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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226)화 (226/1,004)

226화 전 부인이라는 호칭은 뗄 수가 없겠군

춘일연에 온 사람들은 모두 젊은 남녀였다. 예상치 못하게 마주치게 되니 모두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굳은 자세로 인사를 주고받더니 두 줄로 갈라 섰다. 그렇게 갈라 선 것이 무색하게도, 그들은 곧 흘끔흘끔 서로를 훔쳐보았다.

말을 걸고 싶으면서도 부끄러워 망설이는 그 모습에 월령안도 참지 못하고 웃음을 지었다.

소녀들의 감정은 이렇게 시처럼 아름답다.

월령안은 어린 아가씨들이 이렇게 계속 수줍어하기만 하면 분위기가 어색해질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웃음을 터뜨리며 사람들을 들어가게 했다. 같은 장소에 있어도 문어귀에 서 있기만 하면 서로의 기대와는 달리 아무 일도 생기지 않을 테니.

* * *

“장군의 전 부인은 호방하시네요. 명문가의 종부(宗婦)로도 손색이 없겠습니다.”

최일과 육장봉은 연회에 참석하는 데는 흥미가 없었다. 흥분한 공자들과 전혀 어울리지 못하니 자연스럽게 맨 뒤로 떨어졌다.

쑥스러워하는 아가씨들 틈에서 월령안이 호방하면서도 적절하게 처신하는 모습이 점점 두드러졌다. 최일도 꼬투리를 잡을 수 없었다.

“말하는 것을 쉬지 않는군.”

육장봉은 조정에서 말수가 적고 상대하기 어렵기로 소문난 호부 좌시랑 최 대인이 왜 이렇게 말이 많은지 알 수가 없었다.

말끝마다 ‘전 부인’, ‘전 부인’ 하는 게, 그가 아내를 내쳤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려는 모양이었다.

최일은 웃음을 지으며 앞쪽을 가리켰다.

“대인, 보시지요. 소인이 말씀드렸잖습니까. 말하지 않는다고 사실이 변하지는 않는다고요.”

육장봉은 최일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다.

유경장이 월령안의 옆에 다가가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가 월령안에게 뭐라고 했는지는 몰라도, 햇빛 아래에서 그녀가 활짝 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 웃음은 꽃처럼 아름다웠다. 두 눈은 빛이라도 뿜어내듯 반짝거리고 있었다.

최일은 그걸로도 부족한지 싱글거리며 말했다.

“옥처럼 아름다운 한 쌍이네요. 대장군, 보시지요……. 마치 신혼부부 같지 않습니까?”

유경장은 오늘 주홍색 두루마기를 입었다. 월령안이 입은 치마는 연회색 바탕이지만, 꽃장식이 오색찬란해서 멀리서 보면 혼례복처럼 보였다. 두 사람이 나란히 서 있으니 막 혼인한 부부처럼 잘 어울렸다.

육장봉은 한 번 훑어보더니 코웃음을 쳤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지.”

“그럼 월 낭자와 장군 중 누가 송충이고, 누가 솔잎입니까?”

최일이 웃으며 물었다.

육장봉은 최일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 긴 다리를 성큼 놀려 그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 움직임에 놀란 최일은 잠시 멍해졌다가 곧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러실 거면 월 낭자를 왜 내치셨습니까?”

그때, 등요 공주 옆에서 시중을 들던 어린 궁녀가 어느새 월령안의 앞에 나타났다. 그녀는 다급한 얼굴로 월령안을 막아섰다. 그리고 애걸하는 얼굴로 입술을 달싹였다.

최일은 월령안이 난감한 표정을 짓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그녀는 등요 공주의 궁녀를 따라갔다.

최일은 발걸음을 멈추고 멀어지는 월령안의 뒷모습을 보면서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등요 공주가 월령안에게 악의를 품었을 게 뻔한데 이렇게 쉽게 상대방을 따라가다니. 함정일까 두렵지도 않나?’

최일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월령안이 떠나간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몇 걸음 걷기도 전에 육장봉에게 길을 가로막혔다.

“최 대인, 쓸데없는 일에 나서지 말아야 오래 살 수 있네.”

“월 낭자가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최일이 정색하며 말했다.

육장봉은 흥, 하고 코웃음을 치더니 말했다.

“자네는 월령안을 너무 모르네.”

확실히 위험하기는 했다. 그러나 위험한 사람은 절대 월령안이 아니었다.

* * *

연회에 참석한 아가씨들과 공자들은 일제히 유화원으로 들어섰다. 젊은 남녀가 함께 모이자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다.

익숙한 사람들은 두어 명씩 모여서 풍류를 이야기하며 수줍은 듯 대담하게 상대방을 떠보았다. 홀로 앉아 다과를 즐기며, 사람들이 노는 모습을 지켜보는 이도 있었다.

사람들이 들어서자 유화원은 떠들썩해졌다. 앞서 연회에 참석했을 때는 홀로 구석에 앉아 놀 수밖에 없었던 정 낭자의 옆에도 꽤 많은 아가씨가 함께하고 있었다.

정씨 가문 형제도 옷을 갈아입고 돌아왔다. 그들은 혼자 어색하게 있을 누이동생이 걱정되어, 그녀를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려고 했다.

예상과 달리, 누이동생은 옆의 아가씨들과 신이 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평소의 외로움과 쓸쓸함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모습이었다.

“누이가 어떻게 된 거죠? 오늘 기분이 아주 좋아 보이는데요?”

정씨 가문의 이공자가 옷을 갈아입고 돌아오니, 사람들이 전부 유화원으로 가고 있었다. 그는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술을 민망한 부위에 흘렸던 것을 본 사람은 없겠지?’

“모르겠구나. 어찌 된 일인지 오늘은 누이가 사람들과 어울리고 있어. 평소엔 남들이 자기를 뚱뚱하고 못생겼다고 놀릴까 봐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지 않고 피했는데 말이야.”

정씨 가문 대공자도 어리둥절했다.

이공자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도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누이가 즐거워하면 그걸로 됐죠.”

대공자도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눈시울이 어느새 붉어졌다. 누이동생이 이렇게 즐거워하는 모습은 아주 오랜만이었다.

정씨 가문의 대공자와 이공자는 정 낭자가 꽃처럼 활짝 웃는 모습을 보자, 한쪽에 서서 바보처럼 따라 웃었다.

“큰 오라버니, 둘째 오라버니…….”

정 낭자는 누군가 자기를 쳐다보는 듯한 시선을 느꼈다. 고개를 들자 두 오라버니가 보였다. 당장 폴짝폴짝 뛰면서 즐거운 얼굴로 둘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옆에 있는 친구들에게 한마디 한 뒤, 오라버니들에게 달려왔다.

“큰 오라버니, 둘째 오라버니, 어디 가셨어요? 아까 제가 계속 찾아다녔다고요. 어? 왜 옷을 갈아입으셨어요? 뭐 하러 가셨어요?”

대공자는 그들이 육 대장군의 시선에 놀라 술을 흘리고 말았던 일을 알게 하고 싶지 않아서 먼저 말했다.

“누이, 우리를 왜 찾았느냐?”

“그게……. 어라? 월 언니는요?”

정 낭자는 두 오라버니를 월령안에게 소개해 주려고 한참이나 찾았다. 그러나 어디에서도 월령안의 그림자를 찾을 수 없었다.

“월 언니가 어디 갔지?”

“월 언니? 그게 누구냐? 아까 너와 이야기를 나누던 낭자 말이냐?”

이공자도 어리둥절했다. 그는 조금 전까지 누이동생과 이야기를 나누었던 낭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사람이야?”

“아니에요. 령안이에요. 월령안, 월 언니요.”

정 낭자는 월령안을 언니라고 부르면서 말끝마다 월 언니라고 했다. 부르는 말투가 대단히 친근했다.

“월령안이라고? 육 대장군의 전 부인 말이야?”

이공자가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마침 육장봉과 최일이 이 말을 들었다. 예상대로 육장봉의 안색은 어두워졌다. 최일은 하마터면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아무래도 전 부인이라는 호칭은 뗄 수가 없겠군.’

정씨 가문 세 남매는 육장봉이 나타난 것을 모르고 있었다. 정 낭자는 주먹을 움켜쥐고 이공자에게 휘둘렀다.

“무슨 전 부인 말이에요. 얼마나 듣기 거북해요? 월 언니가 이름이 없는 것도 아니고, 왜 자기를 내친 나쁜 남자랑 아직도 한데 엮여야 해요? 오라버니가 월 누님이라고 부르시기 싫다면, 월 가주라고 불러도 되잖아요. 전 부인은 무슨 얼어 죽을, 정말 듣기 싫어요! 다시는 그렇게 부르지 마세요. 우리 월 언니와 그 전 남편은 이제 전혀 상관이 없다고요.”

“저 아가씨가 안목이 뛰어나군요. 그러니 월 낭자의 환심을 샀죠.”

최일은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육장봉의 안색이 지나치게 어둡지만 않았어도, 그는 앞으로 나서서 정 낭자를 칭찬했을 것이다.

‘저 낭자, 말 한 번 아주 잘했네.’

“그래, 그래. 둘째 오라버니가 잘못했다. 월 낭자를 찾아서 뭘 하려고? 월 낭자는 상인이니까 자주 어울려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변경의 낭자들이 제 발로 나쁜 길로 들어섰다며, 너와 어울려 주지 않을 거야.”

이공자는 엄숙한 얼굴로 타일렀다.

정 낭자의 통통한 얼굴에 순간 분노가 가득 찼다. 그녀는 두 손을 허리에 놓고 씩씩거리며 말했다.

“둘째 오라버니, 우리 월 언니를 그렇게 말하지 마세요. 월 언니는 아주 좋은 사람이에요. 만약 오라버니가 우리 월 언니를 나쁘다고 한다면, 저는 둘째 오라버니를 없는 사람 취급할 거예요.”

“누이야, 월 낭자가 네게 무슨 약이라도 먹였니?”

이공자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누이동생을 바라보았다.

“둘째 오라버니,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정 낭자는 이공자에게 눈을 흘겼다.

“오라버니가 이러면, 제가 민망해서 월 언니한테 오라버니를 데릴사위로 들이라고 소개할 수가 없잖아요.”

“데릴사위로 들어가? 누이야, 어디 아픈 것 아니냐?”

이공자는 더욱 기가 막혔다.

그에 비교하면 대공자는 훨씬 침착했다. 그는 이공자에게 경고의 뜻으로 눈을 부릅뜬 뒤, 다정하게 누이동생을 달랬다.

“누이, 무슨 일이냐? 큰 오라버니에게 잘 이야기해 봐라.”

누이동생은 단순한 아이였다. 어쩌면 그 상인에게 속았을 수 있었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그 상인 집안 여인이 누이동생을 괴롭히면 그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었다.

정 낭자는 월령안 이야기가 나오자, 바로 두 눈을 반짝거렸다.

“큰 오라버니, 오라버니는 월 언니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모를 거예요. 제게 다른 낭자들과 어울리게 도와줬을 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치마도 만들어 주기로 했어요. 또 절 손 신의에게 진료받게 해 준다고 했어요.”

“뭐라고? 손 신의에게 진료를 받게 해 준다고?”

대공자와 이공자는 동시에 소리를 질렀다.

“손 신의가 확실해? 약왕곡의 손 신의?”

“네. 월 언니가 직접 한 말이에요.”

정 낭자는 기쁜 얼굴로 대답했다.

“누이, 월 낭자가 널 속이지 않은 게 확실해? 손 신의는 관리를 진료하지 않아. 아버지께서 친히 약왕곡으로 찾아가셔서 손 신의에게 사정하셨지만, 손 신의는 거들떠보지도 않았지. 월 낭자가 손 신의를 청할 수나 있겠어?”

그들도 그녀의 말을 믿고 싶었다. 그러나 눈앞에 놓인 뻔한 현실을 생각하면,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월 언니가 직접 한 말이에요. 손 신의가 머지않아 변경으로 온다고 했어요. 하지만 손 신의는 성에 들어서지 않으니 제가 직접 성 밖으로 나가서 찾아뵈어야 한대요. 월 언니가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제 일은 반드시 책임지겠다고 했어요. 꼭 손 신의의 치료를 받게 해서, 더는 뚱뚱하지 않게 해 준댔어요.”

정 낭자는 월령안이 한 말을 떠올리자, 또 참지 못하고 미소를 지었다.

월 언니는 정말이지 너무 좋았다.

‘만약 큰 오라버니와 둘째 오라버니 중 한 사람이 월 언니와 혼인해서, 내 새언니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정 낭자는 멍청한 두 오라버니를 바라보자 묵묵히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두 오라버니는 어떻게 뜯어 봐도 육 대장군처럼 뛰어나지 않았다.

‘월 언니의 전남편은 무려 육 대장군이었는데, 우리 오라버니들이 눈에 차기나 할까?’

“누이, 그 말이 사실이냐? 월 낭자가 정말 그렇게 말했어?”

이공자는 월령안과 교류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월령안에 대해서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변경에서 월령안과 왕래를 해 본 사람들은 전부 입이 마르게 그녀를 칭찬했다. 월령안이 그런 사람이라면, 어린 여자애를 속이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이죠. 월 언니가 직접 말했어요. 많은 사람이 다 들었는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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