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황 (193)화 (193/1,004)

193화 월 낭자를 보호하고 싶습니다

예전의 두 부도지휘사는 황제가 지명해서 자리에 앉힌 사람들이었다. 어려서부터 함께 자란 심복은 아니었지만, 대대로 황실에 충성하여 신임을 듬뿍 받았었다.

두 사람은 평소 일 처리가 차분하고 됨됨이가 듬직했다. 황제도 믿고 유용하게 썼다. 그런데 하나는 어리석어서 남에게 이용당하고, 다른 하나는 영녕후부와 관련이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지금 와서 생각하자, 가슴이 벌렁거렸다.

‘만약 그날 밤, 야율제의 목표가 월령안이 아닌 짐이었다면? 보군사의 추 부도지휘사가 그놈들을 입궁시켰을까?’

이 가능성을 떠올리면 잠을 자다가도 소스라쳐 깨나곤 했다.

그러다 보니 두 부도지휘사의 임명은 더욱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일이 다시 발생해서는 안 됐다. 월씨 가문에 벌어진 사건이 황궁에서 재연되는 건 더더욱 바라진 않았다.

육장봉으로서는 황제가 이 일을 안건에 올리도록 살짝 언급하기만 하면 되었다. 그러지 않으면 황제는 계속 새 인사를 단행하지 않을 것이다. 그랬다가는 그가 여러 직책을 겸해야 하고, 죄명도 대신 뒤집어써야만 했다.

두 사람이 중요한 이야기를 끝내고 나니 마침 점심시간이 되었다. 황제는 하루 동안 바삐 돌아다닌 육장봉을 생각해 함께 수라를 들려고 했다.

육장봉은 거절할 수가 없어 따르기로 했다.

육장봉은 식사 예절이 대단히 발랐지만, 식사 속도 또한 무척 빨랐다. 황제가 삼 분의 일 정도 들었을 때 그는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폐하, 신은 배가 불렀습니다.”

황궁의 수라는 훌륭했다. 하지만 양생에 치중한 탓에 담백했고, 채소가 많은 대신 육류가 적었다. 그리고 모든 음식은 황제의 입맛에 맞추어 준비되었다.

공교롭게도 그는 황제와 식성이 전혀 달랐다.

“이렇게 빨리 배가 불렀다고? 별로 먹은 것 같지 않구나.”

황제는 식탁 위의 몇 젓가락 대지 않은 음식을 바라보며 걱정스레 말했다.

“네가 예전에는 적지 않게 먹던 걸로 기억하고 있다. 삼 년을 못 본 새 식사량이 왜 이리 적어졌느냐?”

“전쟁을 치르느라 하루 세끼를 제때 챙겨 먹을 수 없었더니, 위가 좋지 못합니다. 의원이 한 번에 적게, 여러 차례 먹으라고 했습니다.”

육장봉은 대수롭지 않게 이유 하나를 만들어 냈다.

최근 몇 년간 월령안의 보살핌에 길들어졌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을 때는 입에 맞지 않는 음식은 될수록 먹지 않게 되었다.

이 사실을 황제에게 말할 수는 없었다. 월령안이 그의 생활 곳곳에 침투해 있음을 절대 알리고 싶지 않았다.

“짐은 이 음식이 네 입에 맞지 않는 줄만 알았구나. 생각지도 못하게…… 참 미안하게 됐구나. 장봉아.”

황제는 눈시울을 살짝 붉혔다. 눈빛에는 미안함과 자책감이 서려 있었다.

이런 때, 조금이라도 ‘생각’이 있는 신하라면 감동한 나머지 자리에서 일어나 성은에 망극해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했다. 그리고 황제와 함께 군신이 어우러져 한마음 한뜻이 되는 장면을 연출해야 했다.

하지만 육장봉은 눈만 살짝 쳐들고 냉담하게 말했다.

“폐하, 과분한 말씀입니다. 신은 다만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신하가 따라주지 않으니 황제도 하는 수가 없었다. 무안해하며 말했다.

“모두 짐을 돕기 위해서가 아니더냐. 그렇지 않았다면 네 신분으로, 이렇게 목숨을 내걸 필요는 없지.”

“나라를 지키고 전장에 나가는 것은 육씨 가문 자제들의 사명입니다. 저 역시 육씨 가문 자제입니다.”

육장봉은 황제의 말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반박하지도 않았다. 반박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무슨 신분이라고.’

그는 생모가 누군지 알려지지도 않은 육씨 가문 적장자일 뿐이었다.

그런 신분으로 목숨을 내걸지 않으면, 남의 눈치나 살피면서 아첨하고 비위를 맞추는 쓸모없는 인간이 되라는 말인가.

육장봉은 그렇게 할 수 없었다.

황제는 육장봉의 어깨를 힘차게 두드리더니, 끝에는 힘을 주어 내리눌렀다.

“주나라에 장봉이가 있는 건 우리 주나라의 행운이자 짐의 행운이다. 장봉이 네가 있는 한, 짐은 아무 걱정도 하지 않을 것이다.”

육장봉은 여전히 평온하기만 했다.

“폐하, 과찬이십니다.”

황제는 말문이 막혀 버렸다.

육장봉의 냉담한 태도 때문에 황제는 더는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멋쩍게 두어 마디 하고는 식사를 계속했다.

육장봉이 한쪽에 앉아 지켜보는 바람에 황제는 평소보다 배로 빠른 속도로 밥그릇을 비웠다. 평소처럼 밥을 더 먹지도 않았다.

너무 빨리 먹은 탓에 젓가락을 내려놓을 때는 위가 살짝 불편함을 느꼈다.

그는 미간을 찌푸리고 불편한 위를 문질렀다. 그리고 속으로 다시는 육장봉과 함께 식사하지 않겠다고 몰래 결심했다.

‘이번 끼니는…….’

예전에 신하와 함께 수라를 들 때면, 늘 신하 쪽이 전전긍긍했다. 감히 빨리도, 늦게도 먹지 못하고 그가 젓가락을 내려놓아야 신하가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마음 편히 먹지 못한 게 분명했다.

하지만 육장봉은 정반대였다. 이번에 마음 편히 먹지 못한 사람은 황제였다.

황제는 고개를 들어 여유롭게 앉아 있는 육장봉을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당황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담담한 모습이 마치 자기 집에 앉아 있는 듯하여, 황제는 저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삼 년 전, 갑자기 조계안이 그와 사이가 틀어진 뒤로는, 이렇게 식구들과 함께 식사하는 기쁨을 맛보지 못했다.

자신을 황제라며 떠받들지 않는 육장봉의 편한 모습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기는 했다. 하지만 이런 기쁨도 한두 번이면 충분했다. 그의 위가 받쳐 주지 않을 것이다.

“장봉, 시간…….”

황제는 일단 육장봉을 보내고 잠깐 쉬려고 했다. 그러나 반쯤 말했을 때,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참, 장봉아. 야율제의 서신은? 짐에게 돌려줬느냐?”

“서신 말입니까?”

육장봉은 잠깐 멈칫했다. 그제야 무슨 얘기인지 알아들은 척 말했다.

“신이 버렸습니다.”

“버렸다고?”

황제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되물었다.

“네.”

육장봉은 가볍게 머리를 끄덕였다.

“신이 실수로 서신을 물에 적시는 바람에 버렸습니다. 아무튼, 중요한 물건은 아니잖습니까.”

육장봉은 눈을 내리깔며 눈 속의 싸늘한 빛을 감추었다.

당연히 서신은 버리지 않았다.

그 서신은 단 한 글자도 빠트리지 말고, 한 글자, 한 글자 그대로 야율제에게 삼키게 할 작정이었다.

육장봉은 줄곧 신중했다. 그래서 황제는 그가 거짓말을 하리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해명을 듣자, 그가 그런 실수를 할 사람이 아니라고 여기면서도 더는 캐묻지 않았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고 장봉이도 어쩌다 실수 한 번 할 수 있지.’

그리고 육장봉의 말대로, 야율제가 월령안에게 구혼하는 서신 자체가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우선 월령안이 야율제에게 시집가지 않을 게 뻔했다. 설령 그녀가 사랑에 미쳐 기꺼이 죽을 길을 가겠다고 하더라도, 황제가 동의할 수 없었다.

월령안은 황제가 중용할 사람이었다. 당연히 그녀를 북요로 보낼 수는 없었다. 야율제가 그녀를 망치게 할 수는 더더욱 없었다.

황제는 육장봉의 죄를 묻지 않았다. 그리고 두어 마디 위로까지 해 주고서야 내보냈다.

육장봉은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어, 기분이 어떤지 파악할 수가 없었다.

야율제가 수도에서 큰 소란을 일으켰기에 온 수도의 관리 모두가 바빠졌다. 육장봉은 변경에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믿고 쓸 수 있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친위대를 하나하나 파견했다.

그래서 오늘 입궁할 때도 육이 한 사람만 거느렸다.

육이는 멀리서 육장봉이 황궁에서 걸어 나오는 모습을 보자, 급히 말을 끌고 갔다.

“대장군.”

“저택으로 돌아가자.”

육장봉은 고삐를 건네받고 몸을 날려 말에 올라타더니 채찍질하여 달려갔다. 모든 과정이 물 흐르듯이 일사천리로 이어졌다. 육이가 겨우 말에 올라탔을 때 육장봉은 벌써 저 멀리 달려가고 있었다.

“장군은 매번 이러신단 말이야. 친위대 노릇도 부담이 너무 큰데.”

육이는 우거지상을 하더니, 불만을 누르고 뒤쫓아갔다.

다행히도 돌아갈 때는 시끄러운 일들이 벌어지지 않아 가는 길이 순조로웠다. 육이는 부끄러웠지만, 곧 마음을 비웠다.

‘우리 장군이 어떤 분인데? 내가 장군을 따라잡지 못하는 게 정상이야.’

“장군, 장군, 돌아오셨군요.”

육장봉이 장군부에 도착하자마자, 육십이가 기쁜 얼굴로 다가오더니 말을 끌었다.

“그래.”

육장봉은 대답하더니, 고삐를 육십이에게 던져 주고 저택 안으로 걸어갔다.

그런데 뜻밖에도 육십이는 즉각 고삐를 옆에 있던 시위에게 넘겨주더니 빠른 걸음으로 쫓아왔다.

“장군, 장군…….”

“무슨 일이냐?”

육장봉이 걸음을 멈추고 육십이를 바라보았다.

“그게, 그게…….”

육십이는 더듬거리며 우물쭈물했다.

육장봉의 표정이 굳어졌다.

“말해라.”

육십이는 깜짝 놀라 엉겁결에 내뱉었다.

“장군, 월 낭자를 보호하는 데 저를 보내 주시면 안 됩니까?”

“뭐라고?”

육장봉이 눈썹을 찌푸린 채 물었다.

“장군, 저, 제가 가서 월 낭자를 보호하고 싶습니다. 그래도 될까요?”

말문이 열린 육십이는 두 번째는 나름 유창하게 말했지만, 목소리는 아주 작아졌다.

그러나 목소리만 작아졌을 뿐, 눈은 반짝반짝 빛났다. 온통 기대에 찬 얼굴로 육장봉을 바라보고 있었다.

육장봉이 물었다.

“이유는?”

‘육십이가 언제부터 월령안과 이렇게 사이가 좋아졌지?’

심지어 주인을 버리고, 월령안을 보호하러 가겠다고 할 정도였다.

“장군께서 월 낭자를 보호하라고 보냈던 노병 세 사람이 부상을 입고 돌아왔습니다. 저는…… 장군께서 월 낭자를 보호하려고 다시 사람을 보내실 것으로 생각했어요.

장군, 제가 가면 어떨까요? 제 목숨이 붙어 있는 한 누구도 월 낭자를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하게 할 수 있습니다.”

육십이는 자신이 그럴 능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듯, 가슴을 쑥 내밀더니 여러 차례 힘차게 두드렸다. 가슴이 탕탕 울릴 정도로 치는 모습이 단순하기 짝이 없었다.

육장봉이 눈썹을 치켜세웠다.

“사람을 되돌려 보냈다고?”

‘월령안은 내가 보낸 사람들이 너무 약해 싫다는 건가?’

육십이는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눈을 반짝였다.

“네, 네. 마차에 태워 보냈을 뿐만 아니라 산더미 같은 약재며 보약에, 의원도 한 명 딸려 보냈습니다. 그리고 부상에 대한 위로금으로 은자, 성 밖의 저택, 좋은 밭도 받았다고 합니다.”

육십이는 자랑하듯이 말을 끝없이 이어 갔다.

“장군, 저는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월 낭자의 호위로 일하면서 그분을 지키다 다치면 이렇게 좋은 점이 많았어요. 미리 알았더라면 장군께서 사람을 고를 때 자진해서 나섰을 겁니다. 월 낭자를 한 번 보호하는 게 평생 병사 노릇을 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벌 수 있더라고요.”

육장봉의 호위병은 매달 은자 두 냥을 받았다. 적은 편은 아니지만, 월령안이 한 번에 준 위로금 오백 냥, 좋은 밭, 집에 비하면 거의 하늘과 땅 차이였다.

조정의 규정에 따르면 그들은 전장에서 전사해도 가족은 고작 은자 오십 냥을 위로금으로 받았다.

육가군은 그것보다는 조금 많이 받기는 했다. 그것도 장군이 사적으로 보태 주는 것이었다.

좋은 밭, 집, 평생의 일거리 같은 건 꿈도 꾸지 못했다.

비교 대상이 없을 때는 정말 몰랐다. 그러나 이렇게 비교해 보니, 육십이는 자신이 예전에는 형편없는 생활을 했음을 알게 되었다.

매달 봉급 두 냥, 일 년이면 스물네 냥이었다. 이십일 년간 먹지도, 마시지도 않아야 겨우 은자 오백 냥을 저축할 수 있었다.

좋은 밭이며 집은 말할 것도 없었다. 이것들을 사려면 적어도 십 년은 더 저축해야만 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