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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186)화 (186/1,004)

186화 물러서지 않을 거예요

“폐하께서는 바꾸기로 하셨나요?”

월령안은 갑자기 흥미가 생긴 모양이었다. 신기한 장난감을 본 어린애처럼, 고요하던 눈빛에 생기가 넘쳤다.

“말썽 피울 생각은 마시오.”

육장봉은 가볍게 꾸짖었다. 눈에는 자신도 미처 느끼지 못한 애틋함을 듬뿍 담고 있었다.

“말썽을 피운다고요?”

월령안이 비웃었다.

“육 대장군, 저는 여덟 살 때부터 말썽을 피우지 못했어요. 전 진지하다고요. 진지하게 묻는 거예요. 성 열여섯 개를 저와 맞바꾸는데, 폐하께서 동의하셨나요?”

육장봉이 화가 나서 되물었다.

“당신 생각은 어떨 것 같소?”

‘이 여자는 도대체 무슨 생각이지?’

성 열여섯 개가 많은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변경을 개척하고 영토를 넓히는 것은 무장이 할 일이다. 월령안 같이 어린 여자에게 지울 짐도 아니고, 주나라가 그 정도로 궁핍하지도 않았다.

월령안은 웃음을 거두고 진지하게 말했다.

“저는 폐하께서 동의하시기를 건의해요. 성 열여섯 개가 적지 않잖아요. 다음번에는 북요가 이처럼 통 크게 나오지 않을 테니까요.”

“진지하게 하는 소리요?”

육장봉은 월령안을 주의 깊게 바라보았다.

‘이 여자는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기는 할까?’

“물론이죠.”

월령안은 머리를 끄덕였다.

“성 열여섯 개와 여인 하나를 맞바꾸다니. 어떻게 보아도 이문을 남기는 장사 아닌가요? 왜 안 바꿔요?”

육장봉이 얼굴빛을 흐리면서 말했다.

“월령안, 그렇게 떠볼 필요 없소. 폐하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현명하신 분이오.”

‘이 여인은 이렇게까지 내가 미덥지 못한가? 내가 자신을 지켜 줄 수 있다고 전혀 믿지 못하는 건가?’

“아니, 전 시험하려는 게 아니고 진심이에요. 폐하께 제가 동의한다고, 북요에 회답하시라고 전해주세요.”

북요에서 감히 성 열여섯 개와 그녀를 바꾸겠다고 나왔다. 그러면 그녀도 감히 북요에 갈 것이다. 그리고 북요의 황제와 모든 황실 구성원의 수급을 원한다고, 황금당에 황금 이백만 냥을 내걸 것이다.

‘결국, 누구 돈이 더 많은지 해보자는 거 아냐? 내가 돈 내기로 누구를 무서워한 적이 있던가?’

육장봉은 월령안을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말했다.

“당신은 죽어도 타협하지 않을 셈이오? 절대 물러서지 않을 거요?”

“물러서지도, 타협하지도 않을 거예요.”

성 열여섯 개와 그녀를 맞바꾼다. 고작해야 황금당에 내건 현상금을 거두어들이라며 압박하려는 것일 뿐이다.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 싫어!’

“상대는 북요요.”

육장봉은 담담하게 말했다. 월령안을 일깨워 주려고 했지만, 정작 육장봉 본인은 북요를 하찮게 여겼다.

“상인은 신용을 중요시해야 해요. 제가 내건 현상금은 죽어도 거두어들이지 않을 거예요.”

물러설 수 있는 일도 있다. 하지만 한 번 물러섰다가는,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는 떡 취급을 받게 되는 일도 있다.

이번에 그녀가 북요의 강대한 힘에 눌려 물러선다면, 다음번에는 어떻게 되겠는가.

다음번에 야율제가 사사를 거느리고 다시 그녀의 집으로 쳐들어온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녀가 여전히 참고, 물러서고, 양보해야 할까?

그녀의 얼굴에 침을 뱉더라도, 남의 가랑이 사이로 기어나가야 하더라도 모두 참을 수 있다. 하지만 상대방이 집까지 쳐들어왔다.

참을 수가 없고 참을 생각도 없다.

그녀가 인내하는 것은 모두 살기 위해서였다.

울분을 참고 억울함을 삼키면서도,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참아야 했고, 그래도 괜찮았다.

그러나 그녀는 생사와 관련된 일은 절대로 참지 않았다. 절대로 참지도, 양보하지도 않을 것이다.

“만약 북요에서 거액의 현상금을 내걸면, 당신은 하루도 편할 날이 없을 거요. 알기나 하오?”

육장봉은 이런 결과를 짐작하고 있었다. 그래서 월령안의 거절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월령안이 어떤 사람인지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부드러운 것은 받아들이지만, 강한 것에는 반발했다.

그녀의 마음속에는 저울이 있었다. 곤경에 맞닥뜨려도, 냉정하고 이지적이었다. 절대 감정에 휘둘리지 않았다.

현상금을 내걸 때부터 상황이 어떻게 될지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강행한 걸 보면, 만반의 준비를 해 둔 게 분명했다.

“무서울 게 뭐가 있어요. 제가 편할 날이 없으면, 북요 황실도 편하게 지낼 생각은 말아야죠.”

월령안은 경멸조로 말했다.

“북요 황자의 머리를 황금 이십만 냥으로 살 수 있다면, 저는 북요 황실의 씨를 말릴 수도 있어요.”

육장봉은 눈썹을 치켜세우며 살짝 놀랐다.

“수중에 혹시 금 광산이라도 있는 것이오?”

하여튼 입담 하나는 보통 거창한 게 아니었다.

“그깟 허풍 누가 못 쳐요? 북요는 정말로 성 열여섯 개를 내놓을 수 있는 것처럼 말씀하시네요.”

그녀에게는 물론 금 광산이 없었다. 하지만 북요 황자의 머리를 그렇게 쉽게 얻을 수 있겠는가.

어차피 서로 허풍을 치는 것뿐이었다. 그렇지만 그녀의 명성이 자자하다 보니, 허풍을 쳐도 믿는 사람이 적지는 않을 것이다.

육장봉은 참지 못하고 웃고 말았다.

“당신 말이 맞소. 폐하더러 북요의 성 열여섯 개와 당신을 맞바꾸는 데 동의하라고 했어야 했군.”

북요가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은 뻔했다. 하지만 같은 방법으로 월령안의 머리에 거액에 현상금을 내걸 수는 있었다.

사람은 재물 때문에 죽고, 새는 먹이 때문에 죽는 법.

월령안은 본인이 가주였으니, 수중의 재산을 물 쓰듯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북요는 야율제 하나 때문에 무리하게 월령안과 다투지 않을 것이다.

“북요에서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하세요. 제가 무서워하면 성을 갈 거예요.”

월령안이 부드럽게 웃었다.

북요에서 남원왕부(南院王府)를 계승할 사람이 야율제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북요 귀족 가운데서 야율제를 위해 나서 주는 이가 있으면, 반대로 이 기회를 틈타 야율제를 넘어뜨리려 하는 이도 당연히 있을 것이다.

‘추수와 상천이 북요의 국경지대에 도착할 때가 되었군. 애들더러 북요에 한 번 다녀오라고 해야겠다.’

상인이라면 유세에 능한 법이다.

그녀가 큰돈과 이익을 뿌린다면, 탐욕스러운 북요 귀족들의 마음이 동하지 않을 리가 없다고 확신했다.

그리고 그녀의 적은 오직 야율제뿐이다. 북요의 이익에는 손해를 가지 않을 것이다.

육장봉은 머리를 끄덕였다. 더는 월령안을 설득하지 않았다.

“당신 저택의 호위가 너무 약하오. 야율제가 경성을 떠나기 전에는 내가 암위를 보내 당신을 보호할 거요.”

“필요 없어요. 저에게는…….”

육장봉은 그녀에게 거절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수횡천은 무림맹주이지 당신의 호위가 아니오.”

월령안은 대답하지도, 거절하지도 않았다. 그저 침묵을 지켰다.

“이는 폐하의 뜻이오.”

황제는 철광산 일 때문에 지금껏 월령안을 신임하지 않았다. 월령안의 곁에 사람을 두지 않은 건 조계안을 믿기 때문이었다.

월령안은 조계안의 부하라고 할 수 있었다. 황제는 조계안을 믿기에 그녀의 곁에 사람을 붙이는 쓸데없는 짓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조계안은 황제의 신뢰에 부응하지 못했다. 이번 사건으로 그가 월령안의 곁에 쓸 만한 사람을 붙이지 못했다는 것이 드러났다.

그렇지 않았다면 야율제가 그렇게 쉽게 월씨 저택, 월령안의 처소까지 쳐들어갈 수가 없었다.

“알겠어요.”

월령안은 머리를 끄덕였다. 눈을 가느다랗게 떠 눈빛에 담긴 조소를 감추었다.

‘자고로 제왕은 의심이 많은 법이지.’

청주의 월씨 가문 모두는 황실을 위해 백 년을 일하는 동안, 황제에게 충성을 다했다. 그런데 있는지 없는지도 확실하지도 않은 철광산 하나 때문에 황제는 그녀도, 월씨 가문의 충성심도 믿지 않았다.

* * *

월령안의 결정은 야율제에게 제일 먼저 전달되었다.

부하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야율제는 노발대발하며 탁자 위의 청자 찻잔 한 벌을 모조리 깨트렸다.

그의 얼굴이 험상궂게 뒤틀렸다.

“그년이 곱게 권하는 술은 안 먹고 기어이 벌주를 먹어야겠다 이거지! 내가 진짜 자기를 어찌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모양이군.”

“대왕, 노여움을 푸십시오.”

야율제의 부하는 그의 발치에 꿇어앉아, 숨도 크게 내쉬지 못했다.

“그 여자에게 전해라. 무슨 수를 써서도 황제를 성가시게 해 주라고.”

야율제의 얼굴은 온통 음험함과 악랄함으로 뒤덮여 있었다. 벌겋게 충혈된 두 눈에, 어두운 낯빛을 보면, 요사이 편하게 지내지 못한 것이 분명했다.

“대왕, 장공주 마마께서는 편찮으십니다. 영녕후 세자가 곁에 붙어서 장공주를 보살피고 있어, 저희가 접근할 수가 없습니다.”

야율제의 부하는 튕겨 나간 자기 조각에 눈꼬리 부분이 크게 찢겼다. 피가 철철 흘렀지만, 신음조차 흘리지 못했다.

야율제의 곁에 따라다니는 사람들은 자신의 주인이 얼마나 흉포한지 잘 알고 있었다.

“편찮으시다?”

야율제가 냉소했다.

“참 때도 잘 맞춰서 앓아누웠군. 나 때문에 연루될까 두려워 감히 나를 만나지 못하는 거겠지.”

“대왕께서 장공주 마마를 오해하신 겁니다. 장공주 마마께서는 잠 맹주가 잡혔다는 소식에 상심이 크신 것뿐입니다.”

야율제의 부하는 변경의 소식을 알아내느라 평소에 청희 장공주와 자주 접촉했다. 그러다 보니 그녀와도 잘 아는 사이라, 저도 모르게 그녀의 편을 들고 나섰다.

“쓸모없는 여인네 같으니. 남자 하나에 목을 매? 만약 월령안의 일 할만큼이라도 독했으면, 지금처럼 쭈그러져서 살지는 않았을 텐데.”

야율제의 길고 가느다란 눈에 순간 핏빛 한기가 스쳐 지나갔다.

“다시 다섯째더러 주나라 황제에게 국서를 보내라고 해라. 내가 월령안을 왕비로 골랐으니, 두 나라 사이에 혼인을 맺겠다고 전해.”

부하로서는 야율제를 설득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설득할 수도 없음을 알았기에, 겨우 이렇게 말했을 뿐이다.

“대왕……. 일단 변경에서 떠나시지요. 육장봉이 이미 대왕의 종적을 발견했습니다. 만약 육장봉이 저희를 찾아내면, 대왕께서 위험해지실 수도 있습니다.”

“육장봉 그놈이 뭔데? 내가 드러내지 않으면, 누구도 날 찾지 못할 거다.”

야율제는 경멸하는 표정으로 콧방귀를 뀌었다.

“허튼소리 그만하고, 내 명령대로 실행해라.”

“네, 대왕.”

부하는 더는 설득하지 못하고 물러갔다.

* * *

이 무렵. 야율제를 놓친 육이는 방금 출궁한 육장봉에게 보고하고 있었다.

“소인이 실수했습니다. 야율제가 도망쳤습니다.”

“알았다.”

대답하는 육장봉의 얼굴에서는 아무 감정도 읽어낼 수 없었다.

“장군, 야율제가 성안에 있다는 소식을 퍼뜨릴까요?”

육이가 떠보듯 물었다.

육장봉은 걸음을 멈추고, 육이를 바라보았다.

“요즘 아주 한가한가?”

육이는 연신 머리를 저으며 한발 물러섰다.

“소인이 잘못했습니다.”

육장봉은 눈길을 거두고 앞으로 걸어 나갔다. 두 걸음도 채 걷지 못했을 때였다. 등 뒤에서 내관의 다급한 부름이 들려왔다.

“대장군, 대장군…….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육장봉은 걸음을 멈추었다.

내관은 기쁜 얼굴을 하고 재빨리 육장봉의 앞으로 달려왔다. 예를 올리더니, 헐떡이며 말했다.

“대장군, 조왕 전하가 깨어나셨습니다. 폐하……. 폐하께서 장군더러 오시라고 하셨습니다.”

“조왕이 어쨌길래?”

육장봉은 듣자마자, 조계안이 또 말썽을 부린다는 것을 알아챘다.

매번 똑같았다. 황제는 조계안을 어찌하지 못할 때마다 육장봉을 불렀다.

“어, 그게……. 조왕 전하께서 언짢으신 듯합니다.”

내관이 난감한 얼굴로 우물쭈물했다.

“됐다. 가자.”

육장봉은 대답하고서, 다시 황궁 안으로 되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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