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6화 당신이 좋으면 그만이오
“어머머, 육 대장군과 월 낭자야!”
“월 언니 진짜 예쁘다!”
“육 대장군은 정말 멋지셔. 저 월 언니를 보는 눈빛 좀 봐요. 육 대장군이 월 언니를 좋아하는 게 분명해요.”
“빨리 저기 좀 봐요. 지붕에 꽃이 폈어. 월 언니가 공중에서 검을 한 번 회전시키면, 지붕에서도 꽃 한 송이가 피어요. 너무 신기해요.”
“신선 부부가 따로 없네요. 너무나 아름다워. 당장 둘이 이 자리에서 혼인하세요, 네?”
“육 장군과 월 언니 정말 잘 어울린다. 두 사람이 같이 서 있으니까 너무 예쁘네. 봐봐, 둘이 호흡도 정말 잘 맞아.”
“저기 봐, 저기 봐……. 월 언니가 육 장군을 보며 웃고 있어. 육 장군이 월 언니를 보는 눈빛은 또 어떻고. 너무 부드럽잖아.”
“나도 시집가고 싶어! 육 장군한테 시집가고 싶어. 육 장군이 너무 멋있는걸. 공중에서 함께 검무를 추다니, 황홀해라!”
뜰에 있던 아가씨들과 공자들은 이제 자기의 장기를 펼쳐 보일 생각도, 남의 장기를 볼 생각도 없었다. 그들은 공중에서 장검을 휘두르는 신선처럼 아름다운 월령안과 육 대장군을 바라보며 열광했다. 신분 같은 건 던져 버리고 열성을 다해 소리 질렀다.
공중에서 춤을 추는 월령안도 마음을 활짝 열고 환하게 웃었다.
처음에는 불안감에 휩싸여 있었다. 육장봉이 혹시라도 언짢아지면 손을 놓아 공중에서 떨어뜨리거나, 망신을 당하게 할까 두려웠다. 그러나 곧 걱정은 사라졌다.
그녀는 장치를 이용해 공중에 떠 있는 것과 육장봉에게 안겨서 공중을 나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육장봉이 한 말 중 하나는 맞았다. 밧줄에 매달려 공중에서 날면, 보호구를 착용해도 밧줄에 조여 너무 아팠다. 특히 등의 통증이 심했다.
어제저녁, 집에 돌아가서 살펴보니 등에는 안전 밧줄에 쓸려 붉은 흔적이 가득했다. 어깨 쪽에는 멍까지 들어 손이 닿기만 해도 아팠다.
그러나 육장봉이 안고 있으면 완전히 달랐다.
그녀의 몸은 완전히 육장봉에게 의지해서 움직이고 있었다. 그녀가 힘을 쓸 필요가 없었다.
게다가 육장봉 덕분에, 그녀는 공중에 있어도 평지에 있는 것처럼 안정적으로 움직일 수 있었다. 어제저녁과는 완전히 달랐다. 그때는 시시각각 균형을 유지해야 했고, 균형을 잃고 망신을 당할까 두려워 크게 움직이지도 못했었다.
지금 이 순간 그녀는 육장봉의 말대로, 모든 걸 그에게 맡기고 공중에서 춤추는 즐거움만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리고 육장봉이 있으니 어제저녁처럼 바쁘게 날 필요도, 미리 정해진 세 곳에서만 머물 필요도 없었다. 그 덕분에 공중에서 수시로 멈출 수도 있었고, 공중에서 회전하며 춤 동작을 보여 주기도 했다.
“마음에 드오?”
육장봉이 그녀의 귓가에 대고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는 화원에 있는 아가씨들의 열렬한 함성을 들었다. 아래에 있는 아가씨들은 흥분해서 신분조차 잊고 환호성을 질렀다.
‘월령안이 조금이라도 기뻐할까?’
월령안의 화를 풀어 주기가 쉽지 않았다. 어쩔 수 없었다. 조금만 기뻐해 주더라도 고마운 노릇이었다.
월령안은 유쾌하게 웃었다.
“아무래도 저는 또 삼 년 전처럼 변경 여인들의 공공의 적이 될 것 같네요.”
삼 년 전, 그녀는 육장봉에게 시집가는 바람에 변경 미혼 소녀들의 미움을 한 몸에 받았다. 모두가 그녀를 적으로 여겼다.
삼 년 뒤 오늘, 그녀는 또다시 육장봉 때문에 변경 미혼 소녀들의 질투 대상이 되었다.
“당신이 좋으면 그만이오.”
육장봉은 어제저녁의 기억을 더듬어 월령안을 안고 배나무 숲 밖에서 잠시 멈추어 섰다. 하지만 그것도 한순간, 다시 계속하여 숲속으로 날아갔다.
배나무 숲은 지대가 낮을 뿐만 아니라 화원의 바로 맞은편에 있었다. 화원에 서 있는 사람들은 그들의 동작을 볼 수 없었다. 이곳에서 오래 멈추는 것은 시간 낭비였다.
휙!
육장봉은 월령안을 안고서 숲속으로 날아갔다. 그들의 등 뒤에서는 산뜻하고 아름다운 꽃들이 끊임없이 피어났다.
“꽃을 밟고 오다니. 신선이 따로 없네. 정말 너무 예쁘다.”
“우리 월 언니, 너무 멋지다.”
뜰에 있는 사람들은 배나무 숲 입구에 있는 월령안과 육장봉을 볼 수는 없었다. 대신 그들의 등 뒤에서 끊임없이 피어나는 꽃들을 볼 수 있었다.
아가씨들은 원래 아름다운 꽃에 사족을 못 썼다. 공중에 떠 있는 꽃송이를 보자, 깜짝 놀라며 환호했다.
곧이어 더 큰 놀라움이 이어졌다.
“어머나……. 둘이 온다. 가운데로 오고 있어.”
월령안과 육장봉은 배나무 숲의 가장 높은 곳에서 멈춰 섰다. 육장봉은 월령안의 손을 잡더니, 배나무 숲 가운데서 다시 장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들의 움직임과 더불어 발치에서 꽃송이가 끊임없이 피어났다.
두 사람은 공중에 서 있었다. 육장봉은 용처럼 힘차면서 호기로웠고 월령안의 자태는 아름답고 유연했다. 한 사람은 강하고, 한 사람은 부드러웠지만, 호흡은 척척 맞았다.
게다가 육장봉은 일부러 기세를 거두고 월령안을 더 돋보이도록 하였다. 그녀보다 눈에 띄려는 기색은 전혀 없었다.
월령안의 치마는 그녀의 움직임에 따라 끊임없이 휘날렸다. 마치 한 폭의 수묵화처럼 속세를 벗어난 듯 우아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 모습을 본 공자들이 홀린 듯이 수런거렸다.
“올해 화신은 반드시 월령안이야.”
“올해의 화신으로 난 월령안을 뽑을 거야.”
“올해의 화신은 월령안 말고 다른 사람은 될 수 없어. 다른 사람이 된다면 그건 분명 부정행위가 있는 거야.”
“금이니, 바둑이니, 서예니, 그림이니 다 필요 없어. 공중 검무하고는 비교도 안 돼.”
“삼 년 전 월령안이 화신이 된 게 속임수를 써서라고 한 게 누구야? 봐, 속임수를 쓸 필요가 있었겠어? 전혀 필요 없어 보이는데! 삼 년 전에는 남들과 심혈을 기울여 겨루고 싶은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그냥 쉽고 간단하게 대가들을 찾아 손을 빌린 거겠지. 봐봐, 올해는 자기 실력을 제대로 보여 주잖아.”
“난 정말 육 장군에게 묻고 싶어. 어떻게 저렇게 아름다운 월 낭자를 내칠 수가 있었을까? 월 낭자의 지금 아름다움만으로도 난 모든 걸 버리고 월 낭자를 아내로 삼고 싶어졌는데.”
“생각도 하지 말게. 자네 지금 월 낭자와 함께 공중 검무를 펼치는 사람이 육 대장군인 걸 보지 못했나? 육 대장군이 후회하고 있는 게 분명해!”
“말이야 바른말이지, 육 대장군과 월 낭자는 참 잘 어울리잖나.”
“월 낭자는 선녀처럼 아름답구나. 지금 월 낭자를 보니, 선녀가 속세에 내려왔지만, 속세를 벗어났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를 알겠군. 월 낭자의 풍모를 봤으니, 앞으로는 춘일연에 참석하지 못할 것 같군. 더는 춘일연의 화신을 뽑지도 못할 거 같아.”
“월 낭자가 화신이 되기 전까지, 춘일연에는 화신이 없었던 거나 마찬가지야. 월 낭자 이후에도 춘일연의 화신은 오직 월 낭자뿐이야. 다른 사람은 모두 화신이라 칭할 자격이 없어.”
조금 전까지는 아가씨들이 열광적으로 소리를 질렀다면, 지금은 춘일연에 참석한 공자들이 가만히 앉아 있지를 못했다.
배나무 숲 위에서 장검을 휘두르는 월령안의 일거수일투족에는 시나 그림 같은 정취가 있었다. 모든 동작이 아름다운 그림이었다. 동작 하나하나를 그림으로 옮기고 싶을 정도였다.
“붓과 종이를 가져오너라. 그림을 그려야겠다!”
“나도 붓과 종이를 다오……. 나도 그려야겠다.”
춤 한 번에 성이 기울고, 백 번에 나라가 기운다.
공중에서 검을 휘두르는 월령안이 경국지색인지는 모른다. 그러나 이 자리에 있는 모두의 마음이 그녀에게 기울어진 것만은 분명했다.
떠들썩한 데 어울리기 싫어하는 최일, 최 대인마저 묵묵히 탁자 하나를 차지하고 붓을 들어 월령안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화원에서 아가씨들이고 공자들이고 모두 흥분해서 열광하고 있을 때, 오직 소함연만이 새하얗게 질렸다.
‘월령안이 멀쩡하잖아? 어떻게 멀쩡할 수가 있지?’
소함연은 공중에서 육장봉과 껴안고서 춤을 추는 월령안을 바라보았다. 얼굴이 창백해지더니 휘청거리며 뒷걸음질 쳤다. 그 바람에 잇달아 여러 사람과 부딪혔지만,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월령안이 아무 일도 없이 사람들의 눈앞에 나타났다. 그럼 등요 공주는? 오라버니는?’
소함연은 달달 떠는 입술을 달싹였다. 하지만 한마디도 제대로 내뱉을 수 없었다.
“일이 잘못되면 절대 안 돼.”
소함염은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갑자기 몸을 돌려 밖으로 걸어 나가려 했다. 그러나 몸을 돌린 순간, 조색판을 들고 있던 최일과 정면으로 부딪치고 말았다.
확!
조색판이 뒤집히며 여러 물감이 소함연의 온몸에 확 뿌려졌다.
“앗! 눈을 어디…….”
“죄송합니다. 소 낭자.”
최일은 소함연의 말을 담담하게 중단시켰다. 말투는 부드러웠다. 표정에는 적당한 사죄의 뜻과 자책감이 서려 있었다.
소함연은 입을 벌렸지만, 혀끝까지 올라온 욕을 모조리 도로 삼켜 버렸다. 억지로 마음속 당황함을 억누르고, 부드럽고 담담한 미소를 지었다.
“최 대인이셨군요.”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소 낭자의 옷을 망쳐 버렸군요. 소 낭자, 옷을 갈아입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니면 제가 사람을 시켜 소 낭자에게 옷을 한 벌 가져다드릴까요?”
최일은 소함연 쪽에서 자신에게 부딪쳤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대신 품위 있게 모든 잘못을 인정했다.
“최 대인, 천만에요. 제가 대인의 조색판을 못 쓰게 만들었네요. 제가 사과해야 마땅하죠. 최 대인, 그림을 그리시려고요? 저도 조금이나마 알고 있습니다. 제가 최 공자께 물감을 다시 배합해 드릴까요?”
소함연은 자기 오라버니의 안위가 걱정되긴 했지만 최 대공자와 가까이 접촉할 수 있는 눈앞의 기회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최씨 가문 대공자 최일은 그녀가 마음대로 만날 수 있는 인물이 아니었다. 이렇게 좋은 기회가 오기란 쉽지 않았다. 이번을 놓치면 다음번을 기약하기 어려웠다. 게다가 그녀도 이제 더는 어린 나이가 아니었다.
안타깝게도 최일은 그녀가 다가갈 틈을 전혀 주지 않았다. 부드럽지만 거리감을 두는 태도로 말했다.
“소 낭자, 별말씀을요. 저는 스스로 물감을 배합하는 게 더 편합니다. 소 낭자께 폐를 끼치지 않겠습니다.”
최일은 말을 마치자, 뒤로 한 발짝 물러서며 길을 비켜 주었다.
“좋아요. 그럼 최 대인께 폐를 끼치지 않겠습니다.”
소함연은 두 손을 쥐었다. 마음속의 언짢음을 가까스로 억누르며 옅은 미소를 띠고 최일에게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몸을 돌리는 순간,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졌다. 그녀는 이를 갈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부르짖었다.
“최일!”
최일은 소함연을 전혀 안중에 두지 않았다. 그녀가 먼저 호의를 보였는데도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다니. 최일의 눈에는 소함연이 그가 종이에 그린 그림보다도 못한 모양이었다.
그녀는 알 수가 없었다. 월령안이 도대체 어디가 잘났기에, 최일 같은 명문가 출신 공자까지도 그녀를 높이 평가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됐다.
‘분명 내가 월령안보다 더 예쁘고, 사람들에게 더 귀여움을 받는데!’
소함연의 마음속에는 불만이 가득했다. 고개를 돌려 배나무 숲 위쪽에서 육장봉과 어울려 춤을 추고 있는 월령안을 바라보았다. 눈은 짙은 질투와 원한으로 가득했다.
‘월령안, 수완이 참 대단하군. 어떻게 육장봉에게 명월산장을 선물 받은 거지? 심지어 여색을 가까이하지 않던 육장봉이 저 계집애를 데리고 이렇게 따분한 놀이를 하게 했단 말이야. 공중 검무는 무슨. 꽃 위에서 검무를 춘다고 해 봤자, 모든 게 가짜고, 술수일 뿐이야. 아직 바깥 세상을 모르는 어린 계집애들이나 애송이들 홀리기에나 딱이지.’
등 뒤의 아가씨들이 끊임없이 환호하는 소리를 듣는 순간, 소함연의 가슴을 꽉 채운 불만은 절정에 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