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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162)화 (162/1,004)

162화 제게 투표해 주셨으면 해서요

예전이었다면 그는 월령안이 반골 기질을 타고났다고 여겼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은 제법 호기심이 동했다.

월령안에게는 새롭고 모험적인 일이 수두룩했다. 그녀와 함께 있으면 따분하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월령안은 이 따분한 변경에 빛나는 색채를 더해 주었다.

“대장군, 춘일연은 귀족 남녀들이 맞선을 보는 자리지요. 금을 타고 바둑을 두는 등, 귀족 여인들이 선보이는 재주는 남자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방법일 뿐이에요. 금을 잘 타고, 바둑을 잘 둔다고 화신 칭호를 따내는 게 아니란 뜻이죠. 그런 게 아니라면, 화신을 뽑는데 굳이 청년들이 투표하게 할 필요가 있을까요? 몇몇 대가를 모셔서 점수를 매기게 하고 말겠죠.”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었다.

그녀는 예전에는 춘일연에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삼 년 전, 춘일연에 참여하게 되었고, 그 기회에 돈을 벌 궁리를 했다. 그래서 일부러 알아본 적이 있었다.

솔직히 말해 보자.

춘일연에서 화신을 뽑는다’라는 말은 우아하고 고상하게 들렸다. 실제로는 기루에서 삼 년에 한 번씩 화괴 낭자를 뽑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그저 춘일연에 참여하는 이들의 신분이 더욱 고귀하고, 선보이는 기예가 더욱 고상할 뿐이었다.

마찬가지로 투표권을 가진 사람의 신분이 더욱 고귀하고, 투표도 돈으로 하는 것이 아니었기에 더욱 고상할 뿐이었다.

하지만 이것들을 제외하면, 다른 것들은 똑같았다. 전부 사람들의 투표로 뽑히는 것이었다.

그리고 투표로 당선된다는 것은 조작할 기회도 많다는 뜻이었다.

최소한 월령안은 어려울 게 없다고 생각했다.

‘거품 안 낀 화신이 한 번이라도 있었을까?’

역대 화신 중 털어서 먼지 안 날 사람이 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녀가 화신 칭호를 따냈을 때 귀족 여인들도 그저 자기들끼리만 수군거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할 셈이오?”

육장봉이 물었다.

월령안은 대답하지 않고 되물었다.

“대장군, 듣자 하니…… 장군께서 춘일연의 초청장을 받으셨다더군요. 장군께서도 참석하시는 게 맞죠?”

월령안은 손을 뒤로 돌리고 꽉 움켜쥐었다. 육장봉이 무슨 생각으로 춘일연에 참석하는지 묻고 싶은 충동을 애써 눌렀다.

육장봉은 삼 년 동안 아내를 맞이하지 않겠다고만 약속했을 뿐이다. 신붓감을 찾지 않겠다고 하지는 않았다.

그녀가 이혼장을 받고 육씨 저택에서 나서는 순간부터, 두 사람의 혼인 문제는 서로 간섭할 수 없는 일이 되었다.

그녀는 육장봉에게 따질 자격도, 명분도 없었다.

육장봉은 줄곧 독단적으로 행동했다. 아내를 맞이할 생각은 더욱 없었다. 그는 변경의 귀족 남녀들의 맞선 연회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예전에 춘일연에 참석하겠다 대답한 것은 조계안이 사고를 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지금 조계안이 다쳤으니 춘일연에 참석하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그도 굳이 참석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월령안이 묻자 육장봉은 딱 잘라 대답하지 않았다. 두루뭉술하게 말했다.

“그럴지도 모르지.”

“그럼 아쉽네요.”

월령안은 아쉬운 표정을 지었지만, 속으로는 무척 기뻤다.

육장봉은 언젠가 다른 여인을 아내로 맞이해, 그녀의 남편이 될 것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날이 하루라도 늦게 온다면, 그녀가 하루라도 더 기대를 품을 수 있지 않을까.

육장봉은 눈썹을 치켜세웠다.

“왜 그러는 것이오? 내가 참석하기를 바라는 것이오?”

‘여인들은 다들 이렇게 변덕이 심한 걸까? 예전에는 길에서 나를 막아서서 삼 년 안에 아내를 맞이하지 않겠다고 약조를 하라고 하더니. 지금은 또 춘일연에 참석하기를 바라는 걸까? 월령안은 내가 연회에서 다른 여인에게 반하기라도 할까 걱정도 되지 않는 모양이군.’

월령안은 고개를 저었다.

“저는 그저 육 대장군께서 제게 투표해 주셨으면 해서요.”

그녀가 육장봉이 참석하기를 바랄 리가 있을까. 육장봉이 다른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고, 그녀가 잠들었던 방에서 다른 여인을 안은 채 잠드는 상상을 할 때마다…….

‘육장봉을 죽여 버리고 싶은걸!’

하지만 육장봉이 혼인하지 않을 리가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육씨 가문의 적자는 육장봉과 육비우 밖에 없었다. 그는 대를 잇기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아내를 맞이하고 자식을 낳아야 했다.

그녀는 육장봉에게 어떻게 하라고 요구할 능력이 없었다.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건 하루빨리 슬픔에서 벗어나는 것뿐이었다.

그래서 육장봉이 늦게 혼인할수록 좋았다. 육장봉에 대한 사랑을 묻어 버릴 때까지 충분한 시간을 벌 수 있으니까. 이 희망이 보이지 않는 연모의 감정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지금 나에게…… 투표를 부탁하는 거요?”

육장봉도 알고 있었다. 해마다 춘일연에는 여식을 사랑하는 마음에, 또는 여식에 대한 기대가 커서 사적으로 친분이 있는 사람을 찾아 투표를 부탁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춘일연의 투표는 심각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니 많은 사람이 잘 알고, 친한 사람에게 투표를 했다.

하지만 이제까지 그에게 찾아와 투표를 부탁한 사람은 없었다.

월령안이 처음으로, 또 이렇게 직설적으로 투표를 부탁한 것이었다.

“화신은 연회에 참석한 청년들의 투표로 정하는 거잖아요. 저도 화신 칭호를 따내려면 당연히 표를 끌어모아야죠.”

월령안은 감추지 않고 선뜻 말했다.

“그리고, 올해 투표는 좀 쉬울 거예요. 제 승산도 큰 편이에요.”

“올해는 뭐가 다르다는 말이오?”

육장봉은 춘일연의 규칙을 알고는 있었다. 그러나 참석한 적이 없어 잘 알지는 못했다.

“올해는 등요 공주가 참석할 거예요. 등요 공주의 신분이 있으니, 올해 춘일연에 참석하는 아가씨들은 일부러 공주를 돋보이게 할 거예요. 다들 암묵적으로 올해의 화신은 등요 공주께 드리기로 합의했으니, 투표를 부탁할 필요가 없겠죠. 투표권을 가진 청년들도 부탁받은 게 없을 거예요. 그러면 저한테도 기회가 오겠죠.”

‘소씨 가문이 벌인 화신 도박판만 해도 그렇지. 내가 화신이 되지 못한다는 것에 돈을 건 사람이 왜 그렇게 많겠어? 다 내정자가 있다는 것을 아니까 그러는 거잖아.’

“그러면, 화신을 뽑는 건 그저 권세를 겨루는 것이었군?”

육장봉이 웃었다.

월령안이 왜 자기는 꼼수를 쓰지 않았다고 우겼는지, 그 이유를 드디어 깨달았다.

“꼭 그런 것은 아니에요. 초청장을 받은 아가씨들의 가문도 서로 꿀릴 게 없잖아요. 단지 올해에는 등요 공주가 있는 것뿐이에요. 공주마마의 가문은 다른 아가씨들의 가문보다 월등히 높잖아요. 감히 공주와 겨룰 사람은 없죠.”

세상에는 절대적인 공평이란 없다. 사람이 어떻게 보느냐에 달렸다.

사실 춘일연은 공평한 편이었다. 적어도 월령안이 보기에는 춘일연 정도면 꽤 괜찮았다.

육장봉이 물었다.

“등요 공주가 화신 내정자임을 알면서도, 공주와 겨룰 셈이오?”

‘월령안은 고작 열여덟 살인데도, 일의 이치를 훤히 꿰뚫고 제대로 처신하는군.

십 년 동안, 월령안은 도대체 어떤 일들을 겪었을까?

또 삼 년 동안, 나는 어떤 것들을 놓친 거지?’

육장봉은 월령안을 바라보았다. 마음속에 잠깐 후회가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바로 그 감정을 지웠다.

그는 이미 벌어진 일에 대해서는 절대 후회해 본 적이 없었다.

월령안이 아무리 훌륭해도, 그와는 상관이 없는 사람이었다.

“겨루지 못할 게 또 뭐가 있어요? 전 이미 등요 공주께 밉보였다고요. 제가 겨루지 않는다고 그분이 저와 사이좋게 지내시겠어요? 아니면 저와 언니, 동생 하겠어요?”

적을 아군으로 만들 수 없다면, 끝까지 대적하는 수밖에 없었다.

월령안은 일을 성사시키기 위해서라면 몸을 낮춰 억울함을 참을 수 있었다. 또 강적과 당당하게 맞서 죽기를 각오하고 끝까지 싸울 수도 있었다.

그녀가 일을 벌이지 않는다고 해서, 벌어지는 일을 두려워하지는 않았다.

일이 코앞에 닥친 이상 절대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물론, 그녀에게 물러설 자격 같은 것도 없었다.

세상에서 자기 자신을 제외하면, 그녀를 위해 비바람을 막아 줄 사람은 없다. 오로지 자신만 믿을 수밖에 없었다.

육장봉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당신 말이 맞소.”

강적을 상대할 때, 물러서기만 해서는 소용이 없다.

마치 그들과 북요처럼 말이다.

선황은 줄곧 양보했다. 하지만 그 양보로는 변방의 평화와 북요의 우호적인 자세를 얻어낼 수 없었다.

반대로, 지금의 황제가 등극한 뒤로는 더는 물러서지 않았다. 북요로 출정을 고집하여, 삼 년 동안이나 전쟁을 치렀다. 그 결과 북요의 양보와 변방의 평화를 얻어냈다.

“그저 해 본 소리니까, 장군께서도 흘려들으세요.”

월령안은 번뜩이는 시선을 거두었다. 그리고 생글생글 웃으며 물었다.

“이 일 말고 또 다른 용건이 있나요?”

당연히 있었다. 그러나 육장봉은 이미 질책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부드러운 어조로 물었다.

“내가 보낸 두 사람은 걱정하지 말고 편히 쓰시오. 그들은 당신을 보호할 뿐, 그 어떤 감시도 하지 않을 거요. 당신의 행적에 대해 보고할 일은 더욱 없을 것이오.”

정말로 월령안의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알아내고 싶다면, 옆에 사람을 꽂을 필요가 없었다.

“대장군, 변경은 아주 안전해요. 저는 누군가의 보호가 필요 없어요.”

그녀에게는 사람이 부족하지 않았다. 노인이 십 년 전에 벌써 그녀를 위해 호위들을 키워냈다. 하지만 변경은 천자가 있는 곳이었다. 그녀가 실력을 드러내지 못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청주에 가면 상관없었다.

그녀는 범씨 가문과 싸워야 했다. 돈을 얼마나 벌지, 범씨 가문의 자제를 몇이나 이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십 년 뒤에까지 살아남는 것이 훨씬 중요했다.

월씨 가문이 백 년을 버텼는데, 손에 쓸 만한 사람 하나가 없을 리가 없다. 그녀가 청주로 가서 이 사람들을 쓰더라도, 황제는 단지 월씨 가문에서 남은 사람으로 알 뿐, 다른 의심은 하지 않을 것이다.

육장봉은 불쾌하다는 듯이 말했다.

“성 밖에서의 일을 잊었소?”

수횡천이 제때 도착하지 못했더라면, 월령안은 죽었을 것이다.

월령안이 말했다.

“그건 사고였어요.”

‘그것도 당신 때문에 벌어진 사고이고요.’

육장봉의 안색이 더욱 엄숙해졌다.

“이런 사고는 더는 일어나서는 안 되오. 심씨 가문의 사건에 갑자기 변고가 생겼소. 뭘 좀 아시오?”

심씨 가문의 책임자가 감옥으로 끌려갔다. 심씨 가문은 월령안을 사무치게 증오하니, 절대로 쉽게 놔주지 않을 것이다.

심씨 가문의 일이 해결되기 전에는 아무리 변경에 있더라도, 월령안은 안전하지 않았다.

월령안은 약간 놀리듯 말했다.

“들었어요. 증인이 배신하여 사건에 반전이 생겼다면서요. 심민이 오히려 무고죄로 잡혀 들어갔다지요.”

‘육장봉도 고작 이 정도였구나. 이렇게 작은 사건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다니. 증인도 잘 알아보지 못해서 일을 복잡하게 만들고 말이야.’

“증인이 배신한 것은 심민의 실수요.”

월령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표정도 평소와 다름이 없었다. 하지만 육장봉은 월령안에게 꼭 한마디 해주고 싶었다.

‘당신이 마음에 들어 하던 심민은 고작 이 정도였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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