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7화 세상은 여인에게 너무 각박해
정 낭자는 월령안을 떠올리며, 속으로 몰래 기뻐했다.
그렇게 많은 사람 모두가 월 언니의 환심을 사려고 했다. 하지만 월 언니는 오직 그녀에게만 손 신의를 만나게 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월 언니는 나를 가장 좋아하는 거야!’
대공자와 이공자는 정 낭자의 말에 기뻐서 어쩔 줄 몰랐다. 한시바삐 월령안을 만나 이 사실을 확인하고 싶었다. 월령안을 무시했던 것에 대해서도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그러나 두 형제가 아무리 찾아도 월령안은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월 낭자는 어디 갔지?”
“혹시 월 낭자를 보셨습니까?”
형제는 사람들에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묻다 보니 그제야 사람들도 월령안이 보이지 않는 걸 알게 되었다.
“유화원에 온 뒤로는 월 낭자가 안 보였던 것 같아.”
누군가 뒤늦게 반응하고 말했다.
“월 낭자가 궁녀하고 함께 가는 걸 본 것 같은데.”
“궁녀와 함께 갔다고? 혹시 보여 줄 재주가 없어서 슬그머니 도망친 건가?”
“아니라고는 말 못 하겠네. 지금 춘일연은 삼 년 전과는 다르거든. 꼼수를 쓰지 못하잖아. 일개 상인에게 무슨 장기가 있다고? 사람들 앞에서 돈 세는 걸 보여 주겠어?”
“월 낭자는 아마 돈으로 꼼수를 부리는 능력밖에 없을걸요.”
월령안은 아까 사람들의 이목을 크게 끌었다. 큰 씀씀이로 아가씨들의 부탁을 들어주었고, 거금을 들여 즐겁게 해 주었다. 덕분에 많은 아가씨가 월령안에게 호감을 느끼게 되었다.
하지만 월령안의 대범함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그녀가 사람들의 시선을 빼앗아 간 것을 질투하는 사람도 있었다.
때마침 월령안이 보이지 않자, 기회를 틈타 교묘하게 비웃는 사람이 나오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아무리 그녀에게 호감을 품은 사람일지라도 월령안의 편을 들어 줄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 춘일연에 참가한 아가씨들은 대부분 월령안과 친하게 지내고 싶어 했다. 정 낭자뿐만 아니라 여럿이 입만 열면 월 언니, 월 언니 하면서 자기 친언니에게 보다 더 살갑게 굴었다.
특히 유명미는 예전부터 월령안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다만 집안사람들이 월령안과의 교제를 허락하지 않아 거리를 유지했을 뿐이었다.
분위기가 월령안에게 호의적으로 변하자, 유명미도 더는 그녀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을 보일 필요가 없다고 여겼다. 누군가 월령안을 비웃자, 유명미는 단박에 잘라 말했다.
“머리는 쓰라고 있는 거예요. 전(錢) 낭자, 생각이란 걸 좀 하시죠. 령안이는 갑자기 많은 사람을 접대하게 됐잖아요. 이 많은 사람이 먹고 마시는 것을 챙겨야 한다고요. 전 낭자는 령안이가 한가해 보여요?”
“유 낭자, 무슨 뜻이에요?”
유명미가 지적한 전 낭자는 해녕(海寧) 전씨 가문의 아가씨였다. 또한, 소여방이 삼년상을 치러 예를 다했던 전 약혼녀가 바로 전 낭자의 언니였다.
지금 전 낭자는 소여방의 옆에 서서 뺨을 빨갛게 물들이고 있었다. 눈에는 정이 넘쳤다. 소여방이 무슨 말로 구슬렸는지는 몰라도, 그녀의 마음이 흔들리고 있는 게 뻔히 보였다.
유명미는 소여방과 소함연을 힐끗 보고는 뼈가 있는 말을 했다.
“어리석게 굴지 말아요. 남에게 이용당하고도 알지도 못하시네요.”
유명미는 태후를 고모할머니로 두었다. 자연히 그녀는 남들보다 더 많은 걸 알았다. 소여방은 소문처럼 그렇게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가 전 낭자에게 접근하는 데는 다른 의도가 있는 게 분명했다.
“유 낭자, 말씀이 심하시네요.”
전 낭자가 눈썹을 찌푸리며 불쾌해했다.
유명미는 피식, 웃고는 말했다.
“전 낭자는 좋은 말만 하셨나요? 령안이가 낭자에게 무슨 잘못을 했는데요? 남들의 말 몇 마디에 함부로 단정 짓지 마세요. 직접 보기 전에는 모를 일이 얼마나 많은데요.”
그때 소함연이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나긋나긋하게 입을 열었다.
“유 낭자와 령안이 사이가 좋다는 건 저도 알고 있어요. 하지만 사이가 좋은 만큼 말을 더 조심하셔야죠. 령안이에게 화가 미치지 않게 말이에요. 령안이가 아무 장기가 없다는 건 사실이잖아요. 유 낭자가 그렇게 덮어 감추려고만 하면 령안이에게 독이 될 뿐이에요.”
“좋은 사람인 척하는 건 그만 두시지 그래요? 당신 남매는 이미 령안이를 적지 않게 괴롭혔잖아요. 다른 사람을 끌어들여 대신 말하게 하면, 저희가 속을 것 같아요?”
유명미는 화가 나서 콧방귀를 뀌었다. 소여방, 소함연 남매를 전혀 신경 쓰지 않는 태도였다.
화가 치민 소여방이 앞으로 나서서 유명미와 따지려 했지만, 소함연에게 저지당했다. 소함연은 낯빛 하나 변하지 않고 말했다.
“유 낭자, 오해가 있는 모양이군요. 령안이도 따져 보면 제 동생이에요. 언니가 되어 동생을 아껴 주지 못할망정 어찌 괴롭히겠어요?”
유명미는 작게 혀를 차며 비웃더니 소함연을 무시했다.
유씨 가문은 월령안과 장사로 거래하고 있기에 월령안의 일에 대해서는 남들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월령안은 부모님과 형제의 보호도 받지 못하는 고아였다. 험난한 세상 속에서 오늘 이 자리에 한 걸음, 한 걸음 오르기까지, 정말 쉽지 않았다.
유명미에게 연신 체면을 깎이자, 소함연은 더 반박하지 않았다. 그저 분함을 참으며 한쪽에 가만히 서 있었을 뿐이다. 눈시울이 빨개지며 눈물이 그렁그렁했지만, 입술을 꼭 깨물고 눈물을 떨구지 않으려 애썼다.
그녀의 그런 모습에 아가씨들은 짜증을 느꼈다. 그러나 옆에서 구경하던 공자 몇몇은 저도 모르게 딱하다고 생각했다. 다만 유명미의 신분 때문에 감히 나서서 말하지 못할 뿐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그들이 유명미를 보는 눈길이 고울 수는 없었다.
유명미는 어이가 없어서 웃고 말았다.
‘소함연, 제까짓 게 뭔데 감히 나를 모함하려고?’
유명미는 원래 일을 크게 만들 생각이 없었지만, 소함연이 모함하려고 들자 그녀도 참지 않기로 했다. 그녀는 소여방을 경멸하는 눈으로 힐끗 보고는 말했다.
“전 낭자, 전 좋은 마음으로 충고하는 거예요. 우리 같은 여인들은 남편을 찾을 때, 꼭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찾아야 해요. 세상 사람들이 좋은 남자라 말한다고 해서 진짜로 좋다는 법이 없거든요. 월 낭자를 보세요. 변경에서 가장 잘나가는 귀공자에게 시집갔잖아요. 시집가서도 성심성의껏 집안일을 맡아 하며, 실수라고는 전혀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결과는 어떤가요?”
“유 낭자, 말을 조심하시오!”
소여방은 유명미의 에둘러서 비방하는 말에 화가 났다. 그는 소함연의 저지에도 불구하고 차가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소 공자께서 왜 당황하세요? 당사자는 전혀 당황하지 않았는데요.”
유명미는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말을 하기 전에 육 대장군이 자리에 없음을 확인했던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녀도 감히 그렇게 말하지는 못했다.
“당신……!”
소여방은 화가 나서 안색이 흙빛이 되었다.
“오라버니! 유 낭자와 령안이는 친구 사이예요. 유 낭자가 령안이를 위해 나서서 편을 들어 주니 얼마나 다행이에요. 제가 다 기쁘네요. 령안이의 억울함을 해명해 주는 사람이 생겨서요.”
소여방에 비하면 소함연은 확실히 고단수였다. 가벼운 말 한마디로 유명미의 말을 월령안의 편을 드느라 육 대장군을 비난하는 거로 바꾸어 버렸다.
“참 오지랖도 넓네요.”
유명미는 소함연을 힐끗 보더니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내가 소여방을 조심하라 했다 한들 어쩔 건데? 정 안 되면 우리 고모할머니, 태후 마마를 찾아가 하소연하면 그만이야.’
전 낭자는 소함연을 힐끔 보고 다시 유명미를 힐끔 보았다. 망설임 없이 소함연과 소여방을 뒤로하고 유명미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리고 그녀의 손을 잡더니 미안한 기색으로 말했다.
“좀 전에는 제가 말실수를 했네요. 유 낭자께서는 너무 나무라지 말아 주세요.”
전씨 가문은 대대로 학자 집안이었다. 그 집안 아들들은 사대부 사이에서도 명성이 높았으며, 집에서도 엄하게 단속했다. 그러나 큰딸이 요절하는 바람에 유일하게 남은 작은 딸을 애지중지했다.
그 바람에 전 낭자는 습관적으로 신분이 낮은 사람을 깔보았다. 그래서 이번에도 월령안을 얕잡아 본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어리석다는 뜻은 아니었다.
유명미의 말이 듣기는 거북하지만, 그녀를 위한 말임은 분명했다.
“제가 왜 전 낭자를 나무라겠어요. 아까는 저도 조금 안 좋게 말했네요. 제게 화가 나지 않으셨다면 다행이에요.”
전 낭자가 수그러들자, 유명미도 부드러워졌다. 그녀는 얼굴을 붉히며 낮은 목소리로 해명했다.
“일부러 그랬던 건 아니에요. 다만 낭자를 보니 령안이의 처지가 떠올라서 마음이 답답했을 뿐이에요.”
‘이 세상은 여인에게 너무 각박해.’
그녀는 다만 자신과 월령안 같은 여인들을 위해 억울함을 토로했을 뿐이었다.
유명미는 상대방의 자존심을 전혀 생각해 주지 않았다. 그녀는 육 대장군 마저 대놓고 비난했다. 그 자리에 있던 모두는 매섭게 말했던 유명미의 눈치를 보았다. 월령안의 흠을 잡으려던 사람들도 이제는 찍소리도 내지 못했다.
더욱이 유명미의 말은 월령안을 좋아하는 아가씨들의 동조를 얻었다.
아가씨들은 원래 그렇다. 앞장서는 사람이 없으면 입을 열기 수줍어하며 하나같이 조신하게 굴었다. 그러나 일단 누군가 앞장서서 입을 떼기만 하면, 그녀들은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소여방을 제외한, 연회에 참석한 다른 공자들은 제아무리 월령안이 싫어도 이런 상황에서는 말을 아꼈다.
오래지 않아, 월령안을 계기로 시작되었던 보이지 않는 전쟁은 소리 없이 사라졌다.
다만 소여방과 소함연 남매는 여전히 포기하지 못하고 전 낭자에게 몇 번이고 접근하려 했다. 그러나 전 낭자도 영리했다. 유명미 곁에 줄곧 붙어 있으면서 소씨 남매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다.
소여방이 언짢음을 드러내자, 소함연은 그의 팔을 슬쩍 꼬집으며 위로했다.
“오라버니, 시간은 아직 많아요.”
“오늘이 아니면 나는 전 낭자와 접촉할 기회가 전혀 없다. 그런데 어떻게 전 낭자의 마음을 돌린단 말이냐?”
소여방이 조급해한다고 나무랄 수는 없었다. 그도 이제는 나이가 적지 않았다. 죽은 약혼녀 전씨를 위해 삼년상을 치를 적에는 정이 깊다는 명성을 쌓을 생각이었다. 황제의 신임을 받는 아버지가 있으니 훌륭한 명성이 생기면, 반드시 공주를 부인으로 맞아들일 수 있다고 여겼다.
그러나 예상외로 월령안이 끼어드는 바람에 그의 명성은 땅에 떨어졌다.
공주를 맞아들일 수 없게 되었으니 이제는 전 낭자가 최선이었다. 일 년에 한 번 있는 춘일연은 그가 전 낭자에게 접근할 유일한 기회였다. 오늘 기회를 잡지 못하면, 전 낭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방법이 없었다.
“오라버니, 제가 있잖아요. 서두르지 마세요.”
소함연은 침착했다.
“네가? 흥……. 너, 저 아가씨들하고 교분이 깊다고 하지 않았느냐? 내가 볼 때는 아닌 것 같구나.”
소여방도 아가씨들이 자기 누이동생을 별반 좋아하지 않음을 알아차렸다.
“저는 삼 년 동안이나 변경에 없었잖아요. 저들과 소원해지는 게 정상이죠.
오라버니, 걱정하지 마세요. 월령안도 저들을 달래서 호감을 샀는데, 저라고 못 하겠어요?”
소함연은 입꼬리를 올리며 가볍게 웃었다. 그 모습에는 자신감이 넘쳐났다.
이 말을 듣자, 소여방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도 다소 느긋해졌다.
‘내 누이동생이야 어려서부터 남의 호감을 사는 건 잘했지. 월령안, 그 못나고 비쩍 마른 고집쟁이 계집애보다 내 누이가 훨씬 영리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