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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247)화 (247/1,004)

247화 월령안에게 좀 배우세요

그는 숨기지 않고 사실대로 보고했다.

그들이 이 소식을 접했을 때, 조왕의 부하를 얼마나 때려죽이고 싶었던가.

‘기왕 손을 댄 김에 알아서 일을 마무리 지으면 안 되나? 우리까지 끌어들이다니. 이건 뭐 우리 목숨을 내놓으라는 것도 아니고.’

황실의 치부를 알게 되었으니 그와 같은 말단은 죽음으로 침묵을 지켜야 할 수도 있었다. 황궁의 호위는 식은땀이 흐르는 손을 감추며 고개를 조아렸다.

“조왕의 부하?”

황제가 이를 갈며 물었다.

“네, 조왕 전하의 부하였습니다!”

조왕의 부하가 먼저 다른 사람을 생각하지 않았으니, 그도 의리를 지킬 필요가 없었다.

“이 일에 관해 입단속을 철저히 해라. 짐은 이 일과 관련된 그 어떤 풍문도 듣고 싶지 않다. 알겠느냐?”

황제는 가까스로 분노를 억누르고 말했다.

“알겠습니다. 폐하,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는 몰래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딱딱하게 굳혔던 몸도 조금이나마 긴장을 풀었다.

황제가 이렇게 말을 했으니, 그를 포함한 호위들을 죽여 입을 막지는 않을 것이다.

“오늘 명월산장에 있던 궁녀들은 모두 벙어리로 만들어 천일관(天一觀 – 도관 이름)으로 보내거라.”

“네, 폐하.”

황제의 냉혹한 명령에, 그가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가서 처리해라.”

황제는 눈을 감았다. 냉담한 목소리에는 피곤함이 묻어 있었다.

보고하러 온 이는 아무것도 알아채지 못하고 허리를 굽힌 채 물러갔다.

황제는 가볍게 탄식했다. 천천히 몸을 일으키더니 손을 저어 모든 궁인을 물리쳤다.

“물러가라.”

황제는 차가운 얼굴로 모두가 물러가는 것을 본 다음, 난각으로 걸어 들어갔다.

난각 안에는 붕대가 감긴 상반신을 드러낸 조계안이 있었다. 그는 조각도를 들고, 손안의 돌을 조금씩 깎아내고 있었다. 그의 손놀림에 따라 돌가루가 땅바닥에 내려앉았다. 돌 위에 새겨진 깊은 흔적이 하나씩 늘어났다.

“황형께서는 웬일로 틈이 나서 절 보러 오셨습니까?”

조계안은 황제의 발걸음 소리를 듣고도 고개를 들어서 한번 흘끔 보았을 뿐, 계속 돌을 새겼다. 한 번 칼집을 낸 뒤, 그 흔적을 따라 조금씩 깎아내면서 틈새를 더욱 깊어지게 했다.

“진비의 일은 네가 꾸민 것이냐?”

황제는 조계안의 앞에 서며 순식간에 모든 빛을 차단했다. 그는 거대한 그림자처럼 조계안의 위쪽을 덮어 버렸다.

그러나 조계안은 조금도 영향을 받지 않았다. 도리어 불손한 태도로 대답했다.

“맞습니다. 제가 한 짓입니다. 황형은 아시면서 왜 물으십니까?”

“월령안을 위해서냐?”

황제는 화가 치솟아 어찌할 바를 몰랐다.

“황형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죠.”

조계안은 여전히 고개를 들지 않았다. 황제의 분노 따위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월령안 때문에 짐의 체면을 짓밟은 거냐!”

황제는 갑자기 손을 휘둘러 조계안의 손에 든 돌과 조각도를 쳐냈다.

조계안의 능력이라면, 얼마든지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피하지 않았다.

그는 황제가 손을 휘둘러 조각도를 쳐내게 내버려 두었다. 손에 들고 있던 조각도와 돌이 날아가는 것을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

챙!

큰 소리가 울리며 조계안의 손에 들었던 조각도와 돌이 동시에 바닥에 떨어졌다.

그리고 황제의 손도 조각도에 베여 핏방울이 바닥에 뚝뚝 떨어졌다. 깨끗하고 반지르르한 바닥 위에 방울방울 혈화가 피어났다.

조계안을 흘끔 바라보더니, 손을 툭툭 털고는 고개를 들어 황제를 바라보았다. 얼굴에는 온통 조소 어린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황형의 체면은 짓밟으면 안 되죠. 그럼 조왕의 체면은 마음대로 짓밟아도 된다는 말입니까?”

“너…… 짐에게 불만이 있는 게냐? 지금 짐한테 보복하는 것이냐?”

황제가 조계안을 바라보는 눈빛에는 분노와 고통, 자책감이 뒤엉켜 있었다.

반면 조계안의 눈에는 오직 냉담함뿐이었다. 그는 황제를 바라보며 능글맞게 웃었다.

“맞아요! 안 됩니까? 황제 폐하?”

안 돼도 할 수 없었다. 그가 이미 일을 저지른 이상, 황제는 인정하기 싫어도 인정해야만 했다.

조계안은 소여방, 소씨 가문에 대한 황제의 일 처리가 대단히 불만스러워했다. 이 사실은 황제도 줄곧 알고 있었다.

그래도 조계안이 자신을 이해해 줄 거라고만 생각했다. 그 일 때문에 자신에게 불만을 품지는 않을 거라고 여겼다.

하지만 진비와 소여방의 일이 터지자, 황제는 그제야 자신이 독선적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황제는 여전히 모르는 척하고 싶었다. 조계안이 그에게 악의를 품어서가 아닌, 월령안을 위해서 이 모든 행동을 했다고 믿고 싶었다. 조계안도 그렇게 대답해 주길 바랐다.

그러면 그들은 여전히 형제일 것이고, 아무것도 변하지 않으리라.

하지만 조계안은 거짓말로 그를 달래는 것조차 거부했다.

“정말로 그렇게까지 짐을 증오하느냐?”

황제는 목이 메었다. 주먹 쥔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눈빛에는 자책감도 있었지만, 실망과 무력함이 더 많았다.

‘내 아우가 어찌 나를 이해해 주지 못한단 말인가?’

“고작 이까짓 거로 증오한다는 말을 합니까? 황형, 속이 넓지 못하십니다.”

조계안은 여전히 건들거리는 태도였다. 몸을 뒤로 기대더니 의자에 반쯤 누웠다. 웃음은 여전히 능청스러웠다.

“지금, 그래서 속이 시원하냐?”

황제는 숨을 들이쉬었다. 눈 속의 감정이 점점 사라지더니, 무덤덤해지고 냉담해졌다.

“사람이 아직 죽지도 않았는데, 뭐가 그리 급하십니까?”

당연히 이 정도로는 부족했다. 조계안, 그는 손을 썼다 하면 반드시 피를 보아야 직성이 풀렸다.

“꼭 이렇게 해야 하겠느냐? 계안아.”

황제는 앞으로 두 걸음 나아가 무릎을 굽히고 조계안의 옆에 쪼그려 앉았다. 그를 바라보는 눈길에는 복잡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

조계안은 여전히 요지부동이었다. 냉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도 체면이란 게 있습니다. 황형.”

황제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여기까지만 하자. 안 되겠느냐?”

“안 됩니다. 황형!”

조계안은 똑같은 말투로 황제에게 대답했다. 아주 심드렁한 모습이었다.

황제는 크게 탄식하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 물었다.

“어쩔 셈이냐?”

“제가 말하지 않았습니까? 저는 피를 보아야 한다고요.”

조계안은 손을 내밀어 허공에서 꽉 움켜쥐었다. 위협하려는 기색이 다분했다.

그가 살벌함을 드러내는 모습을 지켜보자, 황제의 마음 한구석이 이상하게 따뜻해졌다. 다시 조계안의 손가락에 난 상처를 보자, 화가 모두 사라져 버렸다.

황제는 그의 손을 슬며시 잡으며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짐에게는 아직 소 승상이 필요하단다.”

황제의 손바닥도 조각도에 베여 여전히 피가 흐르고 있었다. 두 사람이 손을 맞잡고 있으려니, 흘러나온 피가 빠르게 뒤섞였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

어쨌든 둘은 형제였다. 그를 노하게 할 줄 뻔히 알면서도, 아우는 거짓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 사실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는 제왕으로서, 너무 많은 가식과 거짓말을 겪어 왔다. 아무리 화가 났더라도, 아우가 그에게 솔직한 게 정말 좋았다.

조계안은 손을 빼내려 했다. 결국, 빼내지 못하자 황제를 흘겨보았다.

“황형, 마음대로 쓰시지요. 암황은 조정의 정무에 간섭하지 않습니다. 이것 하나만은 확실하게 지킬 수 있습니다.”

“벽이 생겼는데 어찌 쓸 수 있느냐?”

황제가 쓴웃음을 지었다.

“군주가 신하더러 죽으라 하면, 신하는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신하에게는 제왕을 선택할 권리가 없습니다. 하늘에서 내려 주신 제왕이라면 누구든지 다 받아들여만 합니다.

황형, 왜 그런 사소한 일을 걱정하십니까? 소 승상, 그 늙은이가 불만을 품는다고 해서, 감히 겉으로 드러낼 수나 있습니까? 폐하께서 쓴다고 하시면 감히 거절할 수나 있겠습니까? 정성을 다해 섬기지 않고 배기겠습니까?”

조계안은 황제의 손가락을 하나하나 떼어 내면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듯이 말했다.

다 큰 남자 둘이서 손은 왜 잡는지 알 수가 없었다. 제대로 걷지 못하던 어린 시절처럼, 남이 손을 잡아줘야만 걸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지금의 조계안은 자기 길을 스스로 걸을 수 있었다.

황제는 조계안의 손을 놓아 주었다. 쓴웃음을 짓더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제왕의 위엄도 신경 쓰지 않고, 조계안에게 기대어 바닥에 앉았다.

“계안아, 넌 모른다. 일이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소 승상은 그 자신뿐만 아니라, 이익으로 뭉친 집단의 우두머리이다. 소 승상의 배후에는 많은 사람이 있어. 알겠느냐?”

“황형, 그런 건 월령안에게 좀 배우세요. 애당초 월령안이 재빠르게 세력을 확장할 때, 어떻게 했었습니까?”

조계안은 노인처럼 흔들의자에 기대어 있었다. 눈을 가느스름하게 뜬 모습에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흡족함이 묻어났다.

소여방의 문제를 해결했으니, 이제 더는 월령안에게 빚진 것이 없었다. 이번 일 처리에 대해서는 월령안도 틀림없이 만족할 것이다.

이 기회를 빌려 월령안에게서 자그마한 이익이라도 챙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

“월령안은 어떻게 했느냐?”

황제는 고개를 돌려 조계안을 바라보았다.

“부하가 아니다 싶으면, 그냥 바꾸면 됩니다. 소 승상이 아니다 싶으면, 황형은 그 무리에서 다시 한 사람을 골라 앞장세우면 됩니다. 같은 이익을 노리고 뭉친 사이이니, 소 승상만 불쾌해할 뿐, 다른 사람은 반대하지 않을 것입니다.”

조계안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나랏일에 대해서는 줄곧 흥미가 없었고, 간섭하려 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자신이 벌인 일이니만큼, 황형에게 조금이나마 조언해 줄 수는 있었다.

“소 승상 일파는 이십여 년에 걸쳐 발전해 와서, 조야에 골고루 분포되어 있다. 짐이 제왕이라 해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해. 새로 사람을 고르기도 쉽지 않아. 그리고 새로운 사람에게 소 승상이 달갑게 권력을 넘겨주려 할까? 더구나 그자가 말을 잘 듣는다는 보장도 없잖느냐.”

황제는 소 승상을 잘 부릴 수 있었다. 그러나 사람이 바뀐다면 꼭 그런다는 보장이 없었다.

더는 조회에서 여기가 물이 잠기지 않으면 저기에 가뭄이 들었다느니, 여기에 도적 떼가 나타나지 않으면 저기에서는 식량난을 겪고 있다느니 하는 보고는 듣고 싶지 않았다. 금나라나 북요가 국경에 주둔하고 있다는 보고는 더욱 듣기 싫었다.

주나라는 어렵사리 지금의 안정을 이룩했다. 지금은 암암리에 실력을 쌓을 때였다. 적당한 시기가 되면 다시 손을 쓸 생각이었다.

“소 승상은 동안(同安) 소씨 출신입니다. 동안 소씨는 고양(高陽) 소씨의 방계에 지나지 않습니다. 고양 소씨는 많은 인재를 배출했고, 그쪽이야말로 소씨의 직계입니다. 황형께서 사람을 고르기 어려우시거든, 고양 소씨 출신의 대 유학자를 불러내세요. 그런 자가 선두 지휘하면 소 승상도 함부로 하지 못할 겁니다. 그리고 소 승상 일파도 잘한다고 손뼉만 칠 겁니다.”

그렇게 되면 자신들의 세력이 확장되고, 명망도 높아질 것이다. 기뻐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늑대를 쫓자고 호랑이를 끌어들이는 짓이다. 고양 소씨까지 나오게 되면, 그때 가서 소 승상을 비롯한 문인 무리는 짐도 어찌할 방법이 없을 것이다.”

황제는 화가 나서 조계안을 힐끗 노려보았다.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엉터리 수법인가?’

조계안은 태연하게 대답했다.

“미지근한 물에 개구리를 삶는 것도 좋죠. 하지만 황형, 잊지 마십시오. 물속의 그 개구리는 멍청이가 아닙니다. 게다가 황형의 솥에는 뚜껑도 없잖습니까. 개구리가 뛰쳐나올지도 모르니 조심하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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