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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174)화 (174/1,004)

174화 내 보호 따위는 필요 없어 보이는데?

야율제의 기세가 갑자기 변했다. 손에 든 검으로 월령안의 미간을 겨누었다.

“아니면 뭐?”

월령안의 안색에는 여전히 변화가 없었다. 그녀는 살그머니 왼손을 구부려, 야율제의 복부를 조준했다.

“우리 북요의 용사는 너희 주나라의 야들야들한 여인들을 가장 좋아하지.”

야율제는 하얀 이를 드러냈다. 촛불이 비추자 더없이 음산하고 무서운 기운을 뿜었다.

“어머나, 무서워라.”

월령안은 일부러 호들갑스럽게 비웃었다.

“감히 날 비웃……!”

야율제는 격노해, 손에 든 검으로 찌르려고 했다. 바로 그때, 투명한 빙주가 월령안의 손에서 야율제를 겨누고 날아갔다.

공격하는 순간, 월령안은 일부러 무릎을 굽히고 빙주를 아래쪽으로 쏘았다. 바로 야율제의 아랫도리를 조준한 것이다.

퍽!

빙주가 야율제의 급소에 명중했다.

“으악!”

야율제는 손에 든 검을 버리고, 아랫도리를 움켜쥐었다. 고통스러운 비명이 울렸다.

월령안은 검을 집어 들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몇 걸음을 뛴 월령안은 야율제가 쫓아오지 못한다는 것을 확신한 다음에야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에게 달콤한 웃음을 지었다.

“보아하니, 남원대왕께서는 오늘 밤을 저와 보내지 못하시겠군요.”

“월령안! 죽여 버리겠어! 꼭 네년을 죽여 버리겠다!”

야율제의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은 식은땀으로 뒤덮여 있었다. 그는 아랫도리를 움켜쥔 채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월령안은 야율제가 방심한 사이, 암기를 사용해서 그의 칼끝에서 무사히 빠져나왔다. 그러나 그 바람에 야율제를 철저히 자극하고 말았다.

오래지 않아 극심한 고통이 물러가자, 야율제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쫓아 나왔다.

“월령안, 너를 갈가리 찢어 죽이겠다!”

월령안은 야율제가 울부짖는 소리를 듣고 잠시 걸음을 멈췄다. 하지만 서둘러 밖으로 뛰어갔다.

야율제의 말대로라면 밖의 상황은 좋지 못할 것이다. 월씨 저택의 호원들은 야율제 수하들의 적수가 못 되었다.

야율제의 부하들이 쳐들어온 지 일각도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월씨 저택의 호원들은 절반이나 다치고 말았다.

월씨 저택의 호원들의 전투력은 약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저 좀도둑이나 상대할 수 있을 뿐이었다. 북요 남원대왕의 수하인 사사(死士)를 상대하기에는 부족했다.

그나마 소육자가 나았다. 북요의 사사들을 대적할 실력이 되어 겨우 이들의 발을 묶어 두었다.

소육자는 검을 뽑아 덤벼드는 사사를 물리친 뒤에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고개를 돌려 곁눈질로 월령안을 보았다. 그는 다시 바싹 긴장했다.

“월 누님, 왜 나오셨어요? 어서…… 들어가세요. 여기는 아주 위험해요. 얼른 숨어요.”

“야율제가 뒤에 있어요.”

월령안도 들어가고 싶었다. 하지만 안이 밖보다 더 위험했다.

“월 누님, 조심하세요!”

월령안이 나오자, 북요의 사사들은 그녀를 노렸다.

그들은 더는 호원들을 붙들지 않고, 몸을 돌려 월령안을 공격했다.

소육자는 깜짝 놀라 얼굴이 창백해졌다. 서둘러 몸을 날려, 월령안에게 쏟아지는 공격을 막았다.

챙!

사사의 칼이 소육자의 갑옷에 붙은 동경에 떨어졌다.

소육자는 아파서 소리를 질렀다. 그는 비틀거리며 연거푸 뒷걸음질 쳤다. 그의 뒤에서 보호를 받던 월령안도 따라서 비틀거리며 뒷걸음질 쳤다.

사사들은 감정이 없는 동물 같았다. 그들은 소육자가 죽지 않아도 놀라지 않았다. 다시 한번 소육자에게 칼을 휘둘렀을 뿐이다.

이를 본 월령안은 야율제가 쓰던 검을 들어 막았다. 하지만 그녀의 힘으로는 사사들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들의 공격을 막아 내기는 했지만, 손에 든 검은 멀리 날아가 버렸다. 그녀도 잇달아 뒷걸음질 치느라, 제대로 서 있기 버거웠다.

“앗……!”

월령안은 허둥대며 뒤로 물러났다. 발걸음이 비틀거려 전혀 중심을 잡지 못했다. 물러나느라 땅에 있던 시체에 발이 걸렸다. 몸이 휘청거리더니 그만 심하게 넘어지고 말았다.

월령안이 넘어지며, 그녀에게 기대고 있던 소육자도 따라서 넘어지고 말았다. 월령안은 시체 위에, 소육자는 월령안 위에 엎드린 상황이 되었다.

두 사람이 넘어진 순간, 북요 사사의 대도가 휘둘러졌다.

“조심해!”

월령안은 소육자를 세게 밀쳤다. 몸을 뒤집어 그의 앞을 막아섰다.

“월 누님! 안 돼요!”

소육자는 자신의 위에 엎드린 월령안을 보자, 아연실색해 비명을 질렀다.

챙!

칼이 월령안의 몸에 떨어졌다. 상상처럼 피가 솟구치지는 대신, 둔탁한 소리가 났다. 그리고 검은 옷차림의 사람이 휘두른 칼은 튕겨 나갔다.

연갑 덕분에 월령안은 피를 흘리지 않았다. 하지만 이 공격 때문에 그녀는 피를 토했다.

검은 옷 남자는 칼에 온 힘을 실어 월령안의 등을 쳤다. 칼날은 잠사 연갑을 뚫지 못했다. 그러나 이 충격은 그녀의 내장을 다치게 했다.

월령안은 소육자의 얼굴에 울컥 피를 토했다.

“월 누님!”

소육자는 혼비백산했다. 폐부가 찢어지는 듯한 소리를 지르더니, 월령안을 안고 몸을 일으켰다. 손에 든 검을 휘둘러, 다시 공격하려는 검은 옷차림의 남자를 베었다.

소육자는 검은 옷차림의 남자가 물러나자, 더는 그를 쫓지 않았다. 그는 월령안을 안은 채 몸을 돌려, 다른 한 사람의 공격을 피하고 비교적 안전한 곳으로 후퇴했다.

“월 누님, 월 누님……. 저 놀라게 하지 말아요! 저 놀라게 하시면 안 돼요.”

“쿨럭……. 난 괜찮아요.”

월령안은 애써 자세를 바로 했다. 그리고 소육자를 밀치고 창백한 얼굴로 말했다.

“날 신경 쓰지 말고, 적부터 상대해요. 내 몸은 스스로 지킬 수 있어요.”

‘아파 죽겠네!’

“월 누님…….”

소육자의 얼굴은 피투성이였다. 그는 한 걸음 물러섰다. 그래도 여전히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뒤에!”

월령안은 손을 들어 손목을 한 번 쳤다. 그러자 초승달 모양의 비도가 쉭, 하고 날아갔다.

푸슉!

비도는 북요 사사의 미간에 적중했다.

소육자는 고개를 돌렸다. 북요 사사의 칼이 그의 정수리와 한 뼘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만약 월령안의 공격이 없었더라면, 그는 이미 죽었을 것이다.

쿵!

사사는 공격하던 자세를 유지한 채 앞으로 고꾸라졌다.

소육자는 옆으로 펄쩍 뛰었다. 땅에 고꾸라져 죽은 사사를 보면서,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는 경악한 얼굴로 고개를 돌려, 월령안을 바라보았다. 입술을 달싹거렸지만, 한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월 누님은 내 생각만큼 연약하지 않잖아? 내 보호 따위는 필요 없어 보이는데?’

심지어 그를 두 번이나 구해 주었다.

“무서워하지 말아요. 날 어르신 계신 곳으로 데려다줘요.”

소육자가 아직도 제자리에 서 있는 것을 보고, 월령안은 그가 겁을 먹은 줄 알았다. 그래서 작은 목소리로 다독여 주었다.

소육자의 나이를 보건대, 굳이 묻지 않아도 그가 처음 강호에 나섰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처음 강호에 나선 어린아이가 이런 일을 마주했을 때, 무서워하는 게 정상이었다.

그녀도 처음 사람을 죽였을 때, 놀라서 며칠 동안이나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나중에는…….’

그러나 나중에도 적응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적응이 되지 않더라도, 그에 맞서 싸워야만 했다.

남들이 그녀를 죽이려고 한다. 그런데 살인에 적응하지 못했다면서 죽기를 기다릴 수는 없었다.

“아, 알겠어요……. 월 누님, 제가 모셔다드릴게요.”

소육자는 정신을 바싹 차렸다. 앞으로 다가와 월령안을 부축했다.

조금 전, 그는 확실히 깜짝 놀라기는 했다. 월령안의 살벌한 결단력에 놀라고 말았다.

부끄럽지만, 사실 그는 사람을 죽인 적이 없었다.

연습 시합 말고, 정식으로 목숨을 걸고 싸운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물론, 살인도 처음이었다.

월령안이 깔끔하게 사람을 죽이는 모습을 보고, 또 자신이 죽을 뻔한 것을 떠올리자, 사실 놀라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다행히도 월령안은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소육자가 스스로 결단을 내릴 필요가 없었다. 그녀의 말을 잘 듣기만 하면 되었다.

소육자가 월령안을 부축하여 가려고 할 때였다. 야율제가 뜰 안에서 걸어 나왔다.

“월령안, 오늘 내가 네 월씨 저택을 피로 물들여 주마!”

야율제의 이마 위에 맺힌 식은땀은 아직 가시지 않았다. 그는 부자연스러운 자세로 정원 중앙에 서서, 독기에 찬 시선으로 월령안을 쏘아보았다.

그는 손을 들어 북요의 사사들에게 명령했다.

“무슨 대가를 치러서라도 월령안을 죽여라! 월씨 저택의 모든 사람을 죽여라!”

“예!”

북요의 사사들은 야율제의 명령을 듣자, 순간 기세가 변했다. 하나같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듯 앞으로 돌격했다. 호원들의 칼이 그들의 어깨에 떨어져도, 전혀 물러서지 않았다.

그들은 분명 손만 들면 월씨 저택 호원들의 공격을 막을 수 있었다. 그러나 막지도 않았다. 단지 앞으로만 돌격하며 끊임없이 호원들을 도륙했다. 적을 죽이기 위해서라면, 아군의 손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야율제, 그만해!”

호원들이 하나둘씩 쓰러졌다. 땅바닥에 흐르는 피가 점점 많아졌다. 이 광경을 본 월령안은 분노에 차 소리를 질렀다.

“고자가 되고 싶으냐!”

“하!”

야율제는 사납게 코웃음을 쳤다. 일그러진 얼굴로 말했다.

“그렇다면 네가 어쩔 테냐?”

‘나를 다치게 하고도 무사히 물러나고 싶다고? 꿈 깨시지!’

“미친놈!”

월령안은 야율제처럼 미치고, 뒤틀리고, 변태 같은 사람은 처음 보았다.

원래는 조계안이 심하게 병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야율제와 비교하면 그는 그냥 착한 어린이 수준이었다.

조계안은 변덕이 심했다. 툭하면 기분이 오락가락하다 못해 발광할 때도 있었다. 그래도 그녀를 이용해야 했으니, 쉽사리 그녀를 죽이려 들지는 않았다.

그러나 야율제, 이 미치광이는 완전히 이성을 잃고 날뛰었다. 고자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그녀를 죽일 기세였다.

“네가 나를 처음 보는 것도 아닐 텐데?”

야율제는 입술을 핥으며 사악하게 웃었다. 문득 무엇이 생각났는지 한마디 덧붙였다.

“깜빡했다. 넌 정말로 나를 처음 보겠구나. 하지만 나는 일찍부터 너를 알고 있었지, 월령안!”

월령안은 이 말을 듣자, 야율제가 어째서 기어이 그녀의 목숨을 노리는지를 깨달았다.

야율제와 육장봉과의 전쟁에서, 그녀가 배후에서 한몫했음을 알게 된 것이다. 게다가 그는 자신의 실패 원인을 그녀에게 덮어씌웠다.

‘이런 비겁한 패배자 같으니라고!’

월령안은 냉소하며 비웃었다.

“비겁하구나. 싸움에서 졌다고 일개 연약한 여인한테 화풀이하다니. 이게 바로 북요의 남원대왕이신가? 오늘 내가 또 식견을 넓혔군.”

월령안은 말하는 사이에 내상을 치료하는 약 한 병을 슬그머니 꺼내었다. 한 알을 흘려 내더니 입에 넣고 바로 삼켜 버렸다.

“나는 원래 비겁하단다. 그럼 네가 어쩔 테냐?”

월령안의 도발에도, 야율제는 전혀 영향을 받지 않고 시원하게 인정했다. 피바다에 쓰러진 월씨 가문 호원을 가리키며 미친 듯이 웃어 댔다.

“보아라. 피 색깔이 얼마나 아름다우냐? 이제 곧 네 차례다.”

“내 목숨을 원한다고? 네 부하들에겐…… 아직 그럴 능력이 없어.”

월령안은 주먹 쥔 손을 들어 야율제를 겨냥하며 말했다.

“아까 공격으로는 부족했던 모양이네. 남원대왕, 한 번 더 맞아 보려고?”

“그래, 좋지. 와라!”

야율제는 두 팔을 활짝 벌렸다. 자신을 마음껏 다뤄 달라는 듯 보이는 변태 끼가 다분한 모습이었다.

순간 월령안은 그의 얼굴 앞에 달려들어 뺨을 두어 대 후려치며, 사람 구실 좀 하라고 호통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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