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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204)화 (204/1,004)

204화 세 번만 만난 사이

물론, 월령안은 무 선생을 성으로 들여보낼 능력이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왜 무 선생을 위해 법을 어기면서까지 육장봉에게 큰 약점을 잡혀야 한단 말인가.

천궁각에게 선심을 쓰고 싶기는 했다. 하지만 손해를 보면서까지 도와줄 정도로 그녀가 착하지는 않았다.

“그럼 어떡합니까?”

무 선생은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고 휘청거리는 게 서 있는 것조차 힘들어 보였다.

“운명에 따라야지요.”

육장봉이 이미 분위기를 조성했고, 조정의 태도도 분명했다. 이 상황을 역전시킬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수횡천도 할 수 없었다. 천궁각의 사람은 더욱 안 된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늘 운명을 순순히 따르려 하지 않는다. 항상 자신이 하늘을 이길 수 있다고 여겼다.

그래서 수횡천이 끼어들면 일이 잘 풀리기는커녕 화만 잔뜩 초래할 거라고 예상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도 설득만 했을 뿐이다. 적극적으로 나서서 말리지는 못했다.

젊은이들의 혈기와 의리, 충동적인 행동은 아주 정상적이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말로 해서는 소용이 없었다. 그들이 직접 부딪히게 내버려 두어야 한다. 몇 번 당하고 나야 정신을 차릴 것이다.

그리고 이번 일은 육장봉이 꾸민 함정이 분명했다. 그녀에게 그들을 설득하여 돌아오게 할 능력이 있었더라도, 그렇게 하지 못했을 것이다.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은 따로 있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까지 희생할 생각이 없었다.

“운명을 따르라고요?”

무 선생은 눈을 부릅뜨고 월령안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들은 말을 믿을 수 없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아니면요? 사부께서는 이 국면을 바꿀 능력이 있으신가요? 운명을 따르지 않으시면 어떡할 건가요?”

월령안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무 선생. 저와 협력하는 분이니만큼 한 말씀 드리자면, 당신네 소각주에게 편지를 쓰는 게 좋을 겁니다. 빨리 변경으로 오라고요.”

이번 일에 무탈히 고스란히 몸을 빼는 것은 불가능하다 봐야 했다. 하지만 잘못을 시인하는 자세가 좋고, 조정에 적극적으로 협력하여 문파의 사람들을 단속한다면 조정에서도 모조리 죽이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 황제는 성품이 어질고 슬기로웠다. 제법 좋은 군왕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조정에서도 쓸 사람이 필요했다. 천궁각에는 인재가 적지 않았고, 병기에 정통한 사람도 많았다. 만약 천궁각에서 조정이 만족할 만한 자세로 대처한다면, 이 기회를 이용해 큰 성과를 거두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도 강호인 대부분이 고결한 성품임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조정에 굴복하기 싫어했다. 그래서 그녀도 단지 건의만 했을 뿐, 천궁각이 어떻게 할지는 상관할 수가 없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고작해야 나중에 천궁각이 무너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비싼 가격을 주고 천궁각의 사람들을 사 가는 정도일 것이다.

“월 낭자, 일깨워 주셔서 감사합니다. 바로 가서 편지를 쓰겠습니다.”

무 선생은 주관이 뚜렷한 사람이 아니었다. 진작에 월령안의 말에 겁을 먹고 갈팡질팡하던 중이었다. 그는 어찌할 바를 모르더니 그녀의 말을 듣자마자 바로 편지를 쓰러 달려갔다.

“이봐요, 무 선생! 일단 제가 장치를 시험해 보게 해 줘야죠! 무 선생!”

월령안은 제자리에 멀뚱하게 서서 외쳤다.

‘쓸모 있을 때만 월 낭자고, 원하는 걸 얻으니 바로 버려두는 거야? 천궁각의 사람이 이렇게까지 현실적이었나?’

“월 낭자, 소갑(小甲)이 침향원(沈香院)에 있습니다. 그 녀석을 찾아가세요…….”

무 선생은 그 한 마디만 남긴 채 바람을 일으키며 날 듯한 속도로 달려갔다. 평소의 온순함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월령안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됐어요. 무 선생이 괜찮으면 그걸로 다행이니.”

월령안은 하는 수 없이 홀로 침향원으로 갔다.

월령안을 보호하던 암위는 그녀와 무 선생의 대화를 듣고, 마음속으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암위는 머뭇거리지 않고 바로 다른 사람에게 월령안을 보호하라고 말을 전했다. 그리고 앞뜰로 나와서 육장봉을 찾았다.

“장군!”

암위는 한쪽 무릎을 꿇고 월령안과 무 선생의 대화를 토씨 하나 빼놓지 않고 육장봉에게 그대로 보고했다.

암위가 오지랖이 넓은 게 아니었다. 월령안이 지나치게 총명했다.

그녀는 빙산의 일각만 보고도, 육장봉의 생각을 대부분 눈치챘다.

만약 월령안이 농간을 부려 이 일을 악의적으로 떠벌린다면, 황제는 장군을 의심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 결과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육장봉은 암위의 보고를 듣고,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손을 휘저었다.

“물러가라.”

“예, 장군.”

암위는 몸을 굽힌 채 즉시 물러났다.

암위가 떠난 뒤, 육이가 근심스럽게 물었다.

“장군, 괜찮겠지요?”

육장봉은 손을 내저으며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그녀는 똑똑한 사람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수횡천이 주정을 따라가도록 내버려 두지도, 천궁각을 도울 방법을 말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월령안의 능력이라면 수횡천이 오늘 밤의 일에 개입되지 않도록 온갖 방법을 쓸 수 있었다. 심지어 주정 일당의 계획을 망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현명하게도 손을 쓰지 않았다. 설득이 소용없다는 것을 깨닫고 포기했다. 그들이 육장봉이 판 함정에 빠지게 내버려 두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그녀는 천궁각의 능력을 알고 있었다. 또 육장봉이 강호인을 모조리 죽이지 않으리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기회를 틈타 공숙무를 일깨워 천궁각에게 살 기회를 쟁취하게 했다.

월령안은 판을 꿰뚫어 보면서도 잘난 척 으스대지 않았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 하면 안 되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세상 물정을 잘 알고, 물러설 때를 안다. 그래서 황제는 그녀를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그녀를 망가뜨리지 않고 이용하려 했다.

월령안은 정말 뛰어났다. 뛰어나다 못해 인재를 썩힌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육장봉은 눈을 감고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 * *

월령안은 침향원으로 가서 무 선생의 제자 소갑을 찾았다. 소갑의 설명을 들으며 장치를 쓰는 법을 익혔다. 그다음 한 번 시험해 보려고 준비했다.

“월 낭자, 이 철사가 조이면 좀 아플 수도 있어요. 그래도 좀 참아 보세요.”

소갑은 무 선생이 특별히 월령안을 위해 제작한 보호구를 입혀 주었다.

보호구는 월령안을 보호하는 용도였다. 동시에 가는 철사를 거는 데 쓰이기도 했다. 월령안이 이 철사의 힘을 빌려 ‘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보호구를 착용한 뒤, 소갑은 또 모양새가 특이한 반지를 꺼내 건네주었다.

“월 낭자, 우리 소각주께서는 월 낭자가 반지를 좋아한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무 선생께 장치의 개폐기를 반지 모양으로 만들라고 하셨어요.”

“소각주께서 신경을 많이 쓰셨네요.”

반지는 반달 모양이었다. 마침 그녀의 성씨와도 연관이 있는 모양이라, 평소에 끼기에도 괜찮아 보였다.

월령안은 손가락에 끼고서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대단히 마음에 들었다.

월령안이 좋아하는 것을 보자, 소갑은 순간 눈앞이 확 트이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일부러 비밀스럽게 말했다.

“월 낭자, 제가 살짝 알려드리는 건데요. 이 반지 모양은 우리 소각주께서 친히 그리신 거예요. 낭자가 반드시 좋아할 거라면서요. 게다가 이 반지 말고도, 월 낭자를 위해서 새로운 반지 모양의 암기도 준비했어요. 다음번에 만날 때 월 낭자께 직접 선물로 드린다고 하셨어요. 월 낭자가 그 늙은 남정네를 벗어나 자유의 몸을 되찾으신 것을 축하드린다면서요.”

때마침 걸어오던 육장봉은 소갑의 말을 듣자, 순식간에 얼굴을 굳혔다. 그는 발을 세게 내딛더니,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귀 각의 소각주께서는 많이 한가하신가 보군.”

‘천궁각의 소각주가 천궁각을 살리려고 동분서주하시겠다? 흥!’

육장봉은 뚜벅뚜벅 발걸음을 내디디며 문턱을 넘어 방 안으로 들어갔다.

소갑은 얼이 빠진 얼굴로 육장봉을 바라보다가 또 월령안을 바라보았다. 그는 육장봉을 몰랐다.

월령안도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장군께서 어쩐 일로 오셨나요?”

육장봉은 차가운 시선으로 월령안을 바라보았다.

“당신, 천궁각의 소각주와 사이가 좋소?”

월령안은 어떤 단어를 써야 할지 잘 생각한 뒤에 입을 열었다.

“괜찮은 편이죠.”

친구라고 해도 될 만한 사이였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녀도 무 선생을 일깨워 주지 않았을 것이다.

“자주 만나나?”

육장봉은 옆에 앉더니 굳은 얼굴로 물었다.

월령안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우린 세 번밖에 만나지 못했어요.”

처음은 그녀가 열세 살 되던 해, 천궁각에 가서 거래할 때였다. 그다음은 그녀의 열다섯 번째 생일에 공숙한(公叔寒)이 몰래 변경으로 와 생일을 축하해 줬을 때였다. 마지막 만남은 그녀가 시집가기 전날 밤, 공숙한이 신부인 그녀를 배웅하러 왔었다.

그들은 세 번밖에 만나지 않았지만, 교분은 절대 얕지 않았다.

“세 번만 만난 사이인데, 이렇게까지 신경을 쓰나?”

‘내가 당신이랑 몇 번을 만났는데. 왜 나한테는 이렇게 신경을 쓰지 않지?’

육장봉이 말은 이렇게 하지 않았지만, 월령안은 그의 생각을 알고 있었다. 잠시 침묵을 지키다 말했다.

“월씨 가문과 천궁각은 오랜 시간 협력 관계였어요. 대대로 친분이 있다고 할 수 있지요.”

그녀가 공숙무를 일깨우자마자 육장봉이 찾아왔다. 육장봉은 지금 그녀에게 대놓고 이렇게 말하는 게 분명했다.

‘당신 옆에서 일어난 일들은 크든, 작든 모두 알고 있소. 내 앞에서는 아무것도 감출 수 없으니 감추려고 하지도 마시오.’

월령안은 이미 짜증이 많이 난 상황이었지만, 역시 또 참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때에도 다른 사람의 감시 속에서 살아야 한다니. 정말 최악이군.’

“대대로 친분이 있다고?”

육장봉은 눈썹을 치켜세웠다. 꽤 놀란 표정이었다.

‘월씨 가문의 인맥이 월령안 손에 넘겨졌다고?’

월령안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월씨 가문은 오래 전에 해외에서 사업을 했어요. 그때 사용했던 것들은 전부 천궁각에서 만든 배였어요. 두 가문은 오랜 세월 동안 협력했고 서로를 신임하고 있어요. 천궁각은 아주 괜찮은 협력 상대예요.”

이런 이야기는 굳이 그녀가 말하지 않더라도, 육장봉도 알아낼 수 있었다.

월씨 가문은 상업계에서 오랜 시간 흥망성쇠를 겪으며 막대한 재산과 넓은 인맥을 보유하게 되었다. 이는 사람들이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규모였다.

그런 자산이 있으니, 그녀는 청주로 가서 범씨 가문과 가주 쟁탈전을 벌이는 것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범씨 가문이 월씨 가문의 재산을 앗아갈 수는 있었다. 그러나 월씨 가문이 백 년 동안 쌓은 인맥은 빼앗을 수 없었다.

그녀의 아버지와 오라버니의 일로 그 인맥이 그녀의 손에 순조롭게 넘겨지지 못해, 대부분은 이용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남은 인맥도 아무나 쉽게 얕보지 못할 정도로 대단했다.

“당신은 천궁각을 위해 사정하는 거요?”

‘월령안은 그 소각주를 위해 정말 마음을 쓰고 있군. 조그마한 기회도 놓치지 않으니.’

“아니요. 저는 지금 사실대로 말하고 있어요. 월씨 가문은 항상 가장 좋은 것만 고집해 왔어요. 장군께서도 천궁각에서 제조한 배를 보시면 왜 월씨 가문이 선박사(船泊司)를 버리고, 천궁각을 선택했는지 아시게 될 거예요.”

‘그래, 난 천궁각을 위해 사정하는 거야.’

그녀는 육장봉의 말에서 천궁각에 대한 불만을 읽어냈다.

“그럼 오늘 밤 내가 직접 천궁각의 대단한 능력을 봐야겠군.”

육장봉은 팔걸이를 짚고 몸을 일으키더니, 월령안의 앞으로 다가왔다.

“준비는 끝났소?”

“네. 하지만 여기는 가장 좋은 관람 장소가 아니니, 배나무 숲으로 자리를 옮기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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