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황 (240)화 (240/1,004)

240화 너무 힘들어서요

정 낭자는 원래 두 오라버니를 월령안에게 소개하려고 했었다. 육장봉을 훔쳐보더니, 앞으로 나아가 월령안의 팔을 잡고서 애교를 부렸다.

“월 언니, 우리 저쪽으로 가요. 여기는 사람도 많고 너무 붐벼요.”

“좋아요. 우리 저쪽으로 가요. 제가 늦게 와서 여러분의 장기를 미처 보지 못했네요. 정 낭자는 호금(胡琴)을 잘 켜잖아요. 귀 호강 좀 시켜 주세요. 저도 고상한 분위기 좀 느껴 보게요.”

월령안은 육장봉을 본 채도 하지 않고 정 낭자 등과 함께 자리를 떴다.

그녀는 정 낭자를 칭찬해 주는 한편, 다른 사람에게도 소홀하지 않았다.

“전 낭자의 공후(箜篌 – 하프와 비슷한 현악기)는 대가에게서 직접 배운 거죠. 제 기억이 맞죠? 이 낭자는 모란꽃을 정말 일품으로 그리죠. 주 낭자는 양손으로 동시에 글을 쓰는 묘기가 있고요. 허 낭자의 금 솜씨는 궁중 악사도 부러워할 정도라더군요.”

“월 언니, 어떻게 제 장기가 호금인 걸 알고 있어요. 진짜 대단하세요.”

“제 금은 전 낭자의 공후와는 비기지도 못해요. 월 낭자 과찬이세요.”

“다만 많이 연습했을 뿐이에요. 월 낭자, 천만의 말씀이세요.”

“월 낭자, 정말 좋은 분이네요. 제가 생각했던 것만큼 거친 분이 아니셨어요.”

월령안이 아가씨 몇몇의 장기를 일일이 짚어 주자, 그녀들은 겉으로는 겸손한 척했지만 내심 기뻤다.

조금 전 월령안과 육 대장군의 공중 검무를 보자, 그녀들은 자신을 뽐낼 생각을 포기했다. 그런데 월령안이 이렇게 말해 주자, 그녀들은 자신이 배운 것을 보여 줄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화신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월 낭자에게 보여 주고 싶었다.

아가씨들은 월령안을 에워싸고 끊임없이 재잘거렸다. 월령안 일행이 가 버리자 주변은 삽시간에 텅텅 비었다.

“어, 모두 가 버린 거야?”

맹한 서생 하나는 그것을 그제야 알아차리고는 어찌 된 영문인지를 몰라 했다.

나머지 공자들은 무표정한 육 대장군을 힐끔 보고는 묵묵히 자리를 떴다.

육 대장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무척 품위가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육 대장군이 불쾌해한다고 느꼈다.

유경장이 맞는 말을 했는지도 모른다. 육 대장군은 전 부인이 남에게 구애를 받는 장면을 보자, 자기 소유물에 누군가 손을 댔다고 느꼈으리라. 그에 자기가 침범당했다고 생각해 마음이 언짢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 소유물을 자기가 버렸다고 해도, 남이 넘볼 수는 없었다.

이게 바로 남자의 본성이다.

역시, 남자는 다 똑같았다. 육 대장군처럼 강하고 대단한 남자도 결국 그 틀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모두는 묵묵히 자리에서 멀어진 다음에야 서로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 * *

육장봉은 여전히 그 자리에 움직이지 않고 서 있었다. 그는 월령안이 아가씨들을 구슬려 그녀를 위해 금을 뜯고 그림을 그리게 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때때로 준수한 공자들이 일부러 그 곁을 지나가며 그녀의 시선을 끌려 했다. 다행히도 월령안은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대장군, 품위, 품위를 지키셔야죠!”

최일은 육장봉이 언짢아하는 모습을 보자, 삼복더위에 냉수 한 잔을 들이켠 것처럼 온몸이 다 시원해지는 느낌이었다.

“아직도 있었나?”

육장봉은 눈길을 거두고 최일을 흘겨보았다.

“장군도 계시는데 제가 왜 못 있겠습니까?”

최일이 웃으며 말했다.

육장봉은 힐끗 훑어보고는 말했다.

“소씨 남매는?”

“대장군, 예리하시군요. 그것까지 아셨습니까.”

최일은 감추지 않고 과감하게 말했다.

“월령안이 엮이지 않게 하게.”

육장봉이 경고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최일은 신중하면서도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그림을 그리는 걸 봤네. 그림은?”

육장봉은 주위 상황을 기민하고 세심하게 살피고 있었다.

그는 최일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도 월령안을 그리는 광경을 보았다. 그게 대수로운 일은 아니었다. 어차피 그들이 그린 그림은 명월산장 밖으로 나가지 못할 테니까.

최일은 시치미를 뗐다.

“그림, 무슨 그림요? 장군께서는 제가…….”

슉!

황금색 빛 한 줄기가 곁채에서 날아오르더니 공중에서 터지고는 눈 깜짝할 사이 사라졌다. 자리에 있던 사람들 대부분은 보지 못했지만, 육장봉과 최일은 똑똑히 보았다.

“저건…….”

최일은 잠시 멍해 있었다. 그 순간, 육장봉이 곁을 스치고 지나가더니 눈앞에서 사라져 버렸다.

“굉장한 속도군.”

최일의 눈에는 경이로움이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그는 곧 냉정함을 되찾았다.

육장봉은 북요와 싸워서 그들이 먼저 화해를 청하게 했다. 야율제 그 미치광이도 육장봉에게 정면으로 대적하지 못해 월령안 같은 여인에게 손을 쓸 정도였다. 그런 육장봉이 어찌 평범한 인물일 수 있겠는가.

“응? 아까 그 그림자는 육 장군이 아닌가? 어디로 가셨지?”

“육 장군? 보지 못했는데. 먼저 돌아가신 게 아닐까.”

“조금 전에 은빛이 번쩍 지나갔어. 아마 육 장군일 거야. 그런데 속도가 너무 빨라 자세히 보지는 못했어.”

“잘못 본 거 아니야? 난 아무것도 보지 못했는데.”

“나도 못 봤어요. 그래도 육 장군께서는 이미 이곳에 안 계신 거 같아요. 혹시 육 장군이 화난 건 아닐까요? 장군이 월 낭자와 함께 공중 검무를 추었지만, 유 공자가 훨씬 더 나은 거 같아요. 더 호감이 가더라고요.”

“유 공자가 월 낭자에게 <봉구황>을 불러 줄 때 하마터면 내가 눈물을 흘릴 뻔했다니까요. 유 공자가 월 낭자를 보는 눈빛에 사랑이 흘러넘치더라고요. 월 낭자를 무척이나 사랑하는 게 분명해요. 떠날 때조차 그랬죠. 월 낭자에게 자기가 좋아하는 게 월 낭자와는 상관이 없다고 말했잖아요. 그건 월 낭자가 부담스러워할까 걱정해서 그랬겠죠. 유 공자는 정말로 자상하네요.”

“뭐예요. 제가 보기에는 육 장군의 공중 검무가 더 낭만적이었어요. 생각해 보세요. 하늘 가득한 배꽃 아래에서 공중 검무를 하면서 발자국마다 꽃이 피어나는 장면, 그야말로 선경(仙境)이 따로 없었다고요. 이렇게 교묘한 구상과 대단한 능력을 어떻게 노래 하나랑 비교해요?”

“아니, 분명 유 공자의 노래가 더 좋았어요.”

“육 장군과 월 낭자의 공중 검무가 더 좋았어요.”

몇몇 아가씨는 이야기 끝에 결국 언성을 높이고 말았다. 육장봉을 좋아하는 이도, 유경장을 좋아하는 이도 있었다. 서로 한마디씩 주고받았지만, 서로를 설득할 수 없었다.

월령안은 가운데 서서 입가에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아가씨들의 대화를 진지하게 듣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눈길은 방심원 쪽으로 가 있었다.

그녀는 조금 전에 황금색 빛줄기가 하늘에서 터지는 것을 보았다.

‘황금당이 실수하여 야율제가 도망을 친 건가? 황금당이 이 정도로 무능했나?’

월령안은 저도 모르게 눈썹을 찌푸렸다. 야율제와의 접전이 있었던 침향원(沈香院)에 가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양쪽에서 옷소매를 잡고서 그녀더러 판결을 달라는 아가씨들을 보고는 포기하고 말았다.

육장봉이 바로 달려갔다. 육장봉보다 느린 그녀가 지금 최대한 빠르게 간다고 해도 이미 늦었을 것이다. 설령 늦지 않았더라도, 그녀는 무예를 몰라 방해만 될 것이다.

게다가 아까 육장봉과 함께 사라졌을 때는 검무를 준비하기 위해서였다고 변명할 수 있었다. 지금은 마땅한 변명거리도 없었다.

그녀는 육장봉과 여기서 더 엮이고 싶지는 않았다.

월령안은 눈길을 거두었다. 그때 마침 유명미를 필두로 한 육장봉 파와 전 낭자를 필두로 한 유경장 파의 아가씨들이 그녀의 팔을 붙들고 누구를 더 좋아하는지 묻는 말을 들었다.

“둘 다 싫어요.”

월령안은 엉겁결에 솔직히 대답했다.

“월 낭자, 어떻게 좋아하지 않을 수 있어요? 유 공자의 <봉구황>은 음절마다 깊은 정이 있었고 노래에는 글자마다 사랑과 기대가 넘쳤어요. 특히 나중에 떠나가면서 읊은 그 사(詞)는 정말 절절했어요. 유 공자가 그렇게 지고지순한데 어찌 좋아하지 않을 수가 있어요?”

전 낭자는 학자 집안 출신이라 고상한 문학 작품을 좋아했다.

그녀가 보건대, 월령안을 위해 금을 타고 사를 짓는 유경장의 사랑의 깊이는 비길 사람이 없었다.

전 낭자의 질문에 월령안이 무언가 말하기도 전에 유명미가 나서서 매섭게 반박했다.

“<봉구황>을 연주할 줄 아는 사람은 유 공자 하나만이 아니에요. 연주로 치자면 하면 궁중의 악사도 결코 유 공자보다 못하지 않을걸요. 설마 <봉구황>을 탈 줄 아는 사람이면 다 지고지순한 사람이에요?

유 공자가 떠나가기 전에 읊은 그 사는, 잘 썼다는 건 인정해요.

하지만 육 장군의 검무가 더 좋아요. 공중에서 검무를 추는 게 얼마나 힘들어요? 특히 공중에서 피어나는 꽃도 준비해야 할 거 아니에요.

유 공자는 원래부터 각종 기예와 문학에 전부 능통했잖아요. 그 노래와 사는 즉흥적으로 바친 거라고요. 육 장군은 다르죠. 육 장군은 분명 미리 준비했을 거예요. 그러니 그분이 월 낭자에게 더 열심이죠.”

“유 공자가 더 신경을 많이 썼어요. 즉흥적이었는지 아니었는지 유 낭자가 어떻게 알아요?”

전 낭자는 유명미를 사납게 노려보더니 월령안의 팔을 끌어안고 물었다.

“월 낭자, 말해 보세요. 누구를 더 좋아하세요?”

유명미도 지려 하지 않았다. 월령안의 다른 한쪽 팔을 안고서 말했다.

“월령안, 걱정하지 말고 마음속 말을 해 보세요. 육 장군과 유 공자, 도대체 누굴 더 좋아해요?”

원래는 교분이 두터웠던 두 아가씨가 순식간에 서로를 적처럼 여기며 다투기 시작했다. 월령안은 그러한 두 사람을 바라보며 저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저는 정말로 둘 다 싫어요.”

“어떻게 둘 다 좋아하지 않을 수 있어요?! 육 장군이 그렇게 멋진데. 두 사람 다 좋지 않으면 어떤 사람을 좋아한다는 거예요? 이 세상에 육 장군보다 더 좋은 남자가 있나요?”

“어떻게 둘 다 좋아하지 않을 수 있어요?! 유 공자가 그렇게 멋진데. 두 사람 다 좋지 않으면 어떤 사람을 좋아한다는 거예요? 이 세상에 유 공자보다 더 좋은 남자가 있나요?”

유명미와 전 낭자가 동시에 월령안에게 질문했다. 다른 아가씨들도 격분하여 월령안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제대로 말하지 않으면 끝까지 해 보겠다는 기세였다.

월령안은 씩씩거리는 귀여운 아가씨들을 바라보며 저도 모르게 고개를 저었다.

‘미남이 사람 잡네. 조금 전까지도 언니라고 부르던 낭자들이 이렇게나 사나워지다니.’

월령안은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담담하게 말했다.

“유 공자를 싫어하는 건, 유 공자가 고른 곡이 싫어서일 거예요. 사마상여(司馬相如)가 <봉구황>으로 대갓집 규수 탁문군(卓文君)을 아내로 맞아들였죠. 그랬지만 결국에는 탁문군을 저버려서, ‘듣자니 그대가 다른 마음을 품었다 해서, 이렇게 찾아와 그대와 결별하려 해요(聞君有兩意, 故來相決絶)’라는 시구를 쓰게 했잖아요. <봉구황> 자체는 훌륭하지만, 그런 일화 때문에 저는 좋아하지 않아요.”

세상에서 가장 좋은 거라도, 그녀가 싫어하면 받아들일 수 없었다.

“좋아요. 이 이유는…… 그런대로 합리적인 셈이네요.”

전 낭자는 잠깐 풀이 죽었다. 그러나 곧 활기를 되찾았다.

‘월 낭자는 유 공자를 싫어하는 게 아니라 연주한 곡을 싫어할 뿐이야. 그러면 유 공자에게는 아직 기회가 있다는 거네.’

유경장이 거부당하자, 유명미는 금세 활기가 넘쳤다.

“그럼 육 장군은요? 육 장군은 어디가 싫어요? 왜 육 장군을 싫어하는 거예요?”

“너무 힘들어서요.”

월령안의 미소는 씁쓸하고 공허했다. 그녀는 가볍게 중얼거렸다.

“공중의 그 꽃, 그리고 공중에 떠 있게 할 수 있는 장치 모두 제가 사전에 준비한 거예요. 육 장군이 아니에요.”

‘당신들이 말하는 육 장군은 내게 전혀 신경을 쓰지 않거든요.’

뒷부분의 말은 입 밖에 내지 않았다. 다만 담담하게 자조적으로 웃었다.

그만큼 육장봉을 좋아하기란 너무나 힘든 일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