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화 너희 주인 나오라고 해
구경하는 노름꾼들은 모두 도박장의 단골이었다. 도박장에서 월령안에게 작업이 들어갔다는 사실을 단박에 눈치챘다.
그들도 도박장의 술수에 당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동정심은 생기지 않았다. 오히려 도박장 편에 서서 월령안이 함정에 빠지도록 함께 부추겼다.
이건 다른 사람이 자기와 똑같은 꼴을 당했다며 기뻐하는 게 아니었다.
길상 도박장 사람들은 노련했다. 이렇게 큰 먹이를 만나면, 도박장은 큰돈을 벌었다. 그러면 옆에서 분위기를 띄워 준 사람들에게도 개평을 떼어 주고는 했다.
도박장에서 노름하는 사람 중에 성품이 바른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노름꾼들은 도박장에서 나눠 주는 그 푼돈에 눈이 멀었다. 그들은 도박장 편에 서서 함정에 빠트리는 것을 거리낌 없이 도왔다.
노름꾼들의 고함 속에서 도박장의 분위기는 점점 달아올랐다. 월령안이 매번 통을 열 때마다 노름꾼들은 얼른 패를 까보라느니, 큰 거 나오라느니 하며 외쳤다. 한껏 달아오른 분위기에 노름하는 사람이 바로 그들이라는 착각까지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 이후로 월령안은 한 번도 이기지 못하고 계속 졌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매번 도박장의 물주보다 일 점이 모자랐다.
“어? 또 일 점 차이네.”
매번 통을 열어 보면 월령안의 점수는 물주보다 일 점이 적었다. 노름꾼들의 한숨 소리도 끊이지 않았다.
노름꾼들은 도박장 측과 함께 월령안을 속이는 처지였다. 그러나 감정이 이입돼서일까. 그녀가 계속 일 점 차이로 지자 하나같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이 월령안보다 더욱 애가 탔다. 월령안을 밀쳐내고 자기가 대신해 주고 싶을 정도였다.
‘고작 일 점 차이잖아!
‘조금만 더 흔들면 이길 수 있었는데!
‘이 도련님은 왜 이렇게 못 하는 걸까. 왜 일 점을 더 못 내는 거야?’
노름꾼들은 자기가 했더라면 반드시 이겼으리라고 생각했다.
월령안이 지고, 또 지고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녀 앞의 은 더미에서도 은자 열몇 개밖에 남지 않았다. 이 광경을 보자 하나같이 안타까워했다.
그러면 월령안 본인은 어땠을까.
그녀도 노름꾼들과 다를 바 없었다. 심지어 그녀를 둘러싼 노름꾼들보다 더욱 미치광이 같았다.
고귀하고 우아하던 도련님이 지금은 주위에 둘러싼 노름꾼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눈은 벌겋게 충혈되었다. 옷은 흐트러졌다. 목도 쉬어 버렸다. 몸에 걸친 옷마저 아까의 광택을 잃어 사람이 우중충해 보였다.
그 뒤에 거는 돈도 점점 액수가 작아지고 있었다. 월령안도 점점 의기소침해지고, 기운이 없어 보였다. 순간적으로 모든 기가 빨린 느낌이었다.
도박장의 집사와 물주는 몰래 서로를 바라보았다. 우쭐거리는 미소가 드러났다.
‘귀하신 도련님이라 해도 뭘 어쩌겠어?’
길상 도박장에 왔으면, 그들이 주무르는 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승부는 그들이 결정했다.
“어? 또 일 점 차이네. 왜 이렇게 운이 나쁘지!”
“또 졌군!”
“도련님이 돈을 전부 잃었군. 본전을 되찾을 돈도 없겠어.”
구경하던 노름꾼들은 월령안의 판돈이 점점 적어짐에 따라 야유를 퍼부었다.
“내가 돈이 없다고 누가 그래? 내가 돈이 없을 리가 있겠어!?”
월령안은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몸에 지닌 옥패와 돈주머니까지 전부 끌렀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은자 세 개까지 몽땅 판돈을 놓는 곳으로 밀어 넣었다.
“이 옥패는 천금이 나가는 거다. 그리고 이 돈주머니에는 은표도 있어. 전부 걸겠어! 설마 이번에도 일 점이 부족하겠어?”
“도련님, 아주 시원시원합니다. 그럼 이번에도 점수 겨루기를 할까요?”
월령안이 노름에 져서 눈이 벌게지자, 물주는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이번에는 큰 쪽이 이기는 거야!”
월령안이 쉰 목소리로 대답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녀가 빛을 잃고 돈 잃은 것에 눈이 벌겋게 된 것만 보였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그게 아니었다. 그녀는 머리카락 한 올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단지 조급해 보일 뿐이었다.
“도련님, 시작하겠습니다!”
물주는 빠른 속도로 주사위를 쓸어 담더니 좌우로 흔들었다. 그 동작은 현란하고 빨랐다. 보는 사람들은 눈이 따라가지 못하는 기분이었다.
월령안은 서둘러 손을 움직이는 대신 상대방을 바라보았다. 상대방의 손에 든 통에 주사위가 부딪치는 소리를 들으며 눈을 가늘게 떴다.
물주는 표자점(豹子点 – 주사위가 모두 같은 수로 나오는 것)을 내려고 했다. 곧 감이 왔다.
탕탕탕!
바로 이때, 월령안이 갑자기 탁자를 두드렸다. 소리의 크기도, 박자도 다 달랐다.
물주는 주사위 통을 흔들고 있었다. 주사위에서 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느라 월령안의 동작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수십 번 흔든 뒤, 물주는 주사위 통을 탁자 위에 자신만만하게 엎어 놓았다.
“도련님 차례예요.”
이번에 나올 건 표자점이 확실했다. 이길 수밖에 없는 싸움이라고 생각했다.
“좋아.”
월령안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가볍게 대답하더니 느긋하게 주사위를 통 안에 떨어트렸다.
‘이 차분하고 느긋한 기세는…….’
월령안의 이 동작을 보자, 도박장의 집사와 물주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저도 모르게 은근한 불안함이 느껴졌다. 그러나 곧 월령안이 다시 우스꽝스럽게 주사위를 흔들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 꼬마 도련님이 사람을 놀라게 하는군.’
탕!
월령안은 몇 번 흔들지도 않았다. 되는대로 대충 두어 번 흔든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통을 탁자 위에 덮어 놓고 말했다.
“됐어. 네가 먼저 열어 봐!”
물주는 자기 기술에 자신이 있었다. 당장 통을 열어 보았다.
그는 주사위의 점수를 보자 멍해졌다. 하지만 곧바로 이성을 되찾고 침착하게 수를 불렀다.
“육이 다섯 개, 오가 하나. 전부 해서 삼십오 점입니다. 도련님 순서예요.”
표자점을 내지는 못했다. 그래도 이 꼬마 도련님은 거뜬히 이길 수 있었다.
“내가 얼마나 많은 돈을 걸든지 너희 도박장에서는 다 감당할 수 있다고 했다. 맞지?”
월령안이 다시 자리에 앉았다. 전처럼 흥분하지 않고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물론이죠!”
집사와 물주는 방금 억누른 불안감이 다시 샘솟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둘은 시선을 주고받았다. 마음이 무거워졌다.
‘혹시 고수를 만난 건 아니겠지?’
집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물주에게도 안심하라는 손짓을 했다.
고수이든 아니든 상관없었다. 이번에 도련님이 이기더라도 기껏해야 백 냥, 이백 냥 손해 보는 정도일 것이다. 결국, 그들이 이긴 셈이다.
물주는 걱정을 덜었지만, 그래도 후회가 되었다. 아까 방심하는 바람에 표자점을 내지 못하고 손을 멈춘 게 후회스러웠다.
‘분명 표자점의 소리를 들었는데……. 도대체 어디에서 문제가 생긴 거지?’
물주는 짜증이 나서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그럼 나도 깐다.”
월령안은 침착하게 손을 뻗어 앞에 놓인 통을 가져갔다.
순간 집사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서둘러 달려들었다.
“도련님, 소인이 열어 드리겠습니다.”
집사의 행동은 아주 빨랐다. 목표도 명확했다. 바로 월령안에게 달려들었다.
퍽!
집사가 월령안과 부딪치려는 순간, 육장봉이 앞으로 나와 발로 차 버렸다. 집사는 저 멀리 나동그라졌다.
“길상 도박장 수준이 이것밖에 안 되나?”
육장봉은 월령안의 옆에 서 있었다. 그는 특유의 기세를 감추지도 않았다.
도박장의 노름꾼들이 육장봉의 신분을 알아차리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그가 나서는 순간, 이 사내가 만만치 않다는 것은 다들 느꼈다. 저마다 뒤로 물러났다.
월령안 맞은편에 서 있던 물주는 육장봉을 한참 지켜보았다. 그러나 낯이 익다고만 느낄 뿐, 도저히 누구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는 몸서리를 치며 물었다.
“대, 댁은 누구요? 내, 내가 경고하는데, 함부로 굴지 마시오. 우리 위에는 아주 높으신 분이어서 댁들이…… 건드리지 못해.”
“너희 주인더러 나오라고 해라. 이번 판은…… 너희가 물어내지 못할 테니까.”
월령안은 자리에서 일어나 통을 열었다.
“삼십육 점. 내가 이겼어.”
“그럴 리가 없어!”
물주는 월령안 앞에 놓인 주사위를 보더니 소리를 질렀다.
“그럴 리 없기는 뭘? 사실이 그런데. 내가 낸 점수가 바로 삼십육 점이야. 너희 눈으로 똑똑히 봤잖아. 잡아떼지 말라고.”
그 정도 충격을 준 것으로는 부족하다는 듯, 월령안은 앞으로 걸어가 판돈 구역에 대충 던져둔 돈주머니를 풀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두툼한 은표를 꺼내 탁자 위에 뿌렸다.
“이번에는 내가 이겼어. 나한테 돈을 줘야지?”
“은표?”
양옆에서 구경하던 노름꾼들은 월령안이 던진 두툼한 은표를 바라보았다. 하나같이 눈을 반짝이며 호시탐탐 노렸다.
월령안은 그런 그들을 훑어보며 말했다.
“감히 길상 도박장에서 손을 쓸 생각을 하다니. 간도 크구나.”
“우리는…… 그런 적 없소.”
그 말을 듣자, 노름꾼들은 순간 찬물을 뒤집어쓴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하나같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경거망동하지 못했다.
길상 도박장의 뒷배는 아주 든든했다. 그들이 저 은표를 빼앗아가더라도 쓰지 못할 게 뻔했다.
“너…… 은표를 얼마나 건 거야?”
물주는 탁자 위에 놓인 은표를 보며 다리를 덜덜 떨었다. 이제 그는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었다.
“고작 몇십만 냥밖에 안 돼. 몇 냥인지는 세어 보지 않았는데.”
월령안은 무심하게 말했다.
“이제는 너희 주인을 불러와야 하지 않을까? 이 많은 돈을 물 수 있겠어?”
집사는 육장봉의 발길질에 나동그라져 있었다. 그는 도박장 싸움꾼들의 도움을 받아 겨우 기어 일어났다. 그리고 월령안의 말을 듣고 탐욕스러운 시선을 번뜩였다. 아픈 것도 잊은 채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감히 길상 도박장에서 행패를 부리다니. 살기 싫은 모양이로구나. 여봐라, 당장…….”
“밖을 먼저 보라고.”
월령안은 희고 매끈한 손으로 도박장 밖을 가리키며 사악하게 웃었다.
“먼저 잘 본 다음, 손을 쓸지 말지 정하는 게 좋을 거야.”
도박장에 오면서 아무 준비도 없이 올 수는 없다.
비록 육 대장군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이 떨거지들을 그에게 상대하라는 건,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쓰는 꼴이었다.
이런 놈들을 가장 쉽게 제압하는 방법은 당연히 폭력으로 다스리는 것이다.
도박장 밖은 온통 사람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하나같이 기골이 장대하고 생김새가 무척 사나웠다. 얼핏 보아도 만만치 않은 사람들이었다.
집사는 월령안이 가리키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익숙한 얼굴이 많이 보였다. 깜짝 놀라 눈알이 튀어나올 뻔했다.
“절름발이 육의 부하들이잖아? 네놈들 도대체 어쩔 셈이냐?”
그의 짐작이 틀렸다. 이 도련님은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양이 아니었다. 작정하고 깽판을 치러 온 망나니였다.
그들의 목숨을 노리고 마지막 판에 몇십만 냥을 걸었던 게 분명했다.
노름꾼들은 밖에 서 있는 사람들의 서슬 퍼런 눈과 마주치고는 겁이 나서 더는 쳐다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월령안이 그들더러 꺼지라고 하자, 하나같이 나는 듯이 사라졌다.
밖에 무리 지은 이들은 뒷골목의 건달이었다. 도박장 사람들은 관아를 두려워하지 않았지만, 밖에 있는 건달들은 무서워했다. 저 건달들에게 찍힌 이상, 쥐구멍에 숨더라도 억지로 끌려 나올 수밖에 없었다.
구경하던 노름꾼들은 죄다 순식간에 도망쳐 버렸다. 삽시간에 도박장이 절반 이상 텅 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