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화 참 먼 데까지 손을 뻗었군
순식간에 소 승상의 얼굴이 온통 시뻘겋게 되었다. 공교롭게도 허리를 다친 탓에, 힘을 주어 좀 참으려고 해도 불가능했다.
소 승상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때때로 흠칫 떨기도 했다. 그는 마음속으로 숫자를 세었다.
육장봉은 미간을 찌푸린 채 전혀 입을 열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소 승상은 하는 수 없이 먼저 말을 꺼냈다.
“육 대장군, 이 몸은 자네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네.”
“소 승상께서는 무엇을 물으셨는지요?”
육장봉은 입에 맞는 차를 마시지 못해 언짢던 차였다. 말투가 좋을 리 없었다.
소 승상은 육장봉이 모르쇠로 나오자, 화가 난 나머지 하마터면 그 자리에서 실례할 뻔했다.
소 승상이 이를 악물고 말했다.
“주모의 일은 어떻게 해결할 생각인가?”
“빚을 졌으면 돈을 갚으면 됩니다.”
육장봉은 간결하고 깔끔하게 대답했다. 소 승상이 허튼소리를 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소 승상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제야 육장봉과 한바탕 싸우고 싶은 충동을 억누를 수 있었다. 먼저 조건을 말했다.
“내가 가진 주모의 차용증과 내 아들놈의 차용증을 바꾸세.”
“그리고 주모의 두 다리도 있습니다.”
육장봉이 이번에는 소 승상을 무시하지 않았다. 지금 언짢아서 소 승상과 더 길게 말을 섞기 싫다는 이유가 가장 컸다.
소 승상은 깜짝 놀랐다.
“뭐라고?”
‘육장봉, 이놈이 무슨 뜻이지?’
“승상의 아드님이 주모의 두 다리를 분질러 놓았습니다.”
육장봉이 한 마디 한 마디 내뱉었다.
“그래서…… 어쩌라는 건가?”
소 승상은 요의 때문에 거의 막다른 골목에 몰렸다. 더는 육장봉과 겨룰 인내심이 없었다. 어서 빨리 일을 해결하고, 장군부를 떠나서, 생리적인 문제를 해결해야만 했다.
육장봉은 얇은 입술을 가볍게 움직였다.
“당연히 소 승상의 뜻에 따라 해결해야지요.”
소 승상은 기쁜 내색을 하며 대답했다.
“좋네. 그럼 내가 만 냥을 더 배상할 테니…….”
소 승상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 육장봉이 냉랭하게 말허리를 잘라 버렸다.
“차용증을 차용증으로 갚을 거면, 당연히 다리도 다리로 갚아야 합니다.”
“자네…… 무슨 뜻인가?”
소 승상은 두 다리가 풀렸다.
“아드님 또는 따님의 다리 중에서 소 승상께서 선택하십시오. 시간을 정해 장군부에 보내시죠. 제가 인내심이 많지 않습니다. 저를 오래 기다리게 하지 마십시오.”
육장봉은 소 승상을 응대할 마음이 사라졌다. 말이 끝나자마자 일어났다. 또 육이에게 한마디 분부했다.
“나는 아직 처리해야 할 공무가 있다. 차용증을 바꾼 다음 소 승상을 배웅하거라.”
“네, 대장군.”
육이는 일말의 소홀함도 없이 당장 대답했다.
육장봉이 성큼성큼 떠나갔다.
“육장봉!”
소 승상이 큰 소리로 불렀다. 육장봉이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순식간에 화청에서 나가 버렸다.
“육장봉, 말을 확실히 하고…….”
소 승상은 화도 나고 조급하기도 했다. 육장봉을 불러 세우고 싶었다. 그러나 그가 전혀 체면을 봐주지 않았다.
육장봉을 막아 나서려고 해도,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등 뒤에 있던 하인이 도와주려고 움직였을 때였다. 당장 육일의 칼이 그를 가로막았다.
“검에는 눈이 없습니다. 우리 장군부 사람들은 다 거친 사람들뿐입니다.”
“너희 육씨 가문이…… 사람을 너무 업신여기는구나!”
소 승상은 화가 치밀어 욕을 퍼부었다. 그 순간 아래쪽에서 찔끔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만 혼비백산해 하인의 손을 와락 붙잡으며 소리쳤다.
“어서, 나를 밖으로 들어 내가거라.”
절대 장군부에서 추태를 보일 수는 없었다.
“대인…….”
하인은 깜짝 놀랐다. 소 승상에게 손을 꽉 붙들리는 바람에 감히 움직이지도 못했다.
“어서, 어서 빨리…… 연교를 가져오너라. 나를 태우고 나가라니까.”
소 승상은 이런저런 것을 따질 처지가 아니었다. 재촉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당장 실금할 것만 같았다.
“네, 대인!”
소 승상의 이상함을 눈치챈 하인은 황급히 대답했다. 당장 연교를 들이라고 크게 소리쳤다.
육일과 육이도 막아 나서지 않았다. 다만 소 승상이 서둘러 떠나기 전, 육이가 소여방의 차용증을 꺼냈다.
“승상, 주모의 차용증을 주십시오.”
“옜다. 여기 있다. 다 가져가라!”
지금은 차용증뿐만 아니라 만 냥을 달라고 해도 다 줄 판이었다.
소 승상은 지금 아무 생각도 없었다. 한시라도 빨리 장군부를 떠나, 사람이 없는 곳에서 볼일을 보고 싶었다.
육장봉이 소여방 또는 소함연의 두 다리를 내놓으라고 말한 것에 대해서는 그냥 못 들은 셈 치기로 했다.
분명 농담이었을 것이다. 고작 주모 따위를, 어찌 그의 아들과 똑같이 취급하겠는가.
* * *
육장봉은 짜증을 참지 못하고 소 승상을 쫓아냈다. 본채로 돌아와 하인에게 식사를 올리라고 분부했다.
식탁 위에는 그의 식성에 딱 맞는 음식이 올라와 있었다. 이를 본 육장봉은 젓가락을 들기는 했지만, 먹지는 않았다. 대신 요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 양고기는 도로 가져가거라. 앞으로 다시는 올리지 말아라. 이 탕도 필요 없다.”
“네, 장군.”
육장봉을 곁에서 시중드는 하인들은 모두 몇 년 동안 그를 따랐다. 당연히 육장봉의 습관을 잘 알고 있었다.
육장봉이 명령을 내리면, 따르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이유는 물을 필요가 없었다.
하인이 양고기와 탕을 도로 내갔다. 탁자 위에는 반찬 두어 가지만 남게 되었다. 좀 빈약해 보였다.
그러나 그는 육장봉의 말을 따르는 데 습관이 되어 있었다. 다른 요리를 더 올릴지도 물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육장봉은 아주 불만족스럽게 한 끼를 때웠다. 온몸에서 접근하지 말라고 말하는 듯한 냉기가 뿜어져 나왔다.
조촐하게 저녁 식사를 끝낸 육장봉은 서재로 가서 공무를 처리했다.
얼마 안 되어 육이가 차 한 잔을 들고 들어왔다.
“장군, 새 명전차는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예전에 있던 것은 이미 동이 났습니다. 하인은 두 가지가 똑같은 줄 알고 우전차로 대체한 모양입니다. 제가 육안과편을 들고 왔는데, 드셔 보시겠습니까?”
육이는 철이 들 적부터 육장봉의 곁에 있었다. 그의 생활 습관에 대해서라면 손금 보듯이 훤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다시 조사해 보고는 그가 언짢아 한 원인을 알게 되었다.
육장봉은 흘끔 보았지만, 마시지는 않았다. 미간을 찌푸린 채 물었다.
“명전 용정차는 누가 보내온 것이냐?”
육씨 가문에서는 평범한 용정차조차 갖추지 않았었다. 명전 용정차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그의 할머니, 아버지, 숙모들은 줄곧 백차(白茶 – 차의 어린싹을 그대로 건조한 차)만 마셨다. 육씨 가문에는 녹차(綠茶 – 찻잎을 덖어 만든 차)가 거의 없었다. 황제도 육씨 가문 사람들의 차 취향을 알기에 용정차를 하사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 역시 음식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게다가 대부분 연무장에서 지내다 보니, 소금 또는 설탕을 탄 물을 마셨다. 차는 적게 마시는 편이었다.
그가 녹차를 좋아하고, 특히 명전 용정차를 좋아한다는 취향을 아는 사람은 극히 적었다. 그리고 그의 이 취향을 아는 사람들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오늘 그 차는 그의 경계심을 불러일으켰다.
“월 낭자가 준비한 것입니다.”
육이가 대답했다.
“월령안은 어떻게 알았지?”
육장봉은 잠시 일손을 멈추었다.
“월 낭자는 매달 장군께 편지와 물건들을 보냈습니다. 편지를 배달하는 사람을 통해, 전선에서 명전 용정차가 가장 많이 소모된 것을 아신 거죠. 그다음부터 명전 용정차가 끊이지 않도록 하셨습니다.”
육이는 여기까지 말하고, 마음속으로 저도 모르게 탄식했다.
‘장군을 생각하는 월 낭자의 진심이 우리 생각보다 몇 배는 더 컸구나.’
“나는 어째서 이 일을 몰랐지?”
그는 월령안이 매달 한 통씩 편지를 보낸 것만 알고 있었다. 첫 번째 편지를 뜯어 읽어본 적은 있었다. 유용한 소식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격식을 갖춘 문안만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친위대원들에게 던져 주어 처리하게 하고, 다시는 묻지 않았다.
“월 낭자의 이름으로 보내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장군부의 이름으로 변방의 장군부에 보내온 것입니다. 매달 보냈고, 물건도 많지 않았습니다. 전부 음식뿐이길래, 소인은 장군부에서 보낸 것인 줄 알고 더 묻지 않았습니다.”
육이는 여기까지 말하자, 저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들의 불찰이 있기는 했다. 단, 잘못을 했다고는 할 수 없었다.
장군이 전장에 나가 있으니, 장군부에서 매달 장군에게 물건을 보내는 것은 정상이었다.
전에는 노부인, 이부인 등도 전선에 있는 노장군, 둘째 나리에게 물건을 보냈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장군부에서 보내온 물건을 받으면서도 별다른 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게다가 월 낭자가 전선에 보낸 물자는 모두 실용적이었다. 또 장군부의 사람을 통해 보냈기에, 그들도 의심하지 않았다.
“참 먼 데까지 손을 뻗었군.”
육장봉은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 그래도 화는 내지 않았다.
“앞으로는 명전 용정차도 구매 목록에 넣거라.”
전에는 음식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았다. 지금도 그렇게 신경 쓰는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월령안이 사실로 증명했다. 더 좋은 것을 누릴 수 있는데, 굳이 자신을 홀대할 필요가 없었다.
“네, 장군.”
육장봉이 화를 내지 않자, 육이는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장군, 비우 도련님이 밖에 계십니다. 직접 감사를 드리겠다고 합니다.”
“필요 없다. 될수록 빨리 문장(門長 – 문중에서 항렬과 나이가 제일 위인 사람)을 뵙고 사당을 열어, 제 어머니 이름을 지우라고 해라. 그다음 변경에서 내보내라고 해.”
육씨 가문 넷째 집안의 일은 줄곧 간섭하고 싶지 않았다. 이번 일만 끝나면 더는 끼어들 생각이 없었다.
“비우 도련님이 다른 일도 장군과 상의하려고 한답니다.”
육이는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다.
장군은 비우 도련님을 전부터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변경에 돌아온 그 날부터 육비우가 몇 가지 잘못을 잇달아 저지르는 바람에, 육장봉을 더욱 언짢게 했다. 그러고도 육비우는 그 낌새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아니, 본인도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다만 자신이 육씨 가문에서 육장봉을 제외한 유일한 남자라는 점을 믿고 두려운 게 없는 것이리라.
사부인도 마찬가지였다. 넷째 나리의 생명을 구해 주었다는 구실로, 몇 년간 쉴 새 없이 소란을 피웠다. 육씨 가문의 다른 사람들이 어찌 생각하는지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육씨 가문에서 누구든지 그녀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넷째 나리의 생명을 구해 준 은혜를 들먹이고는 했다.
“다른 일?”
육장봉은 냉소하며 말했다.
“들라 해라.”
육비우는 자기 어머니를 위해 사정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어떤 취급을 받아도 할 말이 없을 테니까.
“넷째, 넷째 형님.”
육비우는 서재에 들어서자 머리를 푹 숙였다. 새색시처럼 육장봉을 감히 쳐다보지도 못했다. 목소리도 거의 기어들어 가다시피 했다.
탕!
육장봉은 손에 든 찻잔을 소리 나게 한쪽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육비우를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냐?”
“오늘 일은 넷째 형님 덕입니다. 감사드립니다.”
그래도 감사의 인사는 막힘없이 술술 했다.
그는 진심으로 육장봉에게 감사했다. 이 일은 소씨 가문과 관련된 일이었다. 그가 어떻게 처리해도 좋은 소리를 들을 수가 없었다.
“흥!”
육장봉은 냉소를 던졌다.
“지금도 소함연에게 장가가고 싶으냐?”
그는 소 승상의 위협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다. 다만 이 동생에게 갱생의 여지가 있는지는 궁금했다.
그의 유일한 아우라는 것만 믿고, 무서운 줄 모르는 거라면 크게 잘못 짚었다.
육장봉에게는 아우가 없어도 그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