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화 저 입은 정말 얄밉군
“그러죠!”
월령안은 생각도 하지 않고 바로 승낙했다.
“제가 팔을 걸었으니 세자께서는 무엇을 거실 가요? 다리 한 짝?”
“난 이 도박장을 걸지.”
장군왕 세자는 자기 기술에는 자신이 있었지만, 모험하고 싶지는 않았다.
“세자께서는…… 제게 돈이 부족해 보이시나요?”
월령안은 눈앞에 놓인 두툼한 은표를 가리키며 조롱하듯 말했다.
“그럼 원하는 게 뭔가?”
장군왕 세자는 굳은 얼굴로 퉁명스럽게 물었다.
그는 자기보다 돈이 많은 사람이 싫었다. 노름판에서는 판돈만 충분하다면, 지기도 힘들었기 때문이다.
“제가 점을 쳐 봤는데, 성 밖의 명월산장(明月山莊)이 저와 인연이 있다고 하더군요.”
월령안은 웃는 얼굴로 말했다.
“하!”
장군왕 세자가 비웃었다.
“간도 크군. 자네가 이길 거라고 확신하나?”
“세자께서는 거실 수 있는지, 없는지나 말씀하시죠.”
명월산장은 황제가 장군왕부에 하사한 황실 별장이었다. 올해 등요 공주가 주최하는 춘일연은 명월산장에서 열기로 했다.
등요 공주가 월령안을 춘일연에 초대한 게 좋은 일이 아닐 게 뻔했다. 그러니 기회가 없다면 모를까, 기회가 생겼으니 사전에 준비하는 쪽이 당연했다. 그녀는 항상 사전에 대비하기를 좋아했다.
그게 아니더라도 장군왕부의 재산 중 월령안의 눈에 들 만한 것은 명월산장뿐이었다.
“못 할 게 뭐가 있나? 내가 설마 지기라도 할까 봐? 그깟 명월산장 가지고. 기꺼이 걸겠네. 악 공자라고 했나? 자네의 팔은 내 것이 될 걸세.”
장군왕 세자는 사나운 시선으로 월령안의 손을 노려보았다.
월령안은 도발적으로 손을 내저었다.
“세자, 계속 주사위 놀이로 겨룰 건가요? 그렇다면 할 말은 미리 해야겠네요. 아까처럼 문제가 있는 주사위는 절대로 내놓지 마세요. 낯부끄럽게.”
“걱정하지 말게. 나 조홍후(趙弘厚)가 그 정도로 뻔뻔스럽지는 않네.”
장군왕 세자는 월령안이 남들 앞에서 그의 단점을 까발리자 얼굴이 뜨거워졌다. 그는 도박장의 집사와 물주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뭣들 하느냐? 얼른 주사위를 가져오지 못할까!”
“예, 예. 세자 저하.”
집사와 물주는 다급히 대답했다. 나는 듯한 속도로 주사위를 가져와, 공손하게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장군왕 세자는 주사위를 건드리지 않았다. 대신 턱을 치켜들며 오만하게 말했다.
“먼저 살펴보겠나?”
“좋아요.”
월령안은 사양하지 않았다. 앞으로 다가가서 주사위와 주사위 통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조그마한 부분까지 놓치지 않는 예리한 태도였다.
월령안은 아주 능숙하게 행동했다. 집사와 물주는 자신들이 속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화가 나서 얼굴이 일그러졌다.
장군왕 세자의 안색도 좋지 못했다. 버럭 소리를 질렀다.
“자네…… 지금 나를 무시하는 건가!”
‘이런 애송이와 노름을 하는데, 이 조홍후가 설마 사기를 칠 것처럼 보이나?’
“껄끄러우시겠지만 확실히 해 두죠. 자세히 살펴보아야 다들 안심이 되잖아요. 안 그런가요?”
월령안은 이렇게 하는 게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는 일을 원칙대로 처리하는 게 좋았다. 사전에 이야기를 분명히 해 두는 편이 나중에 얼굴 붉히며 싸우는 것보다 나았다.
“그리고…….”
월령안은 차갑게 웃었다. 주사위를 꺼내어 장군왕 세자 앞으로 밀어 놓았다.
“세자께서 직접 보시죠.”
“왜…… 무게가 다르지!”
장군왕 세자는 역시 고수다웠다. 주사위를 손에 들자마자 바로 문제점을 알아챘다.
“고얀 것들, 누가 너희에게 이런 꼼수를 쓰라고 했느냐!”
장군왕 세자는 화가 나서 펄쩍 뛰었다. 손에 든 주사위를 집사와 물주에게 세게 집어 던졌다.
“네놈들이 나를 무시하는구나! 내가 진짜 실력으로 겨루면 질 것 같으냐?”
육 대장군 앞에서 이렇게 큰 망신을 당하고, 앞으로 무슨 낯으로 살란 말인가.
‘나 조홍후가 지기라도 하면, 그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할까 봐? 열 받아 죽겠군!’
“세자, 용서해 주십시오. 잘못했습니다. 소인은 그런 뜻이 없었습니다. 소인이, 소인이 잘못 가져온 것뿐입니다.”
집사와 물주는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며 용서를 빌었다.
“너희가…….”
체면을 구겼다고 여긴 장군왕 세자는 부끄럽기도 하고 분하기도 했다. 앞으로 다가가더니 한 사람에게 한 번씩 발길질했다.
“개 같은 놈들, 어서 가서 새 주사위로 가져오지 못할까! 이번에도 또 문제가 생긴다면 네놈들이 죽을 줄 알아라!”
판을 벌이기도 전에 기세에서 밀린 기분이 들었다.
‘이번 판은 어떻게 한다?’
장군왕 세자는 화가 나서 두 눈이 벌게졌다.
집사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새 주사위를 가져왔다. 장군왕 세자의 지시대로, 월령안의 앞으로 주사위를 들고 가서 확인하게 했다.
월령안은 아까처럼 꼼꼼히 살펴보았다. 문제가 없자, 그제야 주사위를 장군왕 세자 앞으로 밀었다.
“세자, 살펴보시겠습니까?”
“괜찮네. 자네가 문제없다면 됐네.”
장군왕 세자는 어두운 얼굴로 대답했다.
“이 주사위는 제 손을 거쳤으니, 세자께서도 한 번 살펴보시는 편이 좋습니다. 나중에…….”
월령안은 말을 끊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나중에 제가 손을 썼다고 하신다면, 썩 보기 좋은 장면은 아닐 듯하거든요.”
“정말 오만하기 짝이 없군. 자네가 반드시 이길 거라고 그리도 확신하나?”
‘이 악가 놈은 도대체 어디에서 온 놈이지? 변경에 이렇게 대단한 인물이 있는 줄 내가 왜 몰랐을까?’
“세자, 전 분명히 말씀드렸어요. 지금 살펴보시지 않고, 나중에 저한테 사기를 쳤느니 뭐라느니 하시면 안 됩니다. 그러면 저도 인정하지 않을 테니까요.”
월령안은 재차 강조했다.
그녀는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을 너무 많이 봐 왔다. 장군왕 세자처럼, 신분과 지위가 있으면서 노름 기술이 뛰어나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은 특히 더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날 때부터 모든 것을 가진 터라 자기는 영원히 지지 않으리라고 여기기 때문이었다. 진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럼 살펴보지!”
장군왕 세자는 주사위 통을 가져갔다. 주사위를 쏟아 내고, 손으로 무게를 가늠해 보았다.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자, 주사위 통 두 개 중 하나를 월령안에게 넘겨주었다.
“살펴보았으니 꾸물거리지 말고 시작해라.”
“어떻게 겨룰 건가요? 먼저 규칙을 정해요.”
월령안은 주사위 통을 받아 들고 다시 한번 주사위를 살펴보았다. 노름판에서는 아무리 조심해도 지나치지 않았다.
“쪼잔하기는! 고작 몇십만 냥 아닌가. 내가 그깟 금액으로 수작 부릴 정도로 비열하지는 않네.”
월령안이 또 한 번 살펴보자, 장군왕 세자는 화가 났다. 월령안은 그와 길상 도박장에 대한 불신을 조금도 숨기지 않았다.
그는 화도 나고 짜증도 났다. 하지만 조금 전 일도 있고 해서, 더는 말할 낯이 없었다. 그저 퉁명스럽게 말했다.
“아까는 큰 쪽이 이기는 거로 겨루었으니, 이번에는 더 작은 쪽이 이기는 거로 하지.”
“한 판 승부 맞죠?”
월령안은 전혀 흔들림이 없이 차분했다.
그녀는 노름하러 왔지, 도련님의 비위를 맞추러 온 게 아니었다. 그녀가 길상 도박장을 못 믿는다고 한들 어쩌겠는가.
“세 판으로 하지!”
한 판 승부는 위험이 너무 컸다. 변수도 많았다. 장군왕 세자는 자기 노름 기술에는 자신이 넘쳤다. 당연히 운만으로 승부를 겨루기는 싫었다. 운이 나빠서 지는 것은 실력으로 지는 것보다 더 싫었다.
“삼판양승제인가요? 아니면 그저 세 번의 승부만 보면 되나요?”
월령안은 자세하게 물어보았다. 조금도 서두르지 않았다.
장군왕 세자는 잠시 생각을 하다가 대답했다.
“세 번의 승부만 보면 되네.”
월령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손을 들어 그에게 권했다.
“세자, 먼저 하세요.”
“그러지.”
장군왕 세자는 조금도 사양하지 않았다. 바로 주사위 통을 들고 흔들기 시작했다.
장군왕 세자의 동작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했다. 주사위 통을 귓가에 가져가 한 번, 한 번 흔들었다. 동작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았다. 하지만 아주 침착했다. 흔들 때의 횟수도 일정했다. 들리는 소리의 울림도 거의 다른 점이 없었다.
“저 정도면 대단한 편인가?”
육장봉은 신분이 드러나자, 더는 월령안 뒤에 서 있지 않고 옆자리에 앉았다.
“아까 그 사람보다는 훨씬 강해요.”
육장봉이 물어보자, 월령안은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리고 가까이 다가갔다. 목소리를 낮추고 입을 열었다.
장군왕 세자는 속임수를 쓰지 않았다. 그러니 방해하지 않을 것이다. 그가 진짜 실력으로 겨룬다고 해서, 그녀가 이기지 못할 것도 아니었다.
두 사람은 아주 가까이 있었다. 육장봉은 시선을 내리깔았다. 월령안의 눈 속에서 자신만만함을 읽어낼 수 있었다. 가볍게 숨을 들이쉬자, 월령안의 정수리에서 배꽃 향을 맡을 수 있었다.
육장봉은 숨을 참고 고개를 끄덕였다. 월령안에게 장군왕 세자를 이길 자신이 있냐고 묻지는 않았다. 그녀의 시선 속에서 답을 읽었기 때문이었다.
탁!
장군왕 세자는 요란한 동작을 하지 않았다. 수십 번을 흔든 다음, 주사위 통을 탁자 위에 덮어 놓았다.
“자네 순서일세, 악 공자.”
“네.”
월령안은 먼젓번과 마찬가지로 주사위를 통에 던져 넣고 느긋하게 흔들었다. 주사위 통을 귓가에 가져가는 대신 눈높이에 맞춰 들었다.
장군왕 세자는 힐끔 보더니, 얼굴이 더 어두워졌다.
“제법 하는군.”
탕!
월령안의 동작은 장군왕 세자보다 더 빨랐다. 그녀는 주사위 통을 탁자 위에 덮어 놓고, 눈을 떴다.
“세자, 과찬이십니다. 먼저 열어 보시지요.”
“자네는 이미 답을 알고 있지 않나?”
장군왕 세자가 주사위 통을 열었다. 한데 쌓인 여섯 개의 주사위가 드러났다. 주사위 위에 표시된 점수는 모두 일 점이었다.
“보아하니, 첫판은 무승부네요.”
월령안도 선뜻 주사위 통을 치웠다. 마찬가지로 한데 쌓인 주사위 여섯 개가 드러났다. 모두 일이었다.
“계속할 텐가?”
단 한 판으로, 장군왕 세자는 상대방을 이기기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상대도 그를 이기려면 쉽지 않을 것이다.
“왜 안 하겠어요?”
월령안은 주사위를 주사위 통에 넣고 먼저 말했다.
“이번에는 제가 먼저 할까요?”
“그러게.”
장군왕 세자는 거절하지 않았다.
두 번째 판에서는 두 사람의 속도가 모두 빨라졌다. 하지만 둘 다 아까와 똑같이 일 점이었다.
장군왕 세자는 예상했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또 무승부군. 이렇게 겨루는 건 재미가 없네. 우리 둘 중 한 명이 실수하지 않는다면, 날이 밝을 때까지 겨루어도 승부가 나지 않을 걸세.”
월령안이 대답했다.
“세 번째 판에는 반드시 승부가 갈릴 거예요. 세자,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가 날이 밝을 때까지 겨룰 일도, 그럴 필요도 없으니까요.”
‘누가 이까짓 애들 놀이로 밤까지 샐 정도로 한가한 줄 아나?’
“내가 보니 자네 오른손이 좀 느린 것이 다친 모양이군. 세 번째 판에서 정말 날 이길 거라고 확신하나?”
장군왕 세자는 억눌렀던 울화가 또다시 치밀었다.
‘육 대장군은 대체 어디서 이런 입만 산 놈을 찾아온 걸까? 노름 기술은 뛰어나다만, 저 입은 정말 얄밉군.
육 대장군이 바로 옆에 앉아 있지만 않았더라도, 그는 분명 저 악가 놈의 입에서 이를 하나하나 뽑았을 것이다. 그러면 다시는 저렇게 얄밉게 입을 놀리지는 못했을 텐데.
월령안은 모진 말로 받아치지 않았다. 탁자 위의 주사위를 가리키며 말했다.
“세자, 세자 차례예요.”
“좋아! 도대체 어떻게 세 판 내에 이길지 한번 봐야겠군!”
장군왕 세자는 순간 투지가 불타올랐다. 그는 휙, 하고 주사위를 통에 쓸어 담더니 속도를 가해서 흔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주사위 통을 덮어 놓았다.
“난 됐네!”
장군왕 세자는 주사위 통을 탁자 위에 엎어 놓았다. 상반신을 앞으로 비스듬히 기울이더니, 깔아뭉갤 듯한 시선으로 그녀를 지그시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