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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205)화 (205/1,004)

205화 꽃의 선녀

육장봉이 천궁각에게 기회를 주려고 한다면 이는 좋은 일이었다. 월령안은 천궁각의 실력을 보여 주는 데 도움이 되고 싶었다.

“기대하겠소.”

육장봉은 떠나기 전에 그윽한 눈빛으로 월령안을 바라보았다.

“날 실망하게 하지 마시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월령안은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자신감이 가득한 태도였다.

소갑은 옆에 서서 놀란 나머지 크게 숨도 쉬지 못했다. 육장봉이 떠나가서야 조심스럽게 앞으로 다가와 불안한 목소리로 물었다.

“월 낭자, 방금…… 제가 말실수를 한 건가요?”

“네.”

월령안은 소갑을 위로한답시고 거짓말을 하는 대신 솔직하게 대답했다.

“육 장군의 일은 우리 둘이 뒤에서 얘기할 것이 못 됩니다.”

“하지만 전 육 장군의 얘기를 뒤에서 한 적이 없는데요?”

소갑은 멍한 얼굴로 말했다.

“육 장군에 관한 얘기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는데요?”

“했어요. 제가 육 장군께 소박맞은 이야기를 꺼냈잖아요.”

공숙한은 그녀가 자유의 몸이 된 것을 축하한답시고 특별히 선물까지 준비했다. 육장봉을 의식한 행동임이 분명했다.

물론, 공숙한은 그녀의 좋은 친구로서 올바르지 못한 행동을 한 것은 아니었다.

“아……. 제, 제가 깜빡했어요. 월 낭자는 육 장군과 혼인했던 사이였죠.”

소갑은 울상을 하고 불안하게 물었다.

“육 장군께서 우리 소각주께 보복하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육 장군이 천궁각의 실력을 볼 수 있도록, 소갑이 잘 해내야 해요.”

월령안은 소갑의 어깨를 다독여 주면서 위로했다.

‘기분이 좀 상하기는 했겠지. 하지만 육장봉도 그렇게 옹졸한 사람은 아니니까, 보복까지는 안 하겠지? 기껏해야 트집이나 좀 잡겠지.’

실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이 트집을 잡더라도 두려워할 게 없었다.

“월 낭자, 걱정하지 마세요. 이번 장치는 제 사부께서 직접 설치하신 겁니다. 절대로 문제가 없을 거예요. 일전에 제가 한 번 시험해 봤어요.”

기관 장치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자, 소갑은 기운을 번쩍 차렸다.

“월 낭자, 보호구를 다 입었죠? 이제 뜰 밖에 있는 그네로 가면 돼요.”

“좋아요.”

월령안은 대답하고 다시 한번 잘 살펴보았다. 아무 문제가 없음을 확인하자, 그제야 소갑을 따라 뜰 밖의 그네 옆으로 갔다.

“월 낭자, 우리가 말한 대로 먼저 올라가서 서 계세요. 제가 장치를 작동시킬게요. 잠시 후에, 그네가 낭자를 지붕 꼭대기까지 올려 줄 거예요. 만약 무섭지 않다면, 그네를 두어 번 흔드세요. 공중에 서서 그네를 탈 때, 치마가 바람에 나풀거리는 모습이 가장 아름답다고 사부께서 말씀하셨거든요.

만약 무섭다면 서서 움직이지 마세요. 향 반 개가 탈 시간이 지나면, 기관이 작동되면서 낭자를 태운 채로 배나무 숲 방향으로 날아갈 거예요.”

소갑은 두 눈을 반짝거렸다. 유난히 흥분한 모습이었다.

“사부께서 멈춰야 하는 지점은 세 군데를 설치하셨어요. 월 낭자는 그때 주먹만 꼭 쥐고 있으면, 반지에 설치한 기관이 작동하면서 사전에 설치해 놓은 비단 조화가 튀어나올 거예요. 그 조화가 천천히 피어나면서 지붕에서부터 배나무 숲까지 길을 만들어 줄 겁니다.

처음에는 낭자가 배나무 숲에 도착해서 첫 번째 배나무 위, 두 번째는 배나무 숲 중간에 있는 가장 큰 나무 꼭대기에서, 마지막은 배나무 숲을 벗어날 때예요. 그때 멈추시면 비단 조화가 낭자를 따라서 풀밭까지 피어날 거예요.

아! 그리고 우리가 풀밭에 표시해둔 곳은 모두 밟아야 해요. 밟자마자 바로 발을 떼시면 낭자의 발아래에 꽃이 피어날 겁니다.

이것 말고도, 월 낭자가 배나무 숲을 벗어날 때도 꽃잎이 떨어질 거예요. 생화 꽃잎은 찾기 힘드니까, 아쉽지만 지금은 꽃잎을 뿌리지 않겠어요. 그래서 오늘 밤에는 그 효과를 확인하지는 못할 거예요.

하지만 내일 월 낭자가 등장할 때는 제가 뒤에서 꽃잎을 뿌려 드릴게요. 분명 아주 아름다우실 거예요.”

“알겠어요.”

월령안은 미리 한 번 듣긴 했지만, 지금 소갑이 반복해도 귀찮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는 차분하게 잘 듣고 소갑의 지시대로 그네 위에 올라섰다. 그리고 그네 양쪽의 밧줄을 잡고 말했다.

“준비됐어요.”

소갑은 다시 한번 자세히 살펴보고 문제가 없음을 확인했다. 그다음 옆으로 가서 장치를 작동할 준비를 했다.

“월 낭자, 지금 시작할게요. 걱정하지 마세요, 제 사부께서 잘 살펴보셨어요. 아무 위험도 없을 거예요. 절대 무서워하지 마세요. 우리 사부를 믿으셔야 해요.”

“무섭지 않아요.”

그녀는 천궁각과 여러 해 동안 협력 관계를 유지해 왔으니, 그들의 실력을 잘 알고 있었다. 정말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소갑은 월령안에게 손짓을 하더니, 숫자를 거꾸로 세기 시작했다.

“셋, 둘, 하나, 출발!”

소갑은 크게 소리를 질렀다. 그의 외침에 따라 월령안이 탄 그네가 천천히 하늘로 떠올랐다.

* * *

이때, 세상은 칠흑처럼 어두웠다. 그 와중에 유독 침향원과 배나무 숲만 등불로 환히 밝혀져 있었다.

육장봉은 배나무 숲 밖의 전망대에 서 있었다. 침향원과 배나무 숲이 있는 쪽에서 갑자기 등불이 켜지자, 고개를 돌려 살펴보았다.

그러자 환한 빛 한 줄기가 천천히 떠오르는 것이 눈에 띄었다.

처음에는 어렴풋한 그림자만 보였다. 그 빛줄기가 천천히 떠오르다가 지붕에 걸리자, 육장봉은 그것이 그네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또 그네 위에 한 사람이 서 있는 것도 보였다.

멀리 떨어져 있어 그네를 탄 사람이 누구인지는 알아볼 수 없었다. 단지 밤바람에 나풀거리는 치맛자락으로 누구인지 짐작만 할 뿐이었다.

“월령안?”

‘월령안이 뭘 하려는 거지? 저렇게 거창하게?’

육장봉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리고 말았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답답함이 느껴졌다.

더 볼 필요도 없이, 이 장면만으로도 충분히 상상할 수 있었다. 내일 춘일연에 참석한 사람들이 갑자기 공중에서 나타난 월령안을 보고 얼마나 경이로움을 느낄까.

월령안은 원래 미인이다. 그런데 이렇게 선녀처럼 보이는 효과까지 더해 보라. 설령 칠 점짜리 미모라 해도 십이 점으로 보일 수 있었다.

앞쪽에 있던 그림자가 갑자기 움직였다.

그림자는 배나무 숲의 방향으로 천천히 날아왔다. 마치 선녀가 강림한 듯했다.

공중에서 날고 있는 월령안의 자태는 아름다웠다. 바람에 나부끼는 긴 머리와 치마폭이 그녀에게 신비로움을 더해 주었다. 어두운 밤의 장막이 드리우고 있었지만, 육장봉에게는 월령안이 지금 이 순간 얼마나 아름다운지 똑똑히 보였다.

하지만 더욱 놀랄 만한 광경은 그다음에 펼쳐졌다.

팟!

월령안의 발끝이 꽃밭을 살짝 밟았다. 그녀는 잠시 멈추는가 싶더니 배나무 숲 방향으로 계속 날아갔다. 그러자 그녀의 뒤쪽으로 꽃송이가 하나하나 피어났다.

모든 꽃송이가 대야만큼 큼지막해서, 공중에서도 존재감을 뚜렷이 드러냈다.

그러나 아쉽게도 지금은 밤이었다. 배나무 숲 밖에 등불을 꽤 많이 걸어 두었지만, 꽃송이 전체를 환하게 비출 수는 없었다.

월령안의 등 뒤에서 커다란 꽃송이들이 활짝 피어났다. 그 속에 있는 월령안은 꽃의 선녀 같았다. 수많은 꽃이 그녀를 맞이하기 위해 하나하나 피어나, 가장 아름다운 자태를 자랑했다.

월령안은 배나무 숲 정중앙에 있는 나무 꼭대기에서 한 번 더 멈추었다가 훌쩍 뛰어 사라졌다.

그녀가 날아가는 궤적을 따라 배나무 숲 위에도 커다란 꽃들이 하나둘 피어났다.

그리고 월령안이 배나무 숲을 날아서 넘어옴에 따라 육장봉과의 거리도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육장봉은 자신에게로 날아오는 월령안을 바라보았다. 자기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고작 춘일연 하나 때문에 이렇게 신경을 써서 준비하다니. 역시 월령안답군.”

이 정도면 소 승상이 도박판에서 지더라도 억울하지는 않을 것이다.

월령안은 천천히 날아 배나무 숲을 금방 벗어났다. 그리고 배나무 숲 밖의 나무 위에 잠시 머물렀을 때였다.

“꺅!”

갑자기 그녀가 비명을 질렀다. 그녀의 온몸이 불안하게 휘청거리더니 바로 아래로 떨어졌다.

“조심해!”

이를 본 육장봉은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그의 몸은 머리보다 반응이 빨랐다. 월령안이 휘청거리던 순간, 바로 전망대에서 훌쩍 뛰어올랐다. 그리고 그녀가 떨어지는 바로 그 순간, 손을 뻗어 안았다.

털썩!

월령안은 육장봉의 품으로 떨어졌다.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고, 몸은 덜덜 떨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은 얼굴이었다. 매우 놀란 것이 분명했다.

“무서워하지 마시오.”

육장봉은 심장이 무언가에 찔린 듯한 느낌을 받았다.

“깜짝 놀랐어요.”

월령안의 목소리는 울먹거림을 애써 누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육장봉의 옷을 꼭 붙든 채 그의 품 안에서 꼼짝도 하지 못했다.

갑자기 안정감을 잃고 고공에서 떨어져 내렸다. 아무리 간이 크더라도 놀라는 게 당연했다.

“괜찮소.”

육장봉은 월령안을 품에 안은 채, 그녀의 등을 가볍게 두드렸다.

월령안은 거절하지 않았다. 거절할 수도 없었다. 이 순간, 온몸에 힘이 풀려 조금도 힘을 쓸 수가 없었다. 머리도 멍해졌다. 자기가 육장봉의 품에 안겨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그녀는 육장봉의 품에 얼굴을 묻고 크게 숨을 여러 번 들이쉬고 나서야 겨우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리고 고개를 든 순간, 코앞으로 다가온 육장봉의 얼굴과 마주했다.

그녀는 그대로 굳어지고 말았다.

‘지금 육장봉이 날 구해 준 거야? 하필이면 내가 육장봉의 품에 떨어진 거고? 이게 다 무슨 일이래? 왜 이렇게 재수가 없지!’

월령안은 갑자기 울고 싶어졌다.

‘너무 한심하잖아!’

그녀는 패배감에 차 숨을 내쉬고 억지로 웃음을 지었다.

“육 장군, 감사합니다. 죄송하지만…… 그만 내려 주세요. 저는 괜찮아요.”

“확신하시오?”

품에 안긴 월령안은 보호 본능을 불러일으키려는 듯 작고 연약해 보였다. 이 작고 부드러운 몸에 상업계를 주무르고, 자신과 대적할 힘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었다.

“확신합니다.”

월령안은 심호흡하고 힘차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 무렵에는 겉으로 태연함을 되찾기는 했다.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더없이 속상했다.

‘아아악! 어째서 똑바로 서지도 못하고 넘어진 거야? 왜 날 구해 준 사람이 육장봉인 건데? 또 육장봉한테 빚을 지다니!! 정말, 정말 너무 짜증나!’

“그럼 뜻대로 하시오.”

육장봉은 고개를 숙이고 평온한 척하는 월령안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는 시선을 내리깔며 눈 속에 떠오른 웃음을 간신히 감추었다.

그는 그녀의 눈에 담긴 짜증과 무력감을 놓치지 않았다. 지금의 덤덤함과 침착함은 억지로 연기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어쩌면 예전에 날 만났을 때마다 보여줬던 덤덤함과 침착함도 모두 연기일 수도 있겠네. 월령안은 내 상상보다 재미있군.’

육장봉은 정중하게 월령안을 내려놓았다.

월령안의 다리는 아직도 조금씩 떨리고 있었다. 발이 땅에 닿는 순간, 다시 넘어질 뻔했다. 다행히도 육장봉이 그녀의 손을 잡아 주었다.

“보아하니, 당신의 몸이 입보다 솔직한 듯하오.”

월령안은 말을 듣지 않는 자신의 몸뚱이에 화가 났다. 손목을 움직여 손을 뺐다. 그러고는 억지로 육장봉에게 웃음을 지으며 감사했다.

“육 장군께 감사드립니다.”

“이게 두 번째요!”

육장봉은 손을 거두었다. 그 손을 등 뒤로 돌리고는 몰래 꽉 움켜쥐었다.

월령안의 손은 그녀의 성격과는 달랐다. 아주 부드럽고, 몽글몽글했다.

아쉽게도 그 손은 잡은 시간은 너무 짧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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