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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201)화 (201/1,004)

201화 처음이라 경험이 없어 그랬소

육장봉은 미간을 찌푸린 채, 마지막으로 월령안을 힐끔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그녀가 다시 돌아보기를 기다리지 않고 먼저 떠나갔다.

월령안은 잠깐 멍해졌다. 그녀의 시선에 실망이 아주 잠깐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그녀는 곧 고개를 돌리고, 육장봉과 육이를 등진 채 소리 없이 쓴웃음을 지었다.

‘세상에, 지금 내가 무슨 생각을 한 거람.

난 정말 속없는 멍청이야. 육장봉에게서 얻은 교훈이 아직도 부족한 건가?’

월령안은 떨리는 마음을 가라앉히며 숨을 들이쉬었다. 두 손을 꼭 움켜쥐어 손톱이 손바닥의 연한 살에 파고 들었다. 손바닥에서 아픔이 느껴지자 이성이 천천히 되돌아오는 듯했다.

다시 고개를 원래대로 돌렸을 때, 월령안은 평온한 상태였다.

두 사람 사이의 그 미묘한 분위기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월령안과 육장봉 사이는 예전처럼 거리감과 경계심이 가득했다.

육이는 이상하게 불안했다. 마치 자신이 큰 잘못을 저지른 것만 같았다.

하지만 육이는 더 생각하지 않았다. 육장봉이 그의 손에서 말고삐를 넘겨받더니 말에 올라탔다. 그리고 옆에 서 있는 월령안에게 손을 내밀었다.

“월령안, 타시오.”

“말이 한 필밖에 없나요?”

월령안은 미간을 찌푸린 채 손을 내밀지 않았다.

육장봉과 말 한 필을 함께 타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몇 번이고 육장봉에 대한 미련을 내려놓기로 다짐했다. 그러나 내려놓겠다고 결심한들, 바로 내려놓을 수 없는 감정도 있다.

아직도 그녀에게 육장봉은 특별한 사람이었다. 그와 너무 가까이 있게 되면, 냉정을 잃고 자신의 감정에 휘둘릴까 두려웠다.

“보다시피, 여분의 말은 없소.”

육장봉은 내민 손을 다시 거두지는 않았다. 하지만 조금 더 내밀지도 않았다. 그는 월령안을 바라보며, 그녀가 스스로 그의 앞으로 다가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월령안에게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월령안은 육장봉의 손을 바라보았다. 또 말을 타고 높이 앉아 있는 육장봉을 바라보았다. 마음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답답했다.

그녀는 손을 내밀지 않았다. 대신 육십이가 있는 방향으로 크게 소리를 질렀다.

“육십이, 말을 빌려줘요.”

“네!”

육십이는 바로 승낙했다.

육이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나서서 저지하고 싶었지만 늦고 말았다. 육십이의 대답이 너무 빨랐다.

‘저 멍청한 녀석, 스스로 무덤을 파는군!’

“장군, 제가 소홀했습니다.”

육이는 곁눈질로 육장봉을 훑어보았다. 그에게서는 아무런 언짢은 기색도 찾아볼 수 없었지만, 그래도 눈치 빠르게 사죄했다.

“허.”

육장봉은 손을 거두고 자세를 바로잡았다. 그러더니 싸늘한 웃음을 흘리고 말했다.

“육십이에게 말을 따라 뛰라고 해라. 한 걸음이라도 뒤처지면 돌아가서 장군부를 백 바퀴 돌아야 한다. 두 걸음 뒤처지면 이백 바퀴 돈다. 잘 지켜봐라. 한 바퀴도 모자라서는 안 된다.”

말을 끌고 오던 육십이는 육장봉의 말을 듣자, 다리에 힘이 풀려 풀썩 꿇어앉았다.

“장군, 제가 무슨 잘못이라도 저질렀습니까?”

“너는 대단히 잘했다. 이건 내가 너에게 내리는 상이다. 왜? 거절할 셈이냐?”

말에 앉은 육장봉은 강한 위압감을 풍겼다. 마치 높은 곳에 있는 왕처럼, 감히 거스르지 못할 분위기를 풍겼다.

“상을 주셔서 가, 감사합니다.”

육십이는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난 죽었다!’

낮에 너무 많이 뛰었더니, 다리가 지금까지 후들거리고 있었다. 그의 뜀박질로는 군마를 이길 수가 없었다. 하지만 감히 명을 거역할 수도 없었다.

‘오늘 따라 장군님이 너무 무서우셔!’

고개를 숙인 육십이는 풀이 죽었다. 온몸으로 절망의 기운을 풍기는 모습이 불쌍하기 짝이 없었다.

월령안은 눈을 감고 한숨을 쉬었다.

그녀는 육십이처럼 착하고 단순한 사람이 고생하는 모습을 두고 볼 수 없었다.

‘나도 아직 멀었네. 이렇게 무르다니……. 더 수련해야겠어.’

월령안은 말없이 천천히 앞으로 다가가 육장봉의 말 앞에 섰다.

육이는 물론, 육장봉도 월령안이 육십이를 대신해 사정하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월령안은 육장봉의 말 안장을 붙잡고 훌쩍 말을 탔다. 그리고 육장봉의 뒤에 앉아 말했다.

“이제 됐나요?”

“워…… 월 낭자?”

육이는 단지 눈앞으로 바람이 스쳤다고만 느꼈다. 그런데 눈 깜짝할 새 월령안이 장군의 말에 올라타 장군의 뒤에 앉아 있었다. 게다가 두 손은 장군의 허리를 껴안고 있었다!

육 장군은 줄곧 다른 사람과 가까이하는 것을 싫어했고, 특히 여인들이 다가오는 걸 허락하는 법이 없었다.

그런 장군이 월 낭자를 말 아래로 떨어트리지도 않고, 자신을 안도록 내버려 두고 있었다.

‘이건 너무 신기한데!’

지난번, 육장봉에게 접근하려고 시도했던 여인은 그에게 걷어차여 쓰러진 뒤, 지금도 침대에 누워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육일의 말이 맞았어. 월 낭자는 역시 남달라.’

“왜요? 이러면 안 되나요?”

월령안은 바로 손을 거두고 육장봉의 양쪽 옷자락을 잡았다. 그녀는 원래 육장봉의 옷을 잡으려고 했다. 하지만 힘 조절을 잘못해 손이 미끄러지는 바람에 육장봉의 허리를 안은 꼴이 되고 말았다.

바로 자세를 고쳤다고는 해도, 그녀가 육장봉을 안았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아주 기분이 나빴다.

사실 이 일이 아니어도 그녀는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억지로 떠밀려 마지못해 뭔가를 하게 된다면, 누구라도 기분이 좋지 않을 것이다.

“아, 아닙니다. 월 낭자의 기마술이 아주 훌륭하군요.”

육이는 눈치 빠르게 칭찬했다.

“됐다, 가자.”

육장봉은 월령안이 그를 안은 순간, 몸이 잠시 굳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육장봉은 평소대로 돌아왔다. 다른 사람은 물론이고, 바로 그의 뒤에 앉은 월령안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예, 대장군!”

육이는 황급히 대답하고, 바로 돌아서 자기 말 옆으로 뛰어갔다.

“그, 그럼 저는요?”

육십이는 아직도 무릎을 꿇은 채 멍한 얼굴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이런 바보 같으니.’

월령안은 한숨을 쉬고 이를 악물며 말했다.

“얼른 말에 타요. 아니면, 정말 뛰려고요?”

“아, 네네. 말을 탈게요, 지금 타요!”

육십이는 뛰어오르더니 환호했다. 당장 기쁜 얼굴로 말에 기어올랐다.

육장봉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백 바퀴는 역시 너무 적었군.’

안장은 두 사람이 앉기에 매우 좁았다. 월령안은 육장봉 뒤에 앉아 그의 허리 쪽 옷자락을 잡고 있었다.

말이 움직일 때마다 그의 몸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가능한 허리를 곧게 펴서 육장봉과의 혹시 모를 접촉을 피하려고 했다.

말에 오르기 전, 말 한 필을 같이 탔을 때 어떻게 될지 예상했다. 그건 이미 감안했던 부분이니 어떤 결과도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하지만 육장봉의 말은 갑자기 늘어난 무게에 적응하지 못했다. 말은 울부짖더니 끊임없이 투레질했다. 불만을 표시하듯 사방으로 날뛰었다.

육장봉은 몸을 앞으로 기울여 말 등에 엎드린 채 말의 목을 여러 번 다독거렸다. 한참이나 달래 준 뒤에야 말이 다시 고분고분해졌다.

다시 자세를 잡으려던 육장봉은 뒤에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잠시 잊고, 평소대로 몸을 일으켰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뒤에 있던 월령안과 부딪혔다.

“아야.”

월령안은 무방비하게 있다가 육장봉과 제대로 부딪혔다. 그녀는 아파서 짤막하게 소리를 내었다. 손을 들어 머리를 감쌌다가 또 손을 내리더니 말없이 가슴을 문질렀다.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번 생에 육장봉을 만나고, 좋아하게 되었지? 이 남자는 잘생긴 것 빼고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털어봐도 장점이라고는 없잖아. 내가 이렇게까지 눈이 삐었는데 상업계에서 돈을 벌 수 있다는 게 신기할 지경이네.’

“내가 뒤에 누군가를 태운 게 처음이라 경험이 없어 그랬소.”

육장봉은 월령안과 부딪히고 나서야 아차 싶었다. 그는 사과 대신 몸을 앞으로 조금 움직여 월령안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월령안은 그의 행동이 제법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저 말은 좀……. 자기가 부딪쳐 놓고, 날 탓하는 거야?’

월령안은 빈정거리며 받아쳤다.

“아, 네. 장군께서 변방에서 다른 사람과 말을 탈 때는, 분명 품에 안고 타셨겠네요.”

육장봉은 그녀의 말에 할 말을 잃었다.

“장군, 이제 출발할 수 있습니다.”

육이는 다른 사람들이 준비를 마치자 앞으로 다가와 육장봉에게 보고했다.

육장봉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그는 굳은 얼굴로 육이를 쏘아보고 나서 말했다.

“그래. 출발하지.”

해명하기에는 이미 글렀다. 또 해명할 필요도 없었다.

‘오해할 테면 오해하라지. 내가 월령안을 무서워하는 것도 아니고.’

육이는 또 자기가 무언가를 잘못한 게 아닌지 고민이 되었다.

육장봉은 제자리에 얼어붙은 육이를 모른 척했다. 그리고 월령안을 태운 채 말을 채찍질하여 나는 듯한 속도로 뛰쳐나갔다. 비록 갑작스러운 무게에 당황하긴 했지만, 육장봉의 말도 보통 말은 아니었다. 두 사람이나 태웠지만, 속도는 날 듯이 빨랐다.

밤바람이 귓가에서 윙윙 기승을 부렸다. 평소 부드럽던 바람이 이때만큼은 칼날처럼 날카로웠다. 고개를 들면 살을 에는 듯한 아픔이 느껴졌다. 월령안은 육장봉의 등 뒤에서 고개를 푹 숙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두 사람은 더욱 가깝게 붙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월령안에게는 발을 올릴 수 있는 등자가 없었다. 발아래가 텅텅 비니 안정감이 없어 언제든지 말에서 굴러떨어질 것 같았다.

육장봉의 옷을 붙잡은 지도 오래되어 손바닥에도 땀이 흥건했다. 힘을 꽉 주어야 손이 미끄러지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오른손 상처는 아직 덜 나았기에, 오래 잡고 있으려니 팔에 무리가 갔다.

무엇보다 육장봉의 말이 점점 더 빨라지고 있는 게 문제였다. 앞은 칠흑 같은 어둠만 펼쳐져 있었다.

월령안은 내심 걱정이 되었다.

‘이렇게 빠른 속도로 달리다가 걸리거나 부딪히기라도 하면, 내가 굴러떨어질 텐데…….’

날 듯한 속도로 달리는 말에서 떨어진다면, 평생 침대에 누워 불구로 살아야 할 것이다.

월령안은 죽는 게 너무 두려웠다.

인생은 아름답다. 살아 있어야 더욱 많은 것을 누릴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반쯤 죽은 상태로 사는 건 두려웠다. 월령안은 평생 불구로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아, 모르겠다. 아까도 안았는데 육장봉이 아무 말도 안 했잖아. 괜찮겠지.’

월령안은 살기 위해서 그냥 나무토막을 안는 셈 치기로 했다. 그녀는 곧 망설임 없이 손을 뻗어 육장봉의 허리를 안았다. 기왕 안는 김에 힘을 주어서 꼭 끌어안았다.

“월령안, 지금 무슨 짓이오?”

육장봉은 허리에서 느껴지는 낯선 느낌에 하마터면 손에 든 말고삐를 내던질 뻔했다.

‘날 오래도록 좋아했다면서, 내가 다른 사람이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제일 싫어하는 건 모르는 건가? 지금 본인이 내 금기를 건드렸다는 것을 알기는 할까?’

“장군, 안 보이세요? 제가 끌어안고 있잖아요?”

귓가에서 윙윙거리는 바람이 육장봉의 목소리를 월령안에게 전해 주었다. 띄엄띄엄하게 들렸지만, 그의 불만과 분노가 충분히 느껴졌다.

‘하지만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

그녀더러 함께 말을 타자고 한 사람은 육장봉 본인이었다. 육장봉은 입을 열기 전에 이런 결과를 예상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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