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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192)화 (192/1,004)

192화 함정으로 끌어들이다

육장봉은 조계안을 ‘제압하여’ 궁으로 돌아왔다. 그에게 말썽을 피울 기회조차 주지 않고, 곧장 기절시킨 뒤 어의에게 맡겼다.

“잘 치료해 주시오. 그리고 사흘 동안은 침상에서 내려올 기운도 없게 해 주시지요. 내 말 알겠소?”

육장봉은 그렇게 분부하더니, 어의가 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편전에서 나갔다. 편전에 남은 어의들은 서로 얼굴만 쳐다보았다. 누구도 움직일 엄두를 내지 못했다.

“이, 이것 참……. 조왕 전하께서 깨시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사흘씩이나! 정말 육 대장군의 말을 따라야 하는 것이오?”

“조왕 전하께서 대장군을 이기지 못한다지만, 우리를 때려죽이는 건 손 하나 까딱하면 충분하시지 않은가.”

어의들은 울상이 되었다. 자신들도 차라리 기절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몇몇 어의들은 시선을 주고받더니, 이를 악물고 말했다.

“다른 선택지는 없구려. 우리 대장군의 말을 따르기로 합시다. 전하께 드릴 약의 양을 곱절로 늘립시다. 나중에 조왕께서 깨어나시거든, 대장군의 뜻이었다고 해야지요.”

그들로서는 조왕의 분노도, 육 대장군의 분노도 감당할 수 없었다.

그들이 거짓말을 하려는 게 아니었다. 육 대장군이 그렇게 분부한 건 사실이었다.

육장봉은 조계안을 침전에 버려둔 뒤, 난각으로 가서 황제를 만났다.

“폐하.”

“장봉아, 돌아왔구나. 계안이는? 계안이는 괜찮으냐?”

황제는 상주문을 검토하던 중이었다. 육장봉이 들어오는 모습을 보자, 바로 상주문을 한쪽에 밀어 놓았다.

“조왕 전하는 평안하십니다. 어의가 전하를 다시 진찰하고 있습니다. 폐하, 걱정하지 마십시오.”

육장봉은 황제의 성격을 알고 있었다. 조계안의 이야기를 시작하면 끝이 없기에, 황제가 묻기 전에 먼저 말했다.

“조왕 전하는 자신의 상처가 다 나았다며, 어의가 주는 약을 먹지 않으려 했습니다. 신은 조왕 전하가 어의의 치료에 잘 따르도록, 손을 써서 기절시킬 수밖에 없었습니다. 폐하, 신을 벌하여 주십시오.”

“계, 계안이를…… 때려서, 또 때려서 기절시켰느냐?”

황제는 조계안이 왜 오지 않았냐고 물으려던 참이었다. 육장봉의 말에 하마터면 혀가 꼬일 뻔했다.

“네.”

육장봉은 침착하고 담담하게 대답했다. 황제가 죄를 물을 것은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황제는 그를 바라보며 입을 달싹였지만, 결국 조용히 넘어가기로 했다.

“괜찮다. 그 녀석이 조용히 쉬도록 했으면 됐다. 기절시켰으면 그만이지. 나중에 계안이가 언짢아서 뭐라고 하면 짐의 명령이었다고 하려무나.”

‘장봉이도 계안이를 위해서 그런 거야. 괜히 누명을 쓰게 할 순 없지.’

육장봉이 대답했다.

“폐하, 걱정하지 마십시오.”

안 그래도 조계안에게 모든 건 황제의 뜻이었다고 알릴 셈이었다.

황제는 육장봉이 이처럼 자신의 뜻을 잘 따라주자, 저도 모르게 탄식했다.

“휴, 네가 보기에…… 계안이가 왜 남의 말을 전혀 들으려고 하지 않는 것 같으냐?”

“조왕 전하는 폐하의 시름을 덜고자 급급한 것뿐입니다.”

육장봉은 황제, 조계안과 오랫동안 알고 지냈다. 조계안의 일에 대해서만큼은 황제가 얼마나 겉과 속이 다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조계안이 아무리 나쁘고, 잘못했더라도 황제는 나무랄 수 있었지만, 남이 그래서는 안 됐다.

그도 예전에는 남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제는 남이 되는 게 나았다.

“그건 그렇지……. 계안이가 짐의 시름을 적잖게 덜어 주었지. 이 몇 년간 조정의 대신들이 본분을 지키고 있는 데는 계안이의 공이 크지.”

그는 어릴 적 황제가 되었다 보니 기반이라고는 없었다. 덕분에 최근 몇 년 동안 황제는 힘들게 지냈다. 밖으로는 육장봉이, 안으로는 조계안이 없었더라면, 여전히 실권을 장악하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육장봉이 밖에서 근심을 없앤 공을 세웠다면, 조계안은 안에서 내부를 안정시킨 공을 세웠다.

“조왕은 줄곧 훌륭했습니다.”

황제가 조계안의 장점을 들먹이기 시작하면, 사흘 밤낮을 같은 소리 한 번 되풀이하지 않고 계속 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육장봉은 그것을 듣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 그는 묵묵히 화제를 바꾸었다.

“폐하, 야율제는 위험하고 가늠하기 어려운 자입니다. 계속 수도에 눌러앉아 있게 방임하실 겁니까?”

야율제가 성안에 있는 한, 그들이 찾으려고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육장봉이든, 황제든 서둘러 찾으려 하지는 않았다.

야율제와 영녕후부의 관계는 무척 깊었다. 게다가 영녕후는 실권을 장악하고 있었다. 영녕후는 황제를 귀찮게 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황제를 위해 일하지도 않았다.

영녕후부가 황제의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는 근심거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황제는 정권을 더욱 공고히 하고 싶어 했다. 삼 년 전처럼 북요와 싸우면서 스스로 군량을 대지 않으려면, 반드시 영녕후의 병권을 빼앗아야만 했다.

영녕후는 줄곧 교활하고 일 처리에 빈틈이 없었다. 가족도 엄격히 단속했다. 그의 행보는 한계선을 반 발짝도 벗어나지 않았다. 황제로서는 영녕후의 꼬투리를 잡으려고 해도 잡을 수가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야율제의 출현은 전환점이나 마찬가지였다. 황제는 영녕후를 끌어내릴 기회를 포착했다.

그래서 황제는 야율제를 전력으로 사로잡으려 하지 않고, 그가 성안에 숨어 있도록 내버려 두었다.

영녕후는 이제야 꼬리를 드러냈을 뿐이다. 아직까지는 함정으로 몰아넣지 못했다. 그들의 손에 증거가 있기는 하지만, 이 정도로는 영녕후를 납작 엎드리게 할 수는 없었다.

치명적인 일격을 날려 영녕후가 더는 일어서지 못하게 하려면, 그가 전혀 발뺌할 수 없도록 충분한 증거를 더 확보해야 했다.

그래서 황제는 야율제를 잡으라는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가 수도에서 마음대로 행동하게 내버려 두었다. 바로 야율제에게 영녕후부를 이 판에 끌어들일 기회를 주려는 것이었다.

황제와 육장봉은 청희 장공주가 있는 한, 영녕후부가 발을 뺄 수 없음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가 쳐 둔 그물을 거두어들일 때였다.

하지만 이 일은 아직까지 육장봉과 황제, 조계안만 알고 있을 뿐이었다. 남들은 내부 상황을 모르고 있었다.

황제는 육장봉이 그의 마음을 가장 잘 헤아리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에게 가장 먼저 이렇게 물었다.

“이 상황을 제어할 수 없다는 말이냐?”

육장봉이 고개를 젓더니 입꼬리를 살짝 위로 올리며 차갑게 웃었다.

“신은 다만…… 우리가 아직 그자의 숨통을 덜 조였다고 생각합니다.”

개도 급해야 담장을 뛰어넘는다. 그래야만 나중의 결과를 따져볼 새 없이 비장의 무기를 내놓는다.

월령안은 이미 손을 썼다. 그도 남자로서 당연히 자기 여인을 도와야 했다.

“계획이라도 있는 게냐?”

황제가 물었다.

육장봉은 곧바로 대답하지 않고 잠깐 침묵을 지키다가 다시 말했다.

“북요 황제에게 격문을 써 보내십시오. 야율제가 국서로 우리를 희롱한 죄를 낱낱이 쓴 다음, 북요는 회담에 대한 성의가 없다고 질책하시는 겁니다. 신용이라고는 눈곱만치도 없는 야율제와의 회담은 거절한다고 하십시오.

북요에서 회담할 의향이 있다면, 반드시 야율제를 서민으로 강등시켜야 한다고 하십시오. 그와 동시에 성지를 내려 회담하러 온 사절도 억류하여야 합니다.

북요에서 야율제를 서민으로 강등하고, 회담할 사람을 새로 파견한다면, 우리도 그때 억류한 사절을 놓아주겠다고 하십시오.”

“이렇게 해도 되겠느냐?”

황제는 어쩐지 가슴이 쿵쿵거렸다.

북요인들은 싸움에 능했다. 특히 기병이 용맹해, 주나라와 북요가 맞붙으면 질 때가 더 많았다. 게다가 오랫동안 북요의 철기를 대적했음에도, 늘 주나라 군대는 수세에 몰려 선제공격을 할 수가 없었다.

이번에는 육장봉이 군대를 지휘해 북요를 공격했다. 하지만 삼 년을 싸우고 나서야 지금의 대승을 거두었다. 북요에서는 투항하고 패배를 인정한 다음, 사신을 파견하여 회담할 수밖에 없었다.

제왕으로서 황제는 잘 알고 있었다. 비록 전쟁에서는 이겼지만, 북요의 강대함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이번에 이겼다고 다음에도 그러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주나라가 부유하다고는 하나, 국고의 돈은 많지 않았다. 육장봉이 북요와 다시 한번 전쟁을 치른다면, 감당할 수 없을 수준이었다.

그리고 주나라의 적은 북요 하나만이 아니었다. 서하(西夏)와 금나라도 옆에서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지금은 전쟁하기에 좋은 시기가 아니었다.

육장봉은 오랫동안 전선에 나가 있던 대장군으로서, 주나라의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황제의 걱정이 무엇인지 모를 리 없었다.

그런데도 과감하게 제안할 수 있었던 건, 당연히 자신이 있기 때문이었다.

육장봉은 황제에게 따로 이유를 설명하지 않고, 다만 담담하게 말했다.

“폐하께서 걱정하시는 문제는 북요도 마찬가지로 하고 있을 겁니다.”

“그 말은?”

황제는 갑자기 눈을 반짝이더니 눈이 살짝 휘어졌다.

“북요에서도…….”

육장봉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죽어도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 북요가 패배를 인정할 리가 없었다.

“그럴 줄 알았다. 짐도 그럴 줄 알았어…….”

황제는 팔걸이를 힘차게 내리치며 분노했다.

“북요 이 늑대 같은 자식들이 무슨 심보를 곱게 먹었을 리가 없지. 이번에는 왜 끝까지 싸우지 않고, 깔끔하게 패배를 인정하는가 했더니! 그래도 우리 주나라의 철기가 두려워서. 짐의, 제왕의 위세에 눌려서 그러는가 했다. 그놈들도 버티기 힘들었구나. 서하와 금나라가 어부지리로 이익을 챙길까 두려웠겠지.”

육장봉은 침묵을 지켰다.

황제는 그 사실을 이제야 깨달았다. 그리고 북요와의 교섭은 문관의 일이니, 그는 살짝 운만 띄우는 게 나았다.

황제가 실수로 내뱉은 속마음에 대해서는 못 들은 척하기로 했다.

황제가 이렇게 ‘어리석은’ 것을 알면, 조정의 대신들이 또다시 들뜰 게 분명했다.

그러나 황제는 자신의 말실수를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장봉아, 우리가 북요에 회담 책임자를 바꿔 달라고 요구했다는 소식을 밖으로 흘리도록 하겠다. 요 며칠 성안의 안전은 네가 신경을 많이 써야겠다. 짐은 월씨 저택에서 벌어졌던 사건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기를 바란다. 알겠느냐?”

황제는 마지막 한 마디를 특별히 엄숙하게 말했다.

야율제를 하루라도 빨리 잡지 못하면 황제의 마음은 편할 수가 없었다. 이 일을 떠올리면 저도 모르게 육장봉을 탓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 일이 육장봉의 잘못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다.

이런 때 경기의 안전을 책임지게 된 육장봉이 재수가 없었을 뿐이다. 그를 질책하지 않으면, 누굴 질책하겠는가?

“알겠습니다. 지금 시위보군사와 전전사 모두 부도지휘사가 없습니다. 폐하께서 두 곳을 담당할 사람을 빨리 정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육장봉은 자신이 개입해서 그의 사람을 배치해 버릴 작정이었다. 그리고 그의 사람이 그 자리를 차지하면, 다시 내놓을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다.

“그 두 곳의 인사는…… 짐이 좀 더 생각해 보마.”

황제의 얼굴빛이 어두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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