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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249)화 (249/1,004)

249화 육장봉의 선물

월령안이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운이 좋은 줄이나 아세요. 먼저 성으로 돌아와 일찌감치 등요 공주의 일을 보고했잖아요. 조금이라도 더 늦었다가는 장군왕부까지 연루되었을걸요.”

“내가 나쁜 짓을 하지도 않았는데, 내가 왜 연루된단 말이냐? 월령안, 날 겁줄 생각은 마라.”

장군왕 세자는 떳떳하다는 듯 당당하게 말했다.

“명월산장요.”

월령안은 소여방과 진비의 사건을 말하지 않을 것이다. 이 사건은 절대 입 밖으로 내서는 안 되었다.

그러나 장군왕부에서 알아낸다면, 그것은 그녀의 잘못이 아니었다.

“어, 그건…….”

장군왕 세자는 금세 기가 죽었다.

월령안은 아무것도 보지 못한 척했다. 차를 마시는 동작으로 입가의 미소를 가렸다.

그녀는 차를 한 모금 마시더니 잔을 내려놓고 물었다.

“세자, 소씨 가문에 복수를 하고 싶지 않으세요?”

“소씨 가문은 폐하께서 쓰시는 사람들이야. 아니, 폐하께서 꼭 필요로 하는 사람이라는 게 정확하겠군. 난 네가 아니다. 소씨 가문을 건드릴 엄두가 안 나는구나.”

물론, 그가 복수하고 싶지 않을 리가 있겠는가? 당연히 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가 절대 소씨 가문에 손을 대서는 안 된다며 여러 번 경고했다. 적어도 황제가 소씨 가문을 쓰는 동안에는 절대 안 된다고 당부했다.

“화신 도박판이 벌어진 건 세자께서도 아시죠?”

월령안은 장군왕 세자가 이렇게 소심하게 나왔는데도 전혀 놀라지 않았다.

소 승상이 그렇게 쉬운 상대였다면, 그녀도 속을 끓이며 인내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는 원래 간단한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에는 복잡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았다.

예를 들자면 야율제를 대적하는 방법이 그렇다. 그냥 사람을 고용해 야율제의 수급을 사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소씨 가문은 그러한 방법으로 상대할 수 없었다. 소씨 가문을 대적하려면, 여러 방면에서 그들에게 압력을 가할 수 있는 조력자가 필요했다.

“안다. 나도 돈을 걸었는데 안타깝게도…….”

세자는 월령안의 그 화려한 치마를 힐끗 훑어보더니 퉁명스럽게 말했다.

“거기서 나는 졌다!”

“어머나, 저도 마침 돈을 걸었어요. 전 배당률이 가장 높은 데 돈을 걸었는데, 운 좋게도 저는 이겼거든요.”

월령안은 장군왕 세자가 어디에 돈을 걸었는지를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녀가 오늘 이 수많은 색으로 화려하게 치장된 옷을 입었던 것도 바로 그 도박판을 위해서였다.

그녀는 도박판에 참여한 모든 사람이 져서, 물주가 가산을 탕진하기를 바랐다.

“네, 네가…… 네가 올해의 화신이라고?”

장군왕 세자는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들이 어떻게 너를 선택했다는 말이냐?”

‘다들 월령안에게 교훈을 준다며, 그녀를 선택하지 않기로 했던 거 아니었나?’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요. 중요한 건 제가 백은 구만 냥을 걸었거든요. 이제 물주는 제게 구십만 냥을 물어줘야 해요. 세자께서는 도박장을 차린 분이시잖아요. 이런 큰 판에 끼어들고 싶은 생각은 없나요?”

월령안의 목소리는 나지막하고 살짝 잠겨 있었다. 게다가 약간 느릿한 목소리는 화려한 유혹으로 충만했다.

순간 장군왕 세자는 가슴이 두방망이질했다. 참지 못하고 얼른 물었다.

“어떻게 하면 되지?”

“제가 이 판돈을 세자께 팔십만 냥에 팔게요. 세자께서 물주에게서 돈을 받아 내신 다음, 제게 돌려주시면 돼요. 그다음에 한 번 더 거래하도록 하죠.”

매씨 가문도 끼어 있으니, 물주가 돈을 내놓지 않을까 두렵지는 않았다. 이 거래로 얻게 되는 이문 십만 냥은 그녀가 장군왕 세자에게 개평으로 떼어 주는 것이었다.

그녀가 영녕후부와 청희 장공주를 대적하려면 장군왕부가 나서 줘야만 하니, 별수 없었다. 장군왕부와 좋은 협력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라면 은 십만 냥쯤은 반드시 뿌려 줘야 했다.

장군왕부처럼 돈을 벌겠다고 도박장까지 차리는 종실(宗室)이라면, 큰돈을 벌 기회가 왔을 때 과감하게 나설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이 상대방이 아픈 틈을 타서 한몫 챙기는 것이라 해도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물주의 배후가 누구인가?”

장군왕부는 도박장을 경영하니만큼, 장군왕 세자도 당연히 돈을 좋아했다. 판돈을 넘기기만 하면 은자 십만 냥을 벌 수 있다. 제아무리 장군왕 세자라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벌기 쉬운 돈은 그만큼 위험이 뒤따른다. 그는 과감한 사람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원수를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월령안이 십만 냥이나 되는 이문을 선뜻 내놓는 것을 보니, 물주가 만만치 않아 장군왕부가 나서서 돈을 받아야 하는 게 분명했다.

“소 승상이에요.”

월령안은 숨기지 않았다.

장군왕 세자는 순간 멍해졌다가, 바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건드릴 수 없는 상대야. 어려워.”

그의 가문은 권세 없는 종실에 불과했다. 소 승상은 내각 대신에다가 황제의 심복이었다. 함부로 건드릴 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세자, 서둘러 거절하지는 마세요. 큰일이니만큼, 군왕께 한번 여쭤보시죠. 혹시 그분께서는 달리 생각하실 수도 있잖아요.”

월령안이 설득했다.

“묻지 않아도 뻔해. 아버지는 절대 동의하지 않을 거야. 나보다 더 간이 작으시거든.”

장군왕 세자는 연신 손을 흔들었다.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죠. 한번 말씀드려 보세요. 그런데, 그 전에 꼭 군왕을 설득하셔서 황궁이나 가깝게 지내는 가문에 사람을 보내 소식을 알아보도록 하세요. 주로 춘일연에 관해 물어보라고 하시면 될 거예요.”

월령안은 찻잔을 들고 뚜껑을 열더니 거품을 살며시 걷어냈다.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이었다.

장군왕 세자는 눈살을 가볍게 찌푸렸다.

“뜸 들이지 말고, 네가 직접 얘기하면 안 되겠느냐?”

“안 될 것 같네요. 세자, 한번 가서 물어보시지요. 어쨌든 십만 냥짜리 장사니까 조금만 신경을 더 써 보세요.”

월령안은 상냥하게 권유했다.

“그래. 널 한 번 믿어보마.”

장군왕 세자는 잠깐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월령안에게는 묘한 구석이 있었다.

‘어쩌면 정말로 좋은 기회일지도 몰라.’

장군왕 세자는 월령안을 화청에 놔두고, 이 일을 보고하러 장군왕을 찾아갔다. 그러고는 한 시진이나 소식이 없었다.

한 시진 뒤, 장군왕 세자는 의혹이 가득 찬 얼굴로 다시 화청에 나타났다. 그리고 월령안에게 그의 아버지, 장군왕의 뜻을 전했다.

“아버지께서 동의하셨어.”

장군왕 세자는 말을 마치고는 얼른 캐물었다.

“월령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느냐? 어떻게 아버지께서 동의하셨지?”

“그건 군왕께 여쭤보세요.”

월령안은 조금도 놀라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간이 늦었네요. 세자, 전 이만 돌아가야겠어요.”

이미 날이 저물었다. 성안에도 야간 통행 금지령이 내려, 밖에는 행인이 없었다. 그렇다고 해도 월령안이 가는 길을 막을 수는 없었다.

반 시진 뒤, 월령안은 저택으로 돌아왔다. 문턱을 넘기가 무섭게 집사가 다가와서 보고했다.

“아가씨, 육 대장군이 아가씨께 선물을 보내왔습니다. 선물을 가져온 사람은 지금 화청에 있습니다. 직접 아가씨 손에 넘겨주어야 한다고 합니다.”

“선물? 육장봉이 내게 주는 거라고?”

월령안은 걸음을 잠깐 멈추고 집사를 바라보았다.

집사는 고민하는 얼굴로 잠시 생각하더니, 머리를 크게 끄덕였다.

“네.”

그러나 그 선물은 피 묻은 상자 속에 담겨 있었다. 심지어 아직까지도 피가 밖으로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 * *

월령안이 화청에 들어서자마자, 짙은 피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육이가 월 낭자를 뵙습니다.”

월령안이 다가오기도 전에, 육이는 나무 상자를 들고 앞으로 다가섰다.

“이것은 저희 장군께서 월 낭자께 드리는 선물입니다. 장군께서는 직접 오시려고 했지만, 공무 때문에 몸을 뺄 수가 없어 어쩔 수 없이 저를 보냈습니다. 월 낭자, 한번 보시죠.”

월령안은 상자를 열기 전에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도 앞으로 다가가 직접 나무 상자를 열었다.

예상대로, 상자 안에는 잔뜩 일그러진 얼굴을 한 야율제의 머리통이 들어 있었다.

“역시.”

월령안은 가슴을 짓누르던 커다란 돌을 누군가가 한순간에 치워 버린 것만 같았다. 바로 웃으며 말했다.

“드디어 죽었네요!”

야율제가 죽었다. 그녀의 머리 위에 매달려 있던 날카로운 검의 검기가 반은 줄어든 셈이었다.

월령안은 길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형용할 수 없는 후련함이 느껴졌다. 잔치라도 열어 야율제의 죽음을 대대적으로 축하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시선이 또다시 상자 속의 머리에 닿았을 때, 무언가를 알아챘다.

“어째 무언가 조금 다른 거 같네요? 제가 낮에 야율제를 만났을 때, 서생처럼 머리를 묶고 있었고, 나무 비녀가 아니라 옥비녀를 꽂고 있었어요. 얼굴도 이렇게 거칠지는 않았고요.”

“월 낭자, 눈썰미가 대단하시군요. 어쩐지 장군께서도 월 낭자가 보시면, 한눈에 알아챌 거라고 하시더라니요.”

육이는 웃으며 칭찬했다. 그리고 티가 나지 않게 육 대장군을 위해 변명했다.

“월 낭자께서 낮에 만난 놈은 야율제의 대역입니다. 우리 장군께서는 야율제와 여러 번 겨루었기에 그놈에 대해서는 훤히 꿰고 있습니다. 그래서 낮에도 손을 쓰지 않으셨던 겁니다.”

“대역이요?”

월령안은 어리둥절해졌다.

‘그럼 낮에 육장봉을 괜히 원망했던 건가? 육장봉은 나를 미끼로 삼으려고 했던 게 아니라, 이미 그 야율제가 대역임을 알고 손을 쓰지 않았던 거야?’

“맞습니다. 잠한성이 야율제를 위해 찾아낸 대역인데, 이제 막 훈련을 마쳤던 모양입니다.”

육이는 머리를 크게 끄덕였다.

“잠한성은 대역뿐만 아니라 야율제를 위해 수많은 사사를 훈련했습니다. 일부는 이미 야율제의 손에 넘겼고, 나머지 일부는 잠한성이 숨겨 두었습니다. 장군께서는 이번에 직접 병사를 이끌고, 변경에 있는 야율제의 거점을 완전히 소탕했습니다.”

이 사실은 굳이 그가 말하지 않더라도, 나중에 월 낭자가 관아에 가서 수횡천을 데려올 때면 알게 될 일이었다.

그러고 보면, 이번에 그들은 운이 참 좋았다. 원래는 야율제의 대역을 이용해서, 잠한성이 야율제를 위해 길러낸 부하들을 끌어내려 했다.

그러나 뜻밖에도 천명사에 숨어 있던 야율제와 천명사에 가서 잠한성의 부탁을 들어주려던 수횡천을 함께 발견했다.

월령안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더니, 곧 다시 물었다.

“그 대역은요?”

“수 맹주가 놓아주었습니다.”

수횡천이 그들의 일을 망쳤으니 이 정도 누명은 뒤집어써 줘야 했다.

“수 오라버니가? 오라버니가 천명사에 갔어요?”

월령안은 깜짝 놀라 육이를 바라보았다. 이 소식은 믿을 수가 없었다.

‘수 오라버니는 뭘 하려 했던 걸까?’

어제저녁에는 강호인들을 따라 장군부에 쳐들어갔다. 그런데 그 일이 제대로 마무리되기 전에 또 천명사로 달려갔다.

‘설마 수 오라버니가 야율제를 잡아다 공을 세우려 했나?’

“네. 오늘 새벽 수 맹주가 천명사를 찾아갔습니다. 다행히 수 맹주가 앞장선 덕분에, 저희가 천명사 뒷산에 숨어 있던 야율제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육이는 또 한 번 수횡천에게 누명을 뒤집어씌웠다.

그는 월령안에게 진실을 알려 줄 생각이 없었다. 수횡천과 야율제가 싸우다 크게 다쳤고, 장군부는 그 덕에 두 사람을 손쉽게 사로잡을 수 있었다.

이런 일은 그들끼리만 알면 되었다.

그러나 월령안은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우리 수 오라버니는 지금 어디에 있죠?”

그녀는 육이의 말을 믿기는 했지만, 절반만 믿었다.

“수 맹주는 앞장서서 장군부를 공격해 조정의 살인범을 구출하려 했기에 형부에 갇혀 있습니다.”

수횡천은 제 발로 덫에 걸려들었다. 그들은 원칙대로 일했을 뿐이었다. 월 낭자도 분명히 이해해 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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