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화 육 대장군의 체면도 안 먹힐 때가 있네요
“도박장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육비우가 되물었다.
“너는 돌대가리냐? 현금 십만 냥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느냐? 도박장에서 그 많은 현금을 대체 어디에 쓰겠느냐?”
육비우의 성이 육씨만 아니었다면, 그와 넷째 삼촌이 혈연관계만 아니었더라면, 육장봉은 절대로 육비우에게 신경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아둔하기 짝이 없구나. 그러니까 내 적수들이 육씨 가문 넷째 집안만 골라서 손을 쓰지.’
“저, 저는 생각도 못 했습니다……. 형님, 그럼, 그럼 어떡하죠?”
육비우는 울상이 되어 물었다.
“됐다. 내가 함께 가겠다.”
육장봉은 몸을 일으켰다.
월령안이 판 함정을 이용해, 육씨 가문을 노리는 게 과연 누구인지 알아야 했다.
육장봉은 친위대와 육비우를 데리고 함께 성안으로 들어왔다. 은표 십만 냥을 가지고 전장(錢莊 - 옛날 개인이 운영하던 금융 업무를 보는 점포)에 가서 현금으로 바꾸려고 했다.
예상대로 전장에서는 바꿔 주지 않았다.
“대장군, 소인이 일부러 바꿔 드리지 않는 게 아니라, 도저히 바꿔 드릴 방법이 없습니다요. 아침부터, 호부의 대인들이 찾아오셔서 소인에게 당부하셨습니다. 호부에서 현금을 바꾸러 올 테니 현금은 전부 그대로 두라고 하시더군요. 백 냥을 넘는 돈은 절대 바꿔 주지 말라 하셨습니다. 게다가 소인의 전장에는 현금이 십만 냥이나 있지도 않습니다. 대장군, 이만큼 큰 액수가 필요하시다면, 적어도 반 달 전에는 미리 말씀을 해 주셔야 저희도 준비할 수 있습니다.”
전장의 집사는 난감한 얼굴로 육장봉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호부라고?”
암위에게 조사하라고 할 필요도 없었다. 육장봉은 누가 손을 썼는지 단번에 알아챘다.
‘호부를 움직일 만한 사람이 소 승상 말고 누가 있겠나?’
“알겠다.”
육장봉은 전장의 집사를 난처하게 하지 않았다. 그가 은표를 가지고 간 건 확인을 위해서였다. 이제 확인을 마쳤으니, 나중에 황제에게 일러바칠 수 있었다.
소 승상은 증거도 없는 상황에서 그를 비방했다. 그러면 그도 똑같이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황제에게 소 승상이 공권을 남용하여 사적인 울분을 풀었다는 암시를 하지 말라는 법이 없었다.
“대장군, 양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장군께서는 참으로 훌륭하신 분입니다.”
전장의 집사는 연신 읍을 하며 감사 인사를 했다. 마지막으로 또 한마디 덧붙였다.
“대장군, 그럼 이 돈을…… 바꾸시겠습니까?”
십만 냥은 적은 액수가 아니었다. 육 대장군이 단번에 이렇게 많은 돈을 바꾸려고 한다면, 미리 준비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남들이 그의 전장에 돈이 없다고 여길지도 몰랐다.
“됐다.”
육장봉은 은표를 육이에게 던져 주더니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 옷자락이 바람에 휘날리며 허공에서 곡선을 그렸다.
이 일은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이었다.
“형님, 우리 이제는…… 어떡하죠? 이 돈을 정말 줘야 하나요?”
육비우가 아무리 멍청해도, 누군가의 함정에 빠졌다는 사실은 알았다.
상대방은 처음부터 그들이 현금을 구하지 못하도록 손을 써 두었다.
“당연히 줘야지!”
육장봉은 고삐를 움켜쥐고 육비우를 바라보았다.
“너는 돌아가서 네 어머니와 주모를 잘 지켜보거라. 그들이 집 밖으로 한 걸음도 나가지 못하게 해.”
상대방은 주모를 핍박하여 날이 저물기 전까지 현금 십만 냥을 내놓게 흉계를 꾸몄다. 절대 돈이 목적이 아니었다.
사부인이 돈을 구하지 못해도 상대방은 주모의 목숨을 빼앗지 않을 것이다. 단지 사부인을 협박해 그들을 위해 일을 하게 할 것이다.
마치 그 옛날 육장봉의 넷째 숙부를 상대했던 것처럼 말이다. 사부인을 시켜 서재에서 물건을 훔치게 하거나, 육씨 가문에 물건을 숨기게 할 수도 있다.
사부인은 멍청할 뿐만 아니라 악독하기까지 했다. 자기의 행동이 육씨 가문에 해를 끼칠 걸 뻔히 알면서도, 그녀의 쓸모없는 동생을 위해 상대방이 하라는 대로 할 것이다.
예전에는 사부인도 넷째 집안만 발칵 뒤집어 놓는 정도였다. 넷째 숙부와 육비우가 그녀를 기꺼이 감싸기도 했다. 육장봉은 제삼자였으니 끼어들 수도 없었다.
이제는 육비우도 더는 견디지 못하고 두 손을 들고 말았다. 육씨 가문이 과부인 사부인을 내쫓는 게 아니라, 사부인이 먼저 육씨 가문을 떠나겠다고 했다.
육장봉이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칠 리가 없었다.
‘고작 현금 십만 냥이 아닌가?’
그에게 현금이 없더라도, 월령안에게는 친분이 있는 대상인이 아주 많았다. 현금 십만 냥을 구하는 것쯤은 어렵지 않으리라.
그가 아는 대로라면, 모든 대상인의 저택에는 돈을 저장하는 금고와 밀실이 있었다. 은표가 편리하기는 했지만, 현금처럼 사람 마음을 든든하게 해 주지는 못했다.
* * *
육장봉이 친위대를 거느리고 월씨 저택으로 갔다. 예전과 마찬가지로 하인이 말을 전하기 기다리지도 않았다. 제집 드나들 듯 화청으로 들어가더니, 주인석에 태연히 앉아 월령안을 기다렸다.
월령안은 팔을 다친 뒤 이틀간 줄곧 방안에만 있었다. 당연히 최대한 편안한 차림새로 지내고 있었다.
하인에게서 육장봉이 화청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어서 만나러 오라는 말을 듣자, 그녀는 하마터면 욕을 할 뻔했다.
‘육장봉은 내가 지금 아픈 걸 모르나? 또 팔을 다친 환자가 옷을 갈아입으려면 얼마나 힘든지도 모르는 건가? 이렇게 자주 찾아오는 건, 나더러 몸조리도 하지 말란 거야, 뭐야?’
월령안은 투덜거렸다. 하지만 육장봉이 밖에서 기다린다니 나가지 않을 수도 없었다.
월령안은 하녀를 불러들여 머리를 빗고 옷을 갈아입었다.
“한참을 기다렸소!”
육장봉은 손에 들고 있던 찻잔을 탁자 위로 던졌다.
퉁,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찻잔이 탁자 위에서 데구루루 굴렀다. 찻잔 안의 찻잎과 찻물이 탁자 위로 흩뿌려졌다.
월령안은 미간이 찌푸려졌다.
“대장군, 이게 무슨 뜻입니까?”
“함정을 파고 뒷수습도 제대로 못 해 다른 사람에게 틈을 내주는 게 당신의 능력이라는 말이오?”
주모의 일은 월령안의 잘못이 아니었다. 그러나 월령안이 소홀하여 일이 이 지경이 된 것도 사실이었다.
“함정을 파고 뒷수습을 못 하다니요?”
월령안은 잠시 생각을 하다가 무언가 떠오른 듯 물었다.
“대장군의 말씀은…… 주모의 일인가요?”
“아니면 당신이 일부러 뒷수습하지 않아, 주모의 차용증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게 했단 말이오?”
육장봉은 월령안을 잡아먹을 듯한 기세로 노려보았다.
“대장군, 저를 너무 과대평가하시네요. 제가 신도 아니고, 누군가 주모를 이용해 대장군을 곤경에 빠뜨릴 것을 어떻게 예상해요?”
월령안은 얼굴색 하나 바꾸지 않고, 육장봉의 아랫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십만 냥을 마련하는 게 대장군께 어려운 일도 아닐 텐데요? 대장군께서 돈이 필요하시다면 빌려 드릴 수 있습니다. 이자는 만 냥 당 매일 동전 열 푼입니다. 어떠세요?”
육장봉과 맞서게 되더라도, 그녀가 잘못한 게 없다면 그도 그녀를 어떻게 하지는 못한다. 이는 그녀가 육장봉과 여러 차례 겨루며 얻은 경험이었다.
‘게다가 주모의 일은 정말 나와 아무 연관이 없어. 나는 손을 쓰기 전에 미리 귀띔까지 했었잖아. 자기가 손을 놓는 바람에 다른 사람이 그 빈틈을 파고든 것뿐인데, 도대체 이 일이 나와 무슨 상관이람?’
“나는 이깟 돈이 부족한 게 아니오. 주모의 차용증이 소씨 가문으로 넘어갔소. 소씨 가문에서는 날이 저물기 전에 현금으로 달라고 하고 있소.”
돈을 주지 않았을 때의 결과가 어떨지는 말하지 않았다. 월령안에게 알려 줄 필요도 없었다.
그는 소씨 가문이 주모를 어떻게 괴롭히고, 사부인을 어떻게 협박할지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단지 이번 기회를 빌려 사부인이라는 골칫덩어리를 치우고 싶을 뿐이었다.
“전장에서 돈을 못 바꿔 준대요? 아니면 안 바꿔 준대요?”
월령안은 고소하다는 표정을 숨김없이 드러냈다. 하마터면 대놓고 이렇게 말할 뻔했다.
‘육 대장군의 체면도 안 먹힐 때가 있네요.’
육장봉은 왠지 모르게 기분이 나빠져 굳은 얼굴로 말했다.
“날이 저물기 전에 나 대신 현금 십만 냥을 구해 주시오. 조건은 마음대로 걸어도 좋소.”
그는 처음으로 암위의 능력에 대해 의심이 들었다.
‘월령안이 나를 깊게 사랑하고, 나를 위해 모든 것을 기꺼이 바칠 수 있다. 암위는 그렇게 말했었지. 그렇다면 왜 첫날을 제외하고, 월령안의 눈에서 나에 대한 연모의 정을 찾아볼 수 없을까? 내가 체면을 구긴 것을 보고, 속상해하기는커녕 고소해서 하는데? 이 여인은 정말 나를 사랑하는 걸까? 아니면, 월령안이 사랑하는 것은 단지…… 환상 속의 육장봉이지, 진정한 내가 아닌 걸까?’
순간, 가슴이 무언가에 꽉 억눌린 듯 괴로워졌다.
“대장군, 꼭 현금 십만 냥이 필요하신 건가요, 아니면 이 일을 해결만 하면 되는 건가요?”
월령안은 육장봉의 요구를 승낙하지 않았다.
육장봉의 요구는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육장봉을 위해 나서지 않을 셈이었다.
돈은 남에게 드러내서는 안 되는 법. 현금 십만 냥은 작은 액수가 아니었다. 그녀가 오늘 잘 아는 숙부니 백부니 하는 사람들을 찾아가 현금 십만 냥을 조달하고 내일 갚는 사이에 무슨 일이 생기지 말라는 법이 없었다.
사람은 재물 때문에 죽고, 새는 먹이 때문에 죽는다. 요즘은 돈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거는 사람이 많았다.
“당신이 해결할 수 있소?”
‘월령안이 소 승상과 협상할 수 있다는 말인가?’
“할 수 있어요! 하지만 대장군께서 저를 한 번은 지켜 주셔야 합니다.”
월령안이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내가 어떻게 하기를 바라오?”
‘소 승상 그 능구렁이는 어제 크게 봉변을 당하고 또 황제를 언짢게 만들었지. 나한테 원망을 품었으니, 자기가 크게 손해를 보는 한이 있어도 절대 물러서지 않을 텐데.’
소 승상이 먼저 손을 떼게 하는 것은 아주 어려울 것이다.
“주모는 길상 도박장의 돈을 빌렸잖아요. 길상 도박장으로 가서 돈을 도로 따 오면 되죠. 돈 때문에 생긴 일이잖아요? 십만 냥으로 해결이 안 되면 이십만 냥, 삼십만 냥을 벌어 보죠. 길상 도박장이 도대체 얼마만큼의 손해를 감당할 수 있을지 두고 보자고요!”
월령안은 흥분해서 눈을 반짝였다. 당당함과 자신감이 넘쳤다.
그런 그녀를 본 순간, 육장봉의 심장은 잠시 멈췄다가 다시 세차게 뛰기 시작했다.
‘이게 월령안의 진정한 모습인가?’
위풍당당하고 자신만만했다. 돈 이야기만 나오면 그녀는 항상 반짝반짝 빛이 났다.
육장봉은 눈썹을 치켜세우며 물었다.
“길상 도박장에서 돈을 벌 거라고 보장할 수 있소? 본전도 못 찾으면 어쩌려고 그러오.”
‘월령안이 무슨 자신감으로 저러지?’
월령안이 사업을 이끌고 재물을 모으는 데에 뛰어나다는 것은 그도 알았다. 하지만 도박장에서는 이러한 능력이 소용이 없었다. 도박장은 장사하는 능력만으로 돈을 벌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과거에도 많은 거상이 도박장에서 재산을 탕진했다.
“육 대장군, 저를 너무 얕잡아 보시네요!”
월령안은 벌떡 일어났다. 눈웃음을 지으며 긍지를 갖고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상업계에서는 저도 가끔 실수할 때가 있지요. 하지만 도박장에서는 한 번도 진 적이 없어요!”
그녀는 숫자에 천부적으로 민감했다. 숫자와 관련된 일이라면 못 하는 게 없었다. 설령 도박장에 타짜가 나타나더라도 전혀 두렵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