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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239)화 (239/1,004)

239화 내게 시집오지 않겠소?

한쪽에 둘러서서 구경하던 아가씨들과 공자들은 하나같이 흥분하여 소리를 질렀다.

“<봉구황>이잖아! 유 공자가 월 낭자에게 구혼하려나 봐.”

감성적인 이들은 조용히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감동적이야.”

유경장의 읊조림은 구혼의 흥분과 설렘을 띤 게 아니라 절망적인 외침 같았다. 지금 말하지 않으면 더는 말할 기회가 없다는 듯했다.

“이러니 유 공자가 육 장군에게 월 낭자와 인연을 계속 이어 가려는가 묻지. 알고 보니 유 공자가 월 낭자에게 구혼하려는 것이었구먼.”

“유 공자는 정정당당하군. 먼저 육 장군에게 묻고 육 장군이 계속 대답하지 않으니까 그제야 월 낭자에게 구애한 거잖아.”

“이걸 어쩌나……. 조금 전에 월 낭자와 함께 검무를 춘 육 장군도 너무나 멋있었어. 지금 금을 타면서 노래한 유 공자도 무척이나 정이 깊어 보여. 두 사람 다 너무 좋아. 월 낭자가 누구를 선택할지 모르겠네?”

“월 낭자는 참 행복하겠다!”

“육 대장군과 유 공자의 마음을 동시에 얻다니, 올해의 화신은 월 낭자가 아니면 누가 되겠어?”

남들의 흥분과는 달리, 월령안은 기뻐하지 않았다. 오직 놀라움뿐이었다. 그녀는 예쁜 눈썹을 잔뜩 찌푸리고 금을 타면서 노래하는 유경장을 바라보았다.

그저 때려 주고 싶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유경장, 이게 지금 뭐 하는 짓이야?’

육장봉의 얼굴은 먹구름으로 뒤덮였다.

“허, 청중을 자기 편으로 만들 생각이군.”

그래도 품위를 지켜, 유경장의 노래를 중단시키지는 않았다.

주나라는 풍속이 개방적이었다. 때때로 남녀가 모두 앞에서 사랑을 고백하는 경우도 있었다.

유경장의 이 행동이 뜻밖이긴 하지만, 결코 규범을 벗어난 일은 아니었다. 소문이 난다 해도 미담으로 전해질 게 뻔했다.

그래서 육장봉은 거슬리기는 했지만, 남들 앞에서 연주를 중단시키지는 않았다. 그래봤자 자기 쪽이 도량 없어 보일 뿐이었다.

게다가 고작 <봉구황> 한 곡을 불렀을 뿐이다.

‘유경장은 정말로 그깟 곡 하나로 남들 앞에서 사랑에 깊이 빠진 모습을 보이면, 월령안이 감동해서 자기한테 시집갈 줄 아는 건가? 자기를 너무 과대평가하는군.’

육장봉은 월령안이 유경장의 바람대로 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금을 타고 나지막하게 노래하며 사랑에 깊이 빠졌음을 드러내는 유경장을 보고 있으려니, 두드려 패 주고 싶은 생각에 손이 근질근질해졌다.

‘저 사랑에 빠진 모습은 도대체 누구더러 보라는 건가?’

그때 유경장이 노래를 마치고, 금을 안고 일어섰다. 월령안의 앞을 막고 있는 육장봉을 무시하고, 그녀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녀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불안과 기대를 안고 말했다.

“이 <봉구황>은 내가 천 번 이상은 연주했던 거요. 이번에 처음으로 당신에게 들려주게 되었소. 내 모든 사랑은 이 곡에 담겨 있소. 봉이 황을 구하듯, 나 유경장은 월령안에게 구혼하려 하오. 령안, 내게 시집오지 않겠소?”

눈물에 씻긴 유경장의 눈이 밝게 빛나며 물기가 돌았다. 월령안을 지그시 바라보는 눈에는 기대가 가득했지만, 약간의 소심함도 엿보였다.

자리에 있던 모두는 유경장이 월령안 앞에서 자신을 낮추었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는 월령안을 간절하게 바라보며 그녀가 조금이라도 반응해 주기를, 한 번이라도 더 보아 주기를 기도하고 있었다.

저번 다루에서 만났을 때, 유경장은 춘일연에서 그녀에게 기쁨과 놀라움, 즉 선물을 선사하겠다고 했었다. 그러나 유경장이 준다던 선물이 공개 구혼이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녀는 정말로 놀라기만 했을 뿐, 전혀 기쁘지 않았다.

월령안은 유경장을 바라보며 몰래 탄식했다.

“유 공자, 저는…….”

유경장이 당황하여 그녀의 말을 저지하려 했다.

“령안, 대답을 서두르지 마시오. 당신이 마음에…….”

“필요 없네.”

육장봉이 차갑게 콧방귀를 뀌더니 유경장을 경멸하듯 바라보았다.

“월령안이 거절하는 걸 듣지 못했나? 월령안에게 눈이 멀쩡히 달렸는데, 어찌 자네를 좋아할 수 있겠는가? 여긴 거울이 없지만, 호수가 있군. 호수에 한 번 비춰 보게. 자네가 어디 월령안과 어울리는지?”

‘육장봉, 미친 거 아니야?’

월령안은 육장봉을 사납게 쏘아보았다.

‘이미 꼬일 대로 꼬였는데, 일을 왜 더 크게 만들려는 걸까?’

“왜? 내가 틀린 말을 했소? 아니면 승낙하려고 한 거요?”

육장봉은 엄지의 반지를 문지르며 월령안을 흘겨보았다.

‘월령안, 어디 승낙해 보시지. 그리고 내가 유경장을 묵사발을 만들지 않으면 내 성을 간다.’

“대장군, 그만하시죠!”

‘육장봉은 꼭 지금 끼어들어야 하나? 지금 자기가 나서서 말할 상황이냐고?’

“령안, 난 괜찮소. 다 같은 사내로서 대장군의 심정을 알 수 있소. 대장군도 결국 보통 사내들과 똑같군. 자신은 재취할 수 있지만, 전처가 재가한다니 사내로서 당연히 불쾌할 거요. 사내들이 으레 가지곤 하는 사심과 소유욕일 뿐이요. 이해하오.”

유경장은 몰래 육장봉을 노려보았다. 어찌 된 영문인지 신기하게도 마음속 당황함이 사라지고 평온이 되돌아왔다. 어쨌든 월령안이 거절하는 말은 하지 않았으니까.

육장봉 화가 치밀어, 되려 웃고 말았다.

“유경장, 수작은 그만 부리게. 나는 약속할 수 있네. 세상이 어떻게 변하든, 내 부인, 육씨 가문의 안주인은 오직 월령안뿐일세. 유경장, 자네는 그렇게 할 수 있나?”

육장봉은 원래 유경장을 상대하기도 귀찮았다. 그런데 그가 대놓고 기어올랐다.

‘그 잘난 몇 푼어치 되지도 않는 재능과 명망으로 변경에서 제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나도 물론…….”

유경장은 주저 없이 입을 열었다. 하지만 육 대장군은 그에게 말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서둘러 약속할 것 없네. 월령안은 자네에게 시집가지 않을 테니까.”

“령안이가 저한테 시집오지 않으면, 장군께는 시집갈 것 같습니까?

육 대장군, 령안이가 당신을 용서했다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겠죠? 장군께서는 령안이의 성격을 잘 모르겠지만, 전 잘 알고 있습니다. 령안이의 감정은 지고지순합니다. 그런 만큼 상대방이 감정을 돌려주기를 원해요. 령안이는 자기를 배신했던 사람을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겁니다.”

말을 마친 유경장은 갑자기 굳어지더니 곧 자조하듯이 크게 웃었다.

‘내가 어떻게 잊어버렸지? 그걸 잊어버리다니! 나도 육 대장군과 다를 바가 없는데. 육장봉이 뭐 좋은 놈은 아니지만, 나 유경장도 좋은 놈은 아니지!’

유경장은 동정과 조롱이 뒤섞인 눈빛으로 육장봉을 흘끔 보고는 웃으며 말했다.

“대장군, 장군이 저를 얕잡아보듯이 저도 장군을 그다지 고귀하다고 여기지는 않습니다. 오늘의 내 모습이 아마 장군의 모습일 수도 있겠지요. 장군이 후회라는 걸 영원히 맛보지 않길 바랍니다.”

말을 마치고 유경장은 아까의 울적함과 초조함을 던져 버리고 환하게 웃었다. 밝고 시원한 눈매에서는 조금 전의 소심함과 불안함이 사라지고, 평소의 자유분방함을 되찾았다.

그는 자신이 졌음을 알았다.

그러나 육장봉이 이긴 것도 아니었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유경장은 단념하기로 했다. 마음속에는 여전히 상실감과 슬픔이 남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후련했으니 만족했다.

어쨌든 마음속의 말을 터놓고 했다. 줄곧 하고 싶었으나 감히 하지 못했던 일을 해냈다.

더없이 기뻤다.

그는 고개를 돌려 월령안을 바라보며 방자하게 웃었다.

“령안, 오늘은 내가 무례했소. 하지만 후회하지 않소. 당신에게 내 금 소리를 들려주고 싶었소. 당신이 내 마음을 알았으면 했소. 오늘, 나는 만족했소.”

‘내 구혼을 령안에게 주는 선물로 치자.’

사람이 마음 가는 대로 해 본 적이 없으면 젊음을 헛되이 보낸 것이 아닌가. 월령안을 좋아한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었다. 월령안이 그를 거절했다고 해도, 미담으로 소문날 것이다.

그의 심장은 아직도 따끔따끔 아팠다. 단념했다고 해도 아직은 완전히 내려놓을 수 없었다.

그러나 내려놓아야만 한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일찍이 기회가 있었지만, 그 자신의 손으로 망쳐 버렸으니까.

말을 끝낸 유경장은 마음의 씁쓸함을 억눌렀다. 더는 월령안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몸을 돌려 전 낭자에게 금을 돌려주며 시원스럽게 말했다.

“금을 돌려드리겠습니다. 전 낭자, 감사합니다.”

유경장은 성큼성큼 떠나갔다. 혼자서 모두와 반대 방향으로 걸어갔다. 그 행동거지는 자유로우면서도 고고했다. 그러나 모두는 어찌 된 영문인지 쓸쓸함을 느꼈다.

월령안은 유경장의 멀어져 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미처 입을 열기도 전에 유경장이 갑자기 큰 소리로 읊조렸다.

혼자 높은 누각에 올라 난간에 기대니(佇倚危樓風細細),

잔잔한 봄바람이 불어오네(望極春愁).

끝이 보이지 않는 봄날의 슬픔(望極春愁),

침울하게 하늘을 뒤덮는구나(黯黯生天際).

풀빛과 연기는 석양 속에 스러져 가건만(草色烟光殘照裏),

말없이 난간에 기댄 마음 그 누가 알아줄까(無言誰會凭闌意).

마음껏 취하고 싶어 술 마시고 노래하나(擬把疏狂圖一醉對酒當歌),

구태여 찾은 즐거움 재미 또한 없구나(强樂還無味).

그대 때문에 옷이 헐렁해질 만큼 초췌해져도 끝내 후회하지 않으리다(衣帶漸寬終不悔爲伊消得人憔悴).

유경장은 모두를 등지고 손을 흔들더니 소리쳤다.

“월령안, 내가 당신을 좋아한 건 당신과도, 그리고 다른 누구와도 상관없소.”

‘그러니 당신은 부담을 가질 필요 없소. 내가 당신을 좋아한 건 오직 나 한 사람의 일일 뿐이오.’

유경장이 몸을 돌리자마자, 그의 그림자는 모든 이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그가 남긴 말의 영향은 사라지지 않았다.

“유 공자는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

몇몇 감성적인 여인들은 순간 눈물을 흘렸다.

“유 공자는 단념한 게 분명한데 왜 괜히 내가 슬프지.”

“유 공자는 너무 불쌍해. 월 낭자는 너무 잔인하고. 유 공자 같은 인재를 어찌 거절할 수가 있지.”

“그대 때문에 옷이 헐렁해질 만큼 초췌해져도 끝내 후회하지 않으리다. 얼마나 멋진 말이에요. 월 언니, 유 공자는 언니를 정말 깊이 사랑하나 봐요!”

“월 언니, 진짜…… 진짜 유 공자한테 시집가지 않을 건가요? 유 공자가 저렇게 좋아하는데?”

육장봉은 한 손으로 뒷짐을 지고 유경장이 멀어져 간 방향을 바라보았다. 미소가 싸늘해지기 시작했다.

‘하……. 유경장이라고 했나? 오늘 일은 기억해 두겠다.’

월령안은 정신을 차렸다. 아가씨들의 부러움 가운데 질투가 배어 있는 말을 듣자, 유경장이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 생각해 볼 마음도 나지 않았다. 그저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여러분, 농담하지 마세요. 유 공자가 어떤 사람인데요. 저 같은 소박데기가 어찌 넘볼 수 있겠나요.”

“그런 말 하지 마세요! 무슨 소박데기 같은 소리. 월 언니, 그런 말 좀 하지 마세요. 언니는 소박데기가 아니라 제 마음속의 화신이라고요.”

월령안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아가씨들이 연신 위로해 주었다.

“월 낭자, 그런 말 하지 마세요. 버림받은 게 낭자의 잘못이 아니잖아요.”

“그러게 말이에요. 월 언니가 얼마나 훌륭해요. 나한테 남동생 둘이라고 있는 게 못난이들이라 그렇지, 그렇지만 않았어도 데릴사위로 보내고 싶어요.”

“월 언니가 이렇게 좋은데, 언니를 내친 남자는…… 어휴. 그냥 말을 말아야죠.”

한 아가씨는 말하던 도중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육장봉을 조용히 힐끔거리고는 금세 위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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