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황 (251)화 (251/1,004)

251화 월령안을 위해서였느냐?

육장봉은 담담하게 말했다.

“성문 앞에서 그분의 호위병이 많은 사람 앞에서 월령안을 때리고 있었고, 청희 공주는 그를 방임했습니다. 신이 마침 지나가다가 그 광경을 보게 되었습니다.”

“월령안이 또 일을 저질렀느냐?”

황제는 지금 월령안이란 이름만 들어도 욱했다.

비록 조계안은 월령안을 위해 한 일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했다. 그러나 사건의 발단은 월령안이었다.

만약 월령안이 조계안과 거래할 적에 소여방이 첩을 둔 사실을 일러 주며 그를 망치라고 요구하지 않았다면, 황제를 골치 아프게 한 사건들은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조계안의 체면을 고려해 월령안을 탓하지 않을 수는 있었다. 그러나 그녀를 좋아할 수도 없었다.

월령안은 그 이름의 뜻(寧安 - 고요하고 평안하다는 의미)과는 달리 나타나기만 하면, 황제는 편안한 적이 없었다.

‘정말이지 그 이름값을 못 하는군.’

육장봉은 월령안에 대한 황제의 선입견을 알고 있었다. 애써 감싸는 대신 한마디만 했다.

“폐하, 청희 장공주는 야율제의 생모입니다.”

“그건…….”

황제는 말문이 막히자, 멋쩍게 말했다.

“청희 장공주가 일부러 그랬단 말이냐? 청희 장공주는 그런 사람이 아니잖느냐. 꽃이 죽어도 한바탕 우는 사람이 아니더냐. 어찌 사람을 때릴 수 있겠느냐?”

“그분은 장공주입니다. 굳이 직접 나설 필요가 있습니까?”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 폐하께서는 아직도 청희 장공주의 수완을 모른단 말인가?’

청희 장공주의 울음 공격을 떠올리자, 황제는 다시 한번 두통을 느꼈다. 귀찮다는 듯이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됐다. 이 일은 네가 맡은 일이니, 끝까지 네가 처리해라. 내일…… 짐은 병이 나서 조회에 출석하지 못할 것이다."

“네, 폐하.”

육장봉은 소리 없이 웃었다.

그는 황제가 청희 장공주의 울음 공격을 얼마나 무서워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명심해라. 선을 넘지 않게 처리해야 한다. 청희 장공주의 뒤에는 영녕후부가 있어. 야율제가 죽었으니 영녕후를 잡기란 당분간 어렵겠구나.”

황제는 이를 생각하니 또다시 가슴이 콱 막히는 것만 같았다. 정말이지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육장봉의 이번 일 처리에 너무 실망했다. 그의 안중에 황제인 자신이 있기나 한 건지 의문이었다.

“네, 폐하.”

육장봉은 대답하고 몸을 돌려 자리를 뜨려고 했다. 바로 그때, 황제가 갑자기 엄숙하게 물었다.

“장봉아, 야율제를 죽인 건 월령안을 위해서였느냐?”

황제는 아무런 조짐도 없이 갑작스럽고 다급하게 물었다. 그것도 육장봉이 떠나려는 무렵, 모든 경계심을 풀었을 때야 질문했다. 육장봉에게 생각을 거쳐 적절한 대답을 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제일 먼저 떠올린 마음속의 답을 말하게 하려는 심산이 분명했다.

그 의도대로 육장봉은 별다른 생각을 거치지 않고 바로 대답했다.

“네.”

“고작 여인 하나 때문에.”

황제는 이를 갈면서 분노했다.

“짐이 짠 판을 망쳤단 말이냐?”

“철광산 때문입니다.”

육장봉의 대답은 여전히 간단하면서도 힘이 있었다. 다만 목소리에는 약간의 쓸쓸함과 피로감이 섞여 있었다.

“뭐라고?”

황제는 기가 막혔다. 터트리려던 분노가 목구멍에 걸린 채, 밖으로 토해내지도 다시 삼키지도 못하고 있었다.

“철광산 때문입니다.”

육장봉은 다시 한번 반복했다.

“철광산 때문이라고?”

황제는 마음속의 응어리 때문에 답답해 죽을 지경이었다. 분노를 토해내고 싶었지만, 괜히 육장봉을 오해한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어쩔 수 없이 분노를 억누르고서 언짢은 듯 말했다.

“장봉아. 네가 증거를 잡지 못했으니, 월령안에게 철광산이 있는지 믿을 수 없다고 했잖느냐?”

“신은 폐하를 믿습니다.”

육장봉은 황제에게 읍을 했다. 살짝 머리를 숙여 공경을 드러냄과 동시에 눈빛에 어린 자책감을 숨겼다.

철광산 문제에 관해서 만큼은 황제에게 미안했다. 그는 황제의 신임을 저버렸다. 하지만 그는 월령안에게 빚을 졌으니, 반드시 갚아야 했다.

육장봉의 이러한 모습에 황제는 금세 자책감이 들었다. 냉담한 말투도 순간 부드러워졌다.

“그럼…… 철광산을 조사하느라 그랬단 말이냐? 월령안의 신임과 호감을 얻기 위해 야율제의 수급을 노렸단 말이냐?”

육장봉은 아무 대답도, 아무 몸짓도 하지 않았다. 다만 예를 올리던 자세를 묵묵히 유지했다.

이럴 때, 그는 아무 말도 할 필요가 없었다. 황제는 그를 위해 스스로 모든 빈틈을 메우고, 그의 행동을 위해 구실을 만들어 줄 것이다.

말이 길어지면, 되려 제 발이 저린 거로 보이기에 십상이다.

잠시 후, 황제는 육장봉의 대답을 기다리지 못하고 가볍게 탄식했다.

“장봉아, 짐이 너를 오해했구나.”

“폐하, 천만의 말씀입니다. 신은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육장봉은 황제의 체면도 세워 주지 않고, 감격하는 모습도 보여주지 않았다. 그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했다.

그러나 육장봉의 이러한 담담한 모습에 황제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적어도 육장봉이 화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일찍 돌아가거라. 내일…… 아, 내일은 짐이 아플 테니, 너도 조회에 참석할 필요 없다. 집에서 편히 쉬려무나.”

황제는 자리에서 일어나 육장봉을 두어 걸음 걸어 배웅해 주었다. 육장봉도 황제의 총애에 놀라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총애에도, 모욕에도 모두 놀라지 않는 인물이 바로 육장봉이었다.

육장봉은 황궁을 나서자마자, 보고하러 온 육이를 보았다.

“장군, 월 낭자가 선물을 보시고 마음에 든다고 하셨습니다. 수 맹주의 행방도 월 낭자에게 알려 주었으나, 월 낭자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고 도움을 요청하지도 않았습니다.”

육장봉은 고개를 끄덕이며 밖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내가 떠난 다음, 명월산장에 무슨 일이 생겼느냐?”

지금 황제는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었다. 특히 그가 막 떠나려던 차에 갑자기 그렇게 물어본 것은, 그를 시험하는 뜻이 분명했다.

이건 황제답지 않았다. 육장봉은 황제가 무언가 자극을 받았으리라고 추측했다.

“소여방이 진비와 잠자리를 가졌답니다. 바로 명월산장에서 벌어진 일로, 이 일을 아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육이는 말을 마치자, 가볍게 헛기침을 한 번 하고 바로 머리를 숙였다.

솔직히 말해 이 사건은 황제만 아무도 모른다고 여기고 있었다. 사실 이 일을 알고 있는 사람은 두 손을 동원해도 셀 수 없을 정도였다.

“조계안, 정말 막무가내구나!”

육장봉은 걸음을 잠깐 멈추더니,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황제가 왜 그리 이상했는지, 왜 그를 떠보았는지 그제야 알았다.

조계안은 정말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사고를 쳤다. 황제의 성격이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이런 일까지 참아 줄 리가 있겠는가.

육이는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황실의 추문과 관련된 일이었다. 경솔하게 말했다간 죽을 수도 있으니 한마디라도 더 아끼는 것이 좋았다.

* * *

제삼자들이 이러한데, 그 사건의 당사자에게 좋은 결과가 있을 리 만무했다.

소여방이 참혹한 모습으로 나무판자에 실려 왔을 때, 소 승상은 화가 치밀었다. 그는 이를 갈며 한바탕 독설을 퍼부었다.

이 사건을 확실하게 조사하라 소리쳤다. 만약 자기 아들이 스스로 다친 거라면 몰라도, 누군가 해코지를 한 거라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길길이 날뛰었다.

그러나 호위가 가 버리고, 하인들을 모두 쫓아낸 다음 소여방은 자신과 진비의 일을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소 승상은 눈이 뒤집히더니 까무러쳤다.

소여방이 다급하게 고함을 질렀다. 의원이 재빨리 들어와서 침을 두어 대 놓아 소 승상을 깨웠다. 하지만 그는 넋을 잃은 듯, 꼼짝도 하지 않고 그 자리에 누워 있었다. 두 눈은 죽은 사람처럼 초점이 없었다.

“아버지, 아버지. 저를 놀라게 하지 마십시오.”

소여방은 깜짝 놀라 소 승상의 옆으로 기어갔다. 그의 손을 부여잡고 울음을 터트렸다.

“아버지, 저를 믿어 주셔야 합니다. 저는 남에게…….”

“말하지 마라. 아무것도 말하지 마라.”

소 승상은 손을 들어 소여방의 말을 중단시켰다. 그러나 여전히 소여방을 보지는 않았다. 두 눈은 여전히 멍하니 위쪽만 바라보고 있었다.

“아버지…….”

소여방의 두 다리는 부러졌다. 이렇게 기어 다니느라 상처가 다시 터져 피가 바닥에 흥건하게 흘렸다. 그래도 아픔을 느끼지 못한 채, 소 승상의 손을 끌어안고 소리 없이 눈물만 떨구었다.

그도 알았다. 자신의 일생은 끝장났다. 심지어 소씨 가문까지 연루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정말 억울했다. 누군가의 계략에 당한 게 분명했다.

“아버지…….”

소함연은 명월산장에서 나온 뒤, 자기 감정에만 빠져 있었다. 말도 하지 않았고, 누구도 상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소 승상의 넋이 나간 모습과 울기만 하는 소여방을 보자, 그녀도 슬픔을 참지 못하고 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그녀는 땅바닥에 쓰러졌다. 얼굴은 눈물범벅이 되었다.

“아버지, 우리 집안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해요? 아버지, 우리 어떡해요?”

그녀는 정말 슬펐다. 이 사건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 그들 소씨 가문은 끝장나리란 것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씨 가문이 끝장나면, 그녀는 더는 승상의 딸이 아니다. 자랑하고 다닐 만한 밑천도 없어질 것이다.

앞으로 월령안보다 더 비참한 처지가 될지도 몰랐다.

“이 아비가 조용히 좀 있게 해다오.”

소 승상은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재앙에 경악해 한참 움직일 수가 없었다. 입술을 겨우 달싹여, 온 힘을 다해 몇 글자 내뱉었다.

그의 말에 소여방과 소함연은 더는 울지 못했다.

소 승상은 그들의 아버지이자, 소씨 가문의 하늘이기도 했다. 그가 쓰러지면 그들 소씨 가문의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셈이었다.

소 승상은 그로부터 반 시진이 더 지나서야 겨우 천천히 회복할 수 있었다.

소 승상은 멍한 눈동자를 움직여 소여방을 바라보았다. 아들의 두 다리에서는 끊임없이 피가 배어 나오고 있었다. 주름으로 가득한 소 승상의 얼굴에서 눈물이 뚝뚝 흘러내렸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여방아, 그 다리를 고쳐서는 안 되겠구나.”

이 일은 아직 커지지 않았다. 황제도 이런 일이 커지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황제가 화풀이는 할 수 있어야 했다. 황제가 손을 쓰기를 기다리느니, 차라리 이쪽에서 선수를 치는 게 나았다.

“아버지…….”

소여방은 목이 멘 소리를 냈다. 그러나 통곡하거나, 다른 수단을 강구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아버지가 이런 결정을 내린 것도 그를 위해서임을 알고 있었다.

소여방이 슬픔과 분함을 삼키는 모습을 지켜보며, 소 승상은 피를 토하는 심정이 되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었다. 그가 반평생을 노력한 것도, 바로 아들에게 가업을 물려주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지금, 아들의 일생은 완전히 망가졌다.

소 승상은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떨리는 손을 내밀어 아들을 다독였다.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여방아. 다시, 다시 가서…… 월령안에게 부탁해 네 그 첩실을 찾거라. 그 여인을 아내로 맞아들여라. 그 모자를 함께 맞아들여야 한다.”

다리를 분지르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스스로 명성을 더럽혀서 막다른 길에 몰려야 했다.

황제가 만족하게 해야 했다.

“아버지, 안 돼요. 그런 여자를 맞아들여서는 안 돼요. 오라버니가 그 여인을 아내로 맞아들이면, 첩을 뒀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꼴이 되잖아요? 오라버니의 명성이 더럽혀지면 앞으로는 어떻게 할 건데요?”

소함연의 아름다운 얼굴은 온통 눈물로 뒤덮여 있었다. 그녀는 머리를 끊임없이 저었다. 이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런 오라버니를 두게 되면, 난 어떡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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