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화 잠한성을 처단하라
노인은 하찮다는 표정을 지으며 콧방귀를 뀌었다.
‘령안이가 쉽사리 돈을 버니 하나같이 장사가 쉬운 줄로만 아는 모양이군? 순진하긴!’
상업계는 전장과 같다. 상업계는 결코 전장보다 위험이 적지 않았다. 까딱 잘못하면 모든 일을 그르칠 수 있었다.
특히 도박은 더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도박 때문에 자식을 팔고, 패가망신했던가.
소씨 가문에서는 자기들이 물주가 되면 벌기만 할 뿐, 질 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위험이 있을지 없을지는 몰라요. 하지만 이제는…… 소씨 가문을 쫄딱 망하게 할 자신이 있어요. 소씨 가문이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게 할 거예요!”
그녀는 여태껏 소씨 가문에 손을 댈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소씨 가문과는 너무 깊은 원한을 맺었다. 화해할 수도 없었고, 화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녀의 마음속에서 그들은 큰 적이었다. 나중에 등 뒤에서 칼 맞는 일이 없도록, 청주로 가기 전 소씨 가문이라는 잠재적인 위험을 철저히 해결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줄곧 기회가 없었다.
소 승상은 개인적인 덕망이 어떠하든 간에, 관리로서는 나무랄 데가 없었다. 큰 잘못도 찾을 수 없었다.
설령 그의 큰 잘못을 찾아낸다고 하더라도, 월령안의 신분과 능력으로서는 관리 사회에서 소 승상을 쓰러트릴 수는 없었다.
그동안 겉으로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마음속으로는 은근히 조급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모험인 줄 알면서도 심씨 가문에 손을 대지 않았을 것이다. 또 소씨 가문의 장사를 방해하는 일은 더더욱 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그녀가 한 일들은 작은 소동을 일으킨 정도였다. 소씨 가문을 곤경에 빠뜨릴 수는 있었다. 그러나 소 승상이 건재하는 한 소씨 가문의 기반을 흔들 수는 없었다.
그래서 이제 더는 기회가 없으리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역시 하늘이 그녀를 돕고 있었다.
소씨 가문이 도박에 참여했을 뿐만 아니라 물주 노릇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정계에서 소씨 가문을 뒤흔들 능력이 없었다. 하지만 도박판이나 상업계에서라면 소씨 가문을 홀랑 발라먹을 자신이 있었다.
남들 눈에는 소씨 가문과 정면으로 맞붙는 월령안이 달걀로 바위를 치려는 것처럼 보이리라. 그러나 노인은 그녀를 막지 않았다. 오히려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마음껏 해 보거라!”
제아무리 일을 크게 쳐도 두려울 게 없었다. 정 안 되면 그가 나서면 그만이었다.
월령안은 아무런 호언장담도 하지 않았다. 다만 가볍게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자기에게 익숙한 영역이라고 해도, 상대를 만만하게 볼 수는 없다. 소씨 가문과 대적하려면 만반의 준비를 해야 했다.
* * *
월령안은 노인 곁에서 오래 머무르지는 않았다. 한담을 조금 나누다가 자기 처소로 돌아왔다. 그러고는 하인에게 옷을 갈아입혀 달라고 했다.
집에서는 늘 간편한 옷차림으로 있었다. 이 차림으로는 손님을 만나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육장봉이 사전에 배첩을 보내왔다. 그에 대한 존중의 뜻을 드러내기 위해서라도, 준비를 제대로 해서 그가 꼬투리를 잡지 못하게 해야 했다.
사시(巳時 – 오전 9시~11시) 일각(一刻 – 15분), 육 대장군이 왔다고 하인이 보고했다.
월령안과 수횡천은 앞뜰에 나가 직접 맞이했다. 한 사람은 기골이 장대하고 호방했다. 한 사람은 부드럽고 매력적이었다. 함께 서 있으니 완벽한 한 쌍으로 보였다.
육장봉은 걸어 들어오면서 수횡천이 호위무사 같은 자태로 월령안의 뒤에 서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는 들어 올린 발을 허공에 잠깐 멈추었다가 내려놓았다.
“대장군!”
“대장군을 뵙습니다.”
월령안과 수횡천은 동시에 앞으로 나왔다. 호흡이 척척 맞아떨어졌다.
“예를 거두시오.”
육장봉은 차가운 얼굴을 하고 온몸으로 한기를 내뿜었다. 수횡천을 보는 눈빛에서는 살기마저 느껴졌다.
월령안은 고운 눈썹을 살짝 구겼다. 그래도 묻지 않고 예의 바르게 말했다.
“대장군, 안으로 드시지요.”
육장봉은 일 년 중 삼백여 일은 차가운 얼굴에 불쾌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느 날 육장봉이 육십이처럼 톡톡 튀며 마냥 기뻐한다면, 그녀가 오히려 놀라 넘어갈 것이다.
“그러지.”
육장봉은 대답했지만, 월령안이 손짓하는 방향으로 따라가지 않았다. 오히려 옆으로 한 발짝 옮기더니 월령안과 수횡천 사이에 끼어들었다.
“어머?”
‘육 대장군, 이건 뭐 하자는 거야?’
월령안은 잠깐 어리둥절해 있었다. 그녀는 임기응변에 강했지만, 일순간 제때 반응하지 못했다.
육장봉의 이 뜬금없는 한 걸음은 이치에 맞지 않았다. 평소 그의 성격에 들어맞지도 않았다.
“왜? 내가 당신을 기다려야 하오?”
육장봉이 언짢다는 듯 말했다.
“제가 실례했습니다. 대장군, 이쪽으로 가시죠.”
월령안은 정신을 차렸다. 눈빛 속의 놀라움을 감추고는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대답했다.
육장봉은 대장군이다. 이유를 불문하고 그가 기쁘면 그만이었다.
“흥!”
육장봉은 수횡천과 월령안 사이에서 걸었다. 온몸으로 내뿜던 한기가 많이 누그러들었다. 걸음도 살짝 느려졌다.
‘월령안이 다쳤으니 너무 빨리 걸으면 안 되겠지. 따라오려면 아주 힘들 테니까.’
그러나 육장봉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자기가 특별히 걸음을 늦추었다 해도, 월령안이 그와 보조를 맞추려면 평소보다 훨씬 더 빠르고 급하게 걸어야만 했다.
그래서 월령안은 육장봉이 티 나지 않게 친절을 베풀었다는 것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그저 묵묵히 그의 뒤만 따랐다.
다행히 월씨 저택은 큰 편이 아니었다. 월령안이 숨이 살짝 차오를 때 일행은 화청에 도착했다.
변함없이 육장봉은 주인석을 떡하니 차지하고 앉았다.
월령안은 습관처럼 아래쪽에 앉으려 했다. 그런데 그녀가 미처 자리로 가기 전에, 육 대장군은 주인석의 다른 빈자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 앉으시오.”
“대…….”
월령안은 잠시 말을 멈추고, 혀끝까지 거절을 되삼켰다.
“감사합니다!”
‘그까짓 자리 하나 가지고 뭘. 육 대장군이 기뻐하면 그만이지.’
그녀는 일 년 중 삼백여 일을 언짢아하는 남자와 일일이 따지지 않기로 했다.
수횡천은 육장봉의 아래쪽 자리로 갔다. 그는 걱정스러운 눈길로 월령안을 바라보았다. 때마침 그녀와 눈을 마주쳤다. 그녀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머리를 저어 보였다.
육장봉은 주인석에 앉아, 월령안이 그의 앞에서 수횡천과 시선을 주고받는 광경을 모조리 지켜보았다. 순간 속에서 천불이 솟구쳤다.
‘월령안, 지금 뭐 하자는 거지? 내가 이 자리에 없다고 생각하는 건가, 아니면 나를 죽은 사람 취급하는 건가?’
“수횡천!”
육장봉의 몸 주변의 온도가 한순간에 빙점으로 떨어졌다. 겉치레나 예의조차 생략하고, 수횡천의 이름을 바로 불러 버렸다.
“나는 오늘 조정을 대표해, 무림맹을 징집해 잠한성을 처단하려 한다!”
“잠 선배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소?”
수횡천의 낯빛이 확 변했다. 육장봉이 자신의 이름을 직접 부른 것이 얼마나 방자하고 사람을 얕잡아 보는 짓인지를 생각할 겨를조차 없었다. 다만 잠한성이 또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얼른 알고 싶었다.
잠한성이 바로 조정의 노여움을 산 전임 무림맹주였다. 조정이 무림을 피로 물들이고 각 문파를 탄압하게 만든 장본인이었다.
이 사건의 내막을 잠한성이 어찌나 잘 숨겼는지, 새로운 황제가 즉위해서야 진실이 드러났다.
그전까지 잠한성은 줄곧 무림맹의 맹주로서 무림인들의 추종을 받았다. 또한 무림인들을 거느리고 조정에 저항했다.
그는 선두에 나서서 조정에 저항했기에 수많은 이의 숭배를 받았다. 무림에서의 그의 명성은 갈수록 더욱 높아졌다.
조정에 저항하는 그 몇 년 동안 무림인들은 아주 어렵게 지내야만 했다. 그러나 잠한성은 아무 영향도 받지 않았다.
당시 무림에서 잠한성이 입만 열면 동조하는 이가 부지기수였다. 과장이 아니라, 그의 말이 곧 성지였다.
그러나 진실이 폭로된 뒤, 잠한성은 돌연 자취를 감추었고, 아무도 그를 찾지 못했다.
그가 사라지고 나자, 원래 한마음 한뜻이 되어 함께했던 무림맹은 순식간에 모래알처럼 흩어져 버렸다. 그리고 조정의 대군 앞에서 일격에 허물어졌다.
강호의 여러 문파는 패배했다. 그 뒤로는 조정의 관리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수횡천은 여러 문파가 내심 조정에 불복함을 알고 있었다.
심지어 잠한성이 다시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사람도 있었다. 잠한성이 다시금 그들을 이끌고 조정에 계속 대항하기를 바랐다.
안타깝게도 잠한성은 그 뒤로 다시는 사람들 앞에 얼굴을 보이지 않았다.
수횡천도 잠한성이 평생 숨어 살면서 다시는 빛을 보지 않을 거라 여겼다. 그런데 그가 다시 조정의 노여움을 살 줄은 몰랐다. 이번에는 조정에서 무림맹과 협력하여 그를 죽이려 할 정도였다.
‘잠 선배가 이번에는 어떤 일을 저지른 거지?’
수횡천은 무감각한 얼굴로 육장봉을 바라보며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수횡천이 묻자, 육장봉도 감추지 않고 직설적으로 대답했다.
“잠한성이 조왕을 암살하려 했네.”
“여전히 그 여인을 위해서요?”
수횡천은 자신이 전혀 예상 밖이라고 여기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잠 선배가 어떤 불합리한 일을 저질러도 당연한 것으로 여기게 된 듯했다. 애당초 일이 벌어지고 그가 아무 말도 없이 갑자기 사라졌던 것처럼 말이다.
“그 여자 말고, 또 누가 있겠나?”
육장봉은 비웃으며 콧방귀를 뀌었다.
수횡천은 탄식을 내뱉었다. 눈을 잠시 감았다가 다시 떴다.
“조정에서 어떻게 하든, 우리 무림맹에서는 전적으로 협조할 것이오.”
어차피 그들에게는 거절할 자격도 없었다. 지금의 무림은 조정과 평등하게 대화할 힘이 없었다.
육장봉이 말했다.
“조정에서는 무림맹이 앞에 나서 주기를 바라네. 조정은 뒤에서 조용히 도움만 줄 걸세.”
황제는 이 결정적인 순간에 무림이 흔들리기를 바라지 않았다.
그때 당시 무림맹은 황제의 바람대로 분열되었다. 하지만 잠한성에게는 여전히 추종자가 수두룩했다.
조정이 잠한성에게 손을 대면, 이들은 또다시 단결하여 조정에 계속 대항할 것이었다.
게다가 황제도 잠한성에게 손을 대었다가, 무림 여러 문파의 불안을 자아낼까 두려웠다. 그들이 조정에서 또 자신들을 탄압하는 줄로 여길까 걱정이었다.
이는 황제가 바라는 상황이 아니었다.
특히 북요에서 변경으로 들어와 평화 회담을 하는 중요한 시기였다. 조정이 무림과 대립함으로써 적에게 어부지리를 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조정은 앞에 나설 수가 없었다.
“잠 선배는 아직도 지지자가 적지 않소. 그리고 당시 일에 대해서는 잠 선배가 해명하지 않았기에 아직도 그분을 믿는 사람이 많지.”
진상이 폭로된 뒤, 잠한성이 갑자기 실종되었다. 누군가는 그가 찔리는 게 있어, 감히 무림인들을 볼 낯이 없어서라고 했다.
하지만 그가 무림인들의 안위 때문에 모든 짐을 혼자 짊어졌다고 여기는 사람이 더 많았다.
그 당시 무림의 여러 문파는 힘들어 거의 버티지 못할 처지가 되었다. 더는 조정에 대항하지 않으려 했다. 조정에서 퇴로를 내어 주자, 형세에 좇아 물러서려고 했다.
잠한성이 사라진 덕분에 여러 사람이 곤경에서 빠져나왔다. 그래서 잠한성의 명성이 좋지 못하더라도, 강호에는 여전히 그의 추종자가 적지 않았다.
무림맹이 앞서서 잠한성을 처단하면, 잠한성과 철저히 대립함으로써 그의 추종자들까지 적으로 돌리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조정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다시 무림을 분열시킬 수 있었다. 이 수는 아주 고명했다.
그러나 수횡천은 협조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잠한성의 일은 그와도, 무림맹하고도 전혀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는 지나간 원한 관계는 상관하고 싶지 않았다. 오로지 무림이 예전의 영광을 되찾기만을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