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화 당신을 기쁘게만 해 준다면
“이건 무슨 냄새요?”
육장봉이 다시 물었다.
육장봉은 막 도착해 암일과 월령안의 대화만 들었을 뿐이었다.
“최음향이에요.”
월령안은 구석에 놓여 있는, 그녀가 꺼 버린 향로를 가리켰다.
육장봉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등요 공주가 한 짓이오?”
육장봉은 아무래도 등요 공주가 오래 살기 싫은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이 네 사람은 소함연의 사람이에요. 그러니 소함연의 짓일 거예요. 일거양득을 노린 거죠.”
월령안은 자신의 추측을 말했다.
육장봉이 냉소했다.
“소씨 가문이 아직도 공주와의 결혼을 포기하지 못한 모양이군.”
월령안이 말했다.
“소여방은 과거에도 급제하지 못했어요. 소여방에게 가장 바람직한 길은 좋은 아내를 맞아들이는 일이죠. 공주보다 더 좋은 아내가 어디 있겠어요.”
기회가 있으면 당연히 쟁취해야 한다. 그녀가 소씨 가문 사람이라고 해도 적극적으로 나섰을 것이다.
“이 일은 내가 해결하겠소. 당신은 끼어들지 마시오.”
황제가 등요 공주를 좋아하든, 싫어하든 상관없었다. 등요 공주에 관한 일에 월령안이 끼어들어서는 안 되었다.
“대장군, 감사합니다. 하지만 그러실 필요 없어요. 소여방은 오늘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할 테니까요. 등요 공주도 장군왕부를 감당하지 못할 거고요.”
조계안은 소여방의 첩실을 데려가면서, 그에게 평생 잊지 못할 교훈을 주겠다고 했다. 그녀는 조계안이 그 말을 실천할 것이며, 그리 오래 기다리게 하지 않으리라 믿었다.
“직접 소씨 가문과 대적하면 당신에게 불리할 거요.”
육장봉은 소씨 가문을 조사하면서 월령안이 소여방을 어떻게 대적할 셈인지 짐작했다. 하지만 그는 그녀의 방식에 찬성할 수 없었다.
그 정도 풍문을 퍼트려 봤자, 기껏해야 소여방이 남들의 입에 몇 번 오르내리게 될 뿐이다.
소여방이 딱 잡아떼고 끝까지 인정하지 않으면 그 이상의 피해는 입힐 수 없었다.
시간이 오래되면 사람들은 점차 잊어버릴 터였다. 만약 소여방이 잘 조작한다면, 그 일이 미담으로 탈바꿈할 수도 있었다.
세상은 언제나 남자에게 너그러운 법이니까.
월령안이 말했다.
“조 대인께서는 소여방의 일에 대해서 제게 만족할 만한 답을 주시겠다고 했어요.”
그녀도 물론 알고 있었다. 소여방이 첩을 두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는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없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녀도 이 일을 안 뒤 발설하지 않고 묵혀 두었다가, 조계안과 거래하는 패로만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첩을 두었다는 사실을 증명하려면 증인과 증거를 모두 갖춰야 했다. 증거라면 찾을 수 있었지만, 결정적인 한 방이 부족했다.
증인도 그랬다. 그 여인은 자신이 원해서 소여방의 첩이 되었다. 자연히 소여방에게 매수당하기도 쉬울 것이다.
나중에 소여방이 사건을 조작하려 한다면, 얼마든지 월령안에게 누명을 뒤집어씌울 수가 있었다.
“조 대인이?”
육 대장군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월령안이 눈썹을 치켜세우며 되물었다.
육장봉은 냉랭하게 대답했다.
“없소. 조 대인이 정말 한가한 모양이오.”
‘한가하게 어디든 끼어드는군. 보아하니 상처는 다 나은 모양이야.’
월령안은 피식 웃고서 말을 잇지 않았다.
이때, 황금당의 사람도 거한 넷을 제압하고 나서 월령안에게 말했다.
“넷 다 산 채로 잡았으니 황금 천 냥입니다.”
“그중 한 명은 육 대장군이 기절시켰어요.”
월령안은 즉각 거래에 집중했다. 살며시 미소를 머금더니, 육장봉이 기절시킨 사내를 가리켰다. 그다음 재수 없게 독침에 찔려 쓰러진 사내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자는 자기 혼자 실수해서 기절한 거예요.”
황금당의 사람은 안색이 어두워졌다. 달갑지 않다는 듯 말했다.
“오백 냥.”
“이 넷은 무예도 평범했는데 당신은 고작 그중 두 사람을 제압하는 데 한참 동안 고전했네요. 황금당의 실력이 의심스럽군요.”
월령안은 가격을 흥정하는 대신 연신 트집만 잡았다.
“산 채로 잡으라고 했잖습니까.”
황금당에서 온 흑의인은 이를 악물고 말했다.
그는 월령안과 거래하는 게 정말 싫었다. 그녀가 손이 크기는 컸다. 하지만 자신이 내킬 때만 손이 큰 거였다. 그녀가 내키지 않으면, 지금처럼 황금 천 냥을 가지고도 흥정하려고 했다. 황금 이십만 냥으로 사람 머리를 사겠다고 했을 때의 호방함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월령안의 황금 이십만 냥은 그렇게 쉽게 벌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사람 머리 하나만 달린 문제도 아니었다. 그래도 그녀가 통이 컸기에, 일을 조금 많이 해야 하더라도 기꺼이 해 주는 것이었다.
“이런 강호 불량배쯤은 우리 수 오라버니라면 손가락 하나로 열도 넘어뜨릴 수 있고, 육 대장군은 발차기 한 번으로 날려 버릴 수도 있어요. 그런데 고작 두 사람을 산 채로 잡았을 뿐인데, 나한테 오백 냥, 그것도 황금으로 달라고 할 거면 그냥 저들을 죽이세요. 그러면 제가 돈을 절약할 수 있잖아요.”
두 사람을 산 채로 잡은 것으로 충분했다. 흑의인이 잡은 두 사람을 더 거두더라도 번거롭기만 했다.
황금당의 흑의인은 침묵하다가 말했다.
“삼백 냥.”
“댁이 뒤처리할 거예요? 댁이 심문할 거예요?”
월령안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황금당의 사람은 이를 갈더니 다시 말했다.
“백 냥!”
“은자로요?”
월령안이 웃으며 물었다.
“황금당에서는 황금만 받습니다.”
그는 이를 갈며 말했다.
‘월령안보다 상대하기 힘든 여자는 본 적이 없어! 마귀가 따로 없군. 흥정할라치면 입에서 신물이 날 지경이란 말이야.’
그는 월령안과는 딱 한 번 거래했을 뿐이지만, 다시는 거래할 생각이 없었다. 그녀의 씀씀이가 아무리 통이 크다고 해도 싫었다.
‘이 여인은 어떻게 해서든 일을 추가로 시키는 재간이 있단 말이야.’
월령안은 황금당의 사람을 바라보더니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내뱉었다.
“성문 밖에서 저는 몽둥이로 세 대를 맞았죠. 등에는 상처가 두 줄이나 남았어요. 지금도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열 냥!”
그는 다급하게 월령안의 말을 잘랐다. 더 들었다가는 도로 돈을 돌려줘야 할지도 몰랐다.
월령안이 거절하지 못하도록, 그는 한마디 덧붙였다.
“제가 손을 쓰는 것의 대가는 최저 황금 열 냥입니다!”
여기서 몸값이 더 낮아졌다가는, 황금당의 명성이 땅에 떨어질 판이었다.
“그럼 됐어요. 제가 손해를 본 셈 치죠. 저 대신 저들을 끌고 가 주세요. 그렇게 힘을 쓸 필요는 없어요. 그냥 숨만 붙어 있으면 돼요.”
월령안은 큰 손해나 본 듯, 마지못해 동의하는 표정을 지었다.
“알겠습니다!”
그는 이를 갈았다. 하지만 월령안을 어찌할 수도 없어 사납게 노려볼 뿐이었다.
가격은 자신이 나서서 깎았다. 탓하려면 자신을 탓해야 했다.
만약 마지막으로 덤으로 시킨 일을 하지 않는다면 월령안은 황금 열 냥도 주지 않으려 할 것이 뻔했다.
‘역시 있는 사람일수록 더 짜군!’
육장봉은 월령안이 가격을 황금 천 냥에서 열 냥까지 깎는 광경을 낱낱이 지켜보았다. 그는 그녀의 흥정 능력에 탄복하는 동시에 그녀의 경제 사정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황금당의 사람이 거한 넷을 끌고 간 다음, 육장봉은 눈썹을 찌푸리며 물었다.
“월씨 가문에 돈이 떨어졌소?”
황금 이십만 냥이 적은 액수는 아니었다. 월령안의 사업도 급히 처분하다 보니 가격을 많이 받지 못했다. 황금 이십만 냥을 지불하고 나면 정말로 돈이 없을 수도 있었다.
“장군께서는 어찌 그리 생각하시죠?”
‘내가 돈이 없어 보이나?’
이 세상 누구든 돈이 모자랄 때가 있겠지만, 월령안만큼은 돈이 모자랄 일이 없었다. 월령안은 육장봉이 그걸 모른다는 것을 의아하게 생각했다.
“돈이 있다면서 왜 황금 천 냥도 흥정하시오?”
‘월령안은 아직도 나를 속이려는 건가?’
“장사하면서 가격을 흥정하지 않는 경우가 어디 있어요?”
‘남이 부르는 대로 그냥 받아들이면, 그건 돈이 있는 게 아니라 멍청이라고!’
“돈이 없는 게 아니면 왜 시간을 낭비하시오? 당신의 시간은 아주 값진 것이라고 하지 않았소?”
육장봉은 일부러 걸음을 늦추어 월령안이 따라올 수 있게 천천히 걸었다.
“돈을 낼 수 있다고 해서 흥정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어요? 장사라는 것은 가격에 맞는 대가를 치러야 하는 거예요. 황금당 사람은 황금 한 냥 가치밖에 안 되는 힘을 들였는데 제가 왜 황금 천 냥을 내겠어요. 그쪽에서 터무니없는 요구를 하면서 나를 얼간이 취급하잖아요. 그런데 가격을 흥정하지 말라고요?”
아마 그녀가 황금 한 냥까지 깎지 않아서, 황금당의 흑의인은 몰래 좋아하고 있을 것이다.
육장봉이 의외라는 듯 말했다.
“난 당신이 항상 돈을 물 쓰듯 하니, 돈에는 전혀 개의치 않는 줄로 알았소.”
적어도 그가 보아 온 월령안은 그러했다. 시시콜콜 따지며 가격을 흥정하는 모습은 오늘 처음 보았다.
그래서 그는 그녀가 수중의 재산을 모두 써 버린 줄 알았다.
“육 장군, 그런 사람은 멍청이예요. 제가 돈이 많은 건 그냥 많은 거예요. 그게 제가 돈을 마구 써도 된다는 뜻은 아니라고요. 저는 돈을 제가 쓰고 싶은 곳에 가치 있게 쓰는 것뿐이에요. 그리고 이건 장사예요. 장사하면서 돈을 물 쓰듯 하면, 아무리 큰 기반이 있어도 다 날려 먹을 거예요.”
월령안은 언짢아하며 말했다.
‘내가 돈 많은 멍청이로 보였단 말이야?’
“황금 이십만 냥으로 야율제의 머리를 사는 게 가치 있는 일이오?”
‘나도 월령안을 제대로 알지 못했군.’
“당연히 가치 있는 일이죠. 천금으로는 제 호감을 사지 못하거든요. 황금 이십만 냥을 팔아 야율제의 머리만 사는 게 아니에요. 위협도 사는 거예요. 저를 노리고 몰래 나쁜 짓을 하려는 자들에게 똑똑히 보여 줄 거예요. 저 월령안의 노여움을 산 결과가 어떤 것인지 말이에요.”
반드시 써야만 하는 돈도 있었다. 어쨌든 그녀의 목숨이 돈보다는 더 중요하니까.
황금 이십만 냥으로 사람 머리 하나를 산다. 월령안을 건드린 사람이 마지막에는 어떻게 되는지 보여 준다면, 어느 정도 사람들을 겁줄 수 있었다. 동시에 황금당과의 사이도 돈독히 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어떤 이득이 있는지, 남들은 모를 것이다.
게다가 그 황금 이십만 냥은 그녀가 낼 필요가 없었다. 도박판에서 번 돈은 당연히 화끈하게 써 버려야 했다.
육장봉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물었다.
“당신을 기쁘게만 해 준다면 금산, 은산을 마구 퍼 주는 것도 가치 있게 쓰는 것이오?”
월령안은 직접적으로 대답하지 않고 웃으며 말했다.
“보통 사람은 저를 기쁘게 할 수 없거든요.”
그녀는 그저 농담을 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사람이 사실로 받아들일 줄은 몰랐다.
“만약 누군가 당신을 기쁘게 해 준다면?”
육장봉은 슬며시 웃었다. 뒷짐을 진 손이 손가락을 가볍게 문지르고 있었다.
“요즘에는 돈이 없어서 말이죠. 기뻐도 안 기쁜 척할 거예요.”
월령안은 농담처럼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육장봉은 웃으며 말했다.
“상인은 간사하다더니, 당신도 그럴 때가 있군.”
역시, 월령안은 우스갯소리를 했을 뿐, 사실이 아니었다.
“간사하지 않으면 상인이 될 수 없어요. 저도 가끔은 신분에 맞는 일을 해야죠.”
세상 사람들은 상인에 대해 별로 좋지 않은 인상을 느꼈다. 그들 눈에 상인이란 대부분이 간사한 존재였다. 싸게 사서 비싸게 팔고, 나쁜 물건을 좋은 물건이라 속여 팔며, 가짜를 진짜로 속여 파는 자들이었다. 상인이라기보다 사기꾼에 더 가까웠다.
월령안은 말 몇 마디로 상인에 대한 편견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변명하는 것보다는 행동으로 증명하고 싶어 했다. 진정한 대상인은 나라에나, 백성에게나 모두에게 이로운 존재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