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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245)화 (245/1,004)

245화 연기를 너무 못하는구나

황제는 인자하니, 그들을 죽이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을 꺼리고, 더는 보고 싶어 하지 않을 게 뻔했다.

황제의 미움을 받으면 그들 평생에 또 무슨 희망이 있겠는가?

춘일연에 참가한 이들은 모두 젊은이였다. 그들은 아직 얼굴에 철판을 깔거나 음흉한 수작을 부리는 법을 익히지 못해, 멀쩡히 눈 뜨고 허튼소리를 하는 능력이 없었다.

속으로는 반드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는 듯 행동해야 함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도저히 스스럼없이 행동할 수가 없었다.

눈이 달린 사람이라면, 그들이 침착한 척하려 해도 찔려서 어쩔 줄 모르고 있음을 다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연기를 너무 못하는구나.’

월령안은 저도 모르게 탄식하고 말았다.

그들이 이렇게 찔려서 견딜 수 없어 하는 모습을 보면, 신문할 필요도 없었다. 황제가 보낸 사람이 한 번 훑어보기만 해도, 그들이 소여방과 진비의 추문을 알고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이러면 안 되지!’

어떤 일은 속으로는 뻔히 알고 있어도 겉으로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해야 한다. 그 일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남에게 들켜서는 절대 안 된다. 특히 황제의 사람에게 꼬투리를 잡혀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모두가 끝장이었다.

최일, 최 대인을 좀 보라. 분명 이 사건의 배후에 있는 사람 중 하나이지만, 일이 터지고부터 지금까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그림을 그리며 즐기고 있었다.

다시 다른 공자와 아가씨들을 보자. 그들은 한참이나 지났는데도, 여전히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는 손발을 떨고 있었다.

‘비교할 일이 없으면 상처받을 일도 없다더니.’

월령안은 또 한 번 탄식했다.

최 대인에 비하면, 이들은 어린애에 지나지 않았다. 아직 너무나 미숙했다.

그녀는 이들 스스로 감정을 추스르기를 바랄 수 없었다. 그랬다가는 성안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상태를 회복할 수가 없을 것이다.

아무래도 남의 힘을 빌리는 수밖에 없을 듯했다.

“가서 좀 독한 술을 가져와라.”

스스로 감정을 다스릴 수 없으면, 술이라도 마셔서 흥을 돋워야 했다. 취할 정도까지는 아니고, 적당히 마시게 한 다음 다시 노는 데 정신이 팔리도록 해야 했다. 그러면 당분간은 더는 소여방과 진비의 일을 생각해 내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아예 깡그리 잊기를 바라지는 않았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명월산장을 떠나기 전까지만, 소여방과 진비의 일을 잊고 즐겁게 놀 수 있을 정도면 됐다.

그렇게 해야만 그들도 안전하게 몸을 뺄 수 있었다. 그녀도 혐의를 깨끗이 벗을 수 있을 것이다.

“네, 낭자.”

궁녀들이 귀족 아가씨들이나 소년보다 훨씬 나았다. 그녀들도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최대한 빨리 안정을 되찾았다.

그녀들은 월령안의 분부를 듣자, 그녀의 생각을 알아차리고 눈앞이 환해지는 듯했다. 당장 술을 가지러 갔다.

‘월 낭자가 등요 공주보다 훨씬 처세가 뛰어나구나. 만약 등요 공주가 여기 있었더라면, 추문을 덮어 감추기는커녕 오히려 일을 더 크게 만들었을지도 몰라.’

궁녀는 여기까지 생각하자, 장군왕 세자가 무척이나 고마웠다. 만약 장군왕 세자가 등요 공주의 따귀를 때린 사건이 없었더라면, 월 낭자가 춘일연을 주관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최일은 한쪽에서 월령안을 묵묵히 관찰했다.

궁녀가 술을 가져온 것을 보자, 최일은 월령안이 무엇을 하려는지 알아차렸다. 잠깐 주저했지만, 그래도 그녀 앞으로 다가갔다.

“월 낭자, 제가 도울 일이 있습니까?”

“최 대인은 바쁘지 않으세요?”

사건이 터진 뒤, 월령안은 이 소년, 소녀들의 불안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지 계속 궁리하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만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평온을 유지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몰래 감시할 사람들도 우리가 아무것도 모른다고 여기게 할 수 있을까?’

그러다 보니 최일에게는 신경을 쓰지 못했다.

그녀는 최일이 먼저 자리를 떠나지 않고 여전히 머물러 있는 것을 보고 무척 놀랐다.

“제가 도와드릴 일이 있습니까?”

최일은 웃음을 머금은 채 천연덕스럽게 되물었다.

조왕은 그더러 뒷수습을 하라고 했다. 그러나 월령안이 워낙 빠르게 반응해 제때 처리했기에 도울 일은 거의 없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는 육 대장군을 조금 동정하게 되었다.

뛰어난 아내를 맞아들였지만, 영문도 모르고 남의 계략에 당해 아내를 잃고 말았다. 게다가 본처를 내쳤다는 누명까지 뒤집어썼으니 참 딱한 노릇이었다.

“대인, 바쁘지 않으십니까?”

최일의 나무랄 데 없이 완벽한 웃는 얼굴을 바라보며, 월령안은 마음속으로 탄복했다.

‘관리 사회에 발을 내디딘 사람은 역시 다르구나. 저 담담한 모습을 봐. 저 도련님들이 잘 배워야겠어.’

풍월을 읊을 때는 하나같이 운치가 넘쳐나고, 비범한 기개를 자랑했었다. 그런데 일이 터지자 모두 당황해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상황을 주도하기는커녕, 자기 단속도 제대로 못 하는 것을 보니 일을 감당할 능력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물론 월령안도 소년들을 탓할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

이 소년들은 모두 풍파 없이 곱게 자란 도련님이었다. 무장 가문인 정씨 가문의 공자 둘도 무장의 길을 걸어 군에 입대했지만, 줄곧 성안에서 직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변경 성안에 있으면서, 풍파라고는 겪어 보지 못했으니 무엇을 얼마나 감당할 수 있겠는가.

“오늘은 제 휴목(休沐 – 관리들의 휴일)입니다. 월 낭자, 걱정하지 마세요. 오늘의 저는 그저 최일일 뿐입니다. 호부 좌시랑도, 조정의 관리도 아닙니다.”

최일은 월령안이 자신을 무척 경계하는 것을 알고 있기에, 솔직하게 터놓고 말했다.

그는 정말 못된 꿍꿍이도, 악의도 없었다. 그런데 그녀가 자신에 대해 왜 이토록 깊은 편견을 가졌는지 알 수가 없었다.

최씨 가문 공자라는 이름에 영향을 받지 않고, 이처럼 그를 경계하는 아가씨는 처음 보았다.

“그럼 최 공자, 부탁드립니다.”

월령안에게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최일에게 정중하게 읍을 하면서 말했다.

“최 공자, 이제 어떻게 할까요? 그 일은 어떻게든 그럴듯하게 둘러대야 할 것이 아닙니까.”

월령안도 이 일을 떠맡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명월산장은 명목상 그녀의 것이었다. 명월산장에서 추문이 터졌으니, 설령 그녀가 그 일에 참여하지도 않았고 아무것도 모른다고 해도 소용없었다. 잘못 처리했다가는 황제의 불만을 일으킬 수 있었다.

“월 낭자는 잘 처리하고 있습니다. 잠시 후 제가 소함연을 불러내어 당신에게 사과하게 하지요. 제 오라버니 다리가 부러져 불구가 된 걸 보고, 잠시 분을 이기지 못해 당신에게 화풀이했다고요. 사람을 시켜 소여방도 함께 들것에 실어 내올 겁니다. 그자가 스스로 모두의 앞에서 해명하게 할 겁니다. 다리가 부러져서 불구가 될 것 같다고요.”

최일은 단숨에 처리 방안을 말했다. 사전에 계획한 게 분명했다.

“그렇게 하면 좋겠네요.”

월령안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얼굴에 느긋한 미소가 떠올랐다.

“오늘 일은 최 공자께 감사드립니다. 최 공자께서 저 대신 조 대인께 제가 매우 만족했다고 전해 주세요.”

물론, 조계안이 명월산장에서 이런 미친 짓을 벌이지 않았으면 더 좋을 뻔했지만 말이다. 그녀로서는 제왕의 분노를 감당하기 힘들었다.

“조 대인께서 월 낭자의 말을 들으면 아주 기뻐할 겁니다.”

최일은 조계안을 떠올리고 속으로 탄식했다.

‘안 되는 걸 뻔히 알면서도 기어코 저질렀군.’

때로는 조계안이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로서도 알 수가 없었다.

“최 공자, 천만에요. 최 공자께서 계획이 있다고 하시니 저는 그럼 편히 있겠습니다. 술은 도로 가져가라고 할게요. 누군가 너무 술에 취하면 그것도 곤란하니까요.”

월령안은 다시 한번 예를 올렸다.

“최 공자, 실례하겠습니다.”

최일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피식 웃고 말았다.

“월 낭자. 그래도 술은 마셔야 합니다. 조금이라도 마시게 하세요. 그래야 흥이 올라서 이것저것 생각하지 않게 될 겁니다.”

왜 월령안은 매번 그와 말할 때면 ‘실례합니다’로 끝을 맺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 정도로 내가 싫은가?’

그는 여기 오기 전에 일부러 연못에 자신의 얼굴을 비춰 보았다. 전혀 못생겨지지 않았다.

“최 공자,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적정선을 지키게 하지요.”

월령안은 그렇게 대답했다. 최일에게 또 한 번 예를 올리고서야 자리를 떴다.

“관두자. 무슨 일이든 강요할 수는 없지. 싫어하면 싫어하는 거지. 그래도 월 낭자가 나를 함정에 빠트리지는 않았잖아. 육 대장군보다 훨씬 좋은 대우를 받은 셈이로군.”

최일은 고개를 저으며 혼잣말을 하더니, 몸을 돌려 한쪽에 있는 별채로 걸어갔다.

조계안의 부하는 최대한 빨리 소여방을 잡았다. 기절해 있던 소함연도 수습하여 데리고 왔다.

최일은 한 손으로 뒷짐을 지고, 소여방을 잡아 가둔 뜰로 유유히 걸어갔다.

“최 대인.”

그를 지키고 있던 호위는 최일을 보자 포권하며 예를 올렸다.

“깨어났나?”

최일은 들어가는 대신 문어귀에 멈춰 섰다.

“네, 깨어났습니다.”

호위가 보고했다.

“상태는 어떠하더냐?”

“엉망입니다.”

최일의 물음에 호위가 대답했다.

최일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 남매에게 약을 먹이고, 말을 똑바로 하도록 가르쳐라. 그들을 입궁시킬 필요는 없다. 입성하면 바로 소 승상 댁으로 돌려보내라. 소 승상은 어떻게 해야 할지 알 것이다.”

진실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세상 사람들이 진실을 알 필요도 없었다. 진실을 알아야 하는 사람들만 알면 되었다.

이제 소여방은 받아야 할 벌을 받게 될 것이다.

* * *

최일은 일 처리가 빨랐다. 춘일연에 참석한 이들 사이에 술이 두 순배(巡杯 - 술자리에서 술잔을 차례로 돌림) 돌았을 무렵, 소함연과 소여방이 건너왔다.

소함연은 이마에 상처가 나는 바람에 하얀 천으로 머리를 감싸고 있었다. 하얀 천 위로 피가 배어 나와 애처롭고 가련해 보였다.

소여방은 더욱 딱했다. 그는 들것에 실린 채로 왔다. 하얀 천으로 겹겹이 싸인 오른쪽 다리 역시 피가 흠뻑 배어 있었다.

그의 얼굴은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려 있었다. 입술은 짓씹어 피가 배어 나왔다. 이마에는 땀이 끊임없이 흘렀다. 몸도 사시나무 떨듯 떨고 있었다. 마치 상갓집 개처럼 전체적으로 기운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

두 사람은 뜰에 도착하자, 각자 남녀 손님 자리로 걸어갔다.

“이, 이건…… 어찌 된 일인가요?”

아가씨들은 술을 조금 마셔서 마음속 불안감을 가까스로 억누른 상황이었다. 그런데 소함연을 보자마자 다시 놀라고 말았다.

“동생들, 저는 령안이에게 사과하러 온 거예요. 제 오라버니 다리가 부러진 게 본인 실수인 것도 모르고, 령안이가 해코지를 한 줄 알았네요. 제가 령안이를 오해했어요.”

소함연의 마음속은 당황스럽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겉으로는 아무 일도 없었던 척, 다만 사죄하러 온 듯이 태연하게 굴었다.

그녀가 얼마나 두려움에 싸여 있는지는 하늘만이 알 것이다.

‘오라버니가 황제의 후궁과 잠자리를 가지다니!’

하지만 자신의 목숨을 위하여, 소씨 가문을 위하여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시치미를 떼야 했다.

이 일은 묻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녀의 오라버니뿐만 아니라, 소씨 가문 전체가 끝장날 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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