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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234)화 (234/1,004)

234화 황금당과의 거래

야율제는 싸늘하게 웃을 뿐, 뒤쪽을 보지도 않았다. 월령안이 손을 들어 올리는 틈을 타 그녀에게 몸을 날렸다.

“황금당은 돈만 보고 일하는 놈들이다. 내가 대역을 하나 보내서 황금당 놈을 유인해 갔거든. 네 사람은 오지 않을 거다. 월령안, 나를 속이려고? 꿈 깨시지!”

야율제가 갑자기 달려드는 바람에 둘의 간격이 훌쩍 좁혀졌다. 그러나 야율제가 월령안을 덮치려는 순간, 가느다란 침 여러 개가 세상을 뒤엎을 듯한 기세로 야율제에게 날아갔다. 그를 노리고 수많은 침이 빽빽하게 날아들었다. 사각지대라고는 전혀 없었다.

“맞아요. 당신을 속인 거예요. 정말 제대로 속아 넘어가셨네요!”

월령안은 손뼉을 치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오늘에야말로 그를 잡을 수 있을 터였다.

푹! 푹!

야율제는 재빨리 옷자락을 들어 올려 침을 막았다. 그러나 가느다란 침 여러 개가 그의 몸을 파고들었다.

그는 기를 이용해서 침을 몸 밖으로 밀어내려 했다. 하지만 그 가느다란 침은 몸에 꽂힌 순간 바로 녹아 없어졌다.

침이 녹자, 몸이 평소보다 무거워졌다. 반응도 점점 둔해졌다.

“월령안, 죽일 년!”

야율제는 이를 악물고 뒤로 공중제비를 돌아 계단에서 뛰어내렸다. 그녀에게 다시 접근할 기회를 주어서는 안 됐다.

그는 월령안이 조금 전에 쏜 가느다란 침은 쇠뇌나 수전과 달리 가까운 거리에서만 쓸 수 있음을 파악했다. 월령안과 거리를 두면, 그 침으로는 공격할 수 없었다.

“약왕곡에서 만든 빙혼은침(氷魂銀針)이에요. 조금 전에 침 한 통을 다 썼는데, 그게 황금 천 냥 값이거든요. 이만하면 남원대왕의 신분에 걸맞은 대접인지 모르겠네요?”

그 많은 쇠뇌와 수전을 낭비한 것은 야율제를 마비시키기 위해서였다. 그의 경계심을 느슨하게 한 뒤, 치명적인 일격을 날릴 요량이었다.

“다들 멍하니 뭐 해요? 얼른 손을 써요. 제가 직접 죽이면 잔금은 내지 않을 거예요.”

월령안은 야율제를 쏜 뒤, 그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당장 안전한 곳으로 피했다.

약왕 손불사와 천궁각이 손을 잡고 만든 암기이니 절대 실패하지 않을 거라고 믿었다. 그래도 만일에 대비하는 것이 좋았다.

그녀는 자기 목숨을 소중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야율제가 덫에 걸렸다 해도 접근하지 않았다. 자신이 직접 손을 쓸 생각은 더더욱 없었다.

돈 절약도 상황을 봐서 하는 법이다.

“월 낭자, 걱정하지 마십시오. 황금당은 신용을 지킵니다.”

검은 옷을 입고 허리춤에 황금 장신구를 단 살수가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다음 손을 들면서 냉혹하게 소리쳤다.

“죽여라!”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검은 옷차림의 살수 수십 명이 구석에서 쏟아져 나오더니, 칼을 들고 야율제에게로 달려들었다.

“어떻게?”

야율제는 고개를 돌려 황금당의 살수들을 보았다. 순간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는 순간 기를 끌어올리더니 손에 든 쥘부채를 던져 일격을 막아냈다. 그리고 곧바로 뒤로 한 발짝 물러서며 월령안에게 고함을 질렀다.

“분명 대역을 보내 황금당 놈들을 유인했는데, 저놈들이 어떻게 여기에 있느냐?”

야율제의 대역은 그와 칠 할은 비슷하게 생겼다. 세심하게 분장하면 그의 생모조차도 알아보지 못했다.

황금당의 사람들은 황금을 목적으로 왔으니, 진위 구분을 제대로 하지 못할 것이다. 대역을 추격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저들이 여기에 있는 건 당연히 저를 보호하기 위해서죠.”

월령안은 야율제의 대역을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가 이렇게 자신하는 걸 보면, 그 대역도 예사롭지는 않은 모양이다. 그렇다 해도 어쩌겠는가.

황금당의 사람들은 야율제의 머리만을 위해서 그녀의 안전을 뒷전으로 하지는 않았다. 그녀의 안전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중요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황금당은 사람을 죽이는 거래만 하지, 다른 거래는 하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야율제는 침 때문에 마비되어 동작이 굼떴다. 황금당의 살수들과 대적하게 되자, 당황하며 피할 수밖에 없었다.

곧 몸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몇 번이고 달아나려고 했지만, 전부 황금당의 살수들에게 저지당했다.

“안 될 게 뭐가 있어요? 돈 쓰는 사람이 주인인데요! 게다가 제가 죽으면 황금당의 사람들이 어디 가서 잔금을 받겠어요? 야율제, 자기 머리가 정말 황금 이십만 냥이나 된다고 생각해요? 제가 황금 이십만 냥으로 당신의 머리를 산다는데, 황금당에서도 제게 약간의 덤 정도는 줘야 하지 않겠어요?”

그녀는 돈이 많다 보니 거금을 쓰더라도 별로 개의치는 않았다. 하지만 돈을 쓸 때는 그만한 가치가 있어야 했다.

그녀는 황금 이십만 냥으로 야율제의 머리 하나와 그녀의 석 달간의 안전, 그와 동시에 황금당의 약속 하나도 샀다.

그 약속은 이랬다. 앞으로 누군가 돈을 내고 그녀의 목숨을 사겠다고 한다면, 황금당은 예약금을 받은 뒤 다시 그녀에게 찾아오기로 하였다. 그러면 그녀는 그보다 더 높은 가격으로 자신의 목숨을 살 수 있었다.

황금당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황금을 벌 수 있었다. 절대 밑지는 거래가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야율제의 머리야말로 진정한 덤이었다.

안타깝게도 황금당은 사람을 죽이는 장사만 하고 다른 장사는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높은 가격으로 야율제의 머리를 사고, 다른 조건들을 덤으로 할 수밖에 없었다.

월령안의 말을 들은 야율제는 화가 나서 하마터면 피를 토할 뻔했다.

그러나 잠깐 한눈을 판 사이, 가슴 한복판에 칼을 맞고 말았다. 그의 몸이 뒤로 무겁게 넘어가면서 나무줄기에 부딪혔다. 입을 벌리자 바로 피가 뿜어져 나오며 옷을 시뻘겋게 물들였다.

야율제의 안색은 더욱 어두워졌다.

‘월령안, 이 여인은 나와 상극이구나!’

월령안은 아직 부족하다는 듯, 냉랭하게 한마디 덧붙였다.

“야율제, 이렇게 상상력이 부족하다니 댁은 분명 가난뱅이일 거예요. 돈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노는지 모르니 남원대왕 노릇도 정말 재미가 없었겠는데요.”

“월령안!”

야율제는 이를 갈았다. 피를 토하고 났더니, 몸을 속박하는 것 같던 느낌이 사라졌음을 문득 알아차렸다.

그는 눈을 빛냈다. 바로 앞으로 훌쩍 날아가 살수의 손에서 칼을 빼앗아 다른 한 살수의 습격을 막았다.

“월령안, 죽여 버리겠다!”

“이렇게 순진한 분이 무슨 용기로 육장봉과 겨루려고 했대요?”

야율제는 황금당의 살수들만 막아내면 온전히 몸을 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월령안은 땅에 떨어뜨렸던 옷을 줍더니 비웃으며 말했다.

“내가 돈이 모자라는 것도 아니고, 아무리 깍쟁이라고 해도 내 목숨을 가지고 장난치지는 않아요. 황금 이십만 냥짜리 머리는 열 개씩 사지는 못하지만, 은자 두 냥짜리 호원은 얼마든지 고용할 수 있거든요?”

월령안은 치마를 팔에 걸쳤다. 곧 팔찌를 끌러내더니 힘을 주어 잡아당겼다. 팔찌가 곧게 변했다.

슉!

월령안은 팔찌 위의 홍보석(紅寶石 - 루비)을 가볍게 눌렀다. 팔찌에서 나온 붉은 빛 한 줄기가 하늘로 치솟았다.

신호를 내보낸 뒤, 월령안은 직선 형태로 변했던 팔찌로 손목 위를 두드렸다. 팔찌는 다시 손목에 채워졌다. 일반적인 팔찌와 다른 점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제 사람들이 곧 올 거예요. 남원대왕, 천천히 저들과 함께 노세요. 전 일이 있어 먼저 가 볼게요.”

월령안은 천천히 계단을 걸어 내려가면서 언짢다는 듯 말했다.

“좀 멀찍이서 싸우면 안 돼요? 제 길을 막고 있잖아요.”

“우욱!”

야율제는 또다시 피를 토했다.

“진짜 무용지물이군. 그러니 생모까지 나서게 했겠지.”

월령안이 못마땅해하며 말했다.

“네가…… 어떻게 알았지?”

월령안의 말을 들은 야율제는 매우 놀랐다.

‘월령안이 알고 있다면, 혹시…….’

“물론 육 대장군께서 알려 준 거죠.”

이렇게 오랫동안 싸웠으니 언제 육장봉이 달려와도 이상하지 않았다. 월령안은 주도면밀했다. 육장봉이 없는 자리이지만 대장군이라고 부르며 제대로 존칭을 사용하였다.

“육장봉? 역시 그자가 알고 있었군!”

야율제는 더는 약물의 영향을 받지 않아 본래의 속도를 회복했다. 그러나 황금당의 살수들이 에워싸서 죽이려 드는 바람에 연신 피하기만 했다. 곧 월령안에게 길을 내줄 수밖에 없었다.

야율제는 포기할 수 없었다. 기회를 틈타 월령안에게 접근하려 했다. 그녀를 죽이지는 못하더라도 인질로 잡기만 해도 이 형국을 뒤집을 수 있었다.

하지만 황금당의 살수들이 그를 죽기 살기로 막아 월령안에게는 전혀 접근할 수가 없었다. 월령안이 그의 눈앞에서 걸어서 지나가는 모습을 눈 뜨고 지켜봐야만 했다.

야율제는 혀끝을 힘껏 깨물어, 통증으로 냉정함을 되찾으려 했다.

“육장봉은 성을 봉쇄해 나를 수색하지 않고, 일부러 빈틈을 보여 나를 성 밖으로 나가게 했다. 이 모든 건 청희 장공주가 손을 쓰도록 유인하기 위해였나?”

“그렇지 않으면요? 정말로 자신이 하늘이 선택한 사람이라, 모든 걸 자신이 장악하고 있다고 생각했나요? 순진하셨군요. 여기는 주나라예요. 당신이 북요에서 아무리 날고뛰었어도, 주나라에서는 제 발끝도 못 미친다고요!”

월령안은 나무 아래 서서 입구 쪽을 흘끔 보고는 한숨을 쉬었다.

“소갑은 왜 아직도 안 오지?”

“월, 월…… 월 낭자, 저 여기 있습니다.”

월령안의 말에, 구석에 숨어서 나오지 못했던 소갑이 소심하게 손을 쳐들고 엉거주춤 걸어 나왔다.

그는 품에 월령안이 부탁했던 물 주전자를 안고 있었다.

그는 그저 월 낭자에게 물을 가져다주려고 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몸을 돌리자마자 아수라장이 보였다. 하마터면 오줌을 지릴 뻔했다.

“물 주전자는 놔두세요. 이제 물 생각이 없으니까요. 이리로 오세요. 괜찮아요.”

월령안은 소갑이 놀라서 다리를 후들후들 떠는 것을 보고 고개를 저었다.

“강호인이면서 어떻게 저보다 간이 더 작아요?”

“월 낭자, 저희 천궁각은 강호의 싸움에 끼어들지 않습니다.”

소갑은 물 주전자를 던져 버리고 월령안의 앞으로 날 듯이 달려갔다. 작은 얼굴은 여전히 핏기없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다리도 사시나무 떨듯 계속 떨고 있었다.

싸우는 소리가 근처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모든 사람의 칼에는 피가 묻어 있었다. 곳곳이 붉은 피로 얼룩져 있었다.

소갑은 저들이 혹시라도 실수로 자기에게 칼을 휘두를까 두려웠다. 죽고 싶지도, 불구가 되고 싶지도 않았다.

월령안은 그의 팔을 꼭 잡고 위로했다.

“두려워하지 마세요. 제가 있잖아요! 저 사람은 이빨 빠진 호랑이예요. 아무 짓도 못 할 거예요.”

‘이렇게 떨어서야 장치를 제대로 제어할 수나 있을까? 공숙무는 자기 제자 중 소갑이 가장 손을 떨지 않고 침착하다고 했었는데?’

소갑은 고개를 크게 끄덕여 보였다. 깊게 숨을 들이쉬더니 말했다.

“월 낭자, 전 두렵지 않아요!”

“그럼 제게 갈고리를 채워 주세요. 제가 자리를 비운 지 너무 오래되었어요. 이젠 나타나야 할 시간이에요.”

시간을 계산해 보니 춘일연의 장기 자랑도 이제 시작되었을 것이다. 반드시 화신 선발을 시작하기 전에 나타나야지, 아니면 모든 게 끝이었다.

“좋아요.”

소갑은 놀란 가슴이 채 진정되지 않았다. 그래도 일을 시작하니 손을 더는 떨지 않았다. 침착하게 월령안이 입은 보호구에 밧줄을 연결했다.

엊저녁에 이미 한 번 시험해 보았다. 소갑은 곧 밧줄을 연결하고, 다시 한번 검사했다.

“월 낭자, 됐어요. 겉옷을 입으세요.”

“알았어요.”

“월령안!”

그때 은색 옷을 입은 육장봉이 성큼성큼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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