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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208)화 (208/1,004)

208화 저희도 배상금을 올릴까요?

황제는 어진 군주였다. 인자하고 너그러웠다. 강호의 문파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든, 어떤 일이든 용서할 수 있으면 늘 관용을 베푸는 사람이었다.

육장봉은 황제가 좋은 사람임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한 나라의 제왕으로서, 황제는 지나치게 우유부단했다.

만약 강한 세력을 가진 신하가 생긴다면, 황제의 성격으로는 실권을 잃기 쉬웠다.

다행히 황제의 곁에는 그를 보좌할 조계안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황제의 역린이었다.

조계안이 잠한성의 손에 부상을 입자 황제는 크게 노했다. 그래서 육장봉에게 잠한성을 잡아들이라는 명령을 내렸다.

덕분에 모든 일이 자연스럽게 풀려나갔다. 이제 황제는 그만두고 싶어도 그만둘 수 없을 것이다.

어찌 되었든, 이번 강호 문파들을 상대하는 일은 육장봉이 조계안에게 신세를 진 게 맞았다.

물론 조계안이 손을 쓰지 않았더라도, 육장봉은 얼마든지 황제가 무림에 불만을 느끼도록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처럼 깔끔하지도, 효율적이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육장봉도 이번 일에 대해 조계안에게 신세를 졌다고 인정했다.

“원하는 게 뭐지?”

조계안은 육장봉이 먼저 이 말을 꺼내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육장봉이 말을 꺼내자, 조계안의 눈에 순식간에 생기가 돌았다.

“육장봉, 내일…… 날이 밝지 않았으니 내일이라고 치고, 춘일연에서 화신을 뽑을 때 등요에게 투표해라.”

“뭐라고?”

육장봉은 고개를 돌려 조계안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위험한 빛이 번뜩이고 있었다.

“싫으면 등요에게 투표하지 않아도 돼. 아무튼…… 월령안에게만 투표 하지마.”

조계안이 과감하게 한발 물러섰다.

육장봉은 대꾸할 가치도 없다는 듯이 말했다.

“이게 한밤중에 날 불러낸 이유인가?”

‘조계안이 고작 이 정도였나?’

“내가 누구 때문에 춘일연에 참석하지 못하게 됐는데?”

조계안은 콧방귀를 뀌었다. 그러자 육장봉도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런다고 내가 고마워할 줄 아나?”

기실, 천목신교가 있는 한 육장봉에게도 무림의 분쟁을 일으킬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다. 굳이 조계안에게 신세지지 않더라도 그가 조금 더 손을 쓰면 그만이었다.

일단 무림의 질서가 어지러워지면 황제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육장봉에게 병사를 거느리고 분란을 평정하라고 명령할 것이다.

“내가 누구 때문에 이렇게 큰 희생을 치렀는데. 네가 당연히 신경을 써 줘야지.”

조계안은 술동이를 들어 올리더니, 육장봉이 원하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그의 술동이와 부딪혔다.

“술은 다 마셨군. 이 일은 이렇게 하기로 한 거야.”

말을 마친 조계안은 술 단지를 들고 입에 쏟아부었다. 벌컥벌컥, 두어 번 삼키자 술 한 동이가 깨끗이 비었다.

데구루루…….

조계안은 술을 다 마시자, 술동이를 옆으로 내던졌다. 그리고 옆에 두었던 가면을 들고 손을 털며 일어났다.

“육장봉, 시간이 늦었으니 난 이만 입궁하겠어.”

“꺼져.”

육장봉은 술동이를 들고 똑같이 다 마셔 버렸다.

그는 술동이를 버리지 않고 지붕 위에 놓았다.

“하하하하……. 난 오늘따라 기분이 아주 좋은데!”

자기 뜻을 이룬 조계안은 우쭐거렸다. 그는 큰소리로 웃으며 떠나갔다.

육장봉은 바로 떠나지 않고 홀로 지붕 위에 잠시 앉아 있었다. 칠흑 같은 밤하늘을 쳐다보며 웃음을 지었다.

“결국, 예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겠지.”

육장봉은 말을 마치고 일어나더니 지붕 위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그리고 느긋하게 앞뜰로 걸어갔다.

육일과 육이는 대단히 효율적으로 일했다. 육장봉이 돌아왔을 때, 그들은 이미 앞뜰을 잘 정돈한 후였다.

“장군, 일은 모두 처리했습니다.”

육이가 앞으로 다가와 육장봉에게 보고했다.

육장봉은 앞뜰의 망가진 나무, 회랑을 한 번 훑어보았다. 그리고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택에서 손실을 본 것들을 정리해서 책자로 만들어라. 그걸 내일 아침 일찍 수횡천에게 가져다주거라.”

‘수횡천이 돈이 없다고 했었지? 그럼 더 빈털터리로 만들어 주면 되겠군.’

“네, 장군.”

육이가 큰소리로 대답했다.

“오늘 밤, 잠한성을 구출하러 온 사람의 명단도 책자로 정리해라. 난 그놈들의 모든 정보를 알아야겠다. 그놈들의 친지와 친구는 물론이고, 인척과 옛 친구도 놓치지 마라. 제일 중요한 것은 그놈들 문파의 배후 세력이다. 낱낱이 조사해라. 무고한 사람을 잡게 되더라도, 먼지 한 톨조차 놓쳐서는 안 된다.”

형부에서는 그들 열여덟 명만 처리할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 열여덟 명의 배후에 있는 모든 세력도 다 찾아내 청산할 것이다.

그리고 그 시작은 천궁각이 될 것이다.

* * *

육장봉이 미리 대비한 덕에 장군부의 피해는 심각하지 않았다. 중상을 입은 일곱 명을 제외하면, 나머지 시위는 모두 경상을 입었다. 붕대로 싸매고 난 뒤에는 쉴 필요도 없이, 바로 다음 날부터 정상적으로 당직을 설 수 있을 정도였다.

부상 당한 시위는 장군부의 의원이 한꺼번에 치료했다. 중상을 입은 시위에게는 반 달의 봉록에 해당하는 반 냥을 더 주었다. 경상을 입은 시위는 동전 백 푼을 받았다.

예전 같으면 육이는 규칙대로 처리했을 것이다. 하지만 월씨 가문에서 다친 호원들은 후하게 배상금을 받은 전적이 있었다. 그래서 육이는 한참이나 머뭇거리다가 육 대장군에게 시위들을 더 잘 대우해 주는 게 어떤지 물으러 왔다.

다들 먹고 사는 게 쉽지 않은 처지였다. 이렇게 가다가는, 다들 월 낭자의 저택으로 도망칠 것 같았다.

“얼마나 올릴 것이냐?”

육장봉은 거절하지 않았다.

월령안이 제시한 배상 방침은 육십이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했다. 그는 자발적으로 월령안을 보호하겠다고 지원했다. 다른 사람도 말은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반기고 있을 게 틀림없었다.

딱 한 번 위험을 무릅쓰기만 하면 평생 먹고살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당연히 목숨을 걸 사람은 넘쳐났다.

육이는 속으로 육장봉의 자산을 계산해 보고 대담하게 제시했다.

“저희도 월씨 가문만큼 배상금을 내놓을까요?”

육이는 말을 꺼내자마자, 자신이 지나쳤음을 느꼈다.

그들 장군에게 돈이 부족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런 식으로 쓸 수는 없었다.

육이는 다급히 한마디 덧붙였다.

“장군, 일 할은 어떻겠습니까? 월씨 가문의 배상금의 일 할을 주는 겁니다.”

일 할이어도 오십 냥이다. 전보다 훨씬 많았다. 다친 시위들도 아주 좋아할 것이다.

육장봉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생각을 좀 하거라. 월씨 저택에 호위가 몇이고, 장군부에는 몇 명이 있느냐? 또 전선에는 병사가 얼마나 있지?”

“소관이 잘못했습니다.”

육이는 묵묵히 고개를 숙이며 사죄했다.

그도 자기 생각이 지나치게 황당했음을 느꼈다. 그는 월씨 저택의 호원들이 돈 때문에 월령안을 필사적으로 보호하는 것만 생각했다.

그래서 장군부에서도 배상금을 많이 주면 아랫사람들이 월씨 저택의 호원을 부러워하지 않고, 필사적으로 싸우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이 감당해야 할 몫이 얼마나 큰지 깜빡했다.

장군이 모은 재산 몇 푼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돌을 금으로 만드는 재주가 있고, 재신의 품에서 자랐다는 월 낭자도 부담하기 버거울 것이다.

육장봉은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리다가 잠시 후에 말했다.

“전쟁이 끝났으니 남들도 군대의 동향을 하나하나 모두 지켜보고 있다. 이런 때는 일을 크게 벌이지 않는 게 좋아. 예전의 배상금에서 삼 할을 올려줘라. 경상을 입은 자에게는 반일 휴가를 주도록.”

나라에는 국법이 있고, 가문에는 가법(家法)이 있다. 조정에도 사망자, 부상자들에게 일괄적으로 적용하는 배상 기준이 있었다.

그런데 육장봉이 갑자기 그 기준을 올리면 적을 만들게 될 게 분명했다. 황제의 의심도 살 수 있었다.

병권을 쥔 무장은 결국, 그다지 자유롭지 못했다.

“예, 장군.”

육이는 창피한 표정이었다. 그는 단지 높은 배상금으로 아랫사람들을 격려하고 싶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들과 월씨 저택은 상황이 다르다는 사실을 잊었다.

월씨 저택에서는 호원에게 돈을 아무리 많이 주더라도 사적인 거래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달랐다.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은 장군부를 대표했다.

황제에게 육 장군이 돈으로 인심을 산다는 인상을 주어서는 안 됐다. 물론 그들 장군이 인심을 사고 싶다면, 돈에 의지할 필요가 전혀 없기는 했지만 말이다.

육이는 명령을 받고 뒷일을 마무리하러 밖으로 나갔다.

육이가 나간 후 육장봉은 더 이상 공무를 처리할 기분이 나지 않았다. 공문을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월령안. 정말…… 시도 때도 없이 자기 존재를 일깨워 주는군.’

탕!

육장봉은 책상을 세게 두드렸다.

“나와라.”

“장군.”

방 안의 공기가 일렁였다. 암위가 소리 없이 서재 안에 나타났다. 그는 육장봉에게 예를 올렸다.

“황궁에서 전에 옥부고(玉膚膏) 두 병을 보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가서 가져오거라.”

월령안의 얼굴이 벌레에 쏘였다. 그녀가 아프다고는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빨갛게 부어오른 것이 유난히 눈길을 끌어 얼핏 보기에도 심각해 보였다.

월령안은 내일 춘일연에 참석해야 했다. 그러니 얼굴에 흠이 있어서는 안 되었다. 보통 연고를 발라서는 하룻밤 사이에 붓기를 가라앉힐 수 없었다.

옥부고는 궁중의 비약이었다. 모기한테 물려서 빨갛게 부어오르고 아플 때, 한 번만 바르면 이튿날 바로 깔끔하게 나았다. 어의가 궁중의 후궁과 공주, 황자를 위해 만든 것이었다.

황제가 무슨 생각이었는지 몰라도, 육장봉에게 상을 내릴 때 옥부고 두 병도 함께 주었다.

육장봉은 당연히 쓸 곳이 없었다. 그러나 오늘 밤 월령안에게는 매우 필요할 것이다.

그는 월령안과 약왕 손불사가 사이가 좋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옥부고 안에 들어가는 약재 하나는 진상품이었다. 손불사의 의술이 아무리 뛰어나고, 그가 약을 아무리 잘 만들어도, 그가 만든 붓기를 가라앉히는 연고는 궁중의 옥부고보다는 못할 것이다.

“네, 장군.”

암위는 오늘 온종일 육장봉을 따라다녔다. 당연히 장군이 옥부고를 누구에게 주려는지 알았다.

그는 순간적으로 자신의 본분도 잊고, 경악해서 육장봉을 바라볼 뻔했다.

‘장군께서는 무슨 뜻이지?’

다행히도 암위는 바로 정신을 차려 마음속의 호기심과 놀라움을 제때 눌러 버렸다. 말없이 물러갔다가 연고를 가져와 육 장군에게 바친 뒤 다시 물러갔다.

육장봉은 눈앞에 놓인 연고를 바라보며 눈을 내리깔고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발걸음을 옮기는 순간, 손을 들어 연고 두 병을 집어 소매에 넣었다.

때는 이미 자시였다. 평소 육장봉이 침소에 들어갈 때는 훌쩍 넘긴 시각이었다.

그러나 그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다. 바로 말을 타고 장군부를 떠나 월씨 저택 방향으로 달려갔다.

* * *

이각(二刻 – 약 30분) 뒤, 육장봉은 월령안의 처소에 나타났다.

월씨 저택은 칠흑같이 어둡고 고요했다. 금군에게서 도망쳤던 수횡천이 월씨 저택의 사람들을 놀라게 하지 않은 게 분명했다.

“이번에는 사람 구실 한 번 제대로 했군.”

육장봉은 가볍게 콧방귀를 뀌며, 수횡천에 대한 혐오를 감추지 않았다.

월령안의 방 안에는 은은한 촛불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녀의 그림자가 창호지에 비쳤다. 화로를 마주한 채 머리를 말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방 안에는 그녀 한 사람밖에 없었다. 육장봉은 다가가면서 다른 사람의 숨소리가 들리지 않음을 확인했다. 멈추지 않고 계단을 오른 뒤, 문을 밀고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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