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화 한 판 더 붙을 자신은 있으신지요?
월령안은 손뼉을 치며 원래 자리로 가서 앉았다.
“내가 말했었지. 너는 나와 얘기할 자격이 없다고. 어서 가서 너희 주인을 불러와."
“우리 주인님께서 오시면 너희는 죽은 목숨이야! 변경에서 아직 우리 주인님께 대드는 사람은 없었어.”
집사는 화가 나서 이를 갈았지만, 감히 손을 쓰지는 못했다.
밖에 진을 친 건달들은 도박장에 있는 싸움꾼의 몇 배는 되어 보였다. 정말 싸우게 된다면 크게 다칠 수도 있었다.
그리고 이 두 사람은 길상 도박장이 뒷배경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뻔히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행패를 부리는 것을 보면 보통 인물은 아닐 것이다.
집사는 울화가 치밀었지만, 울분을 꾹 참고 물었다.
“우리 주인님을 만날 생각이면, 각하께서도 존함을 알려주시지요.”
“너희 주인에게 주모의 일로 왔다고 해라. 그럼 우리가 누구인지 알 거다.”
월령안은 육장봉의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 육장봉의 이름은 이런 조무래기들에게 알려줄 필요가 없었었다.
육장봉의 신분은 길상 도박장의 주인인 장군왕(莊郡王)의 기를 누르는 데 쓸 셈이었다.
* * *
도박장의 집사가 이 일을 알린 지 반 시진도 되지 않아, 장군왕부(莊郡王府)의 세자가 도박장으로 왔다.
세자가 도착하기 전, 도박장은 이미 정리가 되어 있었다. 이 일과 상관없는 노름꾼들은 전부 쫓겨났다. 길상 도박장의 싸움꾼들만 남아서 월령안과 육장봉의 맞은편에 서 있었다.
길상 도박장의 사람들은 머릿수가 많았다. 그러나 하나같이 어두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강한 적수를 만난 듯 다들 안색이 좋지 않았다.
그와 반대로, 그들의 맞은편에 있는 월령안과 육장봉은 심심해 죽을 지경이었다. 한 명은 앉아 있고, 한 명은 서 있었는데 마치 제집에 있는 듯 편안해 보였다.
장군왕의 세자는 호위무사 여덟 명을 거느리고 도박장에 들어섰다. 그는 월령안과 육장봉 두 사람을 보자,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이 두 사람을 몰랐다.
‘이 둘은 누구지? 왜 주모의 일에 나섰을까?’
“세자 저하!”
도박장의 사람들은 장군왕 세자를 보자, 구세주를 본 것처럼 흥분해서 소리를 질렀다.
장군왕 세자는 그들을 보지 않았다. 바로 월령안과 육장봉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월령안 곁에 서 있는 육장봉을 지그시 쳐다보다가 물었다.
“두 분께서는 무슨 일로 오셨소?”
‘이분은 아무리 봐도 육장봉, 육 대장군 같은데?’
하지만 곧바로 고개를 흔들어 그 생각을 부정했다.
이 세상에서 육 대장군을 호위무사처럼 옆에 세워 둘 만한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장군왕 세자는 바로 시선을 거두고, 월령안을 훑어보았다.
“저는 월(月)씨입니다.”
월령안은 의자에 앉은 채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을 뿐이다.
“악(岳 - 중국어로 월과 발음이 같음)씨? 오악(五岳 – 중국의 다섯 명산인 태산, 형산, 항산, 화산, 숭산)의 악인가?”
‘변경에 어느 악씨 가문이 이렇게 나대는 거지? 나 같은 군왕 세자까지도 안중에 없다니.’
월령안은 상대방이 오해한 걸 알아차렸다. 하지만 여전히 방실방실 웃으며 답했다.
“맞아요. 오월(五月 - 중국어로 오월과 오악의 발음이 같음)의 월이에요.”
그녀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장군왕 세자는 한참을 생각했다. 그러나 아무래도 변경에서 악씨 성을 쓰는 세도가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상대방이 가명을 썼으리라 짐작했다.
장군왕 세자도 이런 것들에 집착하지 않았다.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악 공자, 공자가 길상 도박장의 주인을 만나겠다고 해서 내가 왔네. 이제 얘기를 해 보시게.”
“아, 이번 판은 제가 이겼습니다. 그런데 그쪽 사람들이 자꾸 억지를 부리며 돈을 안 주겠다고 하더군요. 하는 수 없었지요. 주인을 나오라고 할 수밖에요.”
월령안은 자기 앞에 놓인 주사위를 가리켰다.
“보세요, 많지도 적지도 않고 물주보다 딱 일 점이 많잖아요.”
장군왕 세자는 탁자 위를 힐끔 보았다. 물주는 삼십오 점이었다. 또 판돈 구역에 제멋대로 던져진 은표를 보았다. 그는 굳은 얼굴로 말했다.
“감히 내 도박장에서 사기를 치다니. 간도 크군.”
“사기를 치다니요?”
월령안은 자신을 가리키며 웃음을 터뜨렸다.
“당신네 주사위로 당신네 구역에서 노름했잖아요. 그런데 나더러 사기를 쳤다니? 내가 들어본 말 중에 제일 웃기는 소리네요.”
“악 공자, 사람이 적당히 할 줄 알아야 앞으로 보기 껄끄럽지 않을 걸세. 댁이 어디에서 온 사람인지는 모르나, 어디에서 왔건 변경에 들어섰으면 우리 조씨 가문의 말이 곧 법이야. 설사 자네가 용이라 할지라도, 여기서는 몸을 사려야지!”
장군왕 세자는 탁자를 내리쳤다. 탁자 위에 있던 주사위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탕!
그러자 물주의 주사위도 삼십육 점이 되었다.
장군왕 세자는 웃으며 말했다.
“악 공자! 여기도 삼십육 점이군. 도박장의 규칙으로는 같은 점수라면 물주가 이기지. 자네가 졌네.”
“그래요.”
월령안은 말끝을 길게 끌며 천천히 대답했다.
그녀는 장군왕 세자가 보는 앞에서 비수를 뽑아 들었다. 그리고 앞에 있는 주사위를 베었다.
월령안이 든 비수는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몰라도, 딱딱한 주사위가 두부처럼 부드럽게 반 토막이 났다.
“세자, 제 점수는 삼십팔 점이네요.”
월령안은 비수를 들고 판돈 구역에 놓인 은표 더미를 가리켰다.
“저 은표는 이십몇만 냥입니다. 깔끔하게 우수리를 떼고 이십만 냥만 주시면 되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현금만 받아요. 날이 저물기 전까지 현금으로 주시죠!”
‘이놈이 지금 나를 우롱하는군!’
장군왕 세자는 화가 나서 안색이 변했다. 그의 시선은 다시 한번 월령안 옆에 있는 남자에게로 옮겨갔다.
“악 공자, 자네는 주모, 아니면 육씨 가문과 무슨 상관이 있나?”
소씨 가문이 주모의 차용증을 가지고, 날이 저물기 전까지 현금 십만 냥을 갚으라고 독촉했다는 소식은 그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둘이 주모와 무슨 사이길래? 육 대장군의 사람인가?
하지만 육 대장군은 줄곧 육씨 가문 넷째 집안의 일에는 손을 대지 않았는데?’
“반 시진 내, 세자께서 주모의 차용증을 돌려주시면 이 판은 비긴 거로 하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제가 건 돈만큼 물어 주셔야 합니다.”
월령안은 세자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바로 자신의 조건을 제시함으로써 주도권을 쥐었다.
“만약, 내가 싫다고 한다면?”
장군왕 세자는 얼굴을 굳히고 차갑게 웃었다.
‘어디서 온 놈들이 감히 내 길상 도박장에서 행패인가.’
“그러면 오늘부터, 길상 도박장에는 한 사람도 들어오지 않을 거라고 보장할게요.”
월령안은 달콤하게 웃었다. 사람을 협박하는 기색은 전혀 없었다.
장군왕 세자는 화가 나서 안색이 어두워졌다.
“뭘로 보장한다는 거냐?”
“이미 예상하셨을 텐데요?”
월령안은 옆에 서 있는 육장봉을 가리켰다.
“세자, 우리 모두 규칙을 따르는 사람들이잖아요. 저는 도박장에서 잃은 돈을 도박장에서 딴 겁니다. 세자께서는 도박장을 꾸리시면서, 따기만 하고 잃지 않을 거로 생각하셨나요?”
“이게…….”
장군왕 세자는 눈앞에 있는 사람이 육 대장군일 거라고 예상하기는 했다. 그러나 월령안에게 자신의 마음을 간파당하자, 또 깜짝 놀라고 말았다.
‘하지만 육씨 가문 넷째 집안의 친척 일을 왜 육 대장군이 나서서 해결하려는 걸까? 이 일의 뒷면에, 혹시 내가 모르는 다른 일들이 있나?’
“육…….”
장군왕 세자는 벌떡 일어나 입을 열려고 했다.
“쉿!”
월령안은 집게손가락을 입술에 댔다. 그리고 방자하면서도 여유롭게 웃으며 말했다.
“세자, 굳이 입 밖에 내지 마시죠. 오늘은 대인이니 소인이니 할 것 없이, 도박장 손님과 주인만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규칙을 중요시합니다. 신분이나 권세로 누구를 억누르거나 핍박하지 않을 거예요. 우리는 노름해서 잃은 돈을 다시 노름해서 따왔을 뿐입니다. 설령 이 일을 황제 폐하 앞까지 끌고 간다고 해도, 우리는 할 말이 있습니다.”
육장봉은 병사들을 동원해 길상 도박장을 부수지 않고, 이 바닥의 규칙대로 하고 있었다. 이것만 해도 장군왕부의 체면을 충분히 봐준 셈이었다. 그래도 세자가 굽히지 않는다면, 그때는 육장봉도 무력을 사용할 것이다.
육 대장군의 명성으로 보았을 때, 도박장 하나를 부수는 것쯤은 물론, 장군왕부를 포위한다 해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무마될 게 뻔했다.
‘이런 때 어느 멍청한 작자가 한창 전성기를 누리는 육 대장군과 척을 지겠나?’
장군왕 세자는 화가 치밀었지만, 꾹 참고 말했다.
“주모의 차용증은 내게 없다.”
장군왕 세자는 말을 하면서도 월령안 옆의 육장봉에게 공수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육장봉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례했다.
“그럼 제 돈을 갚으세요. 현금 이십만 냥을 날이 저물기 전까지 주세요.”
월령안은 육장봉의 신분이 잘 먹힐 줄 알고 있었다. 그가 없었다면, 그녀가 모든 판을 전부 이겼더라도 딴 돈을 가져가지 못했을 것이다.
도박장을 운영하는 사람은 사실상 돈을 따기만 할 뿐, 잃는 법이 없다.
“그건 불가능해. 날이 저물기 전까지 현금 이십만 냥을 마련하라니. 그건 순 억지일세.”
장군왕 세자는 관찰하는 시선으로 월령안을 바라보았다.
‘이 악 공자는 정체가 뭐지? 무려 육 대장군을 호위무사로 쓰다니? 내가 변경에 있으면서, 왜 이만한 인물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그건 세자의 사정이지, 저랑 무슨 상관입니까?”
월령안은 장군왕 세자의 체면을 전혀 봐주지 않았다.
그녀는 장군왕 세자와는 아무 접점이 없었다. 또 오늘은 남장을 하고 있기도 했다. 이 일이 끝나고 길상 도박장을 떠나면 그는 그녀를 영영 찾아내지 못할 것이다.
장군왕 세자는 화가 나서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육 대장군이 있으니, 그도 신분을 내세워 상대를 억누를 수는 없었다.
‘이 악 공자는 규칙대로 한다며? 그럼, 규칙대로 따져 봐야겠다.’
장군왕 세자는 가식적으로 웃으면서 말했다.
“악 공자, 이번 판을 어떻게 이겼는지는 내가 굳이 말할 필요 없지 않겠나? 내 도박장에서 꼼수를 부렸겠지. 난 아직 이 일에 대해서는 따지지 않았네.”
“혹시 제가 이겼다는 사실을 부인하시려는 건 아니시죠?”
월령안이 고개를 들고 물었다.
“주사위가 깨졌으니 승부를 가릴 수 없지.”
‘어쨌든 나는 인정할 수 없어. 만약 육 대장군이 뻔뻔하게 나온다면, 난 아버지더러 폐하 앞에 가서 하소연하라고 할 테다. 육 대장군이 권세를 휘둘러 괴롭혔다고 일러바쳐야지.’
“세자께서 승부를 가릴 수 없다 하시니, 그런 거로 하죠.”
월령안은 일어나서 판돈 구역에 놓았던 돈과 은표를 도로 가지고 돌아왔다. 그리고 도발적으로 물었다.
“세자, 저와 한 판 더 붙어서 이길 자신은 있으신지요?”
장군왕은 노름을 좋아했다. 장군왕 세자도 마찬가지였다.
두 부자는 노름을 좋아할 뿐만 아니라 고수였다. 자기의 도박 기술을 자랑으로 여겼다.
장군왕이 길상 도박장을 연 것은 돈을 벌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자신이 도박을 즐기려는 욕구가 더욱 컸다.
“허! 감히 나와 겨루려고 하다니. 자네가 키는 작아도 간은 작지 않군!”
장군왕 세자는 어이가 없어 웃음을 터뜨렸다.
이 변경에서 그가 도박장의 소패왕(小覇王)임을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는가. 그는 단 한 번도 실수를 한 적이 없었다.
“한 판으로 승부를 가리죠. 저는…… 이걸 걸죠!”
월령안은 앞에 놓인 판돈을 전부 밀었다,
장군왕 세자는 육 대장군을 힐끔 바라보았다. 육 대장군이 아무런 말이 없자, 그는 하얀 이를 드러내며 말했다.
“돈만 걸면 재미가 없지. 자네의…… 팔 한 짝을 걸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