눈곱만큼도 없었다.

* * *

소 승상은 아들에게 사고가 생긴 게, 소씨 가문의 가장 큰 위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은 상상을 뛰어넘는 법. 이튿날 아침 일찍 하씨 가문 사람이 찾아왔다.

“소 승상, 큰일 났습니다! 큰일이에요!”

“무슨 큰일이란 말인가?”

하룻밤이 지난 뒤, 소 승상은 태산이 무너져도 얼굴빛 하나 바뀌지 않는 침착한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하지만 어두운 안색과 밤새 하얗게 서리 내린 머리는 그의 실제 상태를 그대로 드러내 보였다.

소 승상은 일부러 서재에서 하씨 가문 사람을 만났다. 창문을 닫자, 서재 안이 금세 어두워졌다. 그는 책상 뒤에 앉아 어둠에 묻혀 있었다. 누구도 그가 폭삭 늙어버린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승상, 그 화신 도박판 말입니다……. 한 사람이 ‘월령안이 화신이 된다’에 십만 냥을 걸었지 뭡니까. 일 대 십 배당률에 따라, 우리는 백만 냥을 배상해야 합니다. 백만 냥을요!”

하씨 가문의 가주는 바로 소 승상 앞에 무릎을 꿇고서 아우성을 쳐 댔다.

소 승상은 심장이 멎을 뻔했다. 눈에는 순간 음험한 기운이 스쳐 지나갔다.

누군가 은 십만 냥을 ‘월령안이 화신이 된다’에 걸었다는 일은 어제 그도 보고를 받았다. 비록 돈을 건 사람은 평범한 남자였지만, 깊이 생각할 것도 없었다. 월령안이 거는 돈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신경 쓰지는 않았다. 그의 아들이 있는 한, 월령안은 화신이 될 수 없도록 이미 계획해 놓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의 아들에게 사고가 생겼다.

그리하여 그의 계획은 무용지물이 되었다. 게다가 어제 그런 사건이 일어났다 보니, 도박판에 신경을 쓸 여력이 없어 선수 칠 기회를 놓쳤다.

‘월령안! 월령안이 정말 간덩이가 부었구나. 감히 우리 소씨 가문을 이렇게 위험에 빠뜨리다니. 설마 우리 소씨 가문이 자기를 무서워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소 승상은 분노했다. 반면 겉으로는 태연하게 말했다.

“당황할 것 없다. 이렇게 큰돈을 건 사람은 분명 월령안 본인이겠지. 도박장의 사람에게 월령안에게 이렇게 말하라고 해라. 임시로 고용한 사람이 욕심을 내서, 월령안의 돈을 모두 꿀꺽해 버려 판돈을 걸지 않았다고 해. 도박장도 불찰이 있으니 월령안이 건 판돈만큼은 돌려준다고 해라. 만약 불만이 있다고 하면, 아무나 골라 죄를 뒤집어씌워라. 월령안이 때리든 죽이든, 화풀이를 하게 하면 된다.”

“승상, 이 일은 그렇게 처리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하 가주는 더 크게 울었다.

만약 그렇게 간단히 해결할 수 있었다면, 그가 진작 처리했을 것이다.

예전에도 그들은 이러한 수법으로 거액의 판돈을 내놓는 것을 거절했었다. 심지어 큰돈을 거는 경우, 그들 도박장에서는 돈을 배상하기 싫어 그냥 사람도 없애고, 돈을 걸었다는 명세서도 없애 버렸다.

단, 이 수는 일반인에게만 사용할 수 있을 뿐이다. 세도가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왜? 너희 하씨 가문도 그깟 월령안 하나를 두려워한단 말이냐?”

소 승상이 눈을 치켜들고 언짢다는 듯 말했다.

“월령안이 아닙니다. 돈을 걸었다는 명세서를 가지고 돈을 받으러 온 사람은 월령안이 아니라…….”

“누구더냐?”

“매씨 가문, 그리고…… 장군왕부입니다!”

하씨 가문 가주는 비분에 찬 표정으로 말을 마쳤다. 그리고 슬그머니 고개를 들어 소 승상을 바라보았다.

고개를 든 순간, 그는 깜짝 놀라 멍해지고 말았다.

소 승상이 입에 거품을 물고 까무러친 뒤였기 때문이다.

소씨 가문은 월령안이 육장봉을 위해 군비(軍費)를 벌어들이는 기회를 틈타 큰돈을 벌었다. 갑부라고 할 수는 있었지만,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은 백만 냥을 쉽게 내놓을 정도는 아니었다.

물론 그 돈을 내놓을 수 있다 하더라도, 소 승상은 내놓지 않을 것이다.

도박판을 벌인 건 하씨 가문이었다. 그가 하씨 가문을 뒷받침해 준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체면을 세워 준 셈이었다. 돈이 벌리면 큰 몫을 요구하겠지만, 밑지면 그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소 승상은 시종일관 앞에 나서지 않았다. 하씨 가문과도 어떠한 서류상의 합의도 한 적이 없었다.

소 승상은 하씨 가문에서 돈을 얼마나 밑지는지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가 기절한 이유는, 소씨 가문이 장군왕부의 노여움을 샀기 때문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장군왕, 그 늙은 여우가 아무리 월령안과 사이가 좋다 하더라도 그와 공개적으로 맞설 리가 없었다.

“가서 자세히 알아봐라. 월령안과 장군왕부가 협력하다니 도대체 어찌 된 영문인지 알아 와!”

소 승상은 정신을 차리자, 허리를 다쳤음에도 불구하고 큰 소리로 호통쳤다.

소 승상이 보낸 사람은 조사에 착수했다. 장군왕 세자가 어제 먼저 성으로 돌아왔고, 동시에 등요 공주도 같이 데리고 왔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다음 장군왕이 세자와 등요 공주를 대동하여 입궁했다. 황제는 등요 공주를 가두었고, 장군왕에게는 종령이라는 직급을 내렸다고 했다.

그리고 어제저녁, 월령안은 성안으로 돌아와 장군왕부에서 한참 머물다가 밤이 깊어서야 돌아갔다는 사실을 알았다.

소씨 가문 사람은 그 실마리를 따라 조사해 나갔다. 어제 명월산장에서 시중들던 궁인들은 밤중에 황제의 사람들에게 끌려갔다. 잡일을 하는 나머지 몇몇은 어제 계속 뒤뜰에 갇혀 있느라 아무것도 몰랐다.

그는 제법 힘을 들여 월령안이 거한 몇을 잡아들였다는 사실까지 알아냈다. 그 사내들은 장군왕 세자가 미리 돌아온 사실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컸다.

“절대 그렇게 단순한 일일 리가 없다. 우리 소씨 가문이 분명 장군왕 세자의 노여움을 산 게다. 그렇지 않고서야 장군왕부에서 나를 곤란하게 할 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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