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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150)화 (150/1,004)

150화 그땐 시집 가도 되려나?

노인들의 근심 어린 눈빛과 간절한 바람 앞에서 장 상궁은 거절할 수가 없었다. 가볍게 머리를 끄덕이며 약속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밖에서…… 제가 돌봐 줄 수 있는 곳에서는 결코 령안이가 손해를 보는 일이 없게 할게요.”

밖에서는 떵떵거리며 거액의 재산을 거머쥐고 있는 대갑부 월령안이었지만, 이 노인들 앞에서는 연약한 어린 아가씨일 뿐이었다.

노인들이 그녀를 걱정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장 상궁은 이 노인들을 대신하여 월령안을 잘 돌봐 줄 것이다.

은양당에서 노인들과 함께 밥 한 끼를 먹었을 뿐인데, 그녀를 돌봐 주겠다는 장 상궁의 약속을 얻어냈다는 사실을 정작 월령안은 모르고 있었다.

만약 이 사실을 알았더라면, 그녀는 분명 더 자주 드나들었을 것이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월령안은 노인들과 잠깐 앉아 있다가 장 상궁과 함께 떠났다.

돌아가는 길에 장 상궁이 월령안에게 물었다.

“나중에 또 올 건가?”

월령안은 즉시 대답하지 않았다. 차창을 열고 고개를 내밀어 어둠 속에 묻힌 은양당을 바라보았다. 가벼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마…… 더는 오지 못할 거 같아요.”

월씨 가문 가주에게는 따뜻한 정이 필요 없었다. 그녀는 돈만 벌면 그만이었다.

* * *

월령안이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아주 늦은 시각이었다. 오른쪽 팔은 점점 더 아파져 왔다. 조금만 움직여도 지독한 통증이 느껴졌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월령안은 장 상궁 앞에서 아무 일도 없는 사람처럼 굴었다. 왼손을 흔들며 장 상궁을 배웅했다. 장 상궁이 멀리 가서 마차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게 되고서야 손을 내렸다.

손을 내리자마자, 얼굴의 미소가 일그러졌다.

“아야, 아프잖아!”

월령안은 오른손과 오른팔을 감쌌다. 하마터면 눈물이 나올 뻔했다.

은양당에서 장씨 할아버지네의 이야기를 들을 때는 이처럼 아픈 줄을 몰랐다. 지금은 이렇게까지 오랫동안 참을 수 있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아가씨, 괜찮으신 거죠?”

마중하러 나온 하녀가 월령안이 팔을 감싼 모습을 보았다. 그 가련한 모습에 걱정이 되어 물었다.

“팔이 아프구나. 통증을 멎게 하는 약이 있어? 한 알 가져다 다오.”

월령안은 아픈 나머지 숨을 헐떡거렸다. 통증을 멎게 하는 약은 많이 먹으면 안 된다고 여러 번 당부하던 약왕 손불사의 말은 무시하기로 했다.

지금은 그 약을 먹고 죽지만 않는다면, 통증만 멎게 해 준다면 얼마든지 먹을 수 있었다.

“있어요. 아가씨, 제가 부축해 드릴게요.”

하녀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앞으로 나가 월령안을 부축하려 했다. 하지만 그녀는 거절했다.

“나는 손이 아플 뿐이야. 발이 아픈 게 아니니까 걸을 수 있어.”

“아가씨, 그럼 발밑을 조심하세요.”

하녀는 등불을 들어 월령안에게 길을 비추어 주면서 수시로 일깨워 주었다.

“아가씨!”

내문(內門) 안에서 기다리던 집사가 월령안을 보고 한 걸음 앞으로 다가섰다. 등불 빛에 비친 집사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진 게 보였다.

“무슨 일이냐?”

월령안은 조용히 물었다. 무슨 일이 벌어지든지 다 감당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집사의 얼굴에 드리웠던 그늘이 많이 사라졌다. 월령안의 옆으로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육 대장군이 사람 둘을 보내왔습니다. 아가씨를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하더군요. 외출할 때는 꼭 데리고 다니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의 노비 문서는 없습니다.”

“낮에 육 대장군과 얘기했던 걸세. 받아 두게.”

육장봉의 행동이 이처럼 빠를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게다가 전혀 감추려는 기색도 없이, 그에게 충성하는 게 분명한 사람을 자신의 곁으로 보낼 줄은 더더욱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육장봉이 본래의 의도를 감추기 위해 두 사람의 노비 문서까지 가져다주었다고 하더라도, 순순히 그를 믿지는 않았을 것이다.

조계안이 보내온 사람처럼, 노비 문서가 그녀에게 있더라도 소용이 없었다. 그들에게 아무 위험이 없어 보여도 쓸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녀에게는 아주 큰 비밀이 있었으니까.

“아가씨, 이 두 사람은 어떻게 처리할까요? 장군부 쪽은 사람을 받았으니 꼭 쓰셔야 한다고 뜻을 전했습니다.”

사람을 받아 두는 건 큰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이런 사람을 어떻게 쓸지가 문제였다.

매일 곁에 두고,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해야 한다. 분명 자신의 집에 있으면서도, 이것저것 다 방어해야 할 판이었다. 이런 생활은 너무나 힘들었다.

월령안은 눈망울을 요리조리 굴리더니 교활하게 웃었다.

“두 사람의 상황에 대해서 알아보았느냐? 결혼은 했느냐? 집은 어디에 있고? 식구는 어떻게 되지?”

“알아보았습니다. 두 사람은 전장에서 은퇴한 노병입니다. 결혼은 아직 하지 않았고, 식구들은 죽거나 뿔뿔이 흩어져 찾을 수가 없답니다. 변경에는 식구가 없고, 육 대장군의 명령만 듣는다고 했습니다.”

집사는 자신이 알아낸 것을 그대로 월령안에게 알려주었다.

“송아거에 가서 물어보게. 그 아가씨들이 시집갈 생각이 있는지 말이야. 육 대장군이 내 곁에 보낸 호위병에게 시집가는 거라고 일러주는 것을 명심하게.”

그녀는 시집가려는 사람이 꼭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만약 나서는 사람이 없으면, 직접 짝 지워줄 생각도 있었다.

집사는 한참 동안 어리둥절하다가 정신을 차리고 물었다.

“아가씨, 만약 두 사람 모두 거절하면요?”

‘호위병에게 아내를 찾아 준다고? 이건 또 무슨 방법이지?’

“호위병들이 거절하거든 육 대장군에게 돌려보내게. 그리고 이렇게 전하게. 나를 곁에서 보호하는 호위무사와 마부가 젊은 데다가 미혼이니, 만약 시간이 지나 정이 들어 내가 그들을 좋아하게 된다면…… 그땐 시집가도 되려나?”

월령안은 이 말을 하면서도 부끄러워하거나, 거리끼는 기색이 없었다.

“아가씨, 그런 말씀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닙니다.”

집사는 깜짝 놀라 하마터면 문턱에 걸려 넘어질 뻔했다.

“말 못 할 게 뭐가 있느냐.”

월령안은 문턱을 넘어서며 고개를 돌렸다, 집사를 흘끔 보고는 자조적으로 웃었다.

“내 팔자에는 죽든가, 아니면 그런 사람에게 시집가든가 해야 하는걸.”

그녀가 청주 범씨 가문에 패하면 기다리는 건 죽음뿐이다.

만약 이긴다면, 십 년 뒤의 그녀는 고작 스물여덟 살이었다. 그때조 황실에서 그녀를 쓰려고 하면, 그녀는 월씨 가문의 역대 가주와 마찬가지로 황제가 그녀에게 골라 준 남자에게 시집을…… 아니, 그 남자를 맞아들여야 했다.

월씨 가문 역대 가주는 궁녀, 아니면 황실에서 길러낸 충복을 맞아들였다. 그녀의 경우, 맞아들일 남자도 시위 또는 사사(死士 – 왕후나 귀족을 위해 목숨을 걸고 돌격이나 암살 임무를 맡은 용사) 중에 골라야만 했다.

이게 바로 그녀의 현재 인생이었다. 한눈에 끝까지 내다볼 수 있는 인생, 무미건조해서 아무 흥미도 일어나지 않는 인생이었다.

“아가씨…….”

집사는 아픈 마음을 담아 나지막하게 불렀다.

월령안은 오히려 손을 저었다.

“괜찮네. 내 마음은 다 정리했으니까.”

다루에서 조계안에게 청주로 가서 범씨 가문과 싸운다고 약속한 순간, 그녀는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달갑지 않기는 했다. 하지만 십 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사이, 그 감정을 억누를 수 있을 것이다.

집사는 소리 없이 한숨을 쉬었다. 다시 정신을 바짝 차리고 물었다.

“아가씨, 대장군께서 그 둘을 노인으로 바꾸거나, 두 사람이 모두 결혼하겠다고 대답하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들이 하자는 대로 합니까?”

“내 곁에는 황실의 사람들만 있어야 해. 육 대장군이 월권한 거야. 분명 누군가가 나를 대신해서 막을 테지.”

이럴 경우에는 남의 힘을 빌려서 싸워야 했다. 그녀는 육장봉을 어쩔 도리가 없지만, 그를 물러서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

만약 그래도 안 된다면, 다른 구실을 찾아 일단 사람을 받아 두면 그만이었다.

이 두 가지 방법 전부 통하지 않는다면, 그 두 사람을 죽일 수도 있었다. 육장봉의 사람이 죽는 게 그녀와 그녀의 사람이 죽는 것보다는 나았다.

“알겠습니다. 아가씨, 걱정하지 마세요. 소인이 꼭 잘 처리하겠습니다.”

집사는 잠깐 생각한 끝에 월령안의 뜻을 깨달았다.

‘그래서 꼭 송아거에서 신붓감을 고르고, 육 대장군의 사람에게 시집가야 한다고 얘기하라고 하셨구나.’

이 말은 그 여인들을 들으라는 게 아니었다. 그녀들의 주인이 들으라고 하는 소리였다.

하늘에는 해가 둘이 있을 수 없다. 사람도 마찬가지로 두 주인을 섬길 수는 없다.

‘아가씨의 주인은 황제 폐하이신데, 육 대장군이 아가씨 옆에 사람을 붙이다니. 황실에서 동의할 리가 없지?’

집사는 가슴을 짓누르던 큰 돌을 드디어 내려놓을 수 있었다.

“아가씨, 육 대장군 쪽에서 그 두 사람 말고도, 은표 십만 냥과 명월산장의 임대 계약서를 보내왔습니다. 아가씨께서 인감을 찍으시면, 계약서는 곧 효력이 발생한다고 합니다.”

“흥, 육 대장군은 참 재미있는 분이구나.”

월령안이 비웃었다.

“됐네. 받아 두게.”

육장봉이 도발하듯 들이민 이상, 그녀도 못 받을 이유가 없었다.

“내일 마구간에 있는 조야옥사자 두 필을 장군부에 보내게. 그리고 육 대장군께 사람을 하곡에 보내 원하던 말을 가져가시라고 알려 드리게.”

그녀는 육장봉에게서 잇속을 차리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녀는 은표와 명월산장을 받았다. 북요인들이 변경에 들어서기 전, 육장봉의 사람들이 말을 가져야 했다.

북요인들과의 비무에 대해서는 그녀도 얼마간 알고 있었다.

북요의 기병은 전투력이 강했다. 북요인들은 한 수 배운다는 구실을 내세웠지만, 사실상 실력을 겨루는 게 목적이었다. 확실하게 우세를 점하기 위해, 육장봉의 부하들과 마상 무예를 겨룰 게 뻔했다.

북요인들이 변경에 도착하기 전, 말을 육장봉에게 보내 준다면 이것도 육장봉을 돕는 셈이다.

그러면 둘은 서로에게 빚진 것이 없어진다.

* * *

날이 저물기 전에 현금 십만 냥을 마련하기란 불가능했다. 소 승상이 아무리 호부에 영향력이 있다고 한들 소용없었다.

호부의 관리들이 소 승상을 돕는다고 해도, 기껏해야 잘못을 범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얼마간 감추거나 시간을 끌어 주는 정도나 할 수 있을 뿐이다. 소 승상을 돕자며, 법을 위반하고 규율에 어긋나는 일을 저지르는 모험을 할 수는 없었다.

이건 소 승상도 마찬가지였다.

소 승상은 현금을 마련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육장봉이 떠나자마자 소 승상은 곧 마차를 타고 장군부로 달려갔다.

날이 저물기 전, 소 승상은 장군부에 도착하여 들어갔다. 몸이 불편한 소 승상을 하인들이 연교에 태워 옮겨 주었다.

장군부의 사람들은 소 승상을 소홀히 대할 수가 없었다. 그들은 등받이를 가져다 소 승상이 편히 앉게 했다. 좋은 차도 대접했다.

“승상, 차를 드십시오.”

소 승상은 고개를 끄덕였다. 말없이 몸을 등받이에 최대한 기대, 온몸의 불편함을 가까스로 참아냈다.

하지만 차 한 잔을 다 마셨는데도 육장봉은 그림자도 비추지 않았다.

소 승상은 미간을 찌푸렸다. 하인이 차를 따를 때 참지 못하고 물었다.

“너희 장군은?”

“저희 장군은 바쁘십니다. 승상,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하인은 빈틈없이 대답했다. 얼굴에는 미소까지 짓고 있었다. 도저히 꼬투리를 잡을 수가 없었다.

“육 장군은 언제면 일을 마치느냐?”

소 승상은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이곳은 그의 소씨 저택이 아니라 육장봉의 장군부였다. 아무리 화가 나도 참아야만 했다.

“소인은 일개 하인일 뿐입니다. 소인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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