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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241)화 (241/1,004)

241화 월령안, 과연 내 복덩이로군!

그녀는 육장봉을 좋아했다. 육장봉은 그녀를 좋아하지 않았다.

결코, 평등할 수가 없는 감정이었다.

일방적인 사랑, 일방적인 헌신, 일방적인 노력을 쏟는 일은 너무나 힘들었다.

‘십 년이면 충분해.’

그녀는 이제 육장봉을 좋아하고 싶지 않았다. 더는 좋아하지 않으려고 했다.

‘설령…….’

월령안은 침향원 쪽을 바라보았다. 눈빛이 살짝 어두워졌다.

설령 육장봉이 마음이 흔들려 그녀를 좋아하기 시작했다고 해도, 더는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상인으로서, 손해 보는 장사는 하지 않았다.

그녀와 육장봉은 잘될 수 없는 운명이었다. 더는 육장봉에게 감정을 쏟아부을 수가 없었다.

몸도, 마음도 다 빼앗겨, 결국 모든 걸 잃고 싶지는 않았다.

월령안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차분했다. 얼굴에는 옅고 따뜻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하지만 유명미와 전 낭자는 그녀에게서 이유 모를 슬픔을 느꼈다. 뼛속에서부터 뿜어져 나오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슬픔, 내지는 절망이 느껴졌다.

“월령안, 저기…… 괜찮죠?”

유명미가 조심스럽게 월령안을 바라보았다. 마음속으로 무척 후회되었다.

‘내가 어쩌다 어린애처럼 무례한 질문을 했지? 너무 철없는 짓이었어. 남들은 몰라도, 나는 월 낭자의 마음속 고통을 알고 있었는데.’

“전 괜찮아요. 오늘은 정말 기분이 좋네요.”

월령안은 아무런 슬픔도, 원망도 섞여 있지 않은 시원스럽고 순수한 웃음을 건넸다.

마음속으로는 확실히 불편했다. 그러나 그런 건 본인만 알고 있으면 그만이다.

그녀는 이제 어린애가 아니었다. 근심 걱정이든, 슬픔이나 기쁨이든 남과 나눌 필요가 없었다.

유명미는 조금 안심했다. 막 입을 열려는데 월령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늘은 춘일연이에요. 꽃을 감상하고 노는 게 우리가 할 일이잖아요. 다들 힘들면 앞쪽에 있는 정자에 가서 잠시 휴식하세요. 백화밀(百花蜜 – 여러 가지 꽃에서 채취한 꿀, 잡화꿀)도 맛보고, 백화 과자도 드세요.”

“백화 과자? 꽃으로 만든 거예요?”

아가씨들은 눈을 반짝였다. 반나절이나 밖에서 노닐었더니 다들 시장기를 느꼈다.

“아니에요.”

월령안이 고개를 저었다.

“여러 가지 꽃 모양으로 만든 거예요. 여러분에게만 하는 말인데, 제가 먼저 몰래 맛을 보았거든요. 진짜 맛있었어요.”

실망하던 아가씨들은 월령안의 마지막 말에 다시 솔깃해졌다.

“그래, 이제 피곤하니 쉬어야겠어.”

“저도 가 볼래요…….”

“저는 그림을 다 못 그려서 좀 늦게 갈 거예요. 너무 빨리 먹지 말고 제 것도 좀 남겨 줘요.”

아가씨들은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정자로 갔다. 나머지 사람들은 함께 모여 금을 뜯고 바둑을 두면서 즐겁게 놀았다.

월령안 옆에 있던 사람들이 갑자기 절반이나 줄어들었다. 정 낭자는 반나절이나 기다린 끝에, 월령안의 곁이 한가해진 틈을 타 앞으로 비집고 나왔다.

“월 언니, 제 오라버니들이 언니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싶대요. 만나 줄 수 있으세요?”

정 낭자는 말하면서 옆에 있던 정씨 가문의 공자 두 명을 가리켰다.

월령안은 눈을 들어 바라보다가 두 사람과 시선이 마주쳤다. 고개를 끄덕이며 정 낭자의 부탁을 받아들였다.

“좋아요.”

월령안과 정 낭자는 정씨 가문 두 공자에게로 걸어갔다. 그 두 사람도 마주 걸어왔다. 네 사람은 대숲 앞에서 만났다.

“월 낭자.”

정씨 가문 공자들은 전혀 거드름을 피우지 않았다. 먼저 예를 올리며 말했다.

“두 분 공자를 뵙습니다.”

월령안도 답례를 했다.

“월 낭자, 제 누이가 소란을 피우는 바람에 폐를 끼쳤습니다.”

정 대공자는 다시 한번 예를 올리고 월령안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그리고 월령안이 무언가 말하기도 전에 서둘러 말을 이었다.

“동생에게 들었습니다. 손 신의를 청해 동생을 치료해 주겠다 하셨다면서요. 사실입니까?”

정 대공자가 말을 마치자, 정 이공자는 월령안을 간절하게 바라보았다. 보아하니 두 공자는 그녀에게 감사 인사를 하러 온 게 아니고, 손 신의의 일을 확인하러 온 모양이었다.

월령안도 집에 환자가 있다 보니 두 공자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뜸을 들이지 않고, 바로 긍정적으로 대답해 주었다.

“이번에 손 신의를 변경으로 모셔 제 가족을 치료하려고 해요. 정 낭자도 그때 함께 가서 그분을 뵈면 됩니다.”

“손 신의께서는 관직에 있는 사람은 치료해 주지 않는 거로 알고 있습니다. 그분께서 제 누이를 치료해 주려 하실까요?”

정 이공자는 조급해져 정 대공자의 말을 가로챘다.

“딱 필요한 약만 받는 거예요. 직접 손이 닿지 않으면 치료했다고 할 수는 없죠. 그러면 손 신의의 규칙을 어기는 게 아니니까요.”

애초에 그녀는 이 명목으로 손 신의를 설득해 설옥고를 만들게 했다. 다시 한번 이런 명목으로 손 신의를 설득하는 게 크게 힘들지는 않을 것이다.

어쨌든 돈 문제였다. 돈만 충분히 내놓는다면 손 신의가 다시 한번 전례를 깨뜨리게 할 수 있었다.

그녀는 다른 건 몰라도 돈 하나만은 모자라지 않았다. 돈을 좀 들여 정씨 가문과 인연을 튼다면, 이는 밑지는 장사가 아니었다.

물론 정 낭자가 진심으로 마음에 들어서 한번 도와주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 만약 소함연이나 등요 공주였다면, 설령 황실에서 그녀에게 빚을 지는 셈이 된다고 해도 도와주지 않을 것이다.

“그게, 그래도 됩니까?”

정 이공자는 어리둥절하다가, 곧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그럼 우리 스스로 가서 손 신의를 찾아도 되잖습니까? 왜 월 낭자가 소개해 주셔야 합니까? 이유 없이 신세를 질 필요가 없을 텐데요?”

“그래도 되죠.”

월령안은 시원하게 대답하더니, 아예 이렇게 말해 주었다.

“손 신의가 도착하면 정 공자께 소식을 전할게요.”

‘정씨 가문에서는 내게 신세 지기 싫은 거로군. 좋아. 그럼 손 신의가 약을 내주나 보자고.’

딱!

정 대공자가 아우를 쥐어박았다. 그다음 월령안에게 읍을 하며 사과했다.

“월 낭자, 제 아우가 성격이 솔직하다 보니 입이 먼저 움직일 때가 많습니다. 생각 없이 한 말이니, 월 낭자께서 양해해 주십시오.”

월령안은 정 대공자의 말뜻을 알아차렸다.

‘아우는 그저 솔직하게 입이 먼저 움직였을 뿐, 틀린 말을 한 게 아니다.’

그녀는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정 대공자, 천만의 말씀입니다. 별일은 아니에요. 손 신의가 오시면 제가 댁에 연락을 드리도록 하지요. 그때 두 분께서 직접 찾아가시면 됩니다.”

두 공자가 대답하기를 기다리지 않고, 월령안은 허리를 굽혀 예를 올렸다.

“두 분, 죄송합니다. 제가 조금 바빠서요. 이만 먼저 가 보겠습니다.”

월령안은 말이 끝나자마자 여지를 주지 않고 몸을 돌려 바로 자리를 떴다.

“월 언니…….”

정 낭자는 둘째 오라버니의 말을 듣는 순간, 일이 잘못되었음을 알아차렸다. 월령안이 자리를 뜨려는 모습을 보자, 그녀가 불쾌해한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서둘러 다가가 사과했다.

“월 언니, 죄송해요. 제 둘째 오라버니가…….”

“왜 정 낭자가 사과를 하세요. 전 화나지 않았어요.”

월령안은 걸음을 멈추고 초조해하는 정 낭자의 모습을 보았다. 또 참지 못하고 손을 내밀어 정 낭자의 볼을 살짝 꼬집었다.

“됐어요. 아가씨들은 항상 즐겁게 지내야죠. 손 신의가 오면 꼭 정 낭자를 데리고 갈게요.”

정 낭자는 눈을 반짝였다.

“월 언니, 그래도 손 신의를 만날 때 저를 데리고 가 주실 거예요?”

그녀는 둘째 오라버니가 월 언니를 불쾌하게 했으니, 월 언니가 더는 자신을 거들떠보지 않으리라고 여겼다.

“물론이죠.”

정 이공자의 말 때문에 조금 화가 나기는 했지만, 어린 정 낭자에게 화풀이할 정도는 아니었다.

‘정 이공자는 정말로 손 신의를 그렇게 쉽게 설득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월령안은 정 이공자가 거절당한 뒤, 다시 그녀를 찾아오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월 언니, 언니는 정말 좋은 분이세요.”

정 낭자는 월령안의 옷소매를 잡아당기면서,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저를 기쁘게 해 주지 않아도 되니까, 어서 놀러 가세요.”

월령안은 정 낭자의 머리를 다독였다. 분명 월령안은 정 낭자보다 고작 두 살이 많을 뿐이지만, 어쩐지 웃어른이 아랫사람을 대하는 기분이었다.

정 낭자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기쁘게 대답하고는 다른 낭자들을 찾아 놀러 갔다. 자신의 두 오라버니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두 오라버니를 월씨 가문에 데릴사위로 보내려던 일도 더는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정 낭자의 눈에 자신의 두 오라버니는 월 언니에게 너무 부족해 보였다. 데릴사위로서도 자격 미달이었다.

정 낭자가 간 뒤, 월령안은 혼자 앞으로 걸어갔다. 막 명월산장에 도착했을 때, 모두에게 배척당하던 때와는 상황이 전혀 달라졌다. 고작 몇십 걸음밖에 걷지 않았지만, 가는 내내 남녀 가릴 것 없이 수많은 사람이 그녀에게 인사했다.

월령안은 마음속에 근심이 있었지만, 남들이 부르면 본능적으로 상대에게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녀의 몽롱한 눈빛과 옅지만 따뜻한 미소는 그녀도 모르는 사이에 수많은 소년 소녀의 마음을 얻어냈다.

“육 대장군의 연적이 정말 적지 않군.”

최일은 사뿐사뿐 걸음을 옮기며 옅은 미소를 짓는 월령안을 바라보았다. 저도 모르게 다시 책상 앞에 다가갔다. 종이를 책상 위에 펴고 붓을 들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소씨 남매 쪽의 일은 이미 시작되었다. 앞으로의 일은 그와 상관없었다.

아무튼, 한가하던 참이니 그림 몇 폭을 더 그려 두면 좋을 것이다. 그러면 조 대인, 심지어 육 대장군에게서도 적지 않은 이익을 얻어 낼 수 있을 듯했다.

최일은 조 대인과 육장봉 두 사람이 서로 다투고 자기 혼자 이득을 보는 상황을 상상해 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점점 더 크게 피어났다.

‘월령안, 과연 내 복덩이로군!’

* * *

월령안은 멀리서 허리춤에 황금 장식을 한 회색 옷차림의 남자가 정원으로 급히 걸어오는 모습을 보았다. 그녀는 곧 사람들을 피해 남의 눈에 띄지 않는 구석으로 걸어갔다.

그녀가 구석에 도착하자마자, 회색 옷차림의 남자가 걸어왔다.

“월 낭자.”

“무슨 일이 생겼나요?”

황금당의 사람이 이렇게 돌아왔다는 건 가망이 없다는 의미다. 월령안은 더는 요행을 바라지 않기로 했다.

‘야율제가 도망쳤구나. 아깝네!’

“사사(死士)가 나타나서 야율제를 구해 갔습니다. 저희 황금당의 살수들이 이미 뒤쫓아서 갔고, 소인을 남겨 낭자를 보호하는 겁니다.”

그는 실패했다고 하면서도 전혀 낙담하지 않았다. 아주 당연한 일이라는 태도였다.

“아직까지도 야율제의 사사를 깨끗하게 정리하지 못했단 말이에요? 황금당의 실력이 의심스럽군요.”

월령안은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는 있었다. 그러나 직접 듣고 나니 실망스럽고,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언제 야율제를 찾을 수 있을지 기약이 없었다.

주나라에서는 북요로 국서를 보내 사신을 바꾸라고 요구했고, 그녀 또한 북요에 손을 써 그의 남원대왕 자리를 빼앗으려 하고 있었다. 이 사실을 야율제가 알게 되면 큰일이었다. 그랬다가는 야율제가 그녀를 미친 듯이 물어뜯으려 할 게 분명했다. 그렇게 되면 그녀는 더욱 위험해진다.

“월 낭자, 오해하셨군요. 북요의 사사가 아니고 주나라에서 양성한 사사였습니다. 우리의 예상보다 무예가 훨씬 뛰어났습니다.”

그가 고개를 떨구고 말했다.

“당신들도 대적하기 힘들던가요?”

월령안이 물었다.

“네.”

회색 옷의 남자는 여전히 감정을 전혀 드러내지 않았다.

“누가 그렇게 대단한 사사를 양성해 낼 수 있지?”

월령안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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