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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229)화 (229/1,004)

229화 사마귀가 매미를 잡으니 참새가 뒤에서 기다린다

등요 공주는 화가 나 죽을 지경이었다.

“이런 멍청한 것들을 봤나? 저 여자가 네놈들 수중에 있지 않느냐. 헛소리를 지껄일까 두렵거든 말을 못 하게 만들어 버리면 될 게 아니냐? 나중에 현장에는 저 여자와 장군왕 세자만 있을 거야. 그때는 장군왕 세자가 월령안을 능욕했고, 월령안의 손에 살해당했다고 잡아떼면 되는 일이다.”

짝짝짝!

월령안은 손을 들어 올려 가볍게 손뼉을 쳤다.

“이야기가 꽤 재미있네요. 세자, 어떻게 생각하세요?”

월령안은 말을 마치자마자 장군왕 세자에게 투명한 빙침(氷針)을 쏘았다. 장군왕 세자는 아파서 신음을 내더니 천천히 정신을 차렸다.

“여긴 어디지……?”

장군왕 세자는 멍하니 주변을 둘러보다가 자신의 처지를 알아차리고는 고함을 질렀다.

“누가 나를 묶은 거냐? 어서 빨리 풀지 못할까!”

“너, 너…… 미쳤어!”

이번에는 등요 공주가 월령안을 큰 소리로 욕했다.

장군왕 세자가 깨어난 데다가 그녀까지 보았다. 이렇게 된 이상 장군왕 세자는 죽어야만 했다.

사실 등요 공주는 장군왕 세자를 죽일 생각까지는 없었다. 장군왕 세자에게 월령안을 능욕했다는 죄만 뒤집어씌울 셈이었다. 월령안이 나중에 장군왕 세자를 죽일지, 안 죽일지까지는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는 일단 장군왕 세자부터 죽여야 할 판이었다.

“어쨌든 공주는 세자를 죽일 거잖아요. 세자가 깨어나든, 안 깨어나든 그게 중요한가요?”

월령안의 손에는 어느새 은색 비도 하나가 들려 있었다. 비도는 얼음처럼 차갑고 예리했다. 그녀는 비도를 가볍게 휘두르면서 거한 넷을 차가운 눈길로 쏘아보았다.

만약 네 사람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비도로 혼쭐을 내 줄 작정이었다.

“무슨 소리야? 월령안, 너는 왜 여기 있느냐? 네가 나를 납치한 거냐?”

장군왕 세자는 막 깨어나 온몸이 쑤시고 머리가 멍했다. 무슨 일이 생겼는지 도무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세자, 잘 보세요. 세자를 납치한 사람은 등요 공주예요. 저는 세자와 마찬가지로 피해자입니다.”

월령안은 등요 공주의 악행을 숨겨 주지 않았다. 비도로 등요 공주를 먼저 가리킨 다음, 머뭇거리며 앞으로 다가오지 못하는 거한 넷을 가리켰다.

“자, 이 넷은 소함연이 보낸 사람이에요. 등요 공주가 방금 말했어요. 이 넷에게 저를 능욕하게 한 다음 세자께 그 죄를 덮어씌우겠대요. 세자가 저를 능욕하는 바람에, 제가 홧김에 세자를 죽였다고 뒤집어씌울 생각이었다고요.”

“등요, 너 미쳤어?”

장군왕 세자는 눈이 벌게질 정도로 화가 나서 등요 공주에게 버럭 소리쳤다.

등요 공주는 일이 이렇게까지 완전히 틀어질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터라, 서둘러 해명했다.

“조홍후, 저 여자의 허튼소리를 듣지 마!”

“저 여자가 허튼소리를 하는 거면, 나부터 빨리 풀어줘!”

장군왕 세자도 바보가 아니었다.

월령안은 그와 아무 원한이 없다. 그러니 장군왕부의 노여움을 살 위험을 무릅쓰고 그를 납치할 필요도 없었다.

‘오히려 등요 공주 쪽이…….’

그는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등요 공주의 뺨을 후려갈겼다. 속 좁은 등요 공주가 그에게 보복하려고 하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웠다.

장군왕 세자가 갑자기 깨어나는 바람에, 등요 공주는 미처 손쓸 새가 없었다.

월령안의 짐작대로, 등요 공주는 장군왕 세자를 납치하고 죽일 생각까지는 했다. 그러나 자신이 손쓸 생각은 없었고, 자신을 드러낼 생각은 더더욱 없었다.

그런데 지금 장군왕 세자가 깨어났다. 그를 죽일 수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었다. 하지만 죽이지 못하게 된다면 장군왕부에서 등요 공주를 가만둘 리가 만무했다.

또한, 월령안은 전혀 두려움이 없어 보이는 게, 믿을 구석이 있는 모양이었다.

‘내가 한 짓이라고 인정했는데 장군왕 세자를 죽이지 못하면 어떡하지?’

등요 공주는 당황해서 어쩔 줄 몰랐다.

그때 마침 운 좋게도 교묘한 생각이 떠올랐다. 그녀는 월령안 앞에 선 채 감히 꼼짝도 못 하는 거한 넷을 흘끔 보고는 큰 소리로 말했다.

“조홍후, 저게 안 보여? 저놈들은 모두 월령안의 사람들이야. 월령안이 우리를 납치했다고. 나를 죽이려다가 내 신분이 두려우니까, 너를 무기로 이용하려는 거야. 네 손을 빌려 나를 해치려는 거라고.”

그녀는 장군왕 세자가 믿지 않을까 봐 서둘러 한마디 덧붙였다.

“조홍후, 월령안은 심보가 악독한 년이야. 장사치 계집이라 감언이설로 꼬드기는 게 특기잖아. 절대로 저 계집을 믿으면 안 돼. 속지 마.”

“내가 둘을 납치했다고요?”

월령안은 자기를 가리키며 웃었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참 할 말이 없네.’

“월령안이 나를 납치해? 허……!”

장군왕 세자는 피식 비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등요 공주에게 눈을 흘기고 싶었다.

‘날 아주 바보로 아는 건가?’

그때 갑자기 월령안이 장군왕 세자에게 눈을 깜빡였다.

‘무슨 뜻이지?’

장군왕 세자는 어안이 벙벙해 월령안이 무엇을 하려는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이때 월령안의 말이 들려왔다.

“어쩌죠? 공주께 들켜버렸네요. 그럼 제가 당신네 모두를 죽여야겠네요. 그래야겠죠?”

월령안은 붉은 입술을 살짝 벌리며, 손에 든 비도로 사람을 죽이는 시늉을 했다.

그녀는 몸을 일으켜 거한 넷에게 거만하게 명령했다.

“쓸모없는 것들, 저쪽으로 비켜라.”

네 사람은 서로를 마주 보았다. 다시 월령안의 손에 든 비도를 힐끗 보았다. 그들은 바로 나서지 못하고 주저했다.

월령안이 준비를 단단히 했을 줄은 몰랐던 게 오산이었다. 경거망동했다가는 성공하리라는 보장이 없었다.

‘아니면 더 기다릴까?’

네 사람은 서로 시선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구석에서 천천히 타오르는 최음제가 든 향을 은밀하게 바라보았다.

저 향이 효과를 발휘할 때가 되면, 월령안이 아무리 온몸에 칼을 감추었더라도 별수 없을 것이다.

“멍청한 것들, 내 말을 듣지 않다니 죽고 싶으냐?”

월령안의 예쁜 눈매에 예리한 살기가 떠올랐다. 네 거한은 잠깐 주저했지만, 곧 문어귀 쪽으로 물러가 유일한 출구를 사수했다.

네 사람의 생각은 간단했다. 사내가 넷이나 있으니, 월령안을 방 안에 가두기만 한다면 그녀의 생사는 그들이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출신을 들킬 것이 두렵지 않았다면, 등요 공주의 명령 따위는 무시하고 진작 월령안에게 손을 썼을 것이다.

네 사람이 정말로 월령안의 말대로 움직이자, 등요 공주는 욕을 퍼부으려 했다. 그러나 입 밖으로 내뱉지는 못했다.

월령안이 비도를 들고 갑자기 등요 공주 앞으로 걸어오더니, 그녀의 얼굴에 칼등을 가져다 댔기 때문이다.

“공주께서 말씀해 보세요. 제가 누구부터 시작하면 좋을까요? 저와 공주의 원한이 가장 크니까, 공주부터 시작할까요?”

등요 공주는 어리석고 악랄했지만, 동시에 우유부단하고 판단력이 부족했다. 일이 닥치면 도망치고 책임을 전가하려고만 했다.

월령안에게는 등요 공주가 기회를 코앞으로 가져다 준 셈이었다. 이걸 제대로 써먹지 못한다면 미안할 정도였다.

“월…… 월령안, 손대지 마라. 난 황제 폐하의 친누이동생이란 말이다!”

등요 공주는 놀라서 부들부들 떨었다. 그녀는 자기의 뺨에 닿은 칼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꼼짝달싹 못 했다. 자칫 월령안이 움찔해서 얼굴을 그을까 두려웠다.

“우리 공주 마마께 손대지 마!”

등요 공주의 시녀가 월령안을 사나운 눈길로 쏘아보았다. 그러면서도 월령안의 손에 들린 칼이 무서워서 감히 앞으로 다가오지는 못했다.

“누구부터 시작하든 똑같아요.”

월령안은 몸을 굽혀 등요 공주를 내려다보았다. 웃음을 머금은 얼굴에는 차가운 살기가 떠올라 있었다.

“공주께서 이렇게 영리하시니 제 계획을 눈치챈 것이겠죠. 이 계획을 들었으니 당신네 모두를 죽일 수밖에 없겠어요.”

“너, 너! 나를 죽이면 우리 황제 오라버니가 널 가만두지 않을 거야.”

등요 공주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를 놓아줘. 내…… 내가 예전에 있었던 일은 따지지 않을게. 우리 아무 일도 없었던 거로 하자. 내가 너를 괴롭히지 않으면 되잖아, 응?”

그녀는 정말로 무섭고 후회가 됐다.

이 일을 월령안에게 뒤집어씌우는 게 아니었다. 그 바람에 선수 칠 기회도 잃었고, 수족으로 부릴 사람도 없어졌다.

“저는 공주 마마가 아니거든요? 두어 마디 어르면 아무 일이나 다 할 줄 아세요?”

월령안은 가볍게 힘을 주었다. 칼날이 등요 공주의 얼굴에 상처를 냈다.

“말해요. 야율제는 어디에 있어요?”

그녀는 줄곧 주변의 동정을 살피고 있었다. 방 안에는 그들 외에는 다른 사람이 없었다.

‘아니면 내가 잘못 짐작했나? 야율제가 춘일연을 이용해 공격할 생각은 없는 건가?’

춘일연은 정말 좋은 기회였다. 이때를 제외하면 야율제가 그녀를 공격할 기회는 거의 없었다.

월령안이 야율제의 퇴로를 모두 차단해 버렸던 것이다.

“너, 너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난 몰라.”

등요 공주는 울면서 고개를 저었다. 얼굴에서 느껴지는 아픔에 거의 무너지기 직전이었다.

그녀는 눈을 들어 문어귀에 서서 유일한 출구를 막고 있는 네 거한을 바라보더니 눈을 빛냈다. 저 넷에게 공격하라고 명령해야 할지 주저하고 있을 때였다.

하지만 그녀가 무언가 하기도 전에 월령안이 갑자기 힘을 주어 그녀를 기절시켰다.

“쓸모가 없으면 그냥 입을 다물고 계시죠.”

“공주 마마!”

등요 공주의 시녀가 앞으로 와락 달려들었다.

월령안은 주저 없이 그녀에게 은침을 쏘았다.

“꺅!”

시녀는 외마디 비명을 내지르더니 바닥에 스르르 쓰러졌다.

“덮쳐!”

문어귀를 막고 있던 네 거한은 등요 공주가 쓰러지는 모습을 보았다. 더는 주저하지 않고 험상궂은 기세로 월령안에게 달려들었다.

월령안이 등요 공주를 해결한 다음에는 장군왕 세자를 풀어줄 게 분명했다. 그들은 최음향의 효과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었다.

월령안은 뒤로 한 발짝 물러서며 어두운 곳을 향해 소리쳤다.

“내가 죽으면 황금 이십만 냥은 얻지 못할 거다!”

쉭, 하는 소리와 함께 검은 그림자가 귀신처럼 구석에서 날아왔다. 그 검은 그림자는 검은 옷을 입고 있었는데, 허리춤에는 황금 장식품이 매달려 있었다. 그의 움직임에 따라 황금빛이 번쩍이다가 사라졌다.

“죽으려고 작정을 했군!”

갑자기 나타난 흑의인은 칼을 꺼내 거구의 네 사내에게 휘둘렀다.

“이 안에 사람이 있었다고?”

네 거한의 얼굴빛이 확 변했다. 그들은 놀라서 연신 뒤로 물러섰다. 그때, 한 명이 한 발짝 뒤쳐졌다. 흑의인은 자비 없이 칼을 휘둘러 단숨에 그의 어깨를 베어 냈다.

어깨부터 팔이 잘려 나간 남자는 목청이 찢어져라 울부짖었다. 그러나 등요 공주가 얼마나 확실하게 준비했던지, 아무도 달려오는 사람이 없었다.

월령안은 황금당의 사람이 나선 것을 보자, 더는 주저하지 않았다. 찻주전자를 들고 구석으로 다가가더니, 그곳에 숨겨진 향로에 물을 부어 향을 꺼트렸다. 코를 찌르는 냄새가 확 풍겨 왔다.

월령안은 고개를 저었다.

“사마귀가 매미를 잡으니 참새가 뒤에서 기다린다. 등요 공주 뜻대로 일이 이루어졌다면 그 꼴을 면치 못했을거야.”

만약 오늘 월령안이 사전에 경계하지 않고 등요 공주의 계략에 걸려들었다면, 등요 공주도 결코 좋은 결과를 얻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 최음향은 기루에서 자주 사용하는 것으로, 효과가 대단히 강렬했다. 월령안이 덫에 걸리더라도, 등요 공주 역시 그 덫에서 빠져나갈 수는 없었다.

소함연이 준비한 그 네 사람은 월령안 하나만을 노린 게 아니었다.

다만 소함연이 등요 공주를 함정에 빠뜨린 게 소여방을 위해 영웅이 미인을 구하는 장면을 연출하려고 했던 건지, 아니면 소여방이 기회를 틈타 등요 공주와 정을 통하게 하려고 했던 건지는 알 수가 없었다.

어느 쪽이든 등요 공주에게는 좋은 결과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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