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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235)화 (235/1,004)

235화 모든 걸 내게 맡기시오

육장봉이 육일에게 몇 마디 분부하는 사이 월령안은 그의 눈을 피해 이 많은 일을 했다.

‘정말 한순간도 방심할 수가 없군.’

“육 장군.”

월령안은 손을 들어 소갑에게 일단 움직이지 말라고 했다.

“무슨 일이세요?”

“황금당의 사람들은 황금 이십만 냥 값을 못 하는군.”

육장봉이 앞으로 한 발자국 나와서 살수들을 대충 훑어보았다. 육장봉이 보기에 그들은 시간이 충분히 지났는데도 야율제를 사로잡지 못했다.

“야율제의 수급은 내가 대신 가져다주겠소.”

“육장봉, 나를 죽이겠다고. 꿈 깨시지!”

육장봉이 나타나자, 야율제의 부담은 배가 되었다. 일순간 힘을 터뜨리더니, 살수들의 포위망을 뚫어 버렸다.

황금당의 사람들도 호락호락하지는 않았다. 최대한 신속하게 그를 쫓아가 도망치지 못하게 했다.

월령안도 한참이 지나도록 야율제를 사로잡지 못하는 살수들을 훑어보았다.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야율제를 너무 얕본 모양이었다. 황금당의 능력으로 야율제를 막는 것은 어렵지 않았으나, 죽이기는 쉽지 않은 듯했다.

월령안은 잠깐 망설이다가 물었다.

“그럼 제가 무슨 대가를 치러야 하나요?”

육장봉이 대답했다.

“당신은 등에 상처를 입었으니, 밧줄에 매달려 공중에서 날기는 곤란할 거요.”

어제저녁, 아무것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오로지 월령안이 꽃을 밟으며 다가오던 광경만이 그의 눈길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화려하게 차려입은 월령안이 선녀처럼 꽃을 밟으며 나타나면, 춘일연에 참석한 사람들이 열광하리란 것을.

월령안의 아름다움은 그 혼자서만 알면 되었다.

“하!”

월령안이 비웃으며 말했다.

“이게 바로 제가 무엇이든 스스로 하고 타인, 특히 남자에게 의지하지 않으려는 이유예요. 무언가를 얻으려면 반드시 먼저 내 것을 내주어야 하니까요. 육 대장군, 지금 사심 때문에 수작 부리려는 거잖아요? 구태여 저를 위하는 척할 필요가 있나요?”

그녀를 싫어해서 버릴 때는 언제고, 이제는 사유물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다른 남자들이 그녀를 한 번이라도 더 쳐다보는 걸 용납하지 않겠단다.

‘하, 남자들이란! 결국 모두 똑같이 이기적이고 가식적이야. 잘난 척하고 자기중심적이잖아.’

결국, 그녀의 꼬마 장군도 예외는 아니었다.

“사심 때문에 수작을 부린다고? 맞는 말이군!”

육장봉은 월령안의 차갑게 굳은 얼굴을 바라보고서 가볍게 콧방귀를 뀌었다. 곧 몸을 날려 월령안의 눈앞에 다가갔다.

“기왕 사심 때문에 수작을 부린다는 소리까지 들었으니, 어떤 게 사심인지 보여줘야겠소.”

육장봉이 손목을 살짝 드는 순간, 잔상이 번쩍이는가 싶더니 소갑이 저쪽으로 날아가 버렸다. 그 바람에 그가 손에 쥐고 있던 장치 제어기가 손에서 빠져나왔다.

탁!

손바닥만 한 크기의 제어기는 공중에서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와 육장봉의 손에 정확하게 떨어졌다.

“소갑……!”

월령안은 소갑이 날아가는 모습을 보자, 서둘러 그네에서 뛰어내렸다. 손을 내밀어 그를 잡으려 했지만, 바로 육장봉에게 손을 잡히고 말았다.

육장봉이 가볍게 당기자 월령안의 몸이 그 자리에서 한 바퀴 빙글 돌았다. 그녀는 몸을 가누지 못하고 육장봉의 품속으로 뛰어들고 말았다.

그녀의 손에 들고 있던 옷도 날아가 버렸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것들을 따질 겨를이 없었다.

“육장봉!”

월령안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고함을 질렀다. 하지만 곧바로 육장봉의 팔 안에 넘어지고 말았다.

“왜 대장군이라고 부르지 않으시오?”

‘이 여자는 이성을 잃었을 때만 자기 진짜 성격을 드러내는군.’

“일으켜 세워 줘요!”

그녀의 유연하고 가는 허리에 육장봉의 팔이 휘감겨 있었다. 육장봉의 팔에 기대어 서 있다 보니 어쩔 수 없이 허리가 뒤로 젖혀졌다.

그녀는 몇 번이고 일어서려고 했다. 하지만 힘을 주기만 하면 육장봉이 팔에서 힘을 빼 버렸다. 어떻게 해도 몸을 일으킬 수가 없었다. 차라리 그냥 땅에 넘어지려고 하면, 그가 딱 잡고서는 힘을 쓸 기회를 주지 않았다.

“서두르지 마시오.”

육장봉은 제어기를 입에 물었다. 그리고 손을 들어 때마침 떨어져 내리는 월령안의 겉옷을 받았다. 그제야 그녀를 받치고 있던 팔을 빼서 그녀를 일으켜 세워 주었다.

그리고 월령안이 몸을 일으키는 찰나, 그는 그녀의 몸에서 밧줄을 풀어냈다. 또 그녀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긴 치마를 몸에 걸쳐 주었다.

“육장봉, 뭐 하는 짓이에요?”

월령안은 울화통이 터졌다. 두 손으로 힘껏 육장봉을 밀어내려 했다. 하지만 젖 먹던 힘까지 다해도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육장봉은 입에 물었던 제어기를 빼내 멀리 날아간 소갑에게 던져 주었다.

“내 명령대로 작동해라.”

“육장봉, 제 일을 방해하지 말라고요! 돈을 건 사람이 나뿐만이 아니에요. 제가 져서는 절대 안 돼요. 제 말 안 들려요?”

월령안은 화가 나서 눈까지 붉어졌다.

‘왜 방해하는 거야? 난 시집가서 삼 년 동안 당신에게 미안한 일은 한 번도 하지 않았어. 내가 육씨 가문 집안일을 삼 년 동안 도맡아 한 정을 봐서라도 나를 좀 가만히 놔두면 안 되냐고?’

“내가 있는 한, 당신은 지고 싶어도 지지 못할 거요.”

육장봉은 월령안의 옷을 펼쳐 주더니 가벼운 목소리로 달랬다.

“말 좀 들으시오. 우선 옷부터 제대로 입읍시다.”

“도대체 뭐 하려는 건가요?”

월령안은 화가 났지만, 고집을 부리지는 않았다. 육장봉의 ‘시중’을 받으며 겉옷을 챙겨 입었다.

육장봉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걱정하지 마시오. 당신을 말리지 않을 거요. 하고 싶은 대로 하시오.”

말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월령안을 도와줄 생각이었다.

“당신……. 일단 놓으시죠!”

월령안이 옷을 입자마자 육장봉은 그녀의 허리를 감싸 품으로 끌어당겼다.

손 쓸 새도 없이 두 사람의 몸이 가까워졌다. 그의 몸에서는 맑고 서늘한 죽향(竹香)이 풍겨 왔다.. 월령안은 가슴에서 뜨거운 열기가 솟구치는 것만 느꼈다. 자신을 힘껏 꼬집어서야 겨우 숨을 제대로 쉴 수 있었다.

‘육장봉이 미쳤나?’

그는 줄곧 사람, 특히 여인과 가까이하기를 싫어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먼저 나서서 그녀를 안고 품으로 끌어당겼다.

‘이게 무슨 짓이지? 내가 쉬워 보이나?’

월령안은 화가 나서 눈시울이 붉어졌다.

“화내지 마시오. 나는 당신을 괴롭히려는 게 아니니까.”

육장봉은 손을 내밀어 월령안의 코끝을 살짝 건드렸다.

“울지 마시오, 알겠소?”

“전 울지 않았거든요. 저한테 손대지 마세요.”

월령안은 얼굴을 돌리더니 이를 갈며 말했다.

‘이 남자는 지금 자기 행동이 우리 사이에는 적절하지 않다는 걸 모르나?’

이런 친밀한 행동은 부부 사이에나 있을 법한 것들이었다.

“좋소. 손대지 않겠소.”

육장봉은 월령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다 큰 사람이 왜 툭하면 화를 내고 그러시오.”

월령안은 또다시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육장봉은 그녀가 폭발하기 전에 손을 거두더니 앞서 입을 열었다.

“춘일연에서는 재주를 보여줘야 하잖소. 화려하게 등장하는 거로만 화신에 뽑힌다면 뒷말을 듣겠지.

오늘…… 내가 진정한 재주가 무엇인지 가르쳐 주겠소.”

육장봉은 허리춤에서 긴 연검(軟劍)을 끌러 그 속에 내력을 불어넣었다. 낭창하던 연검이 평범해 보이는 곧은 장검으로 변했다. 그는 검을 월령안의 손에 쥐여 주었다.

“잘 잡으시오.”

“제가 검을 쥐고 뭐 하나요?”

월령안은 검을 쥐고 있으려니 자신이 미쳤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육장봉이 미친 거였다.

춘일연 화신 뽑기에 대장군이 끼어들어 대체 무엇을 하려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공중 검무, 본 적이 있소?”

육장봉은 한쪽에 드리워진 밧줄을 끌어당기더니 자신의 허리에 채웠다. 월령안이 반응하기도 전에 그녀를 안고서 그네에 뛰어오르더니 소갑에게 말했다.

“작동해라!”

“어, 어…….”

소갑은 자기도 모르게 손을 움직였다. 왜 육 대장군의 말을 들어야 하는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장치를 작동하는 부품을 눌러 버렸다.

그네가 서서히 올라가며 두 사람을 천장 위까지 데려간 뒤, 잠깐 멈춰 섰다. 두 사람이 멈춰 서 있을 때 소갑은 사전에 준비해 둔 불꽃을 터트렸다.

“육장봉, 장난하지 마세요. 밧줄을 제게 주세요. 당신의 도움 따위는 필요 없어요.”

월령안은 몸에 안전 밧줄을 묶지 않고 그네에 서 있는 것이 처음이라 불안에 휩싸였다.

그녀는 육장봉을 믿을 수가 없었다. 육장봉이 갑자기 언짢아지기라도 하면 그녀를 공중에서 내던져 버릴까 두려웠다.

“이젠 돌이킬 수 없소.”

육장봉은 월령안의 어깨를 잡고 돌려세워, 그를 등지게 했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고, 모든 걸 내게 맡기시오.”

“전……!”

펑!

불꽃이 커다란 소리를 내며 바로 두 사람의 등 뒤에서 터졌다. 그와 동시에 월령안의 목소리가 그 폭발음에 묻혀 버렸다.

불꽃을 터뜨린 건 불꽃놀이를 하려는 게 아니었다.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 그들이 소리를 따라 지붕 위를 보게 하려는 것이었다.

“무슨 소리지?”

아니나 다를까, 불꽃이 터지자 뜰에서 금을 타고 바둑을 두던 남녀들은 월령안과 육장봉이 있는 쪽을 일제히 바라보았다.

“아니, 저건 뭐야?”

아가씨들이 있는 뜰은 널찍한 데다가 지대가 높았다. 어제저녁 육장봉이 서 있던 전망대만큼 시야가 좋지는 않았지만, 뜰에 서 있으면 시야를 가리는 것이 없어 잘 보였다.

“두 사람 같은데?”

“어머나! 날아오고 있어.”

육장봉은 높은 곳에 서 있다 보니 자연히 더욱 멀리 볼 수 있었다. 뜰에 있던 사람들이 그와 월령안이 있는 쪽을 일제히 바라보자, 곧 그녀가 쥐고 있던 장치를 눌렀다.

“월령안, 모든 걸 내게 맡기시오. 당신은 공중에서 춤추며 남들의 부러움을 사는 것을 즐기기만 하면 되오.”

슉!

밧줄이 육장봉을 배나무 숲 방향으로 데려갔다. 그는 월령안을 꼭 안고, 그녀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두 사람은 꼭 붙어 있어, 멀리서 보면 한 몸이 된 것처럼 보였다.

번쩍번쩍 빛나는 검광은 예(羿 – 전설에 나오는 하늘의 해를 쏘아 떨어트렸다는 용사)가 해 아홉을 쏘아 떨구는 것 같고(㸌如羿射九日落),

날렵하고 힘찬 자태는 신선이 용을 타고 나는 듯하구나(矯如群帝驂龍翔).

춤출 때의 매서운 검세는 숨을 죽이게 하고(來如雷霆收震怒)

자세를 잡을 때의 차분함은 바다의 고요한 물결 같구나(罷如江海凝淸光).

천궁각이 설치한 장치는 육장봉과 월령안을 공중에 떠 있게 했다. 육장봉은 월령안의 손을 잡고 그녀와 함께 공중에서 장검을 휘둘렀다.

두 사람은 하나가 되었다. 장검은 월령안의 손에 쥐어져 있었지만, 육장봉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의 제어 아래, 그녀의 손에 들린 검은 바람을 따라 춤을 추었다. 마치 교룡이 꿈틀대며, 천하를 안중에 두지 않는 살기마저 띤 듯싶었다.

그들의 움직임과 함께 뒤쪽 지붕에서는 꽃봉오리들이 화려하게 피어났다. 마치 그들에게 갈채를 보내는 것 같았다.

근처의 뜰에 서 있던 공자들과 아가씨들은 이 광경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어머나, 너무 아름다워!”

은색과 회색이 한데 얽히며, 잘생긴 장군과 어여쁜 소녀가 공중에 서 있었다. 바람에 옷자락이 끊임없이 휘날렸다. 마치 용이 노니는 듯 춤추는 듯한 장검은 두 사람의 눈앞에서 아름다운 선을 그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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