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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211)화 (211/1,004)

211화 청희 장공주의 부름

월령안의 기억에 따르면, 현재 ‘월령안이 화신의 칭호를 따내지 못한다’의 배당률은 일 대 십이었다.

그 말인즉슨, 그녀가 ‘월령안이 화신이 된다’에 이십만 냥을 걸고, 그녀가 정말 화신이 되기만 한다면, 물주는 무려 은 이백만 냥을 물어줘야 했다. 그 돈을 황금으로 환산하면 이십만 냥이나 되었다.

그중에서 십만 냥에 해당하는 몫을 매씨 가문과 같은 상인들에게 반절 나누어 주더라도, 그녀는 황금 십오만 냥을 버는 셈이다.

즉, 야율제의 머리를 살 수 있는 돈이 손에 들어온다.

“아가씨, 소인이 지금 가서 걸고 오겠습니다.”

원래 집사는 조금 걱정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월령안의 치장한 모습을 보자, 조마조마했던 게 바로 안심이 되었다. 심지어 자신이 소심한 바람에, 더 많은 사람을 끌어들이지 못한 게 은근히 후회되었다.

“다녀오게.”

월령안은 막지 않았다.

그녀가 이토록 공을 들이는 것은 화신이라는 칭호만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명성도 중요했지만, 그녀는 돈을 버는 게 더 중요했다.

* * *

월령안은 집사와 이야기를 나눈 뒤, 마차에 올라 성 밖의 명월산장으로 출발했다.

오늘은 변경의 수많은 귀족 남녀가 성 밖의 명월산장으로 가는 날이다. 그러니 성 밖으로 가는 길은 당연히 안전했다. 월령안은 호위 네 명만 데리고 길을 떠났다.

물론, 남들에게 보이는 사람이 네 명이었을 뿐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육장봉이 보내온 암위와 황금당의 살수가 모두 뒤따르고 있었다. 이들이 있는 한 그녀는 안전할 것이다.

월령안은 만반의 준비를 하고, 반 시진이나 미리 출발했다. 대부분 귀족 여인들이 성 밖으로 나가는 시간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그렇지 않으면 성문 입구에서 시간을 허비할 것이 뻔했다.

그러나 아무리 충분히 준비했더라도, 누군가 작정하고 판 함정은 당해내기 힘든 법이다.

그녀의 마차는 성문 입구에서 막혔다. 등요 공주에게 길을 양보해야 한다는 이유였다.

“등요 공주께서 행차하신다고?”

하인의 보고를 듣자, 월령안은 의아해서 물었다.

어떤 연회든지 신분이 높을수록 늦게 나타난다.

등요 공주 같은 사람은 맨 마지막에 나타나고는 했다. 이렇게 일찌감치 성문을 나설 필요가 없었다.

“아가씨, 공주 마마는 아직 행차하시지 않으셨습니다.”

하인은 고개를 숙이고 대답했다. 목소리에는 억울함이 깔려 있었다.

월령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일부러 날 곤란하게 하는 거로구나.”

“아가씨, 소인이 돈을 써서 병사에게 물어봤는데, 등요 공주께서 특별히 분부하신 거랍니다. 성문을 지키는 병사에게 우리 월씨 가문의 마차를 막아서라고 하셨다는군요. 등요 공주의 마차가 먼저 지나가야 우리도 성문을 나설 수 있답니다.”

하인은 억울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했지만, 동시에 무력감을 느꼈다.

등요 공주의 신분은 차원이 달랐다. 월씨 가문으로서는 등요 공주에게 맞설 능력이 없었다. 그들은 하는 수 없이 성문 안쪽에서 등요 공주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월령안은 마차에 앉아 한참 침묵을 지키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는 등요 공주가 어떤 의도로 그런 명령을 내렸는지 단번에 알아들었다. 그리고 동시에 그녀 자신이 어찌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도 깨달았다.

등요 공주는 신분을 내세웠지만, 단지 그녀를 막기만 했을 뿐이다. 성문을 나서지 말라고는 하지 않았기에 지나친 처사도 아니었다.

월령안은 반격하고 싶어도 그럴 힘이 없었다.

그녀는 화를 내는 대신, 눈을 감은 채 말했다.

“옷을 갈아입혀다오.”

명월산장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이 옷은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는 게 나았다.

만약 등요 공주나 다른 사람이 옷을 보고 시샘하여 망가뜨리기라도 하면, 그녀의 노력이 수포가 될 게 뻔했다.

그리고 등요 공주가 그녀를 가로막은 건, 단순히 그녀의 출입을 저지하려는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등요 공주에게는 반드시 비장의 수가 있을 것이다. 미리 방어해야 하겠군.’

“예, 아가씨.”

수행하던 하녀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대신 묵묵히 월령안에게 다가가 머리의 장신구를 떼어 냈다.

미리 갈아입을 옷을 준비해서 다행이었다. 그렇지 않았으면 오늘 계획에 차질이 있을 뻔했다.

치장을 하는 데는 무려 한 시진이나 걸렸지만, 장신구를 떼어 내는 데는 고작 이각 밖에 걸리지 않았다.

시녀의 손놀림은 아주 빨랐다. 신속히 월령안에게 다른 치마를 갈아입히고 예비용 장신구로 치장해 주었다.

월령안이 준비한 옷은 흰색 교령(交領 – 교차하는 방식으로 여미는 옷깃) 웃옷과 땅까지 끌리는 붉은색 긴 치마였다. 어깨에는 하얀 피견(披肩 - 숄처럼 예복용으로 어깨에 거는 천)을 두르고 있었다. 모양새가 특별하지는 않았지만, 옷감의 재질과 마감이 뛰어난 데다가 월령안에게 유독 잘 어울렸다. 이 옷은 그녀의 몸매를 아름답고 산뜻해 보이게 했다.

치마를 갈아입은 뒤, 하녀는 월령안의 화장을 고쳐 주었다. 인상이 조금 더 또렷해졌다.

“아가씨, 다 되었…….”

하녀가 막 입을 뗐을 때였다. 그녀의 목소리는 더 큰 목소리에 묻혀 버렸다.

“공주 마마!”

“공주 마마!”

“얼른, 무릎을 꿇거라!”

마차 소리, 말발굽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창문을 열지 않아도 밖의 상황을 알 것 같았다.

월령안은 눈을 감았다. 등요 공주가 어떤 수를 쓸지, 어떻게 맞서야 할지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때 성문을 지키는 병사가 마차 밖에서 외쳤다.

“월 낭자, 청희 장공주께서 부르십니다.”

“청희 장공주께서?”

월령안은 눈을 번쩍 뜨고 깜짝 놀라 물었다.

‘어떻게 된 일이지? 등요 공주는?’

“네. 월 낭자, 청희 장공주께서 부르시니 얼른 마차에서 내리십시오.”

성문을 지키는 병사가 거듭 말했다. 태도가 유별나게 강경했다.

“알겠네.”

월령안은 미간을 찌푸렸다. 마음속으로는 불안한 예감이 들었다. 그러나 지체하지 않고 당장 마차에서 내렸다.

그녀는 줄곧 등요 공주를 어떻게 상대할 건지 고심했다. 그러나 생각과 달리 그녀가 만나야 하는 사람은 청희 장공주였다.

‘이건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그녀와 청희 장공주는 전혀 엮일 사건이 없었다.

월령안은 곁에 있는 사람에게 눈짓했다. 하인은 눈치 빠르게 앞으로 다가가 병사에게 돈주머니를 쥐여 주었다. 병사는 무게를 어림잡아 보더니, 거절하지 않았다.

월령안은 안도의 숨을 내쉬고 정중하게 물었다.

“나리, 청희 장공주께서 어쩐 일로 절 찾으시는지요?”

청희 장공주는 등요 공주가 아니었다. 그녀는 사병을 지닌 공주였다. 게다가 영녕후부의 세자비이기도 했다.

아무리 대단한 신분의 사람이라도 청희 장공주에게 밉보일 수는 없었다.

“아마 청희 장공주 마마의 옷이 망가진 모양입니다. 월 낭자가 여기 계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낭자가 전에 미인방의 주인이기도 했으니 도와주십사 부른 것입니다.”

돈을 받은 병사는 성심성의껏 알고 있는 것을 전부 말했다.

‘설마 이게 우연일까?’

월령안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또 정중하게 물었다.

“제가 여기에 있다는 것을 청희 장공주께서 어찌 아셨을까요?”

“등요 공주께서 청희 장공주와 함께 계십니다.”

말을 마친 병사는 굳은 얼굴로 재촉했다.

“월 낭자, 서두르세요. 귀인들께서 아까부터 기다리고 계십니다.”

“감사합니다, 나리. 지금 바로 갈게요.”

등요 공주도 함께 있다는 말을 듣자, 이게 우연이 아니라는 것은 바로 알 수 있었다.

단지 청희 장공주가 왜 등요 공주와 함께 있는지, 그리고 왜 자신을 적대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청희 장공주가 등요 공주한테 이용당하기라도 한 건가?’

월령안이 마차에서 내릴 무렵, 청희 장공주의 행렬은 이미 성문을 나서고 있었다. 백성들이 성문을 드나드는 것을 방해하지 않도록, 긴 행렬이 성문 밖 길옆에 멈춰 서 있었다.

월령안은 성문 안에서 성문 밖까지 걸어가야 했다. 이 길은 결코 짧은 거리가 아니었다. 보통 사람의 걸음걸이로도 적어도 일각이나 걸어야 도착할 만한 거리였다.

그러나 월령안이 성문을 나서려는 순간, 청희 장공주의 친위대가 다가왔다. 그들은 긴 창으로 그녀의 뒤를 막아섰다.

“월 낭자, 서두르시지요. 귀인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촤악!

뾰족한 창끝이 월령안의 웃옷을 스쳤다. 순간, 월령안의 안색이 살짝 변했다. 그녀는 돌아보며 말했다.

“나리, 말이 있나요? 말을 타고 가도 될까요?”

“말은 무슨 말? 얼른 달려가지 못할까!”

말을 마치자 두 호위병은 또 긴 창으로 월령안의 등을 그었다. 이번에는 피가 나기 시작했다.

“윽!”

월령안은 아파서 신음을 흘렸다. 앞으로 비틀거리며 한 걸음 걸었다. 눈에는 차가운 섬광이 번뜩였다.

이 수법은 등요 공주보다 훨씬 수준이 높았다.

‘청희 장공주는 등요 공주에게 이용당한 건가? 아니면 날 노리고 온 걸까?’

하지만 자신이 언제 청희 장공주에게 밉보였는지 알 수 없었다. 줄곧 세상과 담을 쌓고 지내던 청희 장공주가 무슨 일로 그녀에게 트집을 잡는지도 알 수 없었다.

월령안의 당황한 모습은 두 호위병을 즐겁게 했다. 그들은 하하 웃으며 말했다.

“월 낭자, 마지막이오. 이러고도 뛰어가지 않는다면 우리를 탓하지 마시오.”

“좋아요, 뛰어가죠!”

등의 상처가 화끈거리며 아팠다. 월령안은 손을 쓰고 싶은 충동이 들었지만, 상대방의 신분을 생각하자 꾹 참을 수밖에 없었다.

청희 장공주는 그녀를 모욕하려는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반항할 권리조차 없었다.

청희 장공주는 등요 공주보다 훨씬 고단수였다.

처음에는 도움을 청하니 그녀가 승낙하고 갈 수밖에 없었다. 또 직접 나서지 않고 두 호위병을 시켜 그녀를 모욕하게 했다.

설령 월령안이 불만을 느끼고 소동을 피우더라도, 청희 장공주는 책임을 호위병한테 전가하면 그만이었다. 본인은 조금도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다.

‘역시 좋은 의도는 없었군.’

월령안은 저도 모르게 쓴웃음을 지었다. 이것 때문에 화를 내지는 않았다. 오히려 머뭇거리지 않고 치마를 움켜쥐고 뛰어갔다.

하지만 두 호위병은 그녀를 내버려 두지 않았다. 월령안이 이미 뛰기 시작했는데도, 두 호위병의 긴 창이 여전히 뒤쪽에서 그녀의 옷을 베었다.

촤악…….

천이 찢기는 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갑자기 등 뒤가 서늘해짐을 느꼈다.

월령안은 자신이 미리 옷을 갈아입은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화신군을 입기 위해 안에 옷을 여러 겹 받쳐 입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오늘 그녀는 망신을 당했을 게 뻔했다.

두 호위병은 창을 거두고 히죽거리며 말했다.

“아이고, 미안해요, 월 낭자. 댁 옷이 너무 약한 모양입니다. 우리는 힘을 쓰지도 않았는데요.”

“그러게, 그러게. 우리는 힘을 쓰지도 않았어요. 낭자가 우리 창에 부딪히는 바람에 자기 마음대로 찢어진 거지요.”

두 호위병은 말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히죽거렸다. 월령안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그녀의 질문을 미리 막아버렸다.

월령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눈을 감고 계속해서 앞으로 뛰어갔다.

‘이건 시작일 뿐이야.’

진정한 시련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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