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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168)화 (168/1,004)

168화 마음 가는 대로, 본성에 따라 행동한다

월령안은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앞에 놓인 찻잔을 들고 한 모금 마셔 보았다.

“올해 새 찻잎인가요?”

그녀는 돈이 많았으니 음식도 늘 좋은 재료로 정성껏 만든 것을 먹었다. 상황이 따라 주는 한 늘 좋아하는 것만 골라 먹고는 했다.

‘이 찻잎은 너무 일찍 땄네. 덖을 때 불기운이 너무 세서 본연의 맛을 잃었어.’

그래서 그녀는 한 모금만 마시고 찻잔을 내려놓았다.

“맛이 어떻소?”

유경장은 무심하게 묻는 듯 보였다. 그러나 저도 모르게 새끼손가락을 접어, 마음속의 긴장을 드러내고 말았다.

월령안은 이 모습을 훑어보고 어찌 된 영문인지 깨달았다.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당신이 덖은 건가요?”

“맛이 없소?”

월령안이 바로 알아챘다. 유경장의 눈이 바로 어두워졌다.

“내가 덖은 찻잎 중 제일 맛이 좋은 것이오.”

월령안은 대답하는 대신 찻잔을 들고 또 한 모금 마셨다.

“언제부터 이렇게 자신감이 사라졌어요?”

“당신 앞에서 내가 언제 자신감이 넘친 적이 있었소?”

월령안이 다시 차를 마시자, 유경장의 침울했던 눈이 또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그가 잘하지는 못한 듯하지만, 그래도 그녀가 싫어하지는 않았다.

“언제 자신감이 없었어요? 오 년 전에 당신은 가진 것 하나 없으면서도, 자기를 구한 게 제 인생에서 가장 성공적인 거래라고 했잖아요. 앞으로 반드시 천 배, 백 배로 보답을 받게 될 거라면서요. 전 그때 그 말을 믿었다고요.”

그들이 처음 만난 오 년 전, 유경장은 변경에서 살아남으려 발버둥을 치던, 하마터면 감옥에 들어갈 뻔했던 가난한 소년이었다.

그녀는 유경장을 구해 주면서 보답을 바란 적은 없었다. 하지만 그는 예상 밖으로 커다란 기쁨을 안겨주었다.

유경장이 말한 대로, 그에게 쓴 돈은 이미 백 배로 돌아왔다.

유경장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때 난 젊은 나이라 눈에 뵈는 게 없었소.”

그때의 그는 재능을 믿고 오만하기 짝이 없게 굴었다. 안하무인에, 경망스러웠다. 못 할 말이 없었고, 누구에게나 대들었다.

당시 월령안이 그를 구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유경장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오 년 전의 자신에게 아주 감사하고 있었다.

오 년 전의 자신의 건방짐이 아니었더라면, 월령안과 어울릴 수 없었을 것이다. 물론, 지금의 그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은 전혀 안 그러는 것처럼 말을 하네요. 유 공자께서 안국공(安國公)의 연회에서 안국공 세자가 저속하고 예의가 없다면서, 남들 앞에서 소매를 떨치고 떠나갔다면서요. 저도 다 들었거든요.”

월령안은 웃으면서 놀리듯 말했다.

유경장은 얼굴이 붉어지면서 말했다.

“마음이 가는 대로 했을 뿐이오. 경거망동한 건 아니오.”

‘령안이가 날 항상 지켜보았던 걸까? 내가 무능해서 내게 화가 난 것은 아니라는 거겠지?’

“마음 가는 대로, 본성에 따라 행동한다. 자유분방하게, 권세에 허리를 숙이지 않는 게, 유 대재자(大才子)다운 모습이죠.”

‘누구 때문에라도 자신을 속박하지는 마세요. 특히 저 때문이라면 더요.’

유 대재자는 유 대재자다운 품위를 지녀야 했다. 기세가 죽고, 기개가 꺾여, 오만함이 사라진 유 대재자는 대중들에게 바로 잊힐 것이다. 더는 세상 사람들의 추앙을 받지 못할 것이다.

“마음 가는 대로, 본성에 따라 행동한다!”

유경장은 잠시 침묵하더니, 시원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역시, 나를 알아주는 이는 령안, 당신뿐이군!”

마음 가는 대로, 본성에 따라 행동한다.

그가 하고 싶으면 한다. 그가 원한다면 얻어낸다.

지금은 삼 년 전이 아니다.

‘령안은 진작에 나를 내려놓았구나.’

그녀는 더는 그를 신경 쓰지 않았다. 그도 다시 시작할 때가 왔다.

유경장은 시원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눈이 맑아지면서 그전의 우울한 기색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예전의 자신감과 여유로움을 되찾았다.

‘이래야 유 대재자답지!’

유경장이 원래의 모습을 되찾자, 월령안은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가 아는 유경장은 넘치는 재주를 믿고 오만하게 구는 사람이었다. 길들지 않은 말처럼 자유분방했다.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감히 하늘과 비교할 만한 드높은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천하의 유경장이 새색시처럼 쭈뼛거리는 모습은 도저히 적응할 수 없었다.

이제 유경장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녀도 유경장이 덖은 차를 억지로 마시지 않아도 되었다.

“이 찻잎은 너무 일찍 땄소. 또 나도 너무 과하게 덖었소. 억지로 이상한 차를 마실 필요 없소. 다시 한 주전자 우릴 테니, 내 솜씨 좀 보시오.”

월령안을 내려놓은 유경장은 더는 미련을 갖지도, 그녀 앞에서 쭈뼛거리지도 않았다. 탁자 위의 차를 비우고, 새 차로 바꾸었다.

“좋죠.”

월령안은 유경장을 말리지 않았다. 또 그가 덖은 차가 괜찮다는 입에 발린 소리도 하지 않았다.

맛이 없는 것은 사실이다. 그녀와 유경장 사이에는 이런 입에 발린 소리 따위는 필요 없었다.

유경장은 다시 차를 우렸다. 하지만 월령안이 자주 마시는 육안과편이 아니라 백차였다.

“백차는 우릴수록 향이 진하다오. 마셔 보시오.”

이는 유장경의 작은 꾀였다. 육안과편은 뜨거운 물에 우리자마자 마실 수 있다. 그러나 백차는 오래 우릴수록 맛이 좋다. 그리고 뒤로 갈수록 향이 더욱 진해진다.

유경장은 이 차로 월령안을 더 잡아 두고 싶었다.

월령안은 거절하지 않았다. 찻잔을 들고 한 모금 마셨다. 자연스럽게 칭찬이 나왔다.

“좋은 차네요.”

“당신이 차를 좋아한다는 것을 아오. 보통의 차는 당신 앞에 내놓지도 못하지.”

유경장은 조금 전의 육안과편에 대해서는 잊어버리기로 했다.

머리가 어떻게 됐던 것이 분명했다. 그런 게 아니라면, 자기가 덖은 차를 월령안에게 우려 주었을 리가 없었다.

월령안은 담담한 미소를 지었다.

유경장은 월령안에게 차를 더 따라 주었다. 또 자신의 몫으로도 한 잔 따랐다.

그는 찻잔을 들고 의자에 편히 기대어 앉았다. 그리고 웃음을 지었다.

“그거 아시오? 난 오늘 우울하고, 서글프고, 원망과 분노로 가득한 당신을 보게 될 줄 알았소, 그래서 당신을 어떻게 위로할지도 생각해 두었소. 하지만…….”

월령안은 삼 년 전보다 더욱 아름다워져 사람을 설레게 했다. 얼마 전에 육장봉에게 소박맞았다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는 산뜻하고 아름다웠다. 두 눈은 반짝반짝 맑은 빛을 뿜고 있었다. 전혀 쫓겨나고 버림받은 여인 같지 않았다.

그래서 유경경은 그녀를 처음 본 순간, 어찌할 바를 몰랐다. 월령안에게는 비밀이었지만, 아까 고개를 든 순간, 심장이 멈추는 기분이 들었다.

“실망하게 해서 미안하네요.”

월령안은 적잖게 충격을 받았다.

‘왜 다들 내가 육장봉에게 버림받은 충격으로 슬프고, 절망해서, 살 의욕까지 잃어버렸을 거라고 생각하지? 내가 육장봉 한 사람만 위해서 사는 것도 아닌데.’

“아니오, 난 실망한 게 아니라 아주 기뻤소.”

‘적어도 령안이 육장봉을 지나치게 마음에 두지 않았다는 뜻이니까.’

“당신이 이런 모습이라 아주 좋소.”

“제 생각에도 전 아주 멀쩡해요.”

그녀의 아픔, 슬픔, 절망은 자신만 알면 그만이다. 다른 사람들은 그저 그녀의 빛나는 겉모습만 보면 됐다.

유경장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당신은 여전히 삼 년 전과 똑같군. 전혀 변한 것이 없소.”

월령안이 말했다.

“당신은 변했어요.”

‘겸손해지고 침착해졌네요. 그리고 삼 년 전보다 더 훌륭해졌어요.’

“내가 평생 경망스럽게 굴 수는 없잖소. 나는 남자요. 책임감이 있어야지.”

유경장은 잔에 든 차를 다 마시고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월령안을 바라보며 말했다.

“령안, 함께 차를 마시자고 날 찾아온 건 아니겠지. 다른 일이 있소?”

“영영이네에게 오랫동안 가사를 써 주지 않았잖아요. 애들이 부를 새 노래가 없대요. 기루의 장사도 점점 예전보다 못하게 된다더군요.

아이들이 당신을 찾아가기 어려우니, 제게 물어봐달라고 부탁했어요.”

월령안은 미리 생각해 둔 이유를 말했다.

장 상궁과 만난 뒤, 유경장을 끌어들이려는 생각을 지웠다.

소 승상이 그녀와 유경장의 관계를 알아내지 못하게 할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황족의 화풀이 상대가 되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만약 등요 공주가 화신 칭호를 따내지 못해, 황제가 유경장에게 화풀이를 했다가는 더 큰 것을 잃는 셈이 되고 만다.

“당신의 말이니 믿겠소.”

유경장은 월령안을 바라보면서 옅은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당신이 별일 없더라도 난 당신에게 할 말이 있소. 령안, 올해의 춘일연에서 화신은 당신이 될 거요. 마음 놓고 기다리시오.”

“이건 제 일이에요. 끼어들지 마세요. 계획이 다 있으니 망치지 마세요.”

월령안은 유경장을 노려보았다.

“이건 내 일이오. 당신은 막을 권리가 없소.”

그는 월씨 저택으로 월령안을 찾아갈 때, 이미 결심했다.

‘그놈들이 감히 령안을 두고 내기를 했으니, 재산을 탕진하게 해 주마.’

“제가 당신을 만나러 오지 말았어야 했을까요?”

월령안은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당신이 오늘 날 찾아오지 않았더라도, 난 당신을 찾아갔을 거요. 당신이 날 만나지 않았더라도, 난 내 생각대로 행동했을 거요. 령안, 당신은 날 막지 못하오.”

유경장은 고개를 저으며 가볍게 웃었다. 월령안이 미간을 찌푸린 것을 보자, 웃음소리가 더욱 커졌다.

“령안, 당신이 뭘 걱정하는지 아오. 하지만 그건 정말 쓸데없는 생각이오. 난 줄곧 제멋대로 살아왔소. 권세에 허리를 굽히지도, 권력에 고개를 숙이지도 않았다오. 만약 내가 등요 공주의 편에 선다면, 그것이야말로 문제가 있지.”

삼 년 전, 그는 한 걸음 물러섰다. 그리고 삼 년을 후회 속에서 보냈다.

삼 년 전 월령안이 시집 가던 그날, 두 번 다시 후회할 일을 하지 않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월령안은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도박판의 배후에 소씨 가문의 그림자가 있어요.”

소 승상은 문관들의 우두머리였다. 유경장이 과거를 보려면 소 승상에게 밉보이면 안 되었다.

“령안, 당신은 도대체 날 어떤 사람으로 보는 거요! 내가 그런 이유에 굽히는 사람이었다면, 내 재능으로 과거에서 세 번 연속 낙방했을 리가 있겠소?”

그는 육 년 전에 상경하여 은과(恩科 – 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 특별히 치르는 시험)에 참가했지만 낙방했다.

이듬해에 삼 년에 한 번씩 열리는 과거에 참가했지만 낙방했다.

그리고 월령안의 도움으로 변경에서 크게 명성을 떨친 뒤, 다시 과거를 보았지만 역시 낙방하고 말았다.

그의 글재주가 부족하여 시험관의 눈에 들지 못해 세 번 연속 낙방한 게 아니었다. 그가 타협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누가 당신을 괴롭혔나요? 왜 말해 주지 않았어요?”

작년에 유경장이 낙방했다는 말을 듣자, 그녀도 깜짝 놀랐었다.

유경장의 재주는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 그의 재주라면 과거에 거뜬히 급제할 수 있었다. 그때 그녀도 사람을 시켜 어찌 된 영문인지 알아보았지만, 아무 수확도 없었다.

“소 승상의 문하생이 찾아와서 나더러 소 승상의 문하에 들어오라고 했소. 소 승상을 위해 일을 하라기에 거절했지.”

그래서 또 한 번 낙방했다.

“소 승상이 건재하는 한, 또는 소씨 가문의 문하생이 쓰러지지 않는 한, 내가 타협하지 않는다면 영원히 과거에 합격할 일은 없을 거요. 그러니 령안, 절대로 당신 때문에 내가 연루되었다고 생각하지 마시오.”

월령안은 미간을 찌푸렸다.

“왜 진작 말하지 않았어요!”

그녀가 육 부인일 때 말했더라면 방법이 있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과거는 나랏일이었다. 그녀는 유경장을 도울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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