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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187)화 (187/1,004)

187화 내가 황궁을 나갈 수 있겠나?

난각 안.

조계안은 깨어나자마자, 월령안이 하마터면 야율제에게 살해당할 뻔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상처가 채 아물지도 않았는데도, 기어코 출궁하여 월령안을 보러 가겠다고 고집을 부리고 있었다.

황제는 막지도, 설득하지도 못했다. 그러다 문득 육장봉이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것을 떠올렸다. 급히 궁인을 시켜 육장봉을 불러오게 했다.

육장봉은 금방 월씨 저택에서 오는 길이라, 월령안도 만나 보았다. 그더러 월령안의 근황을 알려달라고 할 셈이었다. 어쨌든 조계안이 채 낫지도 않은 몸을 끌고 월령안을 보러 가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육장봉이 난각에 들어가기도 전이었다. 황제의 측근인 이반반이 조용히 다가와서 안의 상황을 말해 주었다.

“대장군, 전하를 잘 설득해 주세요. 전하의 상처가 이틀 전에도 한 번 터졌었습니다. 어의 말로는 조용히 휴식하고,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폐하께서 일부러 전하를 막는 게 아닙니다.”

“황형! 오늘은 반드시 출궁할 겁니다. 저를 막지는 못하실 겁니다.”

“출궁은 무슨? 무슨 힘이 있어서 출궁한단 말이냐? 방금 약을 먹지 않았느냐.”

“이 약은 아무 소용이 없다고요!”

“계안, 황형 말 좀 들어라. 억지 좀 그만 부려. 장봉이가 금방 돌아올 거다. 장봉이가 방금 월씨 저택에 갔다 왔어. 짐이 보장하마. 월령안에게는 아무 일도 없었어. 아주 멀쩡하다니까.”

육장봉은 들어가자마자, 밖으로 나가려는 조계안을 황제가 힘껏 끌어안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조계안의 벌거벗은 상반신에는 붕대가 층층이 감겨 있었다. 어의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몰라도, 조계안의 몸에는 신발창보다 더욱 두껍게 붕대가 감겨 있었다. 그토록 몸부림치는데도 붕대가 피로 물들지 않았다.

조계안은 황제가 막는 것을 무시하고 그를 힘껏 밀쳐 버렸다. 그리고는 황제를 무시하고 휘청거리며 밖으로 나가려 했다.

육장봉을 본 황제는 구원군을 본 듯 얼굴이 밝아졌다. 이미 힘에 부친 황제는 즉각 손을 놓았다. 체면이고 뭐고 개의치 않고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크게 숨을 몰아쉬었다.

“장봉아, 마침 잘 왔다. 어서 계안이한테 월령안이 잘 있는지 확인해 다오.”

“육장봉, 형제라면 나를 막지 마라. 아니면 너도 똑같이 때려 줄 거니까.”

조계안의 얼굴은 백지장 같았다. 그는 한 손으로 상처를 누르고, 다른 한 손으로는 벽을 짚었다. 안간힘을 써서라도 밖으로 나가려 했다.

“좋아, 막지 않겠다. 마음대로 해.”

육장봉은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서며 길을 내주었다.

“장봉아…….”

황제는 힘들어서 헐떡거리는 중에도, 조계안이 나가는 모습을 보자 서둘러 기어 일어나 막으려 했다. 하지만 몸이 따라 주지 않아, 헛손질만 하고 말았다.

육장봉은 조계안을 전혀 막지 않았다. 대신 앞으로 다가가 황제를 잡아당겨 땅바닥에서 일으켜 세웠다.

“폐하, 체통을 지키셔야 합니다.”

“계안, 계안이가…….”

황제는 일어나기는 했으나, 여전히 헐떡이고 있었다.

“폐하, 걱정하지 마십시오.”

육장봉은 황제를 부축해 한쪽에 앉혔다. 고개를 돌려 제대로 서지도 못하는 조계안을 힐끔 보더니, 가볍게 콧방귀를 뀌었다.

“저 녀석이 황궁을 나설 수 있으면, 제가 조씨로 성을 갈겠습니다.”

쿵!

조계안은 힘겹게 오른발 먼저 문턱 밖으로 내디뎠다. 그다음 왼발도 뒤따라 내딛다가 그만 문턱에 걸려 바닥에 넘어지고 말았다. 상반신이 바로 문턱에 부딪혔다. 그는 고통스러운 나머지 크게 소리쳤다.

“육장봉!”

“자업자득이지.”

육장봉은 냉소만 던질 뿐이었다. 조계안을 부축하러 가지도 않았다.

육장봉은 그가 다칠까 봐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조계안의 몸에 붕대를 어찌나 두껍게 감았는지, 그렇게 넘어졌는데도 전혀 피가 배어 나오지 않았다. 어의가 만반의 준비를 한 게 분명했다.

“장봉이가 오전에 월령안을 만나 보았단다. 월령안의 근황을 알고 있어. 네가 월령안의 근황을 알고 싶으면 장봉이에게 물으면 된단다.”

황제는 그제야 숨을 골랐다. 조계안이 땅바닥에 쓰러져 일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보자, 부축하려 했다. 하지만 육장봉이 막아 나섰다.

“폐하, 조왕 전하는 어린애가 아닙니다.”

그러니 넘어지더라도 어른이 일으켜 세워줄 필요가 없었다.

조계안은 육장봉을 사납게 쏘아보았다.

“저놈 입에서 월령안은 멀쩡하다는 말 말고, 무슨 말이 더 나오겠습니까?”

조계안은 상처가 심해 일어나지도 못하는 주제에 기운은 넘쳤다. 육장봉에게 못마땅함을 더욱 가감 없이 드러내었다.

“월령안은 확실히 아주 멀쩡해. 적어도 지금의 너보다는 훨씬 낫지.”

육장봉은 황제의 앞을 막아서더니, 조계안을 내려다보았다.

“기어서 출궁할 셈인가, 아니면 침상으로 돌아갈 건가?”

“내 일은 네가 걱정할 필요 없다.”

조계안은 이를 갈며 육장봉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나는 기어나가지도 않을 거야!”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조계안이 별안간 손을 들어 문턱을 가격했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금사남목(金絲楠木)으로 된 문턱이 그의 주먹에 한 조각이 떨어져 나갔다.

“내가 하려는 일은 누구도 막지 못한다.”

조계안은 바닥의 나뭇조각을 주워 왼쪽 어깨를 푹 찔렀다.

조계안의 부상이 심하기는 했다. 그러나 여러 날을 요양했으니,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힘들 리가 없었다. 그가 지금 힘을 못 쓰는 것은 약에 정신을 안정시키고, 수면을 돕는 성분이 들어 있기 때문이었다.

황제는 조계안이 얌전하게 누워 요양하도록, 특별히 어의에게 이런 성분을 배로 넣으라고 분부했다. 그러면 조계안이 말썽을 부릴 힘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조계안도 처음에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하지만 연 이틀을 밤낮없이 잤는데도 정신을 차릴 수가 없자 이상함을 느꼈다. 황제에게 당했다는 것쯤은 굳이 머리를 쓰지 않더라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래서 문턱을 쪼개 나뭇조각을 만들어,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스스로를 찔렀다. 이렇게 해서라도 정신을 차리려 했다.

나뭇조각이 단단하기는 해도, 예리하지는 못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조계안이 살짝 찌른 듯했지만. 사실은 온몸의 힘을 다해 있는 힘껏 찔렀다.

그의 의지는 그만큼 강경했다. 물론, 효과도 바로 나타났다.

조계안은 통증 덕에 순식간에 정신이 확 들었다. 힘도 어지간히 회복되었다.

그는 문틀을 잡고서 가까스로 기어 일어났다. 동시에 가슴에 감긴 붕대를 있는 힘껏 잡아당겨 풀려고 했다. 하지만 아무리 해도 풀 수가 없었다.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이게 다 뭐야? 태의원 놈들은 뭐 하는 것들이야? 이렇게까지 감다니, 날 죽일 셈인가?”

“계안, 미쳤느냐. 제 몸을 이렇게 못살게 굴다니. 죽고 싶은 거냐?”

황제는 조계안이 자해하는 모습을 보자, 다급한 나머지 눈까지 빨개졌다. 앞으로 다가가려고 했지만, 육장봉에게 가로막힌 채였다. 한쪽에 서서 애만 태울 수밖에 없었다.

정작 조계안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했다. 눈을 들더니 오만방자하게 말했다.

“황형, 아직도 절 막을 겁니까?”

푹, 하는 소리가 울렸다. 조계안이 어깨에 찔러 넣었던 나뭇조각을 뽑아냈다.

피가 철철 흘러내렸다.

그러나 그는 눈썹 하나 깜짝하지 않고, 입꼬리를 살짝 올려 보였다. 창백한 얼굴에는 형언할 수 없는 요사스러움이 서려 있었다.

피는 조계안의 어깨를 타고 흘러내려, 곧 몸에 감긴 붕대를 붉게 물들였다.

황제는 화가 나 두 눈이 벌게졌다.

“계안, 짐은 너를 위해서 그런 거다. 네 몸이 못 버티잖느냐. 짐의 말을 한 번이라도 좀 들어라. 말썽 좀 그만 피우거라.”

“저를 위해서라고요?”

조계안이 얼굴에 조소를 드러냈다.

“저는 이보다 더 심한 부상을 입은 적도 있습니다. 중상을 입은 몸을 이끌고 사흘 밤낮을 도망쳤지요. 그때 황형은 왜 저를 위한다는 말씀은 하지 않으셨습니까? 왜 저더러 도망치지 말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황제의 눈에는 자책의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계안, 그때 짐은…….”

조계안은 그의 말허리를 사정없이 잘라버렸다.

“황형, 그때 황형은 제게 간섭하지 못했지요. 그러니 지금도 황형은 제게 간섭하지 못합니다. 아시겠습니까?”

말을 마친 조계안은 능글맞게 웃으며 도발하듯이 육장봉을 바라보았다.

“지금은 어때? 내가 황궁을 나갈 수 있겠나?”

“못 나간다.”

육장봉이 앞으로 한 발 나섰다. 온몸에서는 사람을 짓누르는 위압감이 뿜어져 나왔다.

“내가 못 나간다고 하면 못 나가는 줄 알아.”

“여기는 황궁이야.”

조계안은 차갑게 비웃었다. 그는 티 내지 않고 육장봉을 함정에 빠뜨리려 했다. 그러나 육장봉은 전혀 말려들지 않았다.

“그러니까 폐하의 말씀을 들어야지.”

육장봉은 말을 마치고 황제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살짝 고개를 숙이고 물었다.

“폐하, 조왕을 나가게 하실 겁니까?”

“아니…….”

“황형!”

조계안은 불현듯 목소리를 높였다. 온통 험악한 표정으로 위협했다.

“저를 잠깐 막을 수는 있어도, 평생 막지는 못할 겁니다.”

황제는 화가 나서 이를 갈았다.

“넌 월령안이 괜찮은지 보고 싶은 게 아니냐? 짐이 월령안을 궁으로 부르마. 그러면 안 되겠느냐?”

“궁으로 불러서 어쩌자고요? 월령안의 목숨을 노리는 사람이 어디 한둘입니까?”

조계안이 조소가 어린 표정으로 말했다.

“야율제가 왜 월령안을 죽이려 했을까? 우리 육 대장군이 그 이유를 모를 수 있나?”

조계안은 이 말을 육장봉에게 했지만, 끝에 가서는 황제를 의미심장하게 바라보았다.

“청희 장공주가 무고하다고요? 황형, 지금도……. 황형은 그 여자가 무고하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전쟁에 대한 월령안의 공헌은 조정의 원로 대신들만 알고 있었다. 멀리 북요에 있는 야율제뿐만 아니라 보통 하급 관리들조차 모르는 내부 기밀이었다.

그리고 황제는 일찍 속사정을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함구령을 내렸다. 월령안의 존재를 폭로하는 것을 엄하게 금지했다. 그리고 그녀와 관련된 소식은 밖으로 새어 나가지 못하게 암암리에 막았다.

이러한 조치는 월령안의 보호를 위해서였다. 또한, 조정의 체면을 위해서이기도 했다.

조정 대신들도 아주 협조적으로 이 사실을 감쪽같이 속이고 있었다.

월령안이 어둠에 가려져 있으면, 그들과 공로를 다툴 사람도 적어진다. 또한, 황제가 명령을 내렸기에 당연히 협력했다.

육장봉은 변방에서 북요와 삼 년 동안 전쟁을 치렀다. 북요인뿐만 아니라 심지어 육장봉조차도 월령안의 공헌을 모르고 있었다. 변경에 돌아온 다음에 사람을 시켜 조사해서야 알아낸 사실이었다.

만약 야율제가 변경에 와서 한동안 머물면서 신경을 써서 조사했다면, 조만간 실마리를 찾아낼 수는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변경에 도착하자마자, 국경에서의 월령안의 공헌을 알게 되었고, 곧 월령안을 주목했다.

조계안은 이렇게 된 데에는 청희 장공주의 개입이 있었을 거라고 확신했다.

그는 자신의 부하들을 신뢰했다. 온갖 심혈을 다 기울여 막은 정보였다. 북요인이 쉽게 조사해 낼 수가 없었다.

야율제가 월령안의 일을 이렇게 빨리 알게 된 걸 보면, 그와 보통 관계가 아닌 청희 장공주가 알려 준 게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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