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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203)화 (203/1,004)

203화 천궁각은 무사하지 못할 거예요

말을 타니 마차를 탄 것보다 훨씬 빨랐다. 길에서 적지 않은 시간을 허비했지만, 육장봉은 월령안을 태우고도 그녀가 명월산장의 집사와 약속한 시각에 맞춰 도착했다.

도착한 시간을 본 월령안은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분명 그녀 옆에 육장봉의 사람이 있다. 단지 그 사람이 누구인지 모를 뿐이다.

명월산장에 도착 하자마자 육이를 비롯한 친위대는 신속히 말에서 내려 두 줄로 섰다. 그들은 육장봉과 월령안을 가운데에 두고 보호했다.

그제야 월령안은 육장봉의 친위대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한 명이 부족한데요?”

“이미 눈치챘던 것 아니었소?”

육장봉은 월령안을 안고 말에서 내렸다.

월령안의 안색이 약간 어두워졌다. 그녀는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입을 열었다.

“수 오라버니는 조정과 적이 되고 싶어 한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수횡천은 남에게 이용당했을 뿐이다.

“그자를 아직도 신경을 쓰나? 그자는 당신이 죽든 살든 관심조차 없는데.”

육장봉이 냉소적으로 말했다.

월령안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 사람은 제 오라버니예요.”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수횡천은 그녀의 생사를 가볍게 여기는 게 아니었다. 단지 그에게 그녀의 생사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저는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걸요.”

월령안의 얼굴에는 자각하지 못한 씁쓸함이 흐리게 스몄다.

육장봉은 조금도 봐주지 않고 차갑게 비웃었다.

“보호할 수 있다고 해서, 보호가 필요 없는 건 아니잖소?”

월령안은 멍해졌다가 바로 웃으며 말했다.

“장군 말씀이 맞아요.”

그 말이 육장봉의 입에서 나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만약 월령안이 조금 더 일찍 이 말을 들었더라면, 그녀도 수횡천 앞에서 조금 더 오래 버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그저 우스울 뿐이었다.

두 사람은 잠시 말없이 마주 보았다. 분위기가 미묘하게 어색했다. 다행히 얼마 되지 않아 명월산장의 측문이 열렸다.

“갑시다.”

육장봉이 먼저 발걸음을 옮겨 명월산장으로 걸어 들어갔다.

월령안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웃더니, 따라 들어갔다.

그녀는 줄곧 육장봉에게 오늘 무얼 하려는 건지, 무슨 목적이 있는지 묻고 싶었다. 하지만 마음속의 의문을 물어볼 기회가 전혀 없었다.

‘됐다. 묻지 말자. 오늘은 저 사람이 말한 대로 날 보호하러 온 거로 치자고.’

명월산장에서는 이미 준비를 마쳤다. 월령안이 와서 천궁각에서 설치한 장치를 시험해 보기를 기다리고만 있었다.

천궁각 사람이 월령안에게 장치를 어떻게 조종하는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러 왔다.

그러나 상대방은 육장봉을 보자,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온몸을 덜덜 떨며 움직이지 못했다.

“무(茂) 선생, 괜찮으세요?”

월령안은 눈썹을 치켜세우며 천궁각에서 나온 사람을 보았다.

‘아무래도 자기 동료 중에 잠한성을 구하러 간 사람이 있는 걸 아는 모양이군. 그게 아니라면 이렇게 놀랄 리가 없어.’

사실, 육장봉은 특유의 살벌한 기세를 이미 거둔 뒤였다. 설령 육장봉을 알아보더라도 이렇게까지 놀랄 것은 없었다.

“유, 육 장군.”

월령안이 무 선생이라고 부른 중년 남자는 두 다리를 덜덜 떨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표정이었다.

“저, 저…… 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육장봉이 낮은 소리로 말했다.

“나는 오늘 밤 사람을 잡으러 온 게 아니다.”

그는 제 발이 저려 떨었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천궁각에서 살인이나 방화를 저지른 줄 알 것이다.

“저, 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무 선생은 부들부들 떨면서 입을 열었다.

육장봉은 하찮다는 기색을 내비치며 말했다.

“이러고도 무림 호걸이란 말인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겁을 먹다니. 요즘 무림인은 영 아니로군.’

“천궁각에는 장인들만 있습니다. 무림인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에요. 천궁각 사람들은 평소 깊은 숲속에서 거주하며 기관 장치를 설치하는 법을 연구하지요. 그래서 사람과 접촉할 기회가 극히 드물어요. 만약 죄가 있다면, 장군께서 너그럽게 봐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월령안은 겁을 잔뜩 먹은 무 선생을 보자, 자신이 나설 수밖에 없었다.

천궁각의 사람이 화를 자초했다면, 육장봉은 반드시 그들에게 피로 교훈을 줄 것이다.

하지만 그녀로서는 좋은 말을 하며, 적절한 때에 나서 감싸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천궁각과 어떻게 거래를 하겠는가.

천궁각의 사람들은 기관의 설치에 정통했다. 그뿐만 아니라 풍수와 건축에도 훤했다.

앞으로 그녀는 천궁각과 협력할 기회가 아주 많았다. 지금 천궁각의 편을 들어 좋은 말로 감싸 준다면, 앞으로 천궁각의 사람을 쓸 때도 편할 것이다.

어쩌면 그녀에게 가격을 깎아 줄 수도 있었다.

육장봉은 월령안을 훑어보더니, 그녀의 체면을 봐주었다.

“장치를 시험해 본다고 하지 않았소? 가 보시오.”

“대장군께 감사드립니다.”

월령안은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무 선생이 여기에서 설명하게 내버려 두는 대신, 길을 안내하게 했다. 설명은 이동하는 사이에 하면 충분했다.

“월 낭자, 감사합니다.”

육장봉의 시선에서 벗어나자, 무 선생은 정상으로 돌아왔다. 월령안에게 고맙다고 한 뒤, 우물쭈물하며 말했다.

“저, 저기……. 낭자께서 공숙의(公叔儀)를 위해 육 장군께 사정해 주시면 안 될까요?”

공숙의는 성에 몰래 잠입하여 주정과 함께 잠한성을 구출하려는 천궁각 제자였다.

“하늘의 재앙에서는 살아남을 수 있어도, 자기가 만든 재앙에서는 살아남을 방법이 없다고 했어요. 무 선생, 제가 도울 수 있는 것은 반드시 도울게요. 하지만 이번 일은…… 협객은 무술로 금기를 범해서는 안 된다고 하지요. 이건 조정에서 가장 금지하는 일이에요. 저는 도울 수 없어요.”

천궁각의 제자는 모두 성씨가 공숙이었다. 월령안이 무 선생이라고 부른 남자의 이름은 공숙무(公叔茂)였다.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났으며, 건축에 정통했다.

천궁각의 소각주는 이번에 공숙무를 보냈다. 공숙무가 월령안과 안면을 터서 앞으로 하게 될 협력을 편하게 할 셈이었다.

“제가 실례했습니다. 공숙의, 그 아이가…….”

공숙무는 한숨을 내쉬고 더는 말을 잇지 않았다.

그는 사람과 교제하는 데도 서툴렀고, 세상 물정도 잘 몰랐다. 하지만 자신의 요구가 과한 것은 알고 있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법이지요. 사람마다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무 선생, 선생께서는 할 만큼 하셨어요. 나머지는 소각주더러 해결하라고 하세요.”

월령안은 생각을 해보고 공숙무에게 한마디 했다.

“소각주가 해결하라고요?”

공숙무는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이 일이 우리 소각주와 무슨 연관이 있나요?”

월령안은 고개를 저었다.

“무 선생, 설마 조무래기 하나를 잡았다고, 육 장군의 화가 풀릴까요?”

만약 육장봉의 목표가 그것뿐이었다면, 처음부터 주정 일당이 손을 쓸 기회도 주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이 성에 들어서자마자 몽땅 잡아들였을 게 뻔했다.

그러나 육장봉은 일부러 허점을 노출해, 주정 일당이 행동에 착수하게 했다.

육장봉은 일을, 그것도 아주 큰 일을 꾸미고 있었다.

수횡천의 추측이 맞았다. 육장봉은 이 일을 빌미로 무림의 여러 문파를 난처하게 만들 생각이었다.

“월 낭자의 말씀은 육 장군께서 우리 천궁각을 난처하게 만들 거란 말씀이신가요?”

장치를 다루는 사람들은 손을 떠는 버릇이 없다. 그런데 무 선생은 놀란 나머지 손까지 떨고 있었다.

“천궁각의 사람이 야밤에 장군부에 쳐들어갔어요. 공숙의 한 사람만 잡았다고 육 장군께서 만족하리라고 생각하시나요?”

월령안은 냉소를 지으며 되물었다.

무 선생은 급히 해명에 나섰다.

“이건 우리 천궁각과 상관없는 일입니다. 공숙의 혼자서 저지른 일이에요. 그 녀석이 우리 천궁각을 대표할 수도 없어요. 우리 소각주께서는 그 녀석이 저지른 일을 모르고 계십니다. 모두 공숙의 그 녀석이 독단적으로 저지른 일이에요. 우리 천궁각과는 조금도 연관이 없어요.”

“공숙의는 천궁각 소속입니다. 그러니 공숙의가 저지른 잘못은 천궁각과 상관이 없을 수가 없어요. 여러분이 알았는지, 몰랐는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요. 공숙의는 천궁각의 제자입니다. 제자를 단속하는 것도 천궁각에서 해야 하는 일이지요. 그럼에도, 여러분이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고 할 수 있나요?”

월령안은 비꼬며 말했다.

“아니, 전…….”

월령안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무 선생, 제게 해명하셔도 소용없어요. 육 장군에게 해명해도 마찬가지예요. 공숙의가 이미 일을 벌였다면, 육 장군은 반드시 천궁각에도 이 빚을 받아 낼 겁니다. 천궁각은 무사하지 못할 거예요!”

천궁각 뿐만 아니라, 잠한성을 구하는 데 참여했던 모든 사람, 그들 배후의 문파와 세력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이 몇 년간, 무림의 여러 문파는 수횡천의 단속 아래 저마다 본분을 지켰다. 그래서 조정에서는 약간의 트집도 잡을 수 없었다. 게다가 그동안은 변방에 주력을 기울이느라, 강호의 일까지 상관할 여력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육장봉이 북요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당분간 변방에서는 큰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육장봉은 날마다 사람들에게 감시당하고 싶지 않았다. 손에 쥔 병권도 내놓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수하의 병사도 유지하고 싶었다.

그러려면 반드시 조정의 주의를 다른 쪽으로 돌려야 했다. 다시 새로운 적을 찾아내, 조정에서 그를 쓰도록, 그의 손에 있는 사람들을 쓰도록 해야 했다.

본분을 지키지 않는 강호인. 이들이 바로 육장봉이 그의 수하를 위해 찾아낸 새 적수였다.

“천궁각도 무사하지 못할 거라고요?”

무 선생은 월령안의 말을 듣고 놀란 나머지 다리가 풀렸다. 입술이 바로 덜덜 떨렸다.

“저, 정말로 그 정도로 심각합니까?”

“제가 말한 것보다 더 심각할 거예요. 조정은 도전을 용납하지 않아요. 또 조정의 존엄도 짓밟혀서는 안 되니까요. 잠한성은 국법을 어겼어요. 공숙의를 비롯한 사람들이 사적으로 구출하려 하는 건, 바로 조정의 법률을 안중에 두지 않은 행위예요.”

월령안은 무 선생이 요행을 바랄까 걱정되어 한마디 덧붙였다.

“조정만 문제가 아니에요. 무 선생, 만약 천궁각에서 누군가 잘못을 저질렀다고 가정해 보죠. 당신네 각주가 사람을 옥에 가두자마자 누군가가 구출하면, 각주가 좋아하겠어요?”

“아니지요!”

무 선생의 안색은 더욱 어두워졌다. 그는 생각도 하지 않고 몸을 돌려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안 됩니다. 제가 가서 그들을 막아야겠습니다. 적어도 공숙의가 연루되는 것은 막아야……!”

“막는다고요? 어떻게 막으실 건데요? 성에 들어가실 수는 있겠어요?”

월령안은 쫓아가지 않았다. 그저 차갑게 입을 열었다.

무 선생은 발걸음을 우뚝 멈췄다. 몸을 돌려 기대의 눈빛으로 월령안을 바라보았다.

“월 낭자, 낭자한테는 반드시 방법이 있을 겁니다. 제가 성에 들어가게 해 줄 방법이 있지요?”

“무 선생, 육장봉이 바로 앞에 있어요. 그 사람을 피해 명월산장 밖으로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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