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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246)화 (246/1,004)

246화 모두가 알았느냐?

아가씨들은 머리를 내밀고 대숲 저편을 건너다보았다.

“네? 소 공자의 다리가 부러졌다고요?”

성기게 자란 대나무 사이로 사람 그림자가 어렴풋하게 보였다. 가까이 있던 아가씨들은 널빤지 위에 누워 있는 소여방을 보았다. 그리고 소여방과 친한 공자가 묻는 말도 들을 수 있었다.

“정말 다리를 못 쓰게 됐나?”

“그렇네.”

소여방은 덜덜 떨며 대답했다. 목소리가 너무 떨려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였다.

사람들은 깊게 생각하지 않고, 그가 아파서 그러는 줄로만 여겼다. 공자들은 너도나도 입을 열어 위로했다.

“소 형, 너무 걱정하지 마시게. 황(黃) 어의는 접골이 전문일세. 다리는 괜찮을걸세.”

“그러게 말일세. 어서 돌아가 보게. 다리를 심하게 다친 것 같구먼. 이러다 진짜 못 쓰게 된다면 큰일일세.”

“모두, 모두, 걱정해 줘서 고맙네. 모두가 걱정할까 봐 말이라도 하고 가려고 이렇게 왔네. 그럼 치료를 받으러 먼저 가 보겠네. 이 상처는 보기에만 심각한 거니까, 다들 나 때문에 흥을 깨지는 마시게나.”

소여방은 입술을 깨물고 최선을 다해 말을 끝마쳤다.

그는 무언가 더 말을 덧붙이려고 했던 것 같지만, 그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하인들이 그를 싣고 가 버렸다.

한편, 소함연도 사과를 끝내자마자 궁녀의 부축을 받으며 소여방과 함께 자리를 떴다.

소함연과 소여방이 사라지자 연회의 분위기는 금세 다시 달아올랐다.

“정말로 다친 거였구나! 진비 마마를 부른 게 아니라. 깜짝 놀랐잖아. 난 또 뭐라고.”

“맞아, 그때 나도 ‘정말 다쳤구나(중국어로는 진비를 뜻하는 ‘臻妃’와 정말로 불구가 되다는 뜻의 ‘眞廢’의 발음이 비슷하다)’로 들었어.”

“소 공자도 좀 조심하지 않고. 어쩌다가 다리까지 부러졌을까.”

“소 공자가 다리를 얼마나 다쳤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다친 건 사실이니 딱하게 됐네.”

“불구가 된 것은 아니길 바라야지.”

아가씨들은 재잘대며 생각 없이 웃고 떠들기 시작했다. 대숲 건너편의 어린 공자들도 술 두어 잔이 들어가자 평소보다 호방해져서 큰 소리로 떠들었다.

“소 형, 참 안됐네.”

“소 형이 넘어지는 바람에 우리만 괜히 놀랐군.”

몇몇 세심한 이들은 어렴풋이 무언가 짐작했다. 그러나 소여방과 소함연의 태도를 보고는 금세 깨달았다. 무슨 일이 있었든지 모두 없던 셈 쳐야 했다.

이렇게 생각하자, 금세 느긋해져 다시 술잔을 들고 마시기 시작했다.

어찌 되었든 그들도 큰 화를 면하고 살아남은 셈이었다.

바로 그때, 명월산장의 서북쪽 구석에서 갑자기 커다란 소리가 들려왔다.

펑!

소리가 울려 퍼지자, 정원에 있던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그러나 곧 기뻐하며 팔짝팔짝 뛰었다.

“이것 봐. 불꽃놀이야! 세상에 불꽃놀이라니!”

“너무 예쁜 불꽃이야! 대낮이지만 그래도 아름다워.”

피융…… 펑!

불꽃이 하나하나 공중으로 날아올라 허공에서 터지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와 동시에 지붕에서도 커다란 꽃들이 피어나며, 햇빛 아래에서 선명하지 않던 불꽃을 돋보이게 했다.

“와아! 온갖 꽃이 다 피었네. 너무 예뻐!”

어린 공자들은 그래도 담담한 체 했지만, 아가씨들은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다. 심지어 소함연과 소여방의 일조차 잊고, 술기운을 빌려 신이 나서 깡충깡충 뛰었다.

피융…… 펑!

불꽃이 끊임없이 피어남과 동시에 배나무 숲 위의 꽃도 송이송이 피어났다.

“폈어, 폈어! 이쪽의 꽃도 폈어.”

“너무 아름다워! 나 배나무 숲에 가 볼래. 저기는 너무 아름다워.”

“오색찬란한 등불과 불꽃이 하나가 되니, 성교의 쇠사슬도 풀려 문을 활짝 여네(火樹銀花合, 星橋鐵鎖開). 아름답기 그지없군!”

“인간의 기예가 자연보다 빼어나, 불꽃으로 밤을 대낮처럼 밝히는구나(人間巧藝奪天工, 煉藥燃燈淸晝同).”

“무수한 하늘 꽃이 달 속에서 피어나, 땅으로 떨어지니 별빛이 쏟아진 줄 알고 깜짝 놀라네(天花無數月中開, 墮地忽驚星彩散).”

하늘에서는 불꽃이 피어나고, 땅에서는 꽃이 만발했다.

배나무 숲 위의 꽃뿐만 아니라 풀밭 위의 꽃도 모두 피어났다. 꽃잎들이 하나하나 천천히 펼쳐지는 모습은, 마치 세상의 번화(繁華)에 끌려 마음속의 두려움과 불안감을 무릅쓰고 속세에 내려온 꽃의 정령처럼 보였다.

“오늘은 너무 아름다워요. 춘일연에 여러 번 참석했지만, 오늘에야 춘일연의 진정한 재미를 느낄 수 있었던 거 같아요.”

주 낭자는 땅 위에서 수줍게 피어나는 꽃들을 보더니, 술기운을 빌려 풀밭에서 너울너울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녀의 회전에 따라 옷자락이 휘날리면서 꽃 속에서 아름다운 호선을 그렸다.

일순간 연회에 참가한 사람들은 그녀의 춤에 빠져들었다. 그뿐만 아니라 정원에 있던 나비들마저 날아와 그녀의 휘날리는 치맛자락에 내려앉았다.

오색찬란한 나비가 주 낭자의 곁을 둘러싸고 날자 그 광경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아름다웠다. 모두는 너도나도 눈길을 돌렸다.

“나비! 나비가 날아왔어! 주밀(周宓) 언니가 꽃 위에서 춤추니까 나비마저 반했나 봐.”

“와, 주 언니 너무 예뻐요.”

“아름다워! 오늘 정말 아름다워! 나도 출래. 나도 놀래.”

“난 주 언니에게 반주를 해 줘야지.”

“난 주 언니를 그릴 거야.”

“그럼 나도…….”

아가씨들은 주 낭자와 함께 춤을 추거나, 금을 연주하고 그림을 그리면서 떠들썩하게 놀았다.

반면 공자들은 딱하게 되었다. 대숲을 사이에 두고 있어, 한 사람의 모습만 어렴풋하게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처럼 보일 듯 말 듯 한 아름다움이야말로 더욱더 사람을 설레게 하고 빠져들게 한다.

다행히도 공자들이 애타 하는 시간은 오래 가지 않았다. 월령안이 사전에 천천히 터트리라고 분부했지만, 이각(二刻 – 30분) 뒤, 불꽃놀이는 끝나고 말았다.

불꽃놀이가 끝나자, 주밀의 춤도 끝났다. 하지만 모두 흥이 가시지 않아 여전히 금을 뜯고 그림을 그렸다. 마치 춘일연이 이제 시작됐다는 듯, 아무런 마음의 부담 없이 즐겁게 놀고 있었다.

그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자, 월령안은 몰래 궁녀들에게 손짓했다. 공명등은 조금 시간을 두고 가져오라는 뜻이었다.

유경장은 오늘을 위해 많은 폭죽뿐만 아니라 공명등 수백 개도 준비했다. 안타깝게도 본인은 불꽃놀이를 할 기회도, 공명등을 띄울 기회도 없었다.

이를 눈치챈 월령안은 원래 춘일연이 끝나면 하인들을 시켜 공명등을 모두 날려 보내려 했다. 그러나 소여방의 일이 터지자, 당장 생각을 바꾸어 유경장이 가져온 선물을 이용하기로 했다.

생각보다 효과가 아주 좋았다.

저녁 무렵, 노을이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명월산장을 품에 그러안았다.

공중에 떠 있는 아름답고 사실적인 흰 배꽃은 주황색 햇빛에 둘러싸여 있었다. 저녁 노을을 받은 명월산장은 온통 오색찬란한 빛으로 물들었다. 선경처럼 아름다운 광경에, 눈을 깜빡이는 순간조차 아까웠다.

노을이 지면서 이 아름다운 정경이 사람들 앞에 드러났다. 이는 곧 춘일연이 끝나고, 헤어져야 할 때가 왔음을 의미했다.

아가씨들 모두가 시녀의 재촉을 듣자, 아쉬워서 풀이 죽더니 떠나기 싫어했다. 월령안은 이 모습을 보고, 궁녀들에게 명령해 연회에 참석한 소년 소녀 한 사람당 하나씩 공명등을 나눠 주었다.

“공명등?”

“월 언니, 이게 우리에게 주는 선물인가요?”

아가씨들은 공명등을 받자, 호기심에 차서 물어보는 동시에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전에 월 낭자는 장군왕 세자를 대신해 그녀들에게 사죄의 뜻으로 선물을 준다고 했었다.

그녀들은 저절로 피어나는 아름다운 꽃을 기대했는데 공명등을 받게 되자, 너무나 실망스러웠다.

하지만 그래도 웃어야 했다. 월 낭자를 난감하게 할 수는 없었다. 어차피 월 낭자도 장군왕 세자를 도와 뒤처리를 했을 뿐이다. 너무 욕심을 부릴 수는 없었다.

“물론 아니죠.”

월령안은 그녀들의 표정을 전부 지켜보고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이건 여러분이 직접 띄우라고 주는 거예요. 춘일연이 끝났으니 우리도 공명등을 띄우면서 작별 인사를 해야죠.”

춘일연의 마지막을 공명등으로 장식하면, 아가씨들이 돌아가는 길 내내 한참 되새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쓸데없는 생각을 하지 않으리라.

“월 언니, 진짜 멋져요!”

“정말 기발한 생각이에요. 앞으로도 춘일연에 참석하면, 마지막은 공명등을 띄우는 것으로 마무리하면 좋겠어요.”

“월 언니, 아주 마음에 들어요. 이런 작별 방식이라니, 정말 의미가 있네요!”

월령안의 말을 듣자, 아가씨들은 기다릴 수 없다는 듯 시녀들을 불러 공명등을 띄우게 했다.

대숲 너머의 공자들도 월령안의 설명을 듣고, 금세 흥미를 가졌다.

양쪽 사람들은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같은 연못가로 모였다. 그리고 동시에 갖고 있던 공명등에 불을 붙여 띄웠다.

수많은 공명등이 타오르자, 반짝거리는 불빛이 띠처럼 이어지며 화려한 장관을 연출했다.

공명등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명월산장 밖의 농사꾼들은 너도나도 일손을 멈췄다. 집으로 돌아가던 사람들은 걸음도 멈추고 고개를 들어, 은하수처럼 무리 지은 공명등을 바라보았다.

“반딧불처럼 반짝이는 순화성, 북극성까지 가는 길 멀어 기러기는 끼룩끼룩 우네(鶉火星稀螢點點, 北辰途遠雁啾啾).”

최일은 어느새 월령안의 곁으로 다가와 서 있었다.

월령안은 고개를 돌려 그를 힐끔 보고는 옅게 미소를 지었다.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일부러 자리를 뜨지도 않았다. 다른 사람들처럼 고개를 들어 끊임없이 높이 나는 공명등을 바라보았을 뿐이다. 그 얼굴에는 옅고도 따뜻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 시각, 성안.

소여방과 소함연은 호위의 손에 이끌려 곧장 소 승상 저택으로 보내졌다. 황궁으로 끌려가지도 않았고, 심문도 받지 않았다. 마치 진짜로 소여방의 다리가 부러진 사고만 있었던 것 같았다.

그러나 소여방이나, 소함연이나 잘 알고 있었다. 소여방의 인생은 이제 끝난 것과 다름없었다.

소여방과 소함연을 성으로 호송하는 호위를 제외하고, 다른 호위들은 조용히 진비를 황궁으로 돌려보냈다. 그리고 사실의 경과를 황제에게 보고했다. 이 사건이 황제의 불만을 자아내더라도 알려야 했다.

“뭣이라? 명월산장의 춘일연에서 두 사람이 밀회를 해?”

황제는 이를 갈았다. 항상 미소를 띠던 얼굴에는 사나운 기운만 서려 있었다.

“네!”

보고하러 온 사람은 이 일이 좋게 끝나지 않을 걸 알면서도 피할 수가 없었다.

“누가 이 사실을 알고 있지?”

황제의 호흡은 불안정했다. 눈에서는 불꽃이 일렁이었다. 지금 이 순간 그가 얼마나 분노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폐하, 당시 명월산장에는 조왕 전하의 부하들이 있어 최대한 빨리 수습했습니다. 소여방은 조왕 전하의 호위가 소씨 저택으로 보냈습니다. 대외적으로는 다리가 부러지는 바람에 놀란 거라고 말했습니다. 저희는 조왕 전하의 부하가 전해온 소식을 받고야 명월산장에서 일어난 일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명월산장에 도착했을 때는 정원에서 연회가 진행 중이었고, 아주 떠들썩했습니다. 연회에 참가한 사람들은 정원에서 금을 타고, 그림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얼굴의 미소는 아주 솔직했고, 불안함이나 두려움 같은 건 전혀 없었습니다. 또한, 억지스럽거나 당황스러운 분위기도 아니었습니다. 다들 아무것도 모르는 게 확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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