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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209)화 (209/1,004)

209화 사라지지 않는 상처

문밖에서 갑자기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월령안은 고개를 돌린 순간,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대장군?”

“음.”

육장봉은 대답하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머리가 반쯤 젖은 채로 있는 월령안의 모습을 보자, 저도 모르게 미간이 찌푸려졌다.

“여인들은 참 번거롭군.”

헤어진 지 한 시진이나 지났는데 월령안은 아직도 머리를 말리고 있었다.

‘오늘 밤 자지 않을 생각인가?’

월령안은 화가 난 나머지, 하마터면 손에 든 수건을 육장봉의 얼굴에 내던질 뻔했다.

‘이 남자는, 야밤에 내 방에 쳐들어와서는 내가 번거롭다고 하는 거야? 내가 자기를 뭘 그렇게 번거롭게 만들었다고?’

월령안은 크게 숨을 쉬고 손에 든 수건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억지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대장군, 야심한 시각에 무슨 일로 찾아오셨습니까?”

“당신 얼굴이…….”

벌레에 쏘인 월령안의 상처는 빨갛게 부어올랐다. 그의 상상보다 심각해서, 보기만 해도 놀랄 정도였다.

“앗!”

월령안은 거울로 자신의 얼굴에 난 흉한 자국을 보았다. 내심 불편한 기분이 들어 손을 들어 가렸다. 그리고 풀이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벌레가 너무 독해요. 연고를 많이 발랐는데도 소용없었어요. 내일 사람을 만날 수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녀도 벌레에 한 번 쏘였을 뿐인데 이렇게까지 심각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돌아오자마자 약을 발랐지만 소용없었다. 얼굴이 여전히 화끈거리며 아팠다. 내일까지도 부기가 빠질 것 같지 않았다. 무언가 다른 수를 생각해 내야 했다.

월령안은 옷소매를 살짝 들어 올려 얼굴을 반쯤 가리고 있었다. 불빛 아래에서 평소에는 찾아보기 힘든 부드러움이 아낌없이 드러나 아름다움을 자아냈다.

하지만 육장봉은 그런 월령안을 감상하는 대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가리기는 뭘 가리오? 내가 못 본 것도 아닌데.”

‘더 못난 모습도 봤는데 내 앞에서 가릴 게 뭐가 있다고? 내가 설마 고작 벌레에 물린 정도로 꺼릴 것이라 생각하나?’

월령안은 말문이 막혔다.

“장군 말씀이 맞네요.”

월령안은 들었던 손을 잠시 멈칫하더니 내려놓았다. 하지만 마음속은 여전히 조금 불편했다. 얼굴의 빨간 뾰루지가 점점 더 가려워지는 것 같았다. 긁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녀가 막 손을 들어 올려 얼굴의 상처를 만지려던 참이었다. 육장봉이 한 손으로 그녀의 손목을 붙들었다.

월령안은 고개를 들고 의아하다는 듯이 그를 불렀다.

“장군?”

육장봉은 차가운 얼굴로 대답했다.

“의원이 손으로 상처를 건드리면 안 된다고 하지 않았소?”

“그런 적 없는데요.”

월령안이 고개를 저었다.

“그럼 지금 내가 말해 주겠소.”

육장봉은 월령안의 손을 놓아주고 뒤로 물러섰다.

“앉으시오.”

월령안의 손목은 손바닥과 마찬가지로 늘씬해 보였지만, 말랑말랑해서 촉감이 좋았다. 육장봉은 그녀의 손목을 다치게 할까 봐 섣부르게 힘을 쓰지 못했다.

그렇게 신경을 썼음에도 그는 그녀의 손목에 눈에 띄는 붉은 자국을 남겨 놓았다.

그 붉은 자국을 보자, 그는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너무 연약하군!’

월령안은 빨갛게 된 손목을 문질렀다. 그러더니 자리에 털썩 앉아 퉁명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래서, 무슨 일로 한밤중에 찾아오셨습니까?”

‘용건이 없으면 빨리 가지 그래? 내 휴식 시간을 뺏고 있는 걸 육장봉은 아나 몰라?’

“약을 가져다주러 왔소.”

육장봉은 옥부고를 꺼내어 열었다.

약냄새가 퍼지자, 월령안은 바로 알아챘다.

“옥부고인가요?”

“맞소.”

육장봉은 대답만 했을 뿐, 월령안에게 어떻게 알았냐고 묻지는 않았다.

옥부고는 궁중의 비약이었다. 시중에서 유통될 리도 없었고, 궁에서 하사하지 않으면 얻을 수도 없었다. 월령안 같은 일개 상인은 돈이 있어도 살 수 없었다. 그런데 냄새만 맡고, 옥부고임을 알아내는 것은 더욱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월령안은 삼 년 동안이나 일품 장군의 부인 노릇을 했다.

그러니 황궁에서 내린 상에는 그녀의 몫도 당연히 들어 있었다. 예전에는 장군부의 여인들을 위해 연고를 하사한 적도 있었다. 월령안은 옥부고를 사용한 적은 없었지만, 그 냄새는 익히 맡아 보았다.

그러나 월령안은 육씨 가문에서 나올 때, 자신이 가지고 갔던 혼수 말고는 아무것도 가지고 오지 않았다.

“음.”

육장봉은 월령안의 앞으로 다가가더니, 연고를 가득 떠냈다.

“얼굴을 옆으로 돌려 보시오.”

육장봉이 뜬 연고는 반병이 넘는 양이었다. 월령안은 그 모습을 보고 고개를 저었다.

“대장군, 제가 할…….”

월령안이 일어나려던 순간, 육장봉이 무뚝뚝하게 말했다.

“뭐 하는 거요? 잠은 안 잘 거요?”

“대장군, 남녀가 유별한데 이런 행동은 예법에 맞지 않은 듯합니다.”

‘연고를 가지고 온 건 고마운데, 약만 주고 갈 수는 없나? 약을 바르는 사소한 일은 나도 혼자서 할 수 있다고.’

육장봉은 차갑게 말했다.

“의원이 환자가 죽어 가는 것을 보고만 있겠소? 치료 행위에 남녀 사이는 없소.”

월령안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말했다.

“장군 말씀이 맞아요.”

월령안은 더는 거절하지 않았다. 귓가의 긴 머리카락을 넘기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 육장봉이 약을 발라 주기 편하도록 고개를 돌려 상처를 드러냈다.

월령안 얼굴에 올라온 빨간 뾰루지는 대단히 심각했다. 확실히 옥부고가 아니면 하루 만에 치료하기는 힘들어 보였다.

육장봉은 허리를 숙이고 월령안에게 가깝게 다가갔다. 그녀의 백옥 같은 피부를 보자, 시선을 살짝 내렸다.

월령안은 아주 아름다웠다. 특히 그녀의 얼굴은 다른 여인들처럼 뾰족하게 마르지 않았고, 적당히 살이 있어 부드러워 보였다. 소녀다운 싱그러움과 생기로 가득 찬 얼굴이었다.

평소 피부를 어떻게 관리했는지는 몰라도, 온몸의 피부가 대단히 희었다. 두 볼은 마치 고급스러운 자기처럼, 가까이에서 보아도 흠집을 찾아낼 수 없었다.

단 한 번 보았을 뿐인데, 육장봉은 눈을 내리깔았다. 그리고 다시 보지 않았다.

그러나 시선을 떨구자, 또 다른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월령안의 풀어헤친 옷 사이로 속살이 보였다.

‘이, 이 여인이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이렇게 경계심이 없을 수가 있나! 자신이 여인이라는 자각은 있나?’

순간, 육장봉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육장봉이 다가오자, 월령안은 그의 몸에서 풍기는 옅고 서늘한 향을 맡았다. 익숙한 향기가 월령안의 정신을 잠시 어지럽혔다.

마치 십 년 전, 그녀에게 사탕을 건네주며 서툴게 위로하던 꼬마 장군이 돌아온 것 같았다.

그러나 월령안은 금방 깨달았다. 눈앞에 있는 사람은 육장봉이지, 그녀의 오빠가 아니었다.

십 년 전의 오빠는 손가락이 희고 가늘었다. 고생이라고는 모르고 자란 귀한 도련님의 손 같았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육장봉의 손가락 끝에는 두꺼운 굳은살이 한 층 박여 있었다. 월령안의 얼굴 위를 미끄러지는 그 손가락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애틋함을 약간 띠고 있었다.

월령안은 그 손길에 전율을 금치 못하며 긴장했다.

그들의 거리가 너무 가까웠다.

그의 동작은 너무 친근했다.

육장봉이 더는 하지 못하게 저지해야만 했다.

그러나 월령안이 입을 열려는 순간, 뺨에 찌르는 듯한 아픔이 느껴졌다.

“아얏!”

방심하고 있던 월령안은 아파서 소리를 냈다. 고개를 돌려 육장봉의 손을 피하려고 했지만, 그는 용납하지 않았다.

“움직이지 마시오.”

육장봉의 목소리에서 알 수 없는 탁함이 묻어났다.

“대장군, 나머지는 제가 할 수 있어요.”

월령안의 목소리도 조금 잠겨 있었다. 긴 속눈썹을 파르르 떠는 모습이 연약하고 가련해 보였다.

사실, 뺨에서 느껴진 아픔도 잠깐이었을 뿐이다. 연고가 스며들자, 아픔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육장봉의 손끝이 그녀의 상처를 문지르고 있었다. 그 낯선 느낌에, 지나치게 친근한 행위에 어쩔 수 없이 입이 바싹 말랐다. 어서 이 상황을 벗어나고 싶었다.

그녀는 지금 육장봉이 자신을 희롱한다고 느꼈다. 그러나 이내 그 생각을 떨쳐냈다. 육장봉이 그럴 리가 없었다.

‘내 생각이 지나친 거겠지.’

“아픈 게 당연하오. 앞으로 조심하시오.”

육장봉은 손에 든 연고를 전부 월령안의 상처에 발랐다. 연고가 잘 스며들도록 여러 번 문질렀다.

연고가 전부 녹고 나서야 아쉬운 듯이 손을 거두었다.

월령안의 얼굴 피부는 양지옥(羊脂玉)처럼 촉감이 아주 좋았다. 중독이라도 된 것처럼 자꾸만 만져보고 싶은 충동을 일으켰다.

“대장군, 감사합니다.”

어찌 되었건, 육장봉이 가져온 연고 덕분에 발등에 떨어진 불을 껐다. 월령안은 육장봉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그런데 눈을 떠 보니, 생각지도 못하게 그녀와 육장봉 사이의 거리가 매우 가까웠다. 거의 맞닿을 정도였다.

두 사람의 몸은 어긋난 채로 겹쳐져 있었다. 덕분에 창호지에 반사된 그림자는 한 몸이라도 된 듯 포개져 있었다.

너무 가까웠다. 두 사람의 관계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거리였다.

‘육장봉은 도대체 무슨 뜻이지?’

월령안은 미간을 찌푸렸다. 몸을 뒤로 젖혀서 둘의 거리를 벌리려고 했다. 그러면서 육장봉을 일깨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장군, 연고는 다 발라졌습니다.”

“당신 이마에 상처가 있군?”

육장봉은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대신 월령안의 이마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 상처는 아주 옅었다. 약간의 붉은 자국만 남았을 뿐, 잘 보이지도 않았다.

하지만 월령안의 피부가 흰 데다가, 평소에 잘 보이지 않던 상처를 가까이서 보니, 주변의 피부색과는 도드라지게 다른 색을 띠고 있었다. 그 상처는 월령안의 미모를 망치는 데 단단히 한몫하고 있었다.

상처의 색깔을 보면 최근에 다친 게 분명했다.

그러나 그는 월령안이 최근에 다쳤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었다.

“이 상처요?”

월령안은 손을 들어 만져보더니, 자조적인 웃음을 지었다.

육장봉이 말하지 않았더라면, 이마에 채 지워지지 않은 흉터가 있다는 것조차 기억하지 못했을 것이다.

월령안은 고개를 들고 웃으며 육장봉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부드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대장군께서 기억하지 못하시나 봅니다? 이 상처는 당신이 입성하던 그날……, 제가 이 상처를 입고 당신을 만나러 갔었지요. 이 상처는, 당신네 육씨 가문이 제게 남긴 거예요.”

시간은 참 좋은 것이었다. 얼마나 지났다고 육장봉은 그 일을 잊었을까. 그녀가 육씨 가문에서 쫓겨날 때 얼마나 초라했는지도 잊어버린 모양이었다.

“알겠소.”

육장봉의 몸이 잠시 굳어졌다. 그는 곧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몸을 똑바로 세우더니, 한 걸음 물러섰다.

그날은 유쾌한 일이라고는 하나도 없던 날이었다.

월령안도 따라 일어섰다. 다시 긴 머리를 넘기고 이마의 옅은 상처를 드러냈다. 그리고 입꼬리를 올려 가볍게 웃었다.

“보아하니, 이제 기억이 나시나 보네요.”

육장봉은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왜 설옥고를 쓰지 않았소?”

‘월령안은 날 얼마나 미워하길래, 자기 얼굴도 신경 쓰지도 않고 상처를 남겼을까?’

“왜 써야 하죠? 고작 흉터 하나가 무얼 바꿀 수 있을까요?”

월령안은 여전히 입을 다문 채 웃고 있었다. 하지만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그 웃음은 섬뜩한 한기를 띠고 있었다.

육장봉은 월령안을 바라보면서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좋은 약만 있다면 아무리 깊은 흉터도 사라질 거요. 당신 이마의 상처도 이제는 거의 보이지 않는군.”

그는 몸의 상처든, 마음의 상처든, 좋은 ‘약’과 회복 시간만 충분히 있다면 흔적 없이 사라질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

월령안은 가볍게 웃었다. 육장봉의 말 속에 담긴 의미는 충분히 알아들었다.

‘그래서 어쩌라고?’

육장봉은 그녀가 아니었다. 그가 상처가 사라질 거라 한다고, 그게 사라지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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