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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154)화 (154/1,004)

154화 내가 찍은 게 맞았구나

육장봉은 마음이 약한 사람이 아니었다. 자기 할 말을 마치자, 육비우가 받아들이든지 말든지, 얼마나 절망적으로 우는지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위로 한마디도 건네지 않았다. 육비우를 잠시도 더 머무르게 하지 않고, 바로 육이더러 ‘내보내게’ 했다.

육장봉은 육비우를 내보낸 김에 군대에서 그의 직무를 해제하는 공문서까지 작성했다. 내일 아침 병부로 가서 병부의 심사와 동의를 거치기만 하면 되었다.

세상을 떠난 넷째 숙부를 봐서, 육비우에게 많은 기회를 주었다. 하지만 그는 단 한 번도 기회를 잡지 못했다.

육씨 가문 직계 자손은 확실히 남들이 누릴 수 없는 많은 권리를 가지고 있었다. 동시에 남들이 지지 않는, 질 수 없는 책임도 걸머져야만 했다.

육비우는 육씨 가문 직계 자손이었지만, 요 몇 년 동안 엉망진창이었다. 육씨 가문에 사내가 많지 않아 자원을 다툴 사람이 없는 것만 믿었다. 줄곧 손을 내밀기만 했을 뿐, 가문을 위해 아무것도 한 게 없었다.

이건 사부인과 마찬가지였다. 거짓말을 하도 하다 보니, 자기 자신마저 믿게 된 것이다. 자신이 정말로 육씨 가문의 은인이나 되는 듯, 육씨 가문의 것을 제멋대로 차지했다.

사부인이 육씨 가문의 은인인지 아닌지는 덮어두자. 설령 진짜 은인이라고 해도, 육씨 가문에서 그 세월 동안 내준 것만으로 보답은 충분했다.

하늘 같은 은혜가 있다 해도, 그녀의 끊임없는 소비, 꼬리에 꼬리를 무는 어리석은 짓은 감당하기 어려웠다.

“장군, 비우 도련님이 가실 적에, 장방(帳房)에게 천 냥을 빌려 갔습니다. 소인이 임의로 빌려주게 했습니다.”

육비우를 보낸 육이가 서재로 돌아와 육장봉에게 보고했다.

“하!”

육장봉은 글을 쓰던 손을 멈추었다.

“어리석고, 이기적이고, 무능하기까지. 이런 때까지도 돈을 챙기다니.”

육장봉은 육비우에게 철저히 실망하고 말았다.

“앞으로 그놈의 소식은 보고할 필요가 없다. 그놈이 무슨 요구를 하더라도 들어줄 필요도 없어. 그냥 보통 방계 자손처럼 대하면 그만이다.”

“네, 장군.”

육이는 마음속으로 깜짝 놀랐으나, 한마디도 묻지 않았다. 아무 내색도 하지 않고 낮은 목소리로 대답만 했을 뿐이다.

‘비우 도련님이 이렇게 된 건 순전히 자초한 게 아닌가.’

전혀 동정심이 들지 않았다.

비우 도련님을 동정하느니 육십이를 동정하는 게 더 나았다. 육비우와 비교하면 육십이야말로 정말 동정이 필요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육십이 그 멍청한 놈은 너무 쉽게 만족하는 게 탈이었다. 애초에 그는 그들의 동정을 전혀 필요로 하지 않았다.

육장봉은 최근 아주 바쁘게 보냈다. 낮에는 군영에만 있다 보니, 모든 공무는 쌓아 두었다가 저녁에야 처리할 수 있었다.

육장봉이 수중의 공무를 모두 처리했을 때는 이미 자정이었다.

시간이 이렇게 되었는데도 육장봉의 얼굴에서는 조금도 피곤함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여전히 신중하고 자제력이 뛰어났다. 책상 위는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처리를 마친 공문을 옆에 두고, 육장봉은 책상 위를 가볍게 세 번 두드렸다.

탁! 탁! 탁!

“장군.”

암위가 신호를 듣고 바로 나타났다.

“보고해라.”

육장봉은 육이가 얼마 전에 바꿔 온 차를 들고 가볍게 한 모금 마셨다.

월령안의 찻잎을 고르는 안목도 아주 좋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이 차는 그가 좋아하는 명전 용정차는 아니었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색깔이 맑고 투명했고, 맛도 깔끔하고 향기로웠다.

이 찻잎 역시 좋은 것임을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바깥사람들의 말은 단편적이었다. 월령안은 돈을 벌 줄 알 뿐만 아니라 쓸 줄도 알았다.

변경에 돌아와 보니, 장군부에서 쓰는 물품은 모두 보통 물건이 아니었다. 변방에 있는 삼 년 동안 썼던 것들도 보통 가문에서는 살 수 없는 것이었다.

월령안은 확실히 그에게 정성을 기울였다. 이에 대해서라면 암위가 정확하게 조사했다.

“장군, 야율제는 청희 장공주 별장에서 나온 뒤로는 소식이 끊겼습니다. 아무 행동도 없었습니다.

우리 사람들이 별장 밖을 지키고 있고, 영녕후부도 암암리에 주시하고 있습니다. 다만 아직 영녕후부에서나 청희 장공주나 모두 별다른 기색은 없습니다.”

암위는 조사해낸 소식들을 사실대로 보고했다. 한마디도 더 보태지 않았고, 일언반구도 감추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보고하는 내내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그들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몰라도, 장군은 요즘 암위들을 잡으려는 벼르는 듯했다.

이미 동료 중 두 명이 산속에 내던져져 신입들과 함께 처음부터 새로 훈련하고 있었다.

신입 훈련이 얼마나 힘든지는 둘째치자. 신입을 훈련해야 할 고참이 어린 것들 무리에 끼어서 함께 훈련한다는 것은 무척 부끄러운 노릇이었다.

이변이 없으면, 산속에 던져진 그 두 동료는 오랫동안 비웃음을 당할 게 뻔했다.

“영녕후부를 단단히 감시해라. 영녕후부 모든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알아야겠다.”

청희 대장공주가 영녕후부에 시집간 지도 오래되었다. 비록 자식을 두지는 못했지만, 영녕후 세자는 여전히 그녀에게 푹 빠져 있었다. 평소에 그녀의 말이라면 뭐든지 다 들어준다고 하였다.

청희 장공주와 영녕후부는 이익을 함께한 지 오래이니, 청희 장공주의 잘못은 곧 영녕후부의 잘못이었다.

“네, 장군.”

암위는 겉으로 평온을 유지했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기쁜 나머지 울 뻔했다. 장군이 일 처리를 제대로 못 했다며 죄를 묻지 않았다.

‘천만다행이네. 잠시라도 화를 모면했구나.’

“대장군, 심씨 가문 사건이 중간에 막혔습니다. 몇몇 피해자가 임시로 한 진술을 번복했습니다.

심민 도련님이 자기들을 속였다고 하더군요. 게다가 심민 도련님이 그들을 매수해 심씨 가문을 지목하게 했다고 모함했습니다.

그것 말고도 심씨 가문의 압류된 재산도 슬그머니 주인이 바뀌었습니다. 알아보니 소씨 가문 한 하인의 명의였습니다.”

심씨 가문 사건은 증거가 확실하다 보니, 문제가 없을 거로 생각했다. 그러나 사건을 판결할 때가 다 되어서, 증인이 배신하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어찌 보면 그들이 소홀한 탓이었다. 소씨 가문 사람들이 증인과 접촉할 수 있게 했으니 말이다.

이로 보건대 그들의 변경에서의 세력, 특히 조정에서의 세력은 아직 많이 부족했다.

“소 승상이 손을 쓰니 과연 남다르군.”

육 대장군은 화를 내지 않았다. 가볍게 조소하더니 말했다.

“소여방이 길상 도박장에서 십만 냥을 빌렸다는 소문을 퍼뜨려라.”

“네, 대장군.”

암위가 대답하고 나서 한마디 덧붙였다.

“소인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이번 화신 도박판의 배후에는 소씨 가문이 있습니다.”

“화신 도박판? 그건 또 뭐냐?”

‘화신’이라는 두 글자를 듣자, 육장봉의 뇌리에는 저도 모르게 월령안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러나 잠시였을 뿐, 월령안의 모습을 뇌리에서 바로 지워 버렸다.

“대장군, 화신 도박판은 삼 년 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 뒤로는 매년 열렸는데, 올해가 바로 사 년째입니다.

다만 삼 년 전을 제외하고 그다음 이 년간은 돈을 거는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귀족 자제 몇 명만 참여했고. 판돈도 많지 않았고, 물주도 이문을 별로 남기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어찌 된 영문인지, 도박판이 갑자기 열기를 띠더군요. 세도가들뿐만 아니라 평범한 백성들도 너도나도 돈을 걸고 있습니다.

소인이 알아봤는데, 물주가 일부러 월 낭자를 미끼로 내놓은 듯했습니다. 심지어 월 낭자만 놓고 판 두 개를 단독으로 열었습니다.

하나는 월 낭자가 춘일연 당일에 무슨 색상의 옷을 입는가이고, 다른 하나는 어느 기예에서 속임수를 쓰는가입니다.

요 며칠 성안이 춘일연과 월 낭자의 일로 들끓고 있습니다. 조사하던 중 누군가 고의로 유도하는 것을 발견했는데, 그 실마리를 따라가 보니 소씨 가문이 있었습니다.”

암위는 원래 이 일을 보고하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며칠간의 관찰 끝에, 장군이 월 낭자만 만나고 나면 상태가 이상해지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때마다 암위들이 봉변을 당했었다.

그래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월 낭자에 대한 정보를 시험 삼아 흘려보기로 했다.

이 시도가 성공하면 안심이었다. 신입 훈련에 참여해 체면을 구길 필요가 없었다.

실패하더라도 이미 앞에 두 명이 있었다. 그가 신입 훈련에 참여한다고 해서, 가장 망신을 당하는 건 아닐 터였다.

암위는 보고를 마치고 침묵을 지켰다. 겉으로는 평온, 침착, 냉정해 보였다. 마음속은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끙끙대며 불안해하고 있었다.

이건 도박이나 다름없었다. 비록 최악의 결과까지 예상했지만, 마음속으로는 그래도 이기고 싶었다.

원래 도박은 다들 이기려고 하는 게 아닌가.

그래서 화신 도박판을 예의 주시하고, 이상한 조짐이 있으면 즉시 보고하라는 육장봉의 명령을 들었을 때, 암위는 아무 내색도 하지 않았지만, 마음속으로는 기뻐서 펄쩍 뛰었다.

‘내가 찍은 게 맞았구나!’

그는 암일, 암이와 함께 체면을 구겨가며 다시 훈련하지 않아도 되었다.

“월령안과 유경장은 어찌 된 일이냐? 그 둘은 어떻게 접촉이 있게 된 거냐?”

암위가 춘일연과 월령안을 언급하자, 육장봉은 그 흐름을 따라 ‘무심하게’ 물었다.

암위는 마음속 기쁨을 주체할 길이 없었다. 그러나 얼굴에는 굳은 표정을 띠고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육장봉의 질문에 즉시 대답했다.

“장군께 아룁니다…….”

“장군!”

육일이 빠른 걸음으로 들어오더니 암위의 말을 끊었다.

“황궁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폐하께서 지금 당장 입궁하라고 하십니다.”

“무슨 일인지는 말하더냐?”

육장봉의 얼굴이 차가워졌다. 바로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

“장군, 아주 급한 큰일이 생겼으니, 최대한 빨리 입궁하라고만 전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육일도 암위의 말을 끊을 필요가 없었다.

황제가 심야에 불러들였다. 게다가 심부름꾼이 이처럼 조급해하는 걸 보면 아마 큰일이 생긴 모양이었다.

“입궁하겠다.”

육장봉은 암위에게 손짓을 하고,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섰다.

육장봉은 다리가 긴 데다 걸음도 빨랐다. 몇 걸음 안 되어 바로 앞뜰에 도착했다.

“대장군, 어서…… 어서 입궁하십시오. 폐하께서 급히 찾으십니다.”

육장봉이 나오자, 황궁에서 온 이들은 구원군이라도 본 듯 다급하게 재촉했다.

“알았네.”

육장봉은 걸음을 멈추지 않고 밖으로 걸어 나갔다. 황궁에서 온 이들은 종종걸음을 쳐야만 그의 뒤를 겨우 따라잡아 뒤처지지 않을 수 있었다.

“장군!”

장군부 밖에는 육이가 이미 말을 준비해 놓고 있었다. 육장봉은 두말없이 고삐를 받아 쥐었다. 육이에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에 올라타 채찍질하여 달려갔다.

“어서, 빨리 따라라!”

황궁에서 온 두 사람은 육장봉이 멀어진 것을 보자, 서둘러 말에 기어올라 육이 등과 함께 뒤쫓아갔다.

한밤중의 변경은 고요하고 적막했다. 육장봉은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달리는 말에 채찍질했다. 밤바람에 그의 두루마기가 펄럭펄럭 소리를 냈다.

육장봉은 금방 황궁 입구에 다다랐다.

바로 말에서 뛰어내렸다. 영패를 꺼내 문지기에게 보인 뒤, 빠른 걸음으로 내원(內苑)으로 걸어갔다.

“대장군, 오셨군요.”

황제의 측근 내관인 이반반이 전원(前苑)에서 육장봉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육장봉이 걸어오는 것을 보자, 마치 오래전에 헤어진 가족을 만난 것처럼 감격에 겨워 앞으로 다가왔다.

“무슨 일인가?”

육장봉은 걸음을 멈추지 않고 난각으로 걸어갔다.

“조왕 전하께서 다치셨습니다. 상세가 아주 위중하십니다.”

이것은 기밀 정보였다. 지금까지 이 일을 아는 사람은 다섯 명도 안 됐다. 모두 황제의 심복이었다.

하지만 육장봉 앞에서라면 이반반도 감출 필요가 없었다. 육 대장군이야말로 폐하의 제일가는 심복이었다.

“누가 조왕을 다치게 할 수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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