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황 (225)화 (225/1,004)

225화 데릴사위로 데려가도 괜찮아요

“월 낭자, 정말 가능해요? 정말 나한테 옷을 만들어 줄 거예요?”

정 낭자는 월령안이 나서서 자신이 살찐 이유를 설명해 줌으로써,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받아들이게 해 준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물론이죠. 옷도 짓고, 의원도 만나야죠. 이렇게 귀여운 낭자인데, 왜 몸을 관리하지 않고 내버려 두겠어요? 정 낭자가 괜찮다고 해도, 제가 아쉬운걸요.”

월령안은 이 틈에 또 정 낭자의 포동포동한 볼을 다시 조물조물 만졌다. 정 낭자의 살이 빠지면 다시는 이럴 기회가 없을 것이다.

“의원을 만나는 게 정말 소용이 있을까요? 어의도 치료가 안 된다고 했는걸요.”

정 낭자는 마음속으로 작은 기대를 품고 있었다. 하지만 섣불리 희망을 품었다가 잃는 게 더 두려웠다.

“제가 아는 의원은 좀 달라요.”

월령안은 정 낭자의 볼을 한 번 더 조몰락거리고 싶은 충동을 참으며 말했다.

“약왕곡의 손불사예요. 들어 보셨나요?”

“손, 손 신의요?”

정 낭자의 두 눈이 빛났다. 그러나 곧 풀이 죽어 말했다.

“하지만 손 신의는 관리 집안을 위해서는 치료를 하지 않잖아요.”

병을 오래 앓다 보면 의원이 되는 법. 그녀의 이 병은 부모와 오라버니들의 마음에 맺힌 응어리였다. 그들도 예전에 손불사의 이름을 꺼낸 적이 있었다. 하지만 말을 꺼낼 때마다 늘 한숨을 내쉬었다.

손 신의의 의술은 고명했지만, 관리들은 치료하지 않았다. 그녀의 아버지와 오라버니는 손 신의를 모셔 오기 위해 아예 벼슬을 사직할 생각까지 했다. 그녀는 이 말을 듣자, 죽기 살기로 사정해서 그 생각을 포기하도록 했다.

월령안은 웃으며 말했다.

“손 신의가 다른 세도가들을 치료하는지, 안 하는지는 제가 알 바 아니죠. 하지만 정 낭자같이 귀여운 낭자라면, 손 신의도 반드시 치료해 줄 거예요.”

고작 소녀 한 명이었다. 월령안이 손불사에게 그 정도 입김은 넣을 수 있었다.

“정말 가능할까요?”

정 낭자는 멍해졌다. 호박이 넝쿨째 굴러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머리가 어질어질할 지경이었다.

“손 신의는 며칠 뒤에 변경으로 올 거예요. 하지만 성안에 들어오지는 않을 거예요. 그때 치료 받으려면 정 낭자가 성 밖으로 나와야 해요. 괜찮겠어요?”

“네, 네, 네. 그럴게요, 그렇게 하고말고요.”

정 낭자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으로서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자신을 아가씨들의 무리 안에 넣어준 것만으로도 월 낭자가 최고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월 낭자가 이렇게까지 해 줄 줄은 몰랐다.

“정 낭자, 울어요? 이건 좋은 일이잖아요. 울지 말아요.”

월령안은 눈물범벅이 된 정 낭자의 얼굴을 보고, 손수건을 꺼내 그녀의 얼굴을 닦아 주었다.

“울어서 화장이 지워지면 못생겨져요.”

“월 낭자, 저 낭자가 너무 좋아요.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제가 우리 오라버니한테 가서 낭자에게 청혼하라고 할게요. 저희 오라버니는 아주 좋은 사람이에요. 데릴사위로 데려가도 괜찮아요.”

정 낭자는 앞으로 다가가 월령안을 와락 끌어안더니, 뒤돌아서 달려갔다.

그 모습을 본 정 낭자의 시녀가 급히 따라갔다.

“데릴사위라니……. 농담이었는데.”

월령안은 손수건을 든 채 가만히 서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월령안에게 변명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정 낭자가 달려 나가자, 영리한 아가씨 하나가 월령안의 앞에 다가서더니 발그스레한 얼굴로 물었다.

“월 낭자, 저도 낭자를 기쁘게 해 줄게요. 저도 금산 같은 건 필요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저에게도 이렇게 예쁜 옷을 하나 해 주시면 안 되나요?”

“월 낭자, 저도요, 저도…… 저도 낭자를 기쁘게 해 줄게요.”

“월 낭자, 손 신의는 언제 오신대요? 다른 사람도 진료받을 수 있나요? 월 낭자, 저도 우리 오라버니더러 데릴사위로 들어가라고 할게요.”

“월 낭자, 우리 어머니가 그러시는데 낭자가 장사를 그렇게 잘한다면서요. 제가 낭자를 기쁘게 한다면, 제가 시집간 다음에 나와 함께 장사를 해 줄 수 있어요? 용돈 좀 벌게요.”

소녀들의 열정은 늘 직설적이고 뜨거웠다. 앞서 그녀들은 거드름을 피우며 신분을 내려놓지 못했다.

그러나 정 낭자가 첫발을 내디뎠다. 듣기 좋은 말을 몇 마디 했을 뿐인데, 월령안은 무시하지도, 모욕하지도 않았다. 단지 농담하듯이 정 낭자에게 많은 이득을 주었다.

이를 본 다른 아가씨들은 부러워 죽을 것 같았다. 월령안이 이렇게 호의에 제대로 보답하는 사람이라면, 그녀들도 월령안과 친하게 지내고 싶었다.

아가씨들이 월령안을 겹겹이 둘러쌌다. 좋은 말을 하는 데는 돈 한 푼 들지 않는다는 듯, 월령안을 즐겁게 해 주려고 끊임없이 노력했다.

처음에는 다들 좀 힘들어하기는 했다. 하지만 주변에서 입을 열기 시작하자 신분을 내려놓았다.

어쨌든, 함께 모여 즐기는 자리이니, 농담이 지켜질지 말지는 크게 상관이 없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입을 열었으니 서로 창피할 게 없었다.

월령안은 아가씨들에게 둘러싸여 활기찬 재잘거림을 들어야 했다. 결국, 연신 양해를 구하며 수많은 이익을 주기로 약속하고 나서야, 그녀들을 달랠 수 있었다.

* * *

대숲의 저편에서, 최일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월령안이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돈을 물 쓰듯이 하며 아가씨들을 달래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장군의 전 부인은 정말 손이 크네요. 아가씨들을 기쁘게 하는 기술이 유경장 같은 재자(才子)들보다 훨씬 나은데요.”

시간이 얼마나 지났다고, 월령안은 이미 저 소녀들에게는 둘도 없이 좋은 언니가 되어 있었다. 최일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저런 수완과 능력은 보통 사람들로서는 따라갈 수 없었다.

“자네는 술이나 마시게.”

육장봉의 청각은 최일보다 훨씬 좋았다.

그는 월령안이 아가씨들을 달래던 말만 들은 게 아니었다. 그 많은 아가씨가 자기 오라버니를 데릴사위로 보내겠다고 약속하는 것까지 들었다.

그는 월령안은 너무 얕보았다.

물론, 데릴사위 같은 말은 농담에 불과했다. 아가씨들도 진심으로 한 말이 아니었다. 월령안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정 낭자의 오라버니는 바로 정 장군의 아들이다. 그런 자가 어떻게 상인 집안에 데릴사위로 들어가겠는가.

하지만 육 대장군은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그는 칼날처럼 날카로운 시선으로 정씨 가문 형제를 바라보았다.

정씨 가문 형제는 육장봉의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 그들은 아무 영문도 모른 채, 갑자기 느껴지는 살기에 고개를 들고 두리번거렸다. 마침 육 대장군의 살기등등한 시선과 마주쳤다.

두 형제는 깜짝 놀라 몸을 떨었다. 손이 미끄러져 탁자 위의 술 주전자를 엎지르고 말았다.

술이 두 사람의 옷깃에 튀었다.

둘은 서로 얼굴만 쳐다볼 뿐, 어찌할 바를 모르고 망연한 표정만 지었다.

‘육 대장군이 왜 갑자기 우리를 쳐다보는 거지?’

‘방금 우리가 모르는 무슨 일이 생기기라도 했나?’

옆에서 시중을 들던 궁녀가 바로 앞으로 다가가 쓰러진 술 주전자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정씨 가문 두 형제의 옷자락을 훑어보더니, 얼굴을 붉혔다.

술이 공교롭게도 하복부에서 세 치 아래에 떨어졌기 때문이다.

“공자님들, 옷을 갈아입으실 수 있도록 안내해드려도 괜찮을까요?”

정씨 가문의 두 형제는 고개를 숙이고 보더니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육 대장군이 왜 갑자기 자기들을 노려봤는지 고민할 때가 아니었다. 그들은 너무 민망한 나머지 서둘러 궁녀를 따라 나갔다.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본 최일은 점점 가라앉는 주변 분위기를 신경 쓰지 않고,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어린애를 괴롭히시다니. 육 대장군, 위엄이 대단하십니다.”

“명월산장에는 내 사람이 있네. 최 대인은 아내를 맞이하고 싶은가?”

육장봉은 낮은 소리로 조용하게 말했지만, 최일은 바로 웃음을 멈추었다.

최일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하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육 대장군, 같은 수법도 여러 번 쓰시면 재미가 없습니다.”

“수법이 진부해도 먹히면 그만일세.”

육장봉은 손에 든 술잔을 만지작거리면서 맞은편에 앉은 유경장에게로 시선을 던졌다.

유경장은 오늘 지나치게 흥분한 상태였다. 마치 오석산(五石散 - 다섯 가지 광물을 재료로 해서 만든 약물로 환각 작용 등의 부작용을 일으킴)이라도 흡입한 사람 같았다.

최일은 육장봉의 시선을 따라 유경장을 보았다. 어찌 된 영문인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육 대인, 오늘이 지나면, 월 낭자를 맞이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아질 겁니다. 제가 말하지 않는다고 해서 이 사실이 변하지는 않습니다.”

모든 귀족 자제가 다 뛰어난 것은 아니다. 가문마다 벼슬길에 어울리지 않는 아이가 있기 마련이었다. 이런 사람이 월령안과 혼인한다면 나쁠 게 없었다. 심지어 가문에 이익이 될 것이다.

이 세상에서 돈을 떠나 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육장봉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월령안은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남자에게 시집을 가 봤네. 자네 생각에는 월령안이 저까짓 분내나 풍기는 자들을 마음에 들어 할 거로 생각하나?”

월령안은 다른 사람과 혼인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혼인하도록 두지도 않을 것이다.

“육 장군, 분내나 풍긴다는 말은 이렇게 쓰시면 안 됩니다. 장군께서 분내나 풍긴다는 말로 사내들을 표현하신 걸 장군의 스승께서 알게 된다면, 화가 나서 펄쩍 뛰실 겁니다.”

최일은 말을 마치더니 눈을 커다랗게 뜨고 육장봉을 바라보았다. 마치 오늘에야 육장봉을 알게 되었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아니, 장군께서 이렇게 자아도취에 빠져 사시는 걸 월 낭자께서도 아십니까?”

“그럼 내 말이 사실이 아니라는 말인가?”

육장봉은 평온한 어조로 되물었다. 마치 그가 한 말이 더없이 당연하다는 듯했다.

최일은 웃음을 터뜨리며 육장봉에게 읍했다.

“얼굴이 두껍고 속이 시커먼 것으로 치면, 소인은 육 대장군의 발치에도 못 따라가겠습니다.”

육장봉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았다.

* * *

춘일연의 주목적은 미혼의 아가씨들과 공자들이 장기를 선보이며 서로 알아갈 기회를 주는 것이었다. 또 이것이야말로 춘일연에 참석한 사람들이 가장 기대하는 일이었다.

올해의 춘일연은 등요 공주가 주최했다. 원래대로라면 이제부터 무엇을 할지는 등요 공주가 정해야 했다.

그러나 등요 공주는 육 대장군에 의해 ‘술을 깨러’ 간 뒤, 아직까지도 돌아오지 못했다. 그녀의 얼굴에 찍힌 손자국을 생각해 보면, 아마 오늘 돌아오기는 힘들 것이다.

사람들도 등요 공주를 하염없이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평범한 귀족 여인이 섣불리 그녀를 대신해 앞으로의 일정을 정할 수도 없었다. 결국, 월령안은 산장의 주인이라는 이유로, 사람들에게 등을 떠밀려 일정을 주관하게 되었다.

월령안은 아가씨들을 데리고 연못을 돌아 산장 가운데에 있는 화원으로 왔다.

명월산장의 화원은 고조 황제께서 친히 유화원(留花園)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고조 황제께서 친필로 이름을 지으신 명월산장을 풍문으로만 들었는데, 오늘에야 드디어 보게 되네요.”

몇몇 아가씨는 홍예문 밖에 서서 문 위에 쓰인 ‘유화원’이라는 세 글자를 보자 흥분해서 말했다.

이 세 글자에 관심을 가진 이는 아가씨들만이 아니었다. 공자들도 호기심이 동한 참이었다. 양쪽은 공교롭게도 유화원 밖에서 마주쳤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