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화 거절은 용납하지 않는다
육장봉은 서둘러 떠나지 않았다. 대신 말을 탄 채 저택으로 들어가는 월령안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월씨 저택의 문이 닫힐 때까지 기다렸다가 큰소리를 질렀다.
“나와라!”
“대장군을 뵙습니다.”
검은 옷을 입고, 허리춤에 황금 장신구를 찬 남자가 구석에서 날아왔다. 그는 육장봉의 말 앞에 서서 포권하며 예를 올렸다.
이 사람은 황금당의 살수였다.
황금당은 황금으로만 거래했다. 그들이 황금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내일 월령안을 잘 보호해라. 알겠느냐?”
육장봉은 말 위에서 내려다보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대장군, 우리 황금당에서는 사람을 죽이기만 하지 보호하지는 않습니다.”
그들은 월령안의 안위를 신경 쓰지 않았다.
“거절은 용납하지 않는다. 만약 월령안의 머리카락 하나라도 다친다면 너희 황금당을 평정할 것이다.”
육장봉은 말을 마치자 말 고삐를 당기더니 몸을 돌려 떠나갔다.
말이 갑자기 빙글 돌더니, 검은 옷차림의 남자와 부딪혔다. 다행히 그가 반응이 빨라서 먼저 피했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육장봉의 말에 걷어 채일 뻔했다.
다그닥 다그닥…….
그가 똑바로 섰을 때는 육장봉이 친위대를 거느리고 떠나간 뒤였다.
검은 옷차림의 남자는 그 자리에 서서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육장봉 일행을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변경 사람들은 전부 이렇게 막무가내인가?”
황금 이십만 냥으로 야율제의 머리를 산다고 했는데. 과연 이 거래에서 그들이 돈을 벌 수나 있을까.
그는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 * *
육장봉은 친위대를 거느리고 장군부로 돌아왔다. 장군부의 불빛이 훤히 밝혀진 모습이 멀리서 보였다. 가까이 다가갔더니 격렬하게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장군, 오셨습니까?”
육장봉 일행이 길모퉁이에서 나타나자, 바깥을 지키던 금군이 알아보았다. 소대장이 잰걸음으로 다가오더니 공손하게 육장봉의 말을 끌었다.
“무슨 일이냐?”
육장봉은 말고삐를 상대방에게 넘겨 주었다. 이내 긴 다리를 뻗더니 말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대장군, 전부 장군께서 예상하신 대로입니다. 강호인 무리가 장군께서 저택에 없는 틈을 타 쳐들어왔습니다. 잠한성을 구해내려는 것으로 보입니다.”
금군은 멋지게 이겼다. 소대장은 아주 흥분해 있었다.
“이 강호인들은 무공이 뛰어납니다. 대장군께서 미리 대처하셨으니 망정이지, 저희가 큰코다칠 뻔했습니다.”
“그래.”
육장봉은 대답하고 장군부로 들어갔다. 금군에게 겹겹이 포위당해 속수무책이 된 수횡천이 보였다. 그는 과감하게 싸우지도 못하면서, 도망치려고 하지도 않았다.
‘흥, 이토록 멍청한 꼴이라니. 월령안의 체면을 봐서라도 수횡천을 놓아주려고 했지만, 안 되겠군.’
소대장은 육장봉이 코웃음 치는 소리를 듣자,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초조한 심정으로 해명에 나섰다.
“대장군, 다른 놈들은 전부 잡아들였지만, 저 자만 아직…… 사로잡으려 했으나 무공이 너무 뛰어납니다. 이 많은 사람이 저놈을 포위했는데도 잡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들이 약해서가 아니었다. 상대가 너무 뛰어났다.
“활을 가져와라.”
육장봉은 금군의 일 처리가 깔끔하지 못했다고 질책하지는 않았다.
수횡천의 능력은 그도 잘 알고 있었다. 수횡천이 여기 있는 사람들이 금군이라는 점을 생각하고 적당히 상대하지 않았더라면, 이들은 벌써 죽었을 것이다.
“예, 대장군.”
소대장은 신속히 활을 가져왔다.
육장봉은 활을 당겨 보았다. 그리고 화살 세 대를 시위에 메겼다. 팔을 움직여 활시위를 끝까지 당기더니 수횡천을 조준했다.
“육……!”
육장봉이 나타나자 수횡천은 바로 알아챘다. 그는 속으로 조바심을 내던 참이었다. 몸을 빼서 도망칠지, 아니면 주정 일당을 풀어달라고 육장봉과 협상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하지만 마음을 정하기도 전에 육장봉이 활을 당겨 그를 조준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수횡천의 반응은 아주 재빨랐다. 육장봉이 활을 당긴 순간, 그는 머뭇거리지 않고 바로 피했다.
매우 빠른 동작이었지만, 육장봉의 동작이 더욱 빨랐다.
슉!
화살 세 대가 동시에 수횡천을 노리고 바로 날아왔다.
수횡천은 공중으로 뛰어오르며 화살 세 대를 피했다. 곧이어 또 화살 세 대가 날아왔다.
슉! 슉! 슉!
이번 화살의 기세는 거침없었다. 강한 힘을 싣고 수횡천의 얼굴을 노리고 날아왔다.
푸슉!
총 여섯 대를 쏘았지만, 처음 세 대는 빗나갔다. 나중에 쏜 세 대 중 수횡천은 두 대를 피했지만, 발아래의 한 대는 피하지 못했다.
살을 꿰뚫는 소리와 함께 화살촉이 수횡천의 종아리를 파고들었다.
“윽!”
수횡천이 풀썩 무너졌다. 그는 한쪽 무릎을 땅에 꿇더니 통증으로 신음을 울렸다.
“잡아라.”
육장봉의 손에 든 활은 이미 망가졌다. 그는 두 동강 난 활을 옆에 있던 사람에게 넘겨주며 냉혹하게 명령을 내렸다.
푹!
수횡천은 힘을 줘서 종아리에 박힌 긴 화살을 뽑아냈다.
“육 대장군, 미안하게 됐소.”
말을 마친 수횡천은 훌쩍 뛰어오르더니 손에 든 화살을 육장봉에게 던졌다.
육장봉은 옆으로 몸을 기울여 피했다. 그 짧은 시간 사이에 수횡천은 금군의 포위를 벗어나 도망쳤다.
“서둘러! 잡아라!”
정신을 차린 금군은 재빨리 밖으로 뛰어갔다. 하지만 육장봉이 막았다.
“쫓지 마라.”
그는 어중이떠중이가 아니라 무림맹주 수횡천이다. 조정에서 키운 금군은 물론이고, 그의 수하도 수횡천을 쫓아가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게 중요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수횡천이 도망쳐 봤자, 그의 손바닥 안이었다.
육장봉의 장군부는 수횡천이 오고 싶다면 오고, 가고 싶다면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장군, 소관이 실수했습니다. 벌을 내려 주십시오.”
금군은 일전에 육장봉에게 벌을 받은 적이 있어 미리 겁을 먹고 있었다. 육장봉이 입을 열기도 전에 사죄했다.
“몇 명이나 잡았느냐?”
육장봉은 입구의 계단 위에 서서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모두 열여덟 명입니다. 조금 전 그자만 도망쳤습니다.”
금군은 감히 숨기지 못하고 사실대로 대답했다.
“좋다. 그놈들은 형부로 보내서 처리하도록 해라.”
국법을 어겼으니 조정에서 처리하도록 맡겨야 했다.
“예, 장군.”
육장봉이 질책하려는 기색을 보이지 않자, 금군은 큰 소리로 대답하고 몸을 돌렸다. 그들은 강한 투지를 보이며 주정 일당을 오랏줄에 묶어 압송해 갔다.
“웁, 웁, 웁…….”
주정 일당은 잡힌 뒤에도 육장봉의 욕을 쉬지 않고 했다. 금군이 때려도 보고 욕도 해 봤지만 먹히지 않았다. 결국, 그들의 입을 막아 버렸다.
하지만 이렇게 했는데도 그들은 고분고분해지지 않았다.
금군에게 잡혀 압송되어 가면서도 육장봉의 곁을 지나칠 때, 화가 나고 분해서 필사적으로 그를 덮치려고 했다. 그러나 그 대가는 금군에게 흠씬 두들겨 맞는 것뿐이었다.
“멍청하긴!”
구석에서 낮고 오만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푸른 옷차림에 은색 가면을 쓴 조계안이 구석에서 걸어 나왔다.
그는 몸의 상처가 채 낫지 않아 걸음이 매우 느렸다. 얼마 걷지도 못하고, 손으로 입을 막고 기침을 했다. 몸이 아주 불편해 보였다.
“어떻게 왔나?”
육장봉은 조계안의 병약한 모습을 보자,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네가 갑자기 모든 계획을 앞당겼잖아. 내가 당연히 와서 봐야지. 그래도 내가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되어 가면서 얻어 낸 기회니까, 어쨌든 관심을 기울여야 하지 않겠어.”
조계안의 목소리에는 뼈를 에는 듯한 냉기가 배어 있었다. 육장봉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싸늘했다.
“네가 좋아하는 이화백(梨花白)을 가져왔는데, 어떤가?”
육장봉은 그런 조계안을 바라보면서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다쳤으면 얌전히 있지 않고.”
“이 정도로는 죽지 않아. 그곳에서 기다리지.”
말을 마친 조계안은 발끝으로 땅을 툭 치더니 지붕 꼭대기로 뛰어올랐다. 눈 깜짝할 새에 그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육장봉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육이를 불러 육일이 뒤처리를 하는 데 협조하라고 했다. 그리고 조계안처럼 지붕 꼭대기로 뛰어오른 뒤, 사람들의 시선에서 사라졌다.
* * *
조계안이 말한 ‘그곳’은 육씨 저택 서쪽 뜰의 지붕 위였다.
육장봉은 예전에 육씨 저택의 서쪽 뜰에서 지냈다. 어린 시절, 조계안이 황궁에서 도망쳐 나와 갈 곳이 없으면 육장봉의 작은 거처로 숨어들고는 했다. 한 번 들어오면 며칠 동안 눌러앉고는 했다.
그때 그들은 한밤중에 지붕 위로 기어 올라가, 밤하늘을 바라보며 서로 속마음을 터놓기를 가장 좋아했다.
그 무렵의 조계안은 흉터가 없어 황제와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남들 눈에 띄지 않도록 밤에만 ‘그’ 작은 공간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육장봉이 왔을 때, 조계안은 벌써 술 한 동이를 뜯어 절반을 마신 뒤였다.
그는 가면을 벗고 얼굴의 흉터를 드러낸 채였다. 두 손으로 팔베개를 하고 지붕 위에 반듯하게 누워 있었다.
조계안은 끝없이 펼쳐진 밤하늘을 바라보면서 느긋하게 말했다.
“육장봉, 너 말야……. 우리가 왜 어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
“시간은 누구를 위해서도 멈추지 않으니까.”
육장봉은 조계안 옆에 앉았다. 그도 술동이를 들고 봉인을 뜯더니, 동이째로 벌컥벌컥 들이켰다.
“맛이 어때?”
조계안이 고개를 돌렸다. 하얗게 질린 얼굴에는 병색이 돌았다. 창백한 웃음은 온기라고는 전혀 없이 차가워서 보는 사람이 소름 끼칠 정도였다.
“예전과 똑같은 맛이지.”
육장봉은 오른쪽 다리를 세워 술동이를 들고 있는 손을 무릎 위에 걸쳤다.
“난 또 네가 월령안에게 길들어 입맛이 까다로워진 줄 알았어. 내가 가져온 술은 거들떠보지도 않을 줄 알았지.”
조계안은 조롱하듯 말했다.
“할 말이 있으면 바로 해. 난 너랑 수수께끼를 할 마음은 없으니까.”
육장봉은 조계안을 차가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조계안이 일어나 앉으면서 육장봉을 마주 보았다. 그의 시선은 육장봉보다 훨씬 차가웠다.
“주정이 사람들을 더 모을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미리 그물을 걷어버린 건 월령안 때문이지?”
“그게 중요한가?”
육장봉은 직접적으로 대답하지 않았다.
“물론 중요하지! 그래도 내가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되면서 만들어 낸 기회잖아?”
조계안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더욱 음침하게 웃었다.
그가 잠한성에게 다쳤기 때문에 잠한성을 잡아들일 수 있었고, 그 때문에 무림인들이 나서게 되었다. 그는 그 일이 우연이 아니었다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여인 하나 때문에 형제가 죽든 말든 신경 쓰지 않다니. 육장봉, 많이 컸네.”
조계안의 말이 맞았다. 그가 크게 다치지 않았더라면, 육장봉이 강호 여러 문파를 적대시해서 잡아들이려는 계획은 이처럼 순조롭지는 못했을 것이다.
강호의 문파들이 까다로운 상대라서가 아니었다. 황제의 태도 때문이었다.
황제는 강호의 문파들에 손을 쓸 계획이 없었다. 특히 그들이 겉으로나마 협조적이라면, 더더욱 손을 쓰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지나치게 소란을 피우지만 않는다면, 황제로서는 굳이 손을 쓸 필요가 없었다. 잠시라도 조용하게 지낼 수 있다면 그대로 두면 그만이었다.
만약 그들이 조정의 체면을 전혀 봐주지 않고, 일을 지나치게 키운다면, 황제도 병력을 동원해 진압할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이 물러서기만 한다면, 황제도 끝까지 괴롭히려 들지 않고 양보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