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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179)화 (179/1,004)

179화 월령안은 내 여자다

“령안아, 어찌 된 거냐?”

“월령안, 조심하오!”

수횡천이 월령안과 더 가까이에 있었다. 하지만 월령안이 쓰러지는 순간, 육장봉은 갑작스럽게 앞으로 뛰쳐나갔다. 수횡천을 밀쳐 내고 월령안의 허리를 와락 끌어안았다.

“월령안, 괜찮소?”

“오빠?”

월령안은 이미 의식이 모호했다. 육장봉의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저도 모르게 그리움이 드러난 미소를 떠올렸다.

“오빠, 정말 보고 싶었어요.”

“오빠?”

그녀를 안고 있던 육장봉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이건 또 누구를 부르는 거지? 나를 누구로 여긴 거야? 어째서 저 호칭이 익숙한 거지?’

하지만 그는 누구를 누이동생으로 삼은 적이 없었다. 어릴 적부터 여리고 쉽게 울기만 하는 여자애들을 싫어했다. 여자애들과 가까이한 적이 없었기에, 그를 오빠라고 부를 만한 여자애도 없었다.

‘설마 월령안이 사람을 잘못 본 건가?’

육장봉은 월령안을 안고 있던 손에 저도 모르게 힘을 주었다. 그녀를 품에 꽉 껴안았다.

‘나를 오빠라고 불렀으니까, 이제는 내 사람이다.’

“육장봉, 령안이를 내려놔라!”

수횡천은 순간 방심하는 바람에, 육장봉에게 부딪혀 땅에 쓰러졌다.

그가 일어났을 때, 월령안은 이미 육장봉의 품에 안겨 있었다.

수횡천이 화가 나서 손을 내밀어 빼앗으려 했다. 그러나 육장봉이 피해 버렸다.

“수횡천, 무슨 짓인가?”

수횡천이 화가 나서 말했다.

“내가 댁에게 묻고 싶은 말이요. 지금 뭐 하는 거요? 령안이를 껴안고서 무슨 짓을 하려고? 어서 빨리 내려놓지 못해!”

‘육장봉, 이 나쁜 자식! 령안이를 내칠 때는 언제고. 인제 와서 령안이의 몸에 손을 대? 이런 몹쓸 놈을 봤나.’

“월령안을 내려놓으라고?”

육장봉은 월령안을 안은 채 한발 물러서더니,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월령안이 쓰러진 것을 보지 못했나?”

“알고 있어. 그러니까 령안이를 나한테 맡기라니까!”

수횡천은 두 번을 빼앗으려 시도했으나, 모두 성공하지 못했다. 아예 직접 말했다.

“왜 자네에게 맡겨야 하지?”

육장봉은 월령안을 안고서 옆으로 한 발 피했다. 분명하게 거절했다.

“내가 방으로 데려가 쉬게 할 걸세.”

‘육장봉, 저 몹쓸 놈이 아주 령안이를 만만하게 보네. 아주 쓰레기잖아! 령안이가 육장봉을 만난 건, 아주 조상 대대로 재수에 옴 붙은 꼴이야.’

수횡천 같은 제삼자조차도 도저히 참고 볼 수 없을 정도였다.

“내가 안고 가면 되네.”

‘수횡천은 자기가 뭐라도 되는 줄 아는군. 감히 내 손에서 사람을 빼앗겠다니. 오래 살기 싫은 모양이지?’

육장봉은 수횡천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월령안을 안고 안뜰로 걸어갔다.

수횡천은 육장봉의 앞을 막아 나섰다.

“남녀칠세부동석을 모르오? 육 대장군, 거긴 령안이의 규방이란 말이오.”

“그래서?”

육장봉이 콧방귀를 뀌었다.

“령안이를 내게 맡기시오.”

수횡천은 유달리 엄숙한 표정으로 다시 한번 말했다.

육장봉은 령안이의 규방에 들어갈 자격이 없었다.

“수 맹주야말로 남녀칠세부동석을 잊은 모양이군.”

육장봉은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 그리고 그의 말을 고스란히 돌려주었다.

“나는 그 애 오라버니오!”

수횡천은 월령안에게 사심이 손톱만큼도 없었다. 지금도 월령안의 몸만을 걱정하고 있었다. 그러니 육장봉과 대하면서도 전혀 찔리는 구석 없이 당당했다.

“나는 월령안의 남편일세.”

육장봉은 더욱 당당했다.

“고작 전 남편 주제에.”

수횡천이 하찮다는 듯이 콧방귀를 뀌었다. 또다시 손을 내밀어 육장봉의 손에서 월령안을 빼앗으려 했다.

“령안이를 나에게 맡기시오. 쉬어야 한단 말이오.”

“자네나 비키게. 내가 데리고 들어가서 쉬게 할 테니까.”

수횡천은 물러서지 않고 끝까지 덮쳐들었다. 육장봉은 한 걸음 물러섰다가 갑자기 다리를 들어 걷어찼다.

수횡천은 몸을 날려 피했다. 하지만 여전히 육장봉의 앞을 막아,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

“육장봉, 너무하는 것 아니오.”

“도대체 누가 너무하는 건가? 수횡천, 잠한성의 일은 아직 내가 따지지도 않았네.”

수횡천의 성격은 정말이지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었다. 성격이 저 모양이니 무림맹주가 된 지 사 년이 다 되는데도, 아직 문파들을 아우르지 못했다. 그리고 사람들 마음속에서 잠한성의 위치를 대체하지도 못했다.

‘정말 무능하기 짝이 없군.’

“댁이 나더러 잠 선배와 싸우라고 해서 싸웠소. 더 따질 게 뭐가 있다는 말이오?”

정작 수횡천은 자기가 일 처리를 제대로 했다고 여겼다.

‘나더러 잠 선배와 싸우라고 해서 싸웠고, 이기기까지 했다. 이만하면 조정의 요구대로 처리한 게 아닌가?’

“나는 자네와 잠한성 중 한 사람만 살아남아야 한다고 했네. 그런데 결과는? 자네가 잠한성을 버려두고 달아났지. 앞으로 어떻게 될지 생각해 봤나?”

육장봉은 오늘 밤 잠한성을 죽이기로 황제에게 약조했었다.

감정에 사로잡혀 일의 경중을 구분하지 못하는 수횡천의 모습은 너무 실망스러웠다.

“모든 결과는 내가 책임질 거요!”

수횡천은 변명하지 않고, 침묵을 지켰다.

결정적인 순간에 도망친 사람은 분명 수횡천이었다. 만약 그것 때문에 잠한성을 놓쳤다면, 확실히 그의 책임이었다.

“흥!”

육장봉은 콧방귀를 뀌었다. 수횡천이 잠깐 정신을 판 사이, 월령안을 안고 그의 방어를 뚫고 안뜰로 걸어갔다.

“육장봉!”

수횡천은 자신이 잠깐 정신을 판 사이 육장봉이 월령안을 안고 자기 곁을 지나치는 모습을 보았다. 바로 화가 나서 고함을 지르며 몸을 돌려 육장봉을 덮쳤다.

수횡천의 공격은 빠르고도 맹렬했다. 육장봉도 걸음을 멈추고 그의 공격을 받아 낼 수밖에 없었다.

“수횡천, 내가 적당히 하라고 했네. 아니면 나를 무정하다고 탓하지 말게.”

“적당히 할 사람은 그쪽이오! 육장봉, 당신이 령안이를 얼마나 위험하게 만들었는지 모르나? 저번에도 령안이가 당신과의 약속 때문에 성 밖에서 위험에 빠졌소. 오늘도 마찬가지지. 당신 때문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나?”

수횡천은 육장봉이 월령안을 안고서도 여전히 자신의 공격을 거뜬히 받아 내는 모습을 보았다. 마음속으로 놀라움을 금치 못한 나머지 그를 시험하고 싶은 마음이 일었다.

그는 지금도 육장봉이 천목신교 교주 남상권이라는 의심을 거둘 수가 없었다.

그날 밤, 육장봉의 몸매나 분위기 모두 남상권이 그에게 주었던 느낌과 똑같았다.

심지어 빠르게 움직이는 자세나, 경공술(輕功術 – 몸을 가볍게 놀리는 법)의 동작조차도 남상권과 판박이였다.

하지만 그날 이후 육장봉에게서 다시는 남상권의 그림자를 찾을 수가 없었다.

바로 그 점이 더욱 의심스러웠다.

그날 밤의 육장봉이야말로 진정한 육장봉이라는 직감이 들었다.

수횡천은 줄곧 육장봉을 시험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러나 여태껏 손을 쓸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오늘이야말로…….’

오늘이 좋은 시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러한 기회가 다시 오기도 쉽지 않았다.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령안아, 미안하다.’

수횡천은 마음속으로 묵묵히 되뇌었다. 곧이어 갑자기 힘을 폭발시키더니, 육장봉을 필사적으로 공격했다.

퍽! 퍽! 퍽!

수횡천은 병기 없이 맨주먹으로 육장봉을 공격했다. 모든 공격이 육장봉의 몸에 적중했다. 주먹을 내지를 때마다 거센 바람이 일었다. 발차기 하나하나에도 힘이 충만했다.

“수횡천, 고작 이 정도였나.”

육장봉은 곧 이상한 점을 알아차렸다. 그는 한 손으로 월령안을 안아 조심스럽게 등 뒤에 감추었다. 감히 한눈을 팔 수는 없었다. 온 신경을 집중해 수횡천의 공격을 받아 냈다.

‘월령안을 걱정한다더니. 모두 거짓말이었군.’

진심으로 월령안을 걱정한다면, 그를 한두 번 막다가 그만두어야만 했다. 그런데 지금 수횡천은 필사적으로 그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수횡천은 그를 떠보고 있었다. 그의 실력을, 또는 다른 신분이 없는지를 알아보려는 게 분명했다.

“댁이 령안이를 내려놓으면 멈추도록 하지.”

수횡천은 낯가죽이 그렇게 두껍지 못했다. 육장봉이 자기의 속셈을 알아차린 것을 보자, 얼굴이 순식간에 벌겋게 달아올랐다. 속이 켕기는 바람에 시선을 피했다.

육장봉을 감히 바라볼 수가 없었다. 월령안은 더더욱 볼 수가 없었다.

“허, 싸움을 걸어오면 싸우면 그만이지. 내가 자네를 무서워하겠는가?”

육장봉은 별 볼 일 없다는 듯이 콧방귀를 뀌었다. 수횡천이 켕겨서 공격을 멈추자, 그도 그 틈을 타서 공격하지는 않았다. 대신 방어함으로써 공격했다.

‘수횡천이 내 실력을 시험해 보고 싶은 모양이군? 좋다!’

그는 오늘 수횡천에게 사람 구실 하는 법을 가르칠 셈이었다. 그리고 진정한 무림지존(武林至尊)이 무엇인지도 알려주려 했다.

퍽퍽퍽!

육장봉과 수횡천은 한데 어우러졌다. 두 사람 사이에 매번 살기등등한 공격이 오갔다. 하지만 승부를 가리기는 어려웠다.

수횡천은 최대한 월령안을 피하면서 매번 육장봉의 급소를 노리고 주먹을 날렸다. 반대로 육장봉은 일말의 주저함도, 거리낌도 없이 수횡천의 얼굴을 집중적으로 공격했다.

두 사람은 수십 번의 접전을 거쳤다. 수횡천의 얼굴은 몇 번이고 주먹맛을 보았다.

물론 육장봉도 나을 게 없는 처지였다. 그의 주먹에 적지 않게 얻어맞았다.

하지만 그는 몸에 연갑을 착용하고 있었다. 수횡천의 힘의 삼 할 정도는 연갑이 흡수했다. 그래서 수횡천보다는 여유가 있어 보였다.

게다가 수횡천은 월령안 때문에 손발이 묶일 수밖에 없었다. 도저히 날카롭게 공격할 수는 없었다. 결정적인 순간에, 육장봉 이 쓰레기가 월령안을 방패막이로 삼을까 겁이 났다.

그는 육장봉의 인격은 믿었다. 하지만 그의 월령안에 대한 감정은 도저히 신뢰가 가지 않았다.

왜냐하면 육장봉은 월령안에게 아무 감정도 없는 듯 행동했기 때문이다.

‘령안이를 대하는 게 보통 백성을 대하는 것보다도 못하잖아.’

길가의 백성들이 그와 전선의 병사들에게 물을 떠 주었다고 해 보자. 육장봉은 감사하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월령안에게도 그럴까?

월령안의 모든 헌신을, 육장봉은 미안한 마음이라고는 전혀 없이 당연하다는 듯 받아들였다.

수횡천은 월령안의 안전을 위해, 그리고 제대로 한 판 붙기 위해 노성을 질렀다.

“육장봉, 령안이를 내려놔라. 우리 제대로 한 판 붙어 보자!”

수횡천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월령안을 안고 있는 쪽은 분명 육장봉이었다. 원래대로라면 망설여야 할 사람은 육장봉이었다. 그런데 왜 자기 쪽이 제대로 공격하지 못할까.

‘내가 육장봉보다 독하지 못해서인가?’

“나더러 월령안을 내려놓으라고? 좋아, 먼저 나를 이기고 다시 말하게.”

육장봉은 월령안을 더욱 꼭 껴안았다.

‘월령안을 내려놓으라고. 절대 불가능하지.’

“잠 선배 말이 맞는군. 네놈은 정말 뻔뻔해!”

수횡천은 화가 나서 되는 대로 쏘아붙였다.

“분명 그쪽이 먼저 령안이를 내쳤잖아. 그런데도 그 애를 놓아주지 않다니. 너무 이기적이지 않나!”

육장봉이 냉랭하게 말했다.

“월령안이 먼저 나를 자극했는데, 내가 왜 가만두어야 하지? 오히려 수횡천, 자네야말로 월령안에게 무슨 마음을 품었든지 모두 접게. 멀리 꺼질수록 좋을 거다. 내 성격이 그리 좋지 못하거든.”

수횡천도 만만치 않게 화가 났다.

“당신은 무슨 자격으로 나더러 령안이를 멀리하라고 하는 거요? 령안이는 내 누이동생이란 말이오!”

“월령안은 내 여자다! 이 이유 하나면 충분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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