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화 소 승상 습격 사건
황제의 말을 듣자, 문관들은 황제가 자신들의 편을 든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싸움에서 이긴 쌈닭처럼, 하나같이 티를 내지 않고 으스댔다.
그러나 그 우쭐거림은 육장봉의 말을 듣자, 바로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육장봉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폐하, 신도 저들을 탄핵해도 되겠습니까? 추밀원에게 저들을 조사해 보라고 해도 될는지요?”
“물론…….”
“폐하!”
일어나라는 어명이 아직 없었다. 바닥에 꿇은 채로 있던 대신들은 황제의 말을 듣자, 놀라서 몸서리를 쳤다. 황제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구동성으로 소리 높여 외쳤다.
“폐하! 육 대장군이 저희를 협박하고 있습니다! 폐하, 신들은 억울합니다.”
그제야 삼 년 전, 일부 관원이 육장봉을 탄핵하려다 실패했던 사건이 생각났다. 그때 그들은 실패한 데에 더해서 자신들의 죄가 낱낱이 까발려졌었다.
‘고작 삼 년 새에 그걸 어쩌다 잊었나.’
황제는 늘 그렇듯 온화하게 말했다.
“경들이 한결같이 공무를 중히 여기고, 법을 잘 지키며, 청렴결백함을 잘 알고 있다. 짐은 경들을 믿으니 걱정하지 마라. 짐이 꼭 추밀원을 통해 잘 조사해서, 죄 없는 자들이 절대 억울함을 당하지 않게 하겠다.”
황제도 교활한 인물이었다. 말을 마치자마자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됐다. 경들도 일어나라. 다른 일이 없으면 조회는 마치겠다.”
말을 마친 황제는 내관을 거느리고 빠른 걸음으로 가 버렸다.
“폐하…….”
대전에 있던 문관들은 다급하게 큰소리로 황제를 불렀다. 황제는 아무것도 듣지 못한 듯, 눈 깜짝할 새에 빠른 걸음으로 사라졌다.
대전에 있던 다른 대신들은 이 익숙한 장면을 보자, 웃고 싶은 것을 가까스로 참았다.
무릎을 꿇고 있던 그 몇몇 관원은 온몸에 한기가 도는 것을 느꼈다.
이 장면은 삼 년 전 육 대장군이 사람들에게 탄핵당했을 때와 똑같았다. 삼 년 전에 그 광경을 똑똑히 보고도, 선배들의 전철을 밟다니.
결국, 똑같이 탄핵에 실패하고 도리어 지옥에 떨어지게 될 걸 예상하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육 대장군을 탄핵했던 문관들은 전전긍긍하면서 기다시피 일어났다. 육 대장군이 있건 말건, 슬금슬금 우르르 모여들어 소 승상을 둘러쌌다. 그리고 불안하다는 듯이 말했다.
“소 승상, 일이…… 좀 이상하게 돌아갑니다.”
“소 승상, 이 일이 저희한테까지 불똥이 튀지 않을까요?”
“겁낼 것 뭐가 있나? 자네들은 모두 폐하께서 칭찬하셨던 신하일세. 무슨 문제가 생긴단 말인가?”
소 승상은 황제 앞에서는 친근하고 자애로운 사람이었다. 그러나 자기보다 아래인 관원들을 대할 때는 대단히 권위적이었다. 일품 대신답게 거드름을 한껏 피웠다.
대신들도 그런 소 승상의 태도에 적응되어 있었다. 그들은 소 승상을 에워싸고 대전 밖으로 걸어 나갔다. 굽실대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육 대장군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혹시 믿는 구석이 있는 것은 아닐까요?”
소 승상은 문관들에게 둘러싸여 대전 밖으로 나가면서 콧방귀를 뀌었다.
“그렇다고 한들…….”
소 승상이 한참 말하며 계단을 내려가던 중 돌발 상황이 벌어졌다. 소 승상이 갑자기 휘청하더니 계단 아래로 굴러떨어진 것이다.
우당탕!
소 승상이 넘어지던 순간, 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그의 비명이 동시에 울렸다.
“으악! 내 손, 내 손……!”
소 승상의 오른쪽 어깨가 먼저 땅에 닿았다. 그는 바닥에 엎드린 자세로 넘어지며, 아파서 비명을 질렀다.
“승상!”
“승상! 괜찮으십니까?”
소 승상을 둘러싸고 있던 문관들은 멀쩡하던 그가 갑자기 눈앞에서 굴러떨어지자 어리둥절했다. 반응이 빠른 몇몇이 잽싸게 소 승상 옆에 가서 안색을 살폈다.
“승상, 일어서실 수 있겠습니까?”
“어의! 빨리 어의를 모셔와라. 소 승상이 다치셨다.”
걸음이 늦은 몇몇은 거기에 끼지 못했다. 그들은 큰소리로 사람을 불렀다.
육장봉은 한쪽에 서 있었다. 그의 눈에 경멸의 빛이 스쳤다.
잠시 후, 그는 파란색 손수건을 꺼내 손의 물방울을 닦았다. 그리고 아무것도 보지 못한 척 덤덤하게 계단을 내려가 훌쩍 떠났다.
“하! 여기서 굴러떨어지다니. 너무 멍청한 게 아닌가?”
육장봉의 뒤를 따르던 무장이 앞으로 푹 고꾸라진 소 승상의 모습을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다 문득 고개를 들자, 육장봉은 어느새 저만치 가고 없었다.
그들은 소 승상의 우스운 꼴을 더 볼 생각도 잊은 채 뛰다시피 따라갔다. 하지만 떠나기 전에 비꼬는 것을 잊지는 않았다.
“문관들은 역시 안 된다니까. 계단 하나 내려가는 것도 똑바로 못 해서 넘어지다니. 정말 쓸 데가 없군.”
“길도 제대로 안 보고 다니는 사람이 육부(六部)를 잘 다스릴 수 있을까? 내가 보기에는 영 아닌데.”
“소 승상의 오른손이 부러진 모양이네. 저 손 없이 우리를 욕하는 상소문은 어찌 쓰려나?”
“문관은 문관이야. 곱게 자라서 약해 빠졌다니까. 넘어졌다고 어의를 부르다니. 내 부하는 창자가 흘러나와도 치료해 줄 의원 하나 없었는데.”
“어이쿠, 비명 하나는 정말 처참하군. 발정 난 고양이 울음보다도 더 듣기 싫구먼. 사람들도 많은데, 낯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말이야!”
“이…… 이놈들이……!”
소 승상은 남들 앞에서 고꾸라지는 바람에 체면이 구겨진 참이었다. 이런 때 무장들의 조롱을 들으니 더 화가 치밀었다. 눈을 뒤집더니 그만 혼절하고 말았다.
황제가 이 일을 알게 되었을 때는 소 승상이 정신을 차린 뒤였다.
그는 깨어나자마자, 누군가의 흉계에 빠져 계단에 굴렀던 것이라고 우겼다.
그가 계단을 내려가려는 찰나 누군가 그의 종아리를 예리한 무기로 찔러 중심을 잃었다고 주장했다.
무기가 날아온 방향은 분명 그의 오른쪽이었다. 육장봉 등 무장들이 서 있던 위치기도 했다.
소 승상의 다리에도 빨간 점이 남아 있었다. 어의의 판단으로도 예리한 무기로 난 상처가 맞았다.
황제는 당장 조사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명령을 받은 관리들이 대전의 반경 석 장(丈 - 1장은 약 3.3미터) 안을 샅샅이 뒤졌다. 아무 흉기도 찾지 못했다. 바닥은 먼지 한 톨 없이 깨끗했다.
그때 당직을 서던 시위의 말로는 육 대장군 등 무장들이 소 승상의 오른쪽에 있었던 것은 확실했다. 하지만 소 승상이 넘어진 뒤, 육 대장군 등은 앞으로 다가가지 않았다. 심지어 그 자리에 더 머무르지 않고 바로 떠났다.
그래서 현장을 파괴하거나, 증거를 인멸할 가능성이 아예 없다고 했다. 그 자리에 있던 시위는 이렇게 말했다.
“폐하, 신이 현장에 있었는데 흉기로 의심되는 물건은 전혀 찾지 못했습니다. 신이 소 승상과 함께 서 있었던 대인들께 여쭤보았지만, 그분들이 흉기를 지닐 가능성도 없었습니다. 신이 몰래 소 승상의 옷자락도 살펴보았지만, 먼지나 흉기가 남은 흔적은 찾지 못했습니다.”
황제는 이 사건을 매우 주목했다. 다친 사람은 현임 승상이었다. 사고가 발생한 지점도 황궁이었다.
그래서 사건을 잘 해결하기로 이름이 난 순천부윤을 특별히 불러들였다. 그리고 형부상서(刑部尙書)와 함께 이 일을 조사하라고 분부했다.
하지만 중립을 고집하는 순천부윤이나, 문관 쪽에 치우친 형부상서나, 모두 현장에서 아무 의문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두 사람은 앞뒤로 황제에게 보고했다. 보고한 내용에는 큰 차이가 없었다. 다만, 순천부윤은 중립적인 입장이었고, 형부상서는 소 승상의 편을 더 들고 있었다. 형부상서는 소 승상이 습격을 받고 계단에서 굴러떨어진 게 확실하다고 했다.
순천부윤의 보고를 먼저 들은 황제는 형부상서의 말을 듣자, 불만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증거가 있느냐? 흉기를 찾았느냐?”
‘이 문관들은 참 어이가 없군.
증인도, 증거도 없는데, 소 승상의 말 한마디만 믿고 육장봉에게 누명을 씌우려고 하다니. 조회에서 탄핵한 거로는 부족하다는 말인가?
기어이 육장봉이 처벌을 받아야 만족할 셈인가?’
“신은…… 현장에서 흉기를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형부상서의 이마에 순간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증거가 없다면 가서 찾아보아라.”
황제는 더 이상 형부상서와 말을 섞고 싶지 않아 쫓아냈다. 또 옆에서 시중을 드는 내관에게 시위를 데리고 태의서(太醫署)로 가서 소 승상이 집에서 요양하도록 보내 주라고 했다.
“폐하께서 집으로 돌아가 요양하라고 하셨다고?”
순간, 소 승상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이 공공, 이게 무슨 일인가? 폐하께서 황궁에서 상처를 치료하라고 허락하셨지 않은가?”
그는 이번에 크게 다쳤다. 오른팔이 부러졌을 뿐만 아니라, 허리뼈도 다쳤다. 어의의 말에 따르면 이 부상은 적어도 반년은 요양해야 했다. 며칠간은 움직이지도 말라고 했다.
그 말에 황제는 바로 황궁에서 치료하라고 허락했었다.
‘왜 갑자기 생각을 바꾸셨을꼬? 이건 좋은 징조가 아닌데.’
“승상, 여기는 황궁입니다.”
황제의 시중을 드는 내관, 이 공공이 거짓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황제가 소 승상에게 황궁에 남아 요양하라고 한 것 자체가 커다란 은혜였다. 본래는 허락하지 않는 것이 더 당연한 일이었다.
소 승상의 안색은 더욱 어두워졌다. 몇 마디 떠보려고 했지만, 이 공공은 전혀 기회를 주지 않고 바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 시위에게 소 승상을 가마에 태워 황궁 밖으로 모셔가라고 분부했다.
소 승상은 문인 출신에다가, 황제의 신임을 받는 신하였다. 그래서 줄곧 내관을 무시해 왔었다. 이 공공과 다툰 적은 없었지만, 잘 지낸 적도 없었다.
소 승상은 당황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고 싶었다. 자존심을 내려놓고 이 공공에게 묻기도 싫었다. 불안한 마음을 안고 시위에게 이끌려 황궁 밖으로 나가야만 했다.
* * *
월령안의 인맥과 소식통으로는 황궁에서 일어난 일을 바로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궁 밖에서 일어난 일들, 특히 소씨 가문과 연관된 일을 알아내기는 어렵지 않았다.
소 승상이 황궁 밖으로 실려 나왔다는 소식을 듣자, 월령안은 어찌 된 영문인지 바로 눈치챘다.
그날 저녁, 월령안은 기분이 좋아 밥을 반 공기나 더 먹었다.
“천목신교의 사람들이 역시 능력이 있네. 황궁에서도 손을 쓰다니. 돈을 쓴 보람이 있군.”
소 승상은 황궁에서 넘어져 다쳤다. 그녀에게는 전혀 혐의가 없었다.
천목신교가 강호의 사업을 독점해서 수횡천 같은 대협들의 생계마저 위협할 만했다. 일 처리가 아주 빠르고 깔끔했다.
“우연이 아닐까?”
소식을 들은 수횡천은 어리둥절했다.
‘천목신교의 사람이 황궁에도 있다고?’
“그럴 리가 없어요!”
월령안은 생각도 하지 않고 고개를 흔들었다.
“세상에 우연은 그렇게 많지 않아요.”
그녀는 어제저녁 돈을 냈다. 오늘 소 승상의 팔이, 그것도 오른팔이 부러졌다.
‘이게 우연일 수 있을까?’
“천목신교가 조정에 뒷배라도 있는 건가?”
수횡천의 안색이 순간 어두워졌다.
조정이 강호의 일에 끼어든다. 이는 그들에게 좋은 소식이 아니었다.
“없다고 해도, 이번 일로 천목신교가 얼마나 강한지 충분히 알 수 있었네요. 오라버니가 그놈들에게 질 만해요.”
수횡천의 충격을 받은 표정을 보고, 월령안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강호에서 살아남기란 역시 쉽지 않군!’
수황천의 그런 모습을 보며, 그녀는 그냥 얌전히 상업계에서 지내기로 다짐했다.