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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136)화 (136/1,004)

136화 이런 사람이 내 친어머니라니

황제는 온화한 성품의 소유자였다. 신하들에게도 줄곧 너그럽게 대해 왔었다. 그런데 갑자기 생각을 바꿨다. 소 승상의 부상도 아랑곳하지 않고, 시위에게 시켜 강제로 황궁 밖으로 내보냈다.

‘반드시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거다.’

소 승상은 소씨 저택으로 돌아오자마자 당장 어찌 된 일인지 알아보게 했다.

그 결과, 순천부윤과 형부상서가 아무 증거도 찾지 못해, 그가 해코지당했다는 증언을 입증할 수 없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소 승상은 그 말을 듣고 피가 거꾸로 솟았다.

“육장봉!”

황제는 그가 넘어져 다친 것을 기회로 육장봉을 모함한다고 여기는 모양이었다.

‘내 결백함은 하늘과 땅이 안다. 난 누군가의 함정에 빠진 게 틀림없어.’

게다가 그가 정말 육장봉을 모함하려 했더라도, 자기 몸까지 던질 수는 없었다. 그도 젊은 나이가 아니었으니까.

“아버지…….”

소 승상이 육장봉의 이름을 부르며 고함을 치고 있을 때, 소식을 들은 소씨 가문의 큰 도련님이 달려왔다. 그는 빠른 걸음으로 침대 옆으로 다가왔다.

“아버지, 어찌 된 일입니까?”

“여방아, 육장봉이…… 날 다치게 했다. 폐하께서 내게 불만을 품도록 그놈이 모략을 꾸민 게야!”

소 승상은 소여방의 손을 꽉 움켜쥔 채 분노를 터트렸다.

“육장봉이? 그놈이 감히 아버지께 손을 댔단 말입니까!”

소여방의 준수한 얼굴에 음험한 기색이 스쳐 지났다.

“육장봉이 우리한테 인정사정없이 굴었으니, 우리도 그놈에게 의리를 지킬 필요 없습니다. 아버지, 걱정하지 마십시오. 아버지께서 다치기까지 하셨는데 당하고만 있을 수야 없지요. 이 원수를 제가 지금 가서 갚겠습니다. 육장봉 그놈이야 대장군이라 제가 못 건드려도, 제가 육씨 가문의 다른 사람도 어쩌지 못하겠습니까?”

육씨 가문의 넷째 집안이 바로 육씨 가문의 빈틈이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넷째 집안을 괴롭히는 것쯤은 문제없었다.

“그래! 반드시 육씨 가문을 혼쭐내 주거라! 육장봉도 혼내 주고!”

소 승상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 당한 것은 반드시 갚아 주겠다. 육장봉 이놈이 감히 내게 손을 쓰다니.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될 거다.’

* * *

소씨 가문에서 육장봉에게 한 복수는 빠르고도 악랄했다.

그날 밤, 소여방은 길상 도박장을 찾아갔다. 그리고 사부인의 친동생인 주모의 친필 차용증과 자신이 직접 쓴 십만 냥짜리 차용증을 맞바꾸었다.

이튿날 아침, 소씨 가문의 싸움꾼이 주모를 찾아가 한바탕 두드려 팼다. 또 그의 두 다리까지 부러뜨렸다.

“악! 악! 악!”

주모가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처절하게 절규했다. 퍼렇게 멍든 얼굴이 흉하게 일그러졌다.

“나리, 나리……! 때리지 마세요!”

싸움꾼들은 전혀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주모의 부러진 다리를 힘껏 밟았다.

“돈을 빌렸으면 갚는 것이 인지상정이거늘! 우리 주인님 돈을 십만 냥이나 빌리고 갚지 않다니! 날이 저물기 전까지 갚지 않으면, 네 두 다리를 자르고, 두 손모가지까지 자르겠다!”

“아악……. 갚을게요, 갚겠습니다! 제가 꼭 갚겠습니다. 반드시 갚겠습니다!”

주모는 고통에 차서 울부짖었다. 얼굴은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연신 돈을 갚겠다고 외치면서, 겁먹은 얼굴로 애걸복걸했다.

“날이 저물기 전까지, 십만 냥이다. 우리 주인님께서는 현금을 원하신다! 알겠느냐? 현금 십만 냥이다. 한 푼도 모자라서는 안 된다.”

싸움꾼은 주모를 조금도 동정하지 않았다. 말하면서 또 몇 번이나 발길질했다.

“나리, 나리…… 때리지 마세요. 제발 때리지 마세요. 더 때리면 저는 죽습니다요. 돈을 갚겠습니다. 반드시 갚겠습니다. 현금…… 갚겠습니다. 갚을게요.”

주모는 아파서 몸을 웅크렸다. 머리와 얼굴이 흙투성이가 되어 더욱 초라해 보였다.

“쓸모없는 자식.”

싸움꾼은 경멸 어린 시선으로 주모를 흘겨보았다. 떠나기 전에도 또 한 번 발길질했다.

“명심해! 날이 저물기 전에, 현금으로 십만 냥이다. 도망칠 생각은 하지도 마라. 육씨 가문 사람들이 널 감싸 줄 거란 기대도 하지 마. 우리한테는 네가 직접 쓴 차용증이 있어. 우리 주인님에게도 뒷배가 다 있어. 육씨 가문이 아무리 날고 기어도 널 지켜 주지 못해. 잠깐은 몰라도 평생이라면 어림도 없지. 숨거나 도망친다면 널 자근자근 다져주마.”

“으악, 악…… 갚을게요. 갚겠습니다!”

주모는 처절하게 큰 소리로 울음을 터뜨렸다. 그 모습은 처참하기 짝이 없었다. 이웃들도 그 소리를 듣기는 했다. 그러나 나서서 도와주는 사람은 없었다.

주모는 통증 때문에 그대로 혼절해 버렸다. 반 시진 뒤, 또 통증 때문에 깨어났다.

깨어난 그는 목청을 가다듬고 구해 달라고 소리를 질렀다. 밖에 있던 이웃들도 그 소리를 들었다. 드디어 마음씨 착한 사람 하나가 와서 말을 걸었다.

“주모, 괜찮나? 의원을 불러 줄까?”

“의원 말고, 의원이 급한 게 아니야! 석동(石東)이, 자네……. 자네가 날 좀 우리 누님댁에 데리고 가 주게. 어서, 어서 나를 우리 누님댁에 데려다주게. 더 늦었다가는 난 맞아 죽을 걸세.”

주모는 사람을 보자 눈물로 애걸했다.

당연히 의원을 찾아가고 싶었지만, 죽음이 더 두려웠다.

빚을 받으러 온 사람은 날이 저물기 전에 현금 십만 냥을 주지 않으면 두 손모가지를 자르겠다고 했다. 그는 손이 잘리고 싶지 않았다. 누님을 찾아가서 들볶을 수밖에 없었다.

석동은 기운이 넘치는 돼지고기 장사꾼이었다. 주모는 사부인의 지원을 받다 보니 늘 살림살이가 넉넉했다. 그래서 석동의 고기 매대에서 자주 고기를 샀다.

석동도 주모의 일에 관여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의 누님이 그래도 장군 부인이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래서 그를 육씨 가문 넷째 집안까지 업고가 주었다.

* * *

“누님, 누님…… 살려 주시오! 제발 나 좀 살려 주시구려! 나 죽어요. 맞아 죽게 생겼소! 누님…… 난 누님의 하나밖에 없는 남동생 아니오. 주씨 집안의 유일한 기둥인데 날 모른 척하면 안 되오!”

주모는 넷째 집안 밖에 도착하자마자 목청을 돋우고 소리를 질렀다. 행여나 사부인이 듣지 못할까 봐 있는 대로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처참한 꼴을 그대로 보여 주었다.

사부인은 먼젓번에도 주모 때문에 육장봉에게 달려가 협박했었다. 그러나 한 푼도 얻어내지 못하고 제 머리만 깨 먹은 참이었다. 그래서 침상에 누워 몸조리하고 있었다.

육비우가 나서서 주모의 도박 빚을 갚아 주도록, 사부인은 머리를 박은 뒤 나 죽었소, 하며 자리보전을 했다. 숨을 헐떡이며 곧 숨이 넘어갈 듯 연기를 하는 중이었다.

그러던 중 주모의 처절한 고함을 듣자, 그녀는 바로 침대에서 기어 나왔다. 당장 앞뒤 가리지 않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동생! 동생……. 비우야, 네 외숙부야. 얼, 얼른…… 얼른 가서 네 외숙부한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봐라.”

“어머니!”

사부인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죽느니 사느니 하며 육비우에게 외숙부의 도박 빚을 갚아 주라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밖으로 뛰쳐나가려고 했다.

육비우는 침대 앞에 무릎을 꿇은 채 이 광경을 지켜보았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서글픈 기분이 들었다.

‘이런 사람이 바로 내 친어머니라니!’

그의 어머니는 이미 넷째 집안의 모든 재산을 외숙부에게 주었다. 그뿐만 아니라 지금까지도 노름꾼 외숙부의 빚을 물어 주라고 압박했다.

그래도 육비우는 기어 일어나, 비틀거리는 사부인을 부축했다.

“어머니, 아직 몸에 상처가 낫지 않았으니 움직이지 마세요.”

“비우야, 네 외숙부가 왔어. 네 외숙부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이 분명해. 지금 나를 찾고 있잖니. 비우야, 얼른 나가게 나 좀 부축해다오. 네 외숙부한테 무슨 일이 생긴 게 분명해. 계속 나를 부르잖니…….”

사부인은 머리를 심하게 찧지는 않았다. 하지만 육비우에게 보여주기 위해 줄곧 식음을 전폐하고 침대에만 누워 있었다. 덕분에 몸이 몹시 허약한 상태였다. 아까는 오기로 벌떡 일어났지만, 육비우에게 부축을 받자 정말 걸어 나갈 기력이 없었다.

“어머니…….”

육비우는 어머니가 나가지 못하게 하고 싶었으나, 막을 수가 없었다.

사부인은 육비우가 자신을 데리고 나가려고 하지 않자, 어디에서 그런 힘이 났는지 그를 밀어 버렸다. 당장 혼자 비틀거리면서 뛰쳐나갔다.

“동생아, 걱정하지 마라. 누나가 가마. 이 누나는 절대 널 모른 척하지 않을 거다…….”

“어머니!”

육비우는 짜증도 나고 화도 났다. 차마 어머니를 홀로 밖으로 내보낼 수도 없었다. 빠른 걸음으로 따라나섰다.

주모는 사부인의 친동생이었다. 평소에도 육씨 넷째 집안에 자주 들락거려, 하인들도 전부 그를 알고 있었다. 또 사부인의 명령을 받아, 주모가 오면 알릴 필요 없이 바로 드나들게 했다.

사부인은 건물에서 나오기도 전에, 석동에게 업혀서 들어온 주모를 보았다.

주모도 참 약아 빠졌다. 사부인이 나오는 것을 보자, 바로 석동에게 자기를 내려놓게 했다. 그리고 부러진 다리를 질질 끌며 앞으로 기어가며 울부짖었다.

“누님, 누님……. 살려 주시오! 제발 살려 주시오! 도박장 사람들한테 맞아 죽게 생겼소. 도박장의 사람이 날이 저물기 전까지 돈을 갚으랍니다. 돈을 갚지 않거나 도망친다면 날 자근자근 다져 버리겠다 했소. 누님, 나 좀 꼭 살려 주시오. 주씨 집안 외동아들인 내가 죽으면, 우리 주씨 집안은 대가 끊기고 말 거요.”

“돈을 갚으라고? 오늘 당장 갚아야 하니? 한 달의 기한이 있다지 않았어?”

주모의 말을 듣고, 사부인은 하마터면 까무러칠 뻔했다.

‘날이 저물기 전에? 그사이에 어디 가서 돈을 구하란 말이야?’

“누님, 한 달 기한은 무슨. 못 들었어요? 오늘 내로 돈을 못 갚으면 날 죽인다고 하잖소. 누님, 나는 주씨 집안의 외아들이잖소. 죽으면 안 되잖아요! 꼭 좀 살려 주시오!”

주모는 사부인을 그러안고 처참하게 울부짖었다.

“나, 나한테는 돈이 없어!”

사부인도 애가 타서 펑펑 울었다.

“아니야, 그럴 리 없어. 나는 육씨 가문의 부인이야. 도박장 사람들도 감히 너를 건드리지는 못할 거야.”

“누님, 도박장 사람들도 뒤에서 봐주는 사람이 있댔어요. 육씨 가문이 날 잠깐은 지켜 줘도 평생은 못 지켜 준다고 합디다. 누님이 돈이 없으면, 외조카가 있잖소. 우리 외조카에게 가서 마련하라고 하세요. 그 녀석이라면 무슨 수가 있을 거요.”

주모는 자신을 증오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육비우와 눈이 마주쳤다. 바로 몸을 웅크리고 사부인의 품에 안겨 통곡했다.

어찌 되었건, 이 빚은 누님이 갚아 줘야 했다. 자기가 살고 봐야 했다.

“그래, 비우……. 비우한테 분명 무슨 수가 있을 거야.”

사부인은 주모의 말을 듣고 황급히 기어 일어섰다. 몸을 돌리자, 자신의 뒤에 서 있는 육비우가 보였다. 사부인은 눈을 반짝이며 와락 달려들더니, 그의 손을 꽉 움켜쥐었다.

사부인은 다급한 나머지 힘을 조절하는 것도 잊고 말았다. 그 바람에 육비우의 손에 생채기가 여러 군데 났지만, 그녀는 그것조차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오히려 더 힘을 주어 꽉 잡았다.

“비우야, 얼른. 얼른 대장군한테 가서 빌어라. 제발 네 외숙부 좀 살려 달라고 빌어. 네 외숙부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안 된단 말이야!”

“어머니, 전 외숙부를 도와줄 수 없어요.”

육비우는 외면하지 않고, 사부인을 지그시 바라보기만 했다. 그 시선에는 억누르지 못한 서글픔이 담겨 있었다.

‘왜 이런 사람이 내 어머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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