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화 어머니를 내치겠어요
사부인은 격노했다. 육비우의 손을 뿌리치고 말했다.
“비우야, 네가 어떻게 이럴 수 있니? 네 외숙부잖아! 뻔히 죽을 것을 보고만 있겠다는 거야?”
“저는 못 구해요! 어머니, 어머니는 이미 우리 넷째 집안의 모든 재산을 저 사람한테 줬잖아요. 그걸로 부족해요?”
육비우는 이 말을 하면서 눈물을 쏟았다. 남자라면 정말로 마음속 깊은 곳에 상처 입기 전까지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 법이다.
“난 몰라! 비우야, 네 외숙부 좀 살려 줘. 네가 안 살려 주면 어미는, 어미는…… 죽어 버릴 거다.”
사부인도 눈물을 흘렸다. 그녀는 불쌍하기 짝이 없는 모습으로 서러운 듯 눈물을 펑펑 쏟았다.
육비우는 두 손을 꽉 움켜쥐고 흐느끼며 말했다.
“어머니! 외숙부만 생각하는 거 그만둘 수 없어요? 절 좀 생각해 주면 안 돼요? 우리 넷째 집안이 이 모양 이 꼴이 됐는데, 저 좀 생각해 주면 안 되냐고요!”
“비우야, 네 외숙부이기도 하잖니. 너한테는 하나밖에 없는 외숙부고, 어미한테는 하나밖에 없는 동생이야. 어미가 어떻게 모르는 척할 수가 있겠니?”
육비우가 눈시울을 붉히면서 말하는 모습을 보자, 사부인도 순간 눈물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남편이 죽었을 때보다 더욱 구슬프게 울었다.
“어머니, 저도 어머니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잖아요!”
‘왜 어머니는 매번 나더러 희생하라는 걸까?’
“넌 달라. 넌 육씨잖아. 대장군이 널 돌봐 주니까, 너한테 무슨 일이 생기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거야. 하지만 네 외숙부는 다르잖아. 네 외숙부한테는 피붙이라고는 나밖에 없어. 내가 도와주지 않으면 도와줄 사람이 없을 거야. 비우야, 이번이 마지막이야! 넌 정말 이 어미가 죽었으면 좋겠니?”
사부인은 애간장이 끊어지게 울었다.
주모는 사부인이 육비우를 설득하지 못하자, 다급해져서 끼어들었다.
“비우야, 넌 이 외숙부를 모른 척하면 안 된다. 비우야, 기억 안 나? 네가 여섯 살일 적에, 독사에게 물려 죽을 뻔한 걸 이 외숙부가 죽을 각오를 하고 독을 빨아냈잖느냐. 외숙부는 너를 위해 하마터면 죽을 뻔했어. 외숙부가 네 목숨을 한 번 구해 줬는데, 네 목숨값이 그래도 십만 냥은 하겠지?”
“맞아, 맞아, 맞아. 비우야, 넌 외숙부한테 목숨을 빚졌어.”
사부인도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육비우가 말을 듣지 않을까 걱정되어, 협박하는 말도 잊지 않았다.
“지금, 네 목숨값을 외숙부에게 갚는 셈 쳐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를 인정사정없고, 불효막심한 자식이라고 고발할 거다.”
“어머니, 정말 제 친어머니가 맞아요?”
육비우는 입술을 깨물고 억지로 울음을 참았다.
“어머니, 제가 십만 냥을 구해 드릴게요. 하지만 제 조건도 한 가지도 들어주셔야 해요.”
“그래, 그래. 하나가 아니라 열 가지라도 들어주마.”
육비우가 드디어 허락할 것 같자, 사부인은 바로 웃는 얼굴을 보였다. 무슨 요구를 하는지 듣지도 않고 바로 승낙했다.
육비우의 마음속에 마지막으로 남은 기대의 끈도 툭, 하고 끊어졌다. 그는 눈을 감고 차갑게 말했다.
“돈을 받으면, 절연장을 가지고 육씨 가문을 떠나세요. 앞으로 더는 육씨 가문과 아무 인연이 없는 사람이 되는 거예요.”
“비우야, 너 지금 뭐랬니?”
사부인은 목소리를 확 높이더니 비명을 질렀다.
“어머니, 잘못 들으신 거 아니에요. 저는 아버지를 대신해 어머니를 내치겠어요. 십만 냥과 절연장, 받을 거면 둘 다 받고, 아니면 아무것도 받지 마세요.”
육비우는 눈을 뜨지 않고 계속 감고 있었다. 눈을 떴다가는, 어머니가 눈물 흘리는 모습에 마음이 약해질까 두려웠다.
“육비우, 이 불효막심한 놈! 내가 너를 고발할 거다!”
사부인은 비명을 질렀다.
“가세요……. 절 고발하고 나면, 외숙부도 죽은 목숨일 거예요.”
육비우는 두 손을 주먹을 쥔 채 몸 옆으로 늘어트렸다. 몸이 떨리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꼭 감은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누님, 누님, 절 모른 척하시면 안 돼요. 어이쿠, 내 다리, 부러졌네. 부러졌다고요!”
주모는 별 볼 일 없는 건달이었지만, 눈치는 있었다. 육비우가 이토록 단호하게 나오자, 상황이 달라지지 않으리라는 것을 눈치챘다.
그는 누이가 육씨 가문 사부인이라는 자리 때문에 자신을 버릴까 두려웠다. 다시 사부인에게 엉금엉금 기어가 처참하게 울부짖으며 말했다.
“누님, 저한테는 누님밖에 없어요. 절 버리면 안 됩니다…….”
“동생아, 걱정하지 마라. 누나는 널 버리지 않을 거다.”
사부인은 주모의 비참한 몰골을 보자, 마음이 찢어질 듯 아팠다. 주모를 와락 그러안더니, 고개를 돌려 육비우를 노려보며 말했다.
“이 불효막심한 놈! 넌 천벌을 받을 거다!”
“결정하신 거죠?”
눈을 뜬 육비우의 눈에서는 눈물이 더 펑펑 쏟아졌다.
어머니가 거절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는 그 조건을 승낙하고 말았다. 동생과 아들 사이에서 친아들을 버리고 친동생을 선택했다.
“네가 외숙부의 도박 빚을 갚아 주고, 도박장 인간들이 다시는 괴롭히지 못하게만 해다오. 그러면 절연장을 가지고 떠나마.”
주모가 연관되자, 사부인이 모처럼 머리를 굴렸다.
“기다려요. 지금 바로 넷째 형님을 찾아갈 거예요.”
육비우는 가슴이 찢어지게 아팠다. 그러나 꾹 참고 밖으로 나갔다.
‘나는 혼자가 아니야. 돌보아야 할 누이동생도 있고, 부부의 연을 맺고 싶은 함연이도 있는걸. 넷째 형님 말이 맞았어. 더는 이렇게 어머니를 내버려 둘 수 없어. 어머니를 이대로 두면, 계속 나에게 외숙부의 뒷수습을 하게 할 거야. 그러면 나는 무슨 돈으로 함연이랑 혼인을 해?
또 무슨 돈으로 누이동생의 혼수를 마련하겠어?’
여기까지 생각한 육비우의 발걸음이 더욱 빨라졌다.
지금 육장봉이 성 밖 군영에 있다는 말을 듣자, 육비우는 몸의 상처도 아랑곳하지 않고 말에 올라 성 밖으로 달려갔다.
* * *
병사들을 훈련하던 육장봉은, 월령안이 주모에게 놓은 덫에 육비우뿐만 아니라 그 자신도 걸려든 줄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현금 십만 냥을 달라고?”
육장봉은 책상에 앉더니, 오른손을 책상 앞에 가로로 올렸다. 몸을 앞으로 비스듬히 기울이더니 입가에 조소를 띠었다.
‘넷째 숙모는 역시 집안에서만 큰소리를 치는군. 나한테 거절당하니 육비우만 들볶았구나.’
“형님, 제발 부탁드려요. 이번 한 번만 도와주세요.”
육비우는 곤장을 맞은 뒤, 줄곧 제대로 요양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상처가 완전히 아물지 않았다. 또 말을 타고 성 밖으로 달려오느라 엉덩이의 상처가 또 덧났다. 바지가 온통 피로 물들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아픔을 전혀 느끼지 못한 듯, 육장봉 앞에 눈시울을 붉힌 채 꿇어앉아 있었다.
도저히 다른 수가 없었다. 조금이라도 다른 수가 있었더라면, 그도 육장봉을 찾아와서 빌지는 않았을 것이다.
“맨입으로 한꺼번에 십만 냥을 빌려달라니. 뭐로 갚을 셈이냐?”
육장봉이 비꼬며 물었다.
월령안이 육씨 가문에서 삼 년 동안 허투루 보낸 게 아니었다. 육비우에게 복수하기 시작하자, 그 수법이 지독하면서도 신속 정확했다.
육비우의 멍청한 모습을 보자, 육장봉은 흠씬 때려 주고 싶은 충동이 생겼다.
“제가, 제가…… 다친 게 나으면 전선에 가서 전장에 나가 군공을 세울 거예요. 형님, 걱정하지 마세요. 꼭 갚을게요.”
‘전투에 나가 군공을 세워 상을 받으면, 그걸 돈으로 바꾸면 돼. 내 인생이 아직 한참 남았는데, 언젠가는 갚겠지.’
“우리는 북요와 평화 회담을 하는 중이다. 앞으로 몇 년간은 전쟁이 일어날 일이 없을 거다. 그리고…… 네 능력으로 얼마나 큰 공을 세울 수 있단 말이냐? 공을 세운다 한들, 상이 얼마나 될 줄 알고? 개선장군인 내가 받은 상을 합해 봐야 만 냥이 안 된다. 네가 나보다 더 낫겠느냐?”
전선에서는 군공으로 상을 받는 것 외에도, 돈을 벌 방법이 하나 더 있었다.
바로 적의 수급을 돈으로 바꾸는 것이다.
졸병 하나의 수급은 한 냥이다. 장군의 수급은 이백 냥, 사령관의 머리는 만 냥이었다.
전쟁을 통해서라면 확실히 돈을 빨리 벌 수 있었다. 능력이 있는 사람은 짧은 시간 내에 평생 먹고살 걱정 없도록 두둑한 재산을 마련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육비우에게는 그럴 능력이 없었다. 사령관을 죽이기는커녕 장군도 건드릴 재주가 없었다. 기껏해야 졸병 몇이나 죽이는 정도였다. 십만 냥을 모으려면, 병사 십만 명을 죽여야 했다.
북요에서 군사 십만 명을 전쟁터에 내보낼 리도 없거니와, 설령 있다 해도 전장에 나온 십만 명을 육비우 혼자서 다 죽일 수나 있을까.
“형님, 저도 다른 수가 없습니다. 절 도와주실 분은 형님밖에 없습니다.”
육비우는 마음속으로 절망감이 들어 머리를 힘껏 조아렸다.
“형님, 맹세할게요. 이번이 마지막이에요.”
“네가 보장한다 해도, 네 어머니까지 보장할 수 있겠느냐?”
“있습니다!”
육비우는 갑자기 고개를 쳐들고 다급히 말했다.
“형님, 제가 어머니에게 말했습니다. 만약 십만 냥을 받고 싶으면, 절연장을 가지고 육씨 가문을 떠나라고 했습니다. 어머니는…… 그러겠다고 했습니다.”
육비우는 여기까지 이야기하자 목이 메었다. 풋풋한 젊은 기운을 풍기는 준수한 얼굴이 씁쓸함과 서글픔으로 가득했다.
‘이 녀석의 어머니라는 사람은 이 녀석의 생사에 한 번도 신경을 쏟은 적이 없지. 자식이 힘든지 어떤지도 신경 쓴 적도 없고.’
“좋다. 그 돈은 내가 빌려주마.”
육장봉은 눈을 가늘게 뜨고, 눈 속의 조소를 지웠다.
단돈 십만 냥으로 육씨 가문에서 가장 소란스럽고, 매수될 가능성이 큰 사부인을 내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 거래는 아주 할 만했다.
“형님, 감사합니다!”
육비우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다시 한번 다짐했다.
“형님, 걱정하지 마세요. 앞으로…… 앞으로, 저는 제 어머니가 죽었다고 생각할 거예요.”
그는 넷째 형님이 줄곧 자신의 어머니를 좋아하지 않는 것을 알고 있었다. 심지어 그의 어머니가 본채에 발을 들이지도 못하게 할 정도였다.
그래도 어머니를 이렇게까지 싫어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어머니는 정말…… 실패한 인생을 사셨구나.’
육씨 가문 곳곳에서 그의 어머니를 좋아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다들 사부인이 드나드는 것을 싫어했다. 도둑을 대하듯 그녀를 경계했다.
하지만 넷째 형님을 원망할 수도, 다른 사람을 탓할 수도 없었다.
그의 어머니는 경중을 가릴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거기에 그의 외숙부를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지금 육씨 가문은 호랑이에 날개가 달린 듯, 순풍에 돛 단 듯 술술 풀리고 있었다. 겉보기에는 아주 잘 나가는 듯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매우 위험한 상황이었다. 조금이라도 꼬투리 잡힐 일이 생겨서는 안 됐다.
넷째 형님과 육씨 가문 사람들이 사부인을 경계하는 것도 당연했다.
심지어 자신도 어머니가 예전처럼 아버지의 서재에서 군사용 지도를 훔쳐 내 돈으로 바꿀까 봐, 항상 경계하지 않았던가.
그때 육장봉이 제때 알아차리고 처리하지 않았더라면, 그의 아버지뿐만 아니라 육씨 가문 전체가 끝장났을 것이다.
육장봉에게는 일전에 황제가 보상해 준 돈이 있었다. 당연히 십만 냥은 내줄 수 있었다. 당장 육이를 불러 육비우와 함께 성으로 돌아가 은표를 가져오게 했다.
육비우도 육장봉이 명령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힙겹게 기어 일어나며 황급히 덧붙였다.
“형님, 그쪽에서 은표가 아니라 현금으로 달라고 콕 찍어서 말을 했답니다.”
“현금으로 달라고?”
육장봉의 말투가 차가워졌다. 순간 시선도 날카로워졌다.
“빚을 독촉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는 봤느냐?”
‘이건 절대 월령안이나 길상 도박장의 수법이 아니야. 상대방이 원하는 것은 어쩌면 돈이 아니라……. 육씨 가문을 노리고 판 함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