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화 그 둘이 어떻게 같이 왔지?
어제, 황제도 육장봉을 통해 야율제와 청희 장공주의 관계를 알게 되었다. 당연히 예전처럼 청희 장공주가 무고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조계안에게 그의 결심을 보여주기 위해, 황제는 서둘러 말했다.
“짐이 장봉이더러 조사하라고 했다. 계안아, 걱정하지 마라. 이번에는 그 여인을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다.”
“흥!”
하지만 조계안은 황제의 체면을 봐 주지 않았다. 콧방귀를 뀌더니 오만하게 말했다.
“이제, 저는 출궁할 겁니다. 또 막으실 겁니까?”
“짐은…… 막지 않으마.”
황제는 이를 악물고, 더없이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그런데 그 모양으로 출궁할 수나 있겠느냐?”
“황형께서 걱정하실 일이 아닙니다. 황형이 키운…….”
조계안은 말을 끝까지 하는 대신, 육장봉을 힐끔 보았을 뿐이다. 그 눈길은 악의와 조소로 가득했다.
“저를 방해하지 않으면 됩니다.”
조계안이 뒷말을 잘라먹었지만, 황제든 육장봉이든 모두 그의 속뜻을 알아차렸다.
황제가 얼굴을 굳힌 채 꾸짖었다.
“계안, 무슨 말을 그렇게 하는 거냐?”
“저는 원래 이런 식으로 말했습니다.”
조계안은 고개를 쳐들고 사납게 말했다.
“언짢으시거든 황형이 기른…… 보고 저를 물라고 하세요.”
“계안, 장봉이한테 당장 사과해라.”
황제는 분노에 찬 얼굴로 한 걸음 다가섰다. 엄청난 위압감이 느껴졌다.
육장봉이 손을 들어 분노한 황제를 막았다. 그리고 여유롭게 말했다.
“폐하, 조왕은 제 외사촌 아우입니다. 고작 이런 거로 다투지는 않습니다.”
말을 마친 육장봉은 조계안을 흘끔 쳐다보는 것을 잊지 않았다.
마치 웃어른이 철들지 못한 어린아이를 기특하게 여기면서도 너그럽게 봐주는 듯한 눈길이었다.
“육장봉, 이 뻔뻔한 놈!”
조계안은 화가 나서 미칠 지경이었다. 다친 몸만 아니라면, 육장봉한테 달려들어 한바탕 주먹질을 했을 것이다.
‘육장봉, 저 망할 놈이 내 일을 방해하다 못해, 이제는 나를 놀려?’
“조왕은 본인 걱정이나 먼저 하십시오. 그렇게 서 있을 수 있는 시간도 얼마 안 될 겁니다.”
육장봉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누굴 겁주려고?”
조계안이 하찮다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
그는 자신의 몸 상태를 잘 알고 있었다. 출궁하여 월령안을 만나는 것은 물론이고, 말을 타고 사흘을 달려도 버틸 수 있었다.
‘육장봉은 내가 아직도 밀실에 갇혀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의 조계안인 줄 아는 모양이군.’
육장봉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저는 누굴 겁주는 법이 없습니다. 아니면…… 직접 숫자를 세 보시지요.”
조계안은 하찮다는 듯이 육장봉을 흘겨보았다.
“나는…….”
그가 입을 연 순간이었다. 눈앞에 언뜻 그림자가 스쳐 지나갔다. 바로 목덜미가 따끔했다.
그리고 등 뒤에서 육장봉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왕 전하,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육장봉! 너…… 너 이 개자식!”
조계안은 고작 욕 한마디를 했을 뿐이다. 바로 눈앞이 새카맣게 변했다. 몸이 스르르 무너져 내렸다.
* * *
야율제는 사사를 거느리고 입성해 월씨 저택을 피로 물들였다. 그 뒤에는 줄곧 변경에 숨어서 지내며 떠나지 않았다. 그러나 조정에서는 여태껏 야율제를 찾아내지 못했다.
야율제는 일 처리가 신중했다. 모든 일에 주나라 사람을 쓴 탓에 조정에서도 증거라고는 털끝만큼도 찾아내지 못했다. 그래서 이 일이 북요에서 저지른 일임을 증명할 수가 없었다. 사건의 주모자인 야율제를 사로잡지 못하는 한, 북요를 비난할 수도 없었다.
야율제가 변경에 잠입한 사건은 여전히 비밀로, 대외적으로는 공개되지 않았다. 백성들의 불안을 초래할까 두려워 그가 월씨 저택을 피로 물들인 일도 꼭꼭 감추었다.
그래서 성안 백성들의 생활은 여전히 평온했다. 기루의 별실에도 여전히 사람들이 오갔다.
내부의 모두가 위험을 느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란다던가. 속사정을 모르는 세도가들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감지했다. 각자 꼬리를 내리고 얌전하게 지냈다.
월령안은 올해 춘일연은 취소되지는 않더라도, 연기될 거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뜻밖에 명월산장의 하인에게서 연락이 왔다. 오늘 명월산장에 황궁의 사람들이 사흘 뒤에 열린 춘일연 준비를 하러 왔다고 했다.
명월산장은 황제가 하사한 곳이었다. 그런데 장군왕 세자가 명월산장을 도박판에서 날려 버렸다. 장군왕부는 이 사실을 감히 남들에게 말할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도 황궁에서는 명월산장의 사용권 소유주가 바뀐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월령안도 이 일을 알리고 싶지 않았다. 명월산장은 여전히 장군왕 세자의 수중에 있다고 생각하도록 묵인했다.
그러다 보니, 황궁에서 사람을 명월산장에 보낸다고 하더라도 월령안에게 사전에 언질을 주지는 않았다. 그래서 황궁 사람들이 들이닥쳐서야 이 일을 알게 되었다.
월령안은 뜻밖이었지만, 놀라지 않고 물었다.
“천궁각의 사람들은 다 준비되었느냐? 은양당에서 꽃은 보내왔고?”
그녀는 조정에서 안전을 위해 춘일연을 취소할 거라 예상했었다. 하지만 동시에 혹시 예정대로 진행될 때를 대비하여 준비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 일로 당황하지 않았다.
지금 성 밖에 나가는 건 조금 번거롭기는 했다. 그래 봤자 사람을 더 많이 붙여 자신을 지키면 그만이었다.
“네, 아가씨. 천궁각의 사람들은 이미 명월산장에 배치해 두었습니다. 다만 은양당에 부탁한 조화는 이틀 뒤에야 보내올 수 있다고 합니다. 천궁각의 장인은 조화를 설치하는 데는 그렇게 시간이 많이 들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하루 전까지만 보내오면 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아가씨께서 잠시 시간을 내어 명월산장에 한 번 오시기를 바란답니다. 한 번 시험해 보셔야지, 아니면 춘일연 당일에 실수할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집사는 말을 마치고 걱정스러운 눈길로 월령안을 바라보았다.
월씨 가문의 집사로서 야율제가 경성을 떠나지 않는 한 월령안이 항상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심씨 가문 재판 때, 아가씨가 병을 핑계 대고 관아에 나가지 않을 리가 없었다. 심씨 가문을 지목하고, 재판을 방청할 때도 모두 집사를 보냈었다.
‘지금 이 시기에 아가씨가 외출하는 건 자신을 위험에 빠뜨리는 거나 마찬가지인데…….’
“천궁각 사람에게 알리게. 내가 사전에 가서 한 번 시험할 테니, 언제든 쓸 수 있게 준비하라 하게.”
그러나 구체적으로 언제 가겠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야율제라는 숨겨진 위험이 제거되지 않는 한, 절대 자신의 행적을 쉽게 드러내지 않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집사가 물러가려 할 때였다. 하인이 급하게 편지 한 통을 가져왔다.
“아가씨, 긴급 서신입니다.”
집사가 앞으로 나가 편지를 받아서 월령안에게 넘겨주었다. 월령안은 편지를 펼쳐 재빨리 읽어 보았다. 그리고 야율제가 월씨 저택을 피로 물들인 뒤, 처음으로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환한 웃음을 지었다.
“약왕곡에서 답장이 왔구나. 손 신의가 어르신의 병을 고쳐 주러 변경에 오겠다고 하네.”
“정말로 다행입니다. 손 신의께서는 어떤 걸 요구하십니까?”
월령안은 평소에는 손불사라고 부르다가, 노인의 병을 고쳐 주러 온다고 하자, 곧바로 손 신의라고 불렀다. 그러나 집사는 조금도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얻는 것도 없는데, 굳이 비위를 맞출 필요는 없었다.
“손 신의는 지금 오는 중이고, 이레 뒤에는 성 밖에 도착한다고 하네. 다른 요구는 없어.
그저 딱 하나, 손 신의는 성에 들어오지는 않으실 거라 하시네. 우리가 성 밖 교외에 거처를 마련해 두었다가 나중에 어르신을 모셔 가면 되네.”
손불사가 변경에 와서 노인의 병을 고쳐 준다고만 하면, 월령안은 그의 모든 요구를 들어줄 생각이었다. 아무리 무리한 요구라도 모두 승낙할 것이다.
“성 밖에 온천이 딸린 장원이 하나 있습니다. 날씨가 덥지 않으니, 당분간 지낼 수 있을 겁니다. 아니면 어르신을 그리로 모셔 갈까요?”
집사가 제안했다.
월령안은 줄곧 바삐 보내다 보니, 온천 장원을 산 지 몇 해가 지났지만, 가서 지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평소에는 고작 채소나 심었으니, 좋은 물건을 낭비한 꼴이었다.
“온천 장원은 팔지 않았었나?”
수중에 재산이 하도 많다 보니,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 것도 있었다. 온천 장원이 있었던 것은 잊어버린 모양이었다.
집사가 웃으며 말했다.
“아가씨, 깜빡하셨군요. 온천 장원은 어르신의 명의로 되어 있어 어르신의 재산입니다.”
다만 그들이 관리하고 있을 뿐이었다. 어르신은 이런 자질구레한 일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월령안은 노인의 명의로 재산을 무척이나 많이 챙겨 두었다. 그러나 노인은 이름만 내걸었을 뿐, 계약서조차 보지 않았다. 이런 것들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집사는 어르신의 과거는 몰랐다. 돈을 하찮게 여기는 모습을 보아서는 결코 평범한 인물은 아닌 듯싶었다.
월령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사람을 보내 말끔하게 치워 놓거라. 어르신은 깔끔한 것을 좋아해. 근처 장원에서 일손을 많이 뽑아다 배치하게. 올해 온천 장원은 아무 수익도 낼 필요가 없네. 어르신과 손 신의만 잘 시중들면 되네.”
“알겠습니다. 아가씨.”
월령안에게서 다른 분부가 없자, 집사는 명령을 받고 물러갔다. 그런데 나간 지 일각도 되지 않아, 그가 도로 들어와 급히 보고했다.
“아가씨, 대장군과…… 조 대인이 왔습니다!”
“육장봉과 조계안? 그 둘이 어떻게 같이 왔지?”
집사의 말을 듣자, 월령안도 깜짝 놀랐다.
두 사람 모두 성격이 지나치게 강했다. 그 둘이 한자리에 모인 광경을 상상할 수가 없었다.
“소인도 모르겠습니다. 두 대인 사이가…… 그다지 좋지 않아 보였습니다. 조금 긴장된 분위기입니다.”
집사는 적합한 단어를 고르려 했다. 하지만 육 대장군과 조 대인 사이에서 풍기는, 짙은 화약 냄새가 나는 분위기를 묘사할 단어를 결국 찾지 못했다.
두 사람은 언제든 맞붙어 싸울 듯한 기세였다. 그리고 정말 싸웠다가는 지붕까지 거덜 날 것 같았다.
“됐네. 두 분 대인께 잠시 기다려 달라고 말씀드리게. 옷을 갈아입고 나가겠네.”
월령안은 오늘 장부를 맞추는 데 편하도록 소매가 좁은 낡은 웃옷을 입고 있었다. 손님을 맞이할 만한 차림새가 아니었다.
“아가씨…….”
집사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응접실에 나가서 두 귀빈을 접대하기 싫은 게 분명했다.
집사가 형장에 끌려가는 듯한 표정을 짓자, 월령안은 저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됐네. 가기 싫으면 가지 말게. 그 두 분은 특별히 접대하지 않아도 될 듯하네.”
집사는 그녀의 아버지가 남겨 준 오래된 사람이었다. 태산이 무너져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경지까지는 아니라도, 산전수전을 다 겪은 사람이었다.
집사가 이렇게까지 긴장하는 모습은 그녀도 처음 보았다.
보아하니, 육장봉과 조계안의 분위기는 집사가 말한 것처럼 그다지 좋지 않거나, 조금 긴장된 정도가 아닌 모양이었다.
하지만 월령안은 움츠러들지 않았다. 당황할 필요도 없다고 여겼다.
일이 생기면 방법을 찾아 해결하면 된다. 정 안 되겠으면 우아한 아가씨인 척, 눈치껏 물러나면 된다.
안 그래도 그녀는 이틀 전에 크게 충격을 받았다. 이미 그럴듯한 이유가 있었다. 그 두 사람이 과격하게 나오면, 보란 듯이 쓰러지면 그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