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화 예쁜 것을 예쁘다고 하는데
월령안이 습격당한 사건은 본인뿐만 아니라 월씨 가문 전체가 놀란 일이었다.
대놓고 말하자면, 월씨 가문 전체는 음으로나 양으로나 전부 월령안 한 사람의 힘으로 유지되고 있었다. 월령안이 쓰러지면, 월씨 가문도 철저하게 망할 것이다. 또 그들처럼 월씨 가문에 기대어 사는 사람들도 살기 힘들어질 것이다.
“그놈들을 데리고 가서 어디에 쓰게?”
월령안은 차갑게 대꾸했다.
“남 공자에게 나와 외출을 할 시간이 있는지 한번 물어보게.”
그녀는 육장봉이 보내온 사람보다는, 수횡천과 소육자가 더 믿음이 갔다.
육장봉은 속이 너무 깊고 어두웠다. 또 그녀에게 접근하는 이유가 철광산의 소식을 캐내기 위해서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처음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랬다.
그래서 육장봉에게 어떤 감정이 남아 있던, 그를 믿을 수는 없었다. 경계심을 내려놓을 수는 더욱 없었다.
“소인이 지금 가서 물어보겠습니다.”
집사는 지체하지 않았다. 소육자를 존중하는 의미에서 직접 물으러 갔다.
소육자는 흔쾌히 승낙했다.
“저야 시간이 있지요. 제가 월 누님과 함께 성 밖으로 갈게요.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있는 한, 그 어떤 나쁜 놈도 월 누님의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할 거예요.”
말을 마친 소육자는 또 수횡천에게 물었다.
“맹주, 맹주도 나가서 둘러보실래요?”
집사는 눈앞이 환해지는 것 같았다. 기대에 찬 눈으로 수횡천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입을 열지는 않았다.
수 맹주의 신분은 남달랐다. 그가 말이 잘 통하고, 사소한 일에 얽매이지 않는 사람이라지만, 하인 된 처지에 아가씨와 함께 성 밖으로 가달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남 공자가 먼저 말을 꺼냈다. 그리고 수 맹주가 원한다면 괜찮았다.
수횡천은 밤에 육장봉과 약속이 있어서 거절하려고 했다. 그러다 잠한성이 변경 부근에 야율제와 함께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잠시 생각을 하다가 승낙했다.
“그러지.”
야율제가 변경에 온 지도 며칠이 지났다. 그러니 아군의 승리에 월령안의 기여가 있었다는 사실을 조사해 냈을 것이다.
수횡천은 야율제와 접촉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야율제 같은 권력자는 대부분 오만하고 자의식이 강했다. 지는 것을 절대 참지 못했다.
그런 이들은 패배한 뒤, 자신에게서 문제점을 찾지 않았다. 남을 원망할 줄밖에 몰랐다.
야율제는 육장봉을 건드리지 못한다. 그러나 월령안에게까지 손을 대지 않는다고는 누구도 확신할 수 없었다.
수횡천이 있는 한, 월령안이 털끝 하나 다치지 않는다고는 못하더라도, 결정적인 순간에 목숨은 지켜줄 수 있을 것이다.
마구간에 간 월령안은 수횡천과 소육자가 함께 오는 모습에 놀라지 않았다. 그녀는 수횡천과 내외하지 않고 고맙다고만 말했다.
출발하기 전, 월령안은 마구간의 새하얀 말 두 필을 가리키며 말했다.
“참, 저 조야옥사자 두 필을 육 대장군께 보내 드려라.”
“이게 육 대장군의 말이에요? 말이 참 멋지네요.”
사내라면 누구나 말을 좋아할 것이다. 월령안의 말을 들은 소육자는 말 앞으로 재빨리 뛰어갔다. 말을 이리저리 살펴보며, 부러운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제가 신세를 진 적이 있어서 선물로 드리는 거예요.”
월령안은 말에 특별한 애착이 없었다. 소육자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자 말했다.
“소육자, 일 좀 해 볼래요?”
“좋아요, 좋아요. 월 누님, 무슨 일이든지 말씀만 하세요. 제가 반드시 잘 해낼게요.”
소육자는 바로 조야옥사자를 팽개치고, 월령안의 곁으로 다가섰다. 기대에 찬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의 경험에 따르면, 월 누님이 이렇게 말을 꺼냈다는 것은 그를 도와주려는 뜻이었다.
월 누님에게서 뭔가를 바라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돈이 없는 걸 어쩌랴.
‘돈이 없으면 자존심도 못 챙기는걸.’
“제가 칠월에 청주로 갈 거예요. 지금부터 청주에 도착할 때까지 저를 보호해 주세요. 청주에 도착하면 좋은 몽골말 한 필 드릴게요.”
조야옥사자는 이제 없었다. 꿈도 꾸지 말아야 했다.
그녀는 다시는 조야옥사자를 사지 않을 것이다. 지금 조야옥사자를 보고 있으려니, 자신의 아둔함과 가망이 없었던 맹목적인 사랑이 떠올랐다.
“월 누님, 마, 말은 아주 비싸요.”
소육자는 확실히 마음이 동했다. 그러나 월령안에게서 너무 이득을 챙기는 것 같았다. 한참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저한테는 그냥 몇십 냥 정도만 주시면 돼요.”
그가 알아본 바에 따르면, 변경에서 아무리 좋은 호위를 고용해도 한 달에 한 냥밖에 들지 않았다.
지금부터 칠월까지면 기껏해야 넉 달 정도의 시간이었다. 열 냥 정도만 벌 수 있어도 만족스러웠다.
“제 목숨은 아주 비싸요. 절 보호하다 보면 위험한 일도 생길 수 있고요.”
월령안은 가볍게 웃었다.
“일할지 말지만 말해줘요.”
“할게요! 월 누님, 이 일 제가 할 거예요!”
소육자는 흥분한 듯 두 눈을 반짝이며 서둘러 대답했다. 조금이라도 늦었다가는 월령안이 후회할까 두려운 듯했다.
수횡천은 마구간의 말을 바라보았다. 또 멍청하게 웃는 소육자를 바라보았다. 이 광경을 보고 있으려니 마음이 더없이 울적했다.
소육자뿐만 아니라, 그도 이 일을 하고 싶었다.
그는 무림맹주였지만, 지금도 길을 나서면 두 다리로 걸을 수밖에 없었다. 소문이 나기라도 하면 창피했다.
다행히 그는 누구에게도 떠벌리지는 않았다.
누군가 물어본다면, 그는 말을 타는 게 번거롭고 느리다고 했다. 그가 말보다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나마 그 핑계 덕분에 고수로서의 체면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말은 안 해도 씁쓸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 * *
육이는 늘 일을 빈틈없이 처리했다. 명월산장의 계약서를 받자, 그는 최대한 빨리 명월산장을 인수했다.
그리고 산장에 있던 하인은 모조리 장군왕부로 돌려보냈다. 산장 일을 잘 아는 집사 한 명만 남겨 월령안을 기다리게 했다.
월령안이 어려움이 있으리라 예상하고 집사를 데리고 왔다. 하지만 일은 생각보다 훨씬 순조로웠다.
“육 대장군이 드디어 사람답게 행동했군.”
월령안은 순조롭게 명월산장을 인수했다. 그러자 육장봉에 대한 원망도 조금 사그라들었다.
명월산장이 없더라도 그녀가 꼭 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명월산장이 있다면 더 멋지게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삼 년 전처럼 귀족 여인들이 불만스러워하더라도, 그녀의 화신 칭호를 인정할 수밖에 없도록 하고 싶었다.
“얼른 사람을 들여 명월산장이 정상적으로 운영되게 하게. 하인의 예의범절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되니까. 내가 장 상궁 마마님께 부탁을 드려, 궁에서 마마님 두어 분을 모셔와 예의를 가르치도록 하겠네.”
육장봉이 사람을 전부 내보냈다. 그녀에게는 유리하기도, 불리하기도 했다.
유리한 점은, 올해의 춘일연은 등요 공주가 주최하는 것이었다. 완벽하게 치러내기 위해, 또 신분을 과시하기 위해서라도, 연회에서 아가씨들의 시녀를 접대하는데 산장의 사람들을 쓸 리가 없었다. 직접 궁에서 데리고 온 궁녀들을 쓸 것이다.
그렇다면 월령안의 사람이 조금 서툴러도 큰 소동이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집사는 원래 아랫사람들이 성대한 연회를 잘 치러내지 못할까 걱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월령안의 말을 듣자, 한시름을 덜었다.
월령안 일행이 정원으로 걸어가는 것을 보자, 집사가 말했다.
“아가씨, 소인은 산장의 집사와 인수인계를 하고 있겠습니다.”
“그러게.”
월령안은 대답하고 나서 또 당부했다.
“서두를 필요 없네. 당분간 자네가 명월산장에 남아서 산장을 잘 관리하게. 등요 공주께서 춘일연 주최를 하시니 잘 협조하게나.”
“알겠습니다. 아가씨, 걱정하지 마세요.”
집사는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리고 산장의 집사를 데리고 떠났다.
“오라버니, 소육자, 우리 둘러볼까요?”
월령안은 명월산장에 빨리 익숙해지고 싶어 미리 둘러보러 온 것이었다. 또한 이곳을 이용해 멋진 장면을 연출할 수 있을지 살펴볼 셈이었다.
춘일연에서 각 가문의 아가씨들은 모두 기예를 선보여서 자신의 재주를 자랑했다.
규칙을 어기고 재주를 자랑하지 않으면, 무능하다고 욕을 먹었다.
월령안은 무능하다고 욕을 먹는 것쯤은 개의치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화신 칭호를 따내려 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무 재주도 보이지 않는다면 무능하다고 욕을 먹을 것이다.
또 거금을 들여 표를 사도, 너무 형편없으면 그녀에게 표를 주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렇게 되면 창피하잖아.’
“좋지.”
수횡천과 소육자는 월령안을 따라왔으니, 그녀의 말에 따르는 게 당연했다.
명월산장은 황실의 별장이었다. 면적이 무려 백 묘(畝) 가까이 되었고, 건물도 육십 채나 되었다.
그러나 이 건물들이 차지하는 면적은 크지 않았다. 명월산장에서 가장 큰 면적을 차지한 곳은 화원이었다. 전체 면적의 칠 할 정도를 차지하고 있었다.
명월산장의 화원은 황실에서도 내로라하는 곳이었다. 예전에는 줄곧 황실의 소유로, 누구에게 하사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또한, 평소에도 사용하는 일이 매우 드물었다.
그런데 장군왕이 선황의 비위를 잘 맞췄다. 선황이 크게 기쁜 마음에 선뜻 장군왕에게 하사했다.
이 산장을 받은 장군왕은 대단히 기뻐했다. 큰 연회를 열고 손님을 초대하여 사흘이나 떠들썩하게 보냈다고 한다.
월령안, 수횡천, 소육자 셋은 홍예문을 통과했다. 돌을 깐 오솔길을 따라 반 각 정도 걸으니, 금양옥죽(金鑲玉竹)이 보였다.
청록색 댓잎과 금빛을 띤 대나무 줄기가 한데 어우러진 아름다운 광경이 넓게 펼쳐져 있었다. 바라보고 있으니 가슴이 탁 트이고 기분이 상쾌해졌다.
“이 정원은 너무 예쁘네요.”
소육자는 두리번거리다가 감탄했다.
월령안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고상하고 우아하지만, 위엄도 있고 화려하네요. 그 명성대로 정말 비범한 곳이에요.”
“네?”
소육자는 멍한 표정으로 월령안을 바라보다가 또 수횡천을 바라보았다.
월령안은 가볍게 웃음을 터뜨렸다.
“아주 예쁘다는 말이에요.”
“예쁘면 예쁜 거죠. 무슨 말을 그렇게 복잡하게 해요.”
소육자가 투덜거렸다.
수횡천은 끝내 참지 못하고 소육자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책을 많이 읽으라니까!”
‘부끄러움은 내 몫이구나.’
“안 읽힌다고요. 저는 책만 보면 잠이 오는걸요. 그리고 이 정원이 예쁘다고 한 게 틀린 말도 아니잖아요. 이 갈대밭도 예쁘고, 앞의 정자도 예쁘고, 어…… 저 늪도 예쁘네요. 저기 돌무더기도 예쁘고요.”
소육자는 머리를 감싸 쥐고 저 멀리 뛰어갔다. 대숲 뒤의 풍경을 가리키며 볼멘소리로 예쁘다는 말을 여러 번 했다.
“예쁘다 말고는 다른 말은 아는 것이 없느냐?”
수횡천을 이마를 짚으며 창피함을 뼈저리게 느꼈다.
“예쁜 것을 예쁘다고 하는 것뿐인데, 왜 다른 단어를 써야 해요? 맹주, 왜 선비 나부랭이들처럼 되려고 하세요. 우리는 원래 무식쟁이인걸요. 선비인 척하지 말자고요.”
소육자는 수치를 오히려 자랑으로 여겼다. 신이 나서 앞으로 걸어가는 내내 소리를 질렀다.
“월 누님, 이 꽃들도 예뻐요. 이 정원은 예뻐요…….”
월령안과 수횡천은 그의 뒤를 따르며 가끔 대답을 해주었다. 그들이 대답하지 않아도, 소육자는 혼자 싱글벙글했다.
“못난 모습을 보였구나.”
수횡천은 월령안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었다. 그는 일부러 발걸음을 늦춰 월령안의 걸음에 맞췄다.
월령안은 작게 웃음을 지었다.
“저건 소육자의 장점이니까요.”
강호에서 나고, 무림에서 자랐으니 자유분방하고 소탈한 것이 당연했다.
“조정에서는 저런 장점을 용납하지는 않겠지.”
수횡천은 원래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참지 못하고 말을 이었다.
“무림에 대한 조정의 통제가 점점 더 심해질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